릴로

부서진 이중문의 잔해가 수술실 바닥을 뒹굴었다. 날카로운 쇠붙이 마찰음이 무균실의 정적을 무참히 찢어발겼다.

민태구의 구두 굽이 소독액으로 닦인 매끄러운 바닥을 짓밟았다. 그의 뒤로 거친 숨을 몰아쉬는 남색 정장의 형사들과 사설 경비원들이 들이닥쳤다. 그들의 가슴팍에 달린 무전기에서 지직거리는 잡음이 흘러나왔다. 무균 구역을 상징하는 녹색선 위로 시커먼 흙먼지가 묻은 발자국들이 어지럽게 찍혔다.

"백서진!"

민태구의 목소리는 쇳소리가 감돌 만큼 갈라져 있었다. 그의 눈은 붉은 핏발로 가득했고, 뺨 끝의 미세한 근육이 통제력을 잃고 파르르 떨렸다. 사흘 전 복도에서 스치듯 보았던 그의 눈가 황달은 한층 더 짙어져 누런 빛을 띠고 있었다. 흥분으로 인해 귀밑으로 튀어나온 경동맥이 불규칙하게 요동치는 모습이 서진의 시야에 선명하게 들어왔다.

서진은 우측 안구를 찌르는 듯한 극심한 안통을 억누르며, 수술포 아래로 떨리는 오른손을 깊숙이 감추었다. 기맥 투안의 과도한 가동이 남긴 대가는 뇌 속을 송곳으로 후벼 파는 것 같은 통증이었다. 하지만 그의 안색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눈꺼풀 하나 떨리지 않는 정연한 태도로 민태구를 내려다보았다.

"이곳은 제1특별수술실의 무균 검역 구역입니다."

서진의 목소리는 낮고 평온했다. 폭풍의 한가운데 서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가벼운 학술 토론을 발제하는 학자처럼 이성적이었다.

"의료법 제36조 및 감염병예방법에 의거, 허가받지 않은 외부인의 무단 진입은 환자의 생명을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중대 과실입니다. 기획조정실장이라는 직함을 가진 분이 수술실 내부의 멸균 프로토콜조차 망각하신 겁니까?"

"닥쳐라, 이 오만한 놈이!"

민태구는 서진의 논리적인 지적을 비웃듯 손에 든 법원 영장을 허공에 흔들었다. 종이가 파르르 떨리며 신경질적인 소리를 냈다.

"마약류 관리법 위반 혐의 피의자 백서진! 그리고 무단으로 VIP 환자의 뇌를 헤집어 놓은 무면허 의료 행위자! 이 자를 당장 체포해! 저 수술대 위의 시신도 증거물로 확보한다!"

민태구의 지시에 형사들이 수술대 쪽으로 발을 내디뎠다. 그들의 손에는 차가운 은빛 수갑이 들려 있었다. 한채원이 앞을 가로막으려 했으나, 덩치 큰 경비원의 완력에 밀려 뒤로 비틀거렸다. 장영식 교수가 차가운 눈으로 민태구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민 실장, 선을 넘는군. 집도의의 허가 없이 수술실 내부의 환자에게 손을 대는 것은 형사 처벌 대상이야."

"장 교수, 당신도 공범으로 엮이고 싶지 않으면 입 다물고 있어! 윤 회장은 이미 끝났다. 저 얼간이 레지던트 놈이 주입한 정체불명의 약물과 마취제 과다로 심정지가 온 게 분명해!"

민태구의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갔다. 수술실 내부의 마취 가스 라인에 사전 조작된 마취 저해 성분과 고농도 신경 길항제가 흘러들어 갔음을 확신하는 자의 잔인한 미소였다. 가상의 독약을 삼킨 환자가 살아날 리 없다는 확신. 그것이 민태구를 이토록 무모하게 움직이게 만든 동력이었다.

민태구는 검역 유리벽의 경계선을 구둣발로 거칠게 넘어섰다. 멸균 구역의 심장부로 그의 더러운 발길이 닿으려는 찰나였다.

"정숙(靜肅)."

서진의 입술 사이로 나지막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화려한 수사도, 분노에 찬 고함도 없었다. 하지만 그 두 글자에는 수술실 전체의 공기를 순식간에 얼려버리는 기묘한 압도감이 실려 있었다. 마치 전생의 어전(御前)에서 백관들을 무릎 꿇리던 어의의 서늘한 기백이 현대의 수술실에 그대로 투영된 듯했다.

형사들의 발걸음이 불현듯 멈추었다. 민태구 역시 알 수 없는 한기에 몸을 움츠렸다.

"수술실은 사사로운 원한을 갚는 형장(刑場)이 아니며, 권력을 뽐내는 조정도 아니다."

서진이 천천히 수술포를 걷어내며 윤 회장의 상반신을 드러냈다.

"이곳의 유일한 지배자는 오직 환자를 살려내는 의권(醫權)뿐이다. 그리고 내 허락 없이 이 수술실에서 나갈 수 있는 목숨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이 비록 저승사자라 할지라도."

"허장성세는 거기까지다, 백서진! 죽은 시체를 두고 무슨 의권을 논한단 말이냐!"

민태구가 비웃음을 터뜨리며 손가락질을 하려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삐-------*

상태 감시 모니터의 규칙적인 바이탈 파형이 급격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붉은색 경고등이 꺼지고, 녹색의 정상 신호가 화면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으음……."

나직하지만 깊은 울림을 가진 신음이 수술대 위에서 흘러나왔다.

민태구의 눈동자가 세차게 흔들렸다. 그의 시선이 수술대 위의 노인에게로 향했다.

윤창선 회장의 감겨 있던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더니, 이내 번쩍 뜨였다. 그의 눈동자는 마취에서 방금 깨어난 환자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맑고 또렷했다. 서진의 미세 침술이 복사뼈의 신경총을 자극하여 체내의 기맥을 강제로 활성화하고, 잔류 마취 독소를 소변과 땀으로 즉각 배출시킨 결과였다. 이는 마치 체증이 꽉 막힌 하수구에 고압의 물을 쏘아 한순간에 뚫어버린 것과 같은 원리였다.

윤 회장의 시선이 수술실 천장의 무영등을 거쳐, 제 앞에 서 있는 민태구에게로 향했다.

"민…… 태구."

목소리는 쇳소리가 섞여 있었으나, 수십 조 원의 자산을 움직이는 거대 재벌 총수의 위엄이 고스란히 실려 있었다.

"회, 회장님?"

민태구의 안색이 순식간에 흙빛으로 변했다. 손에 쥐고 있던 법원 영장이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네놈이…… 지금 내 수술실에서 무슨 짓을 벌이고 있는 게냐."

윤 회장이 상체를 천천히 일으켰다. 한채원이 급히 그를 부축하려 했으나, 윤 회장은 손짓으로 그녀를 만류하며 스스로의 힘으로 침상에 걸터앉았다. 뇌졸중으로 마비되었던 그의 좌반신이 아무런 장애 없이 자연스럽게 움직였다. 기적적인 완치였다.

"회장님! 이, 이 자는 무면허로 수술을 강행한 범죄자입니다! 마약을 밀반입하고 회장님의 목숨을 위험에 빠뜨렸……!"

"시끄럽다!"

윤 회장의 사자후가 수술실의 유리벽을 세차게 흔들었다. 호랑이 같은 눈매가 민태구를 쏘아보았다.

"내가 마취에 취해 눈을 감고 있었다 하여 귀까지 먹은 줄 알았더냐! 네놈이 밖에서 형사들을 매수하고, 내 생명줄을 끊어놓기 위해 수술실 문을 부수라 악을 쓰던 소리가 내 귀에 똑똑히 들렸다!"

"그, 그것은 오해이십니다! 저는 오직 회장님의 안위를 위해……."

"오해?"

윤 회장이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그의 눈에 서린 살기는 민태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깊고 묵직했다.

"내 머릿속을 짓누르던 그 끔찍한 두통이 사라졌다. 마비되었던 손끝에 피가 도는 것이 느껴진다. 나를 살려낸 것은 기조실장 네놈의 혓바닥이 아니라, 내 눈앞에 서 있는 이 젊은 의사의 손끝이다!"

윤 회장이 오른손을 들어 민태구와 그 뒤의 형사들을 가리켰다.

"경호원들은 당장 이 무례한 자들을 내 눈앞에서 치워라! 그리고 민태구 기조실장, 네놈이 기획한 이 불법적인 난입과 수술 방해 행위에 대해 법적 책임을 묻겠다. 당장 저 자를 형사 구속 수사하도록 조치해라!"

"회장님! 제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이 자는……!"

민태구가 절규하듯 소리쳤으나, 윤 회장의 비서실 소속 경호원들이 수술실 내부로 신속하게 진입하여 민태구의 팔을 꺾어 제압했다. 형사들 역시 윤 회장의 서슬 퍼런 기세와 상황의 급변을 직감하고 슬그머니 수갑을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그들의 시선은 이미 민태구를 향해 차갑게 식어 있었다.

그때, 수술실의 깨진 문틈 사이로 장영식 교수가 서류 봉투 하나를 들고 걸어 나왔다. 그의 얼굴에는 평소의 냉소 대신, 승리를 확신하는 단단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회장님, 아직 보셔야 할 것이 남았습니다."

장 교수가 서류 봉투에서 두꺼운 보고서를 꺼내 윤 회장에게 건넸다.

"이것은 한채원 교수가 내부 전산망의 삭제된 로그를 복원하여 확보한 혜민재학 카르텔의 불법 임상 약물 유통 기요록입니다. 민태구 실장이 주도하여 정재계 VIP들에게 승인되지 않은 신약을 불법 투여하고, 그 부작용을 은폐하기 위해 환자들의 진료 기록을 조작한 명백한 증거입니다."

윤 회장이 서류를 받아들었다. 종이를 넘기는 그의 손끝이 분노로 미세하게 떨렸다. 서류의 중간쯤에는 민태구가 윤 회장의 수술을 방해하기 위해 마취과 약물 보관함의 프로토콜을 변경하라고 지시한 승인 내역까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민태구……."

윤 회장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 그것은 단순한 분노를 넘어, 배신자를 철저히 매장하겠다는 지배자의 선언이었다.

"네놈이 내 목숨을 담보로 이런 더러운 장난질을 쳤단 말이지. 혜민재학의 이름을 더럽히고, 세인병원을 네 사리사욕의 온상으로 만들었어."

윤 회장은 서류를 바닥에 내던졌다. 하얀 종이들이 민태구의 머리 위로 눈송이처럼 흩날려 떨어졌다.

"백서진 선생."

윤 회장이 서진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에는 단순한 환자의 고마움을 넘어, 자신의 생사여탈권을 쥔 존재에 대한 경외심이 깃들어 있었다.

"그대가 보여준 의술은 단순한 치료가 아니다. 내 목숨을 구원한 절대적인 힘이다. 이 세인병원에서 그대의 판단과 의술에 그 누구도 간섭할 수 없도록 보장하겠다. 백 선생의 모든 행위를 병원 최고의 어권(醫權) 조치로 공식 인정하고 서약한다."

서진은 묵묵히 고개를 숙여 예를 표했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전생의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왕을 살려내고 마침내 내의원의 전권을 거머쥐던 그 순간의 희열이, 현대의 세인대학병원에서 그대로 재현되고 있었다.

"그리고 장 교수."

윤 회장이 장영식을 돌아보았다.

"혜민재학 이사회가 가진 모든 주식 의결권을 즉시 장 교수가 이끄는 윤리 법인으로 일괄 위임 신탁하겠네. 민태구와 그 일당들이 가진 지분은 전부 몰수하고, 이사회를 전면 개편하게. 이제부터 이 병원의 주인은 환자를 살리는 의사들이다."

"명령 받들겠습니다, 회장님."

장영식이 깊이 숙여 인사했다. 그의 눈가에 마침내 오랜 숙원을 풀었다는 안도감과 뜨거운 열정이 감돌았다.

민태구는 힘없이 무릎을 꿇었다. 그의 머릿속은 온통 하얗게 변했다. 자신이 수년간 공들여 쌓아 올린 혜민재학의 카르텔이, 단 한 명의 레지던트와 그가 살려낸 노인의 말 한마디에 모래성처럼 허물어지는 광경을 무력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이…… 이럴 수는 없다.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민태구의 입술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의 눈에 보인 백서진의 얼굴은 승자의 오만한 미소가 아니었다. 그저 고장 난 기계를 처분하는 기술자의 무감각하고 차가운 시선뿐이었다. 그 시선이 민태구의 자존심을 갈기갈기 찢어놓았다.

바로 그때였다.

민태구의 우측 안구가 기묘하게 충혈되며, 그의 시야가 급격히 흐려지기 시작했다. 머릿속 깊은 곳에서 무언가 툭 끊어지는 듯한 둔탁한 느낌과 함께, 극심한 두통이 해일처럼 밀려왔다.

'아…….'

그는 비명을 지르려 했으나, 혀가 굳어 목구멍 바깥으로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의 침샘에서 흘러내린 침이 입꼬리를 타고 흘러내렸다.

서진의 눈에 민태구의 체내 기맥이 천연색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기맥 투안이 드러낸 민태구의 뇌 속 상황은 참혹했다. 좌측 중대뇌동맥(MCA)의 흐름이 완전히 차단되어 가고 있었다. 신약 부작용으로 인해 발생한 미세 혈전들이, 흥분으로 터질 듯 팽창한 그의 뇌혈관을 막아버린 것이다.

"어…… 어버버……."

민태구의 우측 뺨이 아래로 처지며 눈가가 흉측하게 비틀어졌다. 그의 오른팔과 다리가 힘없이 바닥으로 꺾였다. 전형적인 우측 반신 마비를 동반한 급성 뇌졸중(CVA)의 발작 증세였다.

"민 실장님!"

경비원들이 당황하여 그를 붙잡았으나, 민태구의 몸은 이미 통제력을 잃고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그의 흐려져 가는 눈동자 속에, 자신을 내려다보는 백서진의 서늘한 눈빛이 마지막으로 담겼다.

서진은 쓰러진 민태구를 향해 천천히 걸어가며, 차갑게 속삭였다.

"당신의 명줄 역시, 결국 내 손끝에 달려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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