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꺼운 유리창 너머로 회전날개가 허공을 찢는 금속성 파열음이 빌딩 숲을 흔들었다.
세인대학병원 본관 옥상 헬리패드. 야간 비행의 붉은 유도등이 요란하게 점멸하는 가운데, 닥터헬기 한 대가 거센 하강기류를 일으키며 내려앉았다. 기체 전면에 새겨진 국빈급 이송 표식이 서치라이트 불빛을 받아 번뜩였다.
그 시각, 본관 1층 로비는 사법경찰관들에게 둘러싸인 기획조정실장 민태구의 압송 과정으로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손목에 금속 수갑이 채워지기 직전, 그의 개인 비서가 숨을 헐떡이며 로비로 뛰어들었다.
"실장님! 회장님께서…… 윤창선 회장님께서 방금 헬기로 이송되셨습니다! 급성 뇌출혈, 혼수 상태입니다!"
민태구의 눈꺼풀이 잘게 떨렸다. 눈가에 낀 누런 황달 기운과 불규칙하게 요동치는 관자놀이의 혈관이 그의 극심한 심리적 동요를 드러냈다. 위기를 기회로 바꿀 마지막 동아줄이 썩은 동아줄인지, 혹은 황금 동아줄인지 가늠하는 간악한 눈동자가 빠르게 굴러갔다.
"윤 회장님이? 지금 어디로 모셨나?"
"천수각입니다! 제1특별수술실로 바로 직행했습니다!"
윤창선. 세인대학병원의 최대 주주이자 정재계를 막후에서 주무르는 거물. 그의 뇌 속에 묻혀 있던 시한폭탄이 결국 터진 것이다.
병원 내 신경외과 권위자들이 비상 호출을 받고 천수각 대기실로 속속 집결했다. 그러나 환자의 정밀 MRI 영상과 CT 혈관 조작 화면이 모니터에 뜨는 순간, 수십 년 경력의 교수진 사이에서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뇌저동맥 분지부 파열에 광범위한 지주막하 출혈(SAH)입니다. 뇌간 바로 앞이에요. 여기를 건드렸다가 환자가 테이블 데스(수술 중 사망)라도 하면, 그 책임은 누가 집니까?"
"수술 성공률이 5%도 안 됩니다. 이건 메스를 대는 순간 끝나는 목숨이에요."
내로라하는 대가들이 약속이나 한 듯 수술 장갑을 끼기를 거부했다. 환자를 살려 명예를 얻는 것보다, 실패하여 가문의 파멸을 맞이할 확률이 압도적으로 높았기 때문이다. 뇌저동맥 파열은 도심 한복판의 고압 가스관이 터진 것과 같다. 미세한 압력 조절 실패 한 번에 뇌 전체가 피바다로 변해 즉사하는 극악의 난이도였다.
그때, 수동 휠체어에 의지해 경찰들의 감시를 받던 민태구가 구속 집행 유예 처리를 노리고 천수각 대기실에 모습을 드러냈다. 수사관들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사회 부원장 송민우를 대동한 채 목소리를 높였다.
"내가 미국 존스홉킨스의 마이클 교수를 초빙하겠소! 갈라진 혈관은 약물로 최대한 버티면서 반나절만 시간을……."
"반나절 뒤면 이 환자는 뇌사 상태에 빠집니다."
대기실의 자동문이 열리며 차가운 음성이 공간을 얼려버렸다.
백서진이었다. 초록색 수술복을 단정하게 차려입은 그가 수술 모자를 눌러쓴 채 걸어 들어왔다. 그의 뒤편으로 신경외과 전문의 한채원과 은사 장영식 교수가 호위하듯 섰다.
민태구의 안면 근육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레지던트 나부랭이가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발을 들이밀어? 당장 쫓아내!"
송민우 부원장이 보안요원들을 향해 손짓하려 하자, 서진은 품 안에서 푸른색 인장이 찍힌 서류 한 장을 꺼내 들어 그들의 시야 차단막으로 던지듯 내밀었다.
"윤창선 회장님이 의식을 잃기 30분 전, 대리인인 법무법인 가온을 통해 직접 서명한 주치의 권한 위임장입니다. 환자의 직계 가족과 재단 이사회의 연대 서명까지 마쳤습니다. 현 시간부로 윤 회장님의 모든 의료적 처치 권한은 집도의 백서진에게 귀속됩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위조된 서류다!"
민태구가 비명을 지르듯 외쳤으나, 서진은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서진은 전생의 구중궁궐에서 왕위 계승 권력을 둘러싸고 탐욕을 부리던 역신들을 떠올렸다. 그들은 언제나 환자의 목숨보다 자신의 자리를 보존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민 실장님. 당신의 구속 집행 유예를 위한 시간 벌이에 이 환자의 생명을 이용할 생각은 버리십시오. 내 의권(醫權) 안에서 환자는 오직 살려내야 할 정교한 기계일 뿐, 당신들의 정치적 거래 칩이 아닙니다."
서진이 몸을 돌려 천수각 전용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그 엘리베이터는 세인대학병원에서 오직 단 한 사람, 병원의 절대적 지배자만이 보안 카드를 태크하고 탑승할 수 있는 권력의 상징이었다. 수십 명의 이사진과 경호원들, 그리고 수갑을 찬 채 부들부들 떠는 민태구가 지켜보는 가운데, 하급 레지던트인 백서진이 당당하게 카드를 찍었다.
*띡-*
청아한 비프음과 함께 골드 톤의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서진이 그 안으로 외로이, 그러나 누구보다 오만하게 걸어 들어갔다. 문이 닫히는 순간까지 그를 바라보던 병원 간부들의 눈빛에 서린 것은 단순한 분노가 아니었다. 그것은 범접할 수 없는 존재를 향한 원초적인 공포이자 전율이었다.
***
"서진 선생."
천수각 제1특별수술실 앞, 멸균 소독 구역에서 한채원이 서진의 앞을 막아섰다.
그녀의 눈동자는 붉게 충혈되어 있었고, 속눈썹 끝에는 미세한 물기가 어려 있었다. 서진이 기맥 투안을 가동할 때마다 겪는 극심한 부작용을 누구보다 가까이서 목격했던 그녀였다. 오른손을 제어하기 위해 침을 꽂고 버티던 그의 고통스러운 모습이 그녀의 뇌리에 선명히 박혀 있었다.
"이번 수술은 달라요. 윤 회장의 뇌저동맥은 이미 걸레짝처럼 너덜너덜해진 상태예요. 로봇 수술 콘솔을 잡는 순간, 조금이라도 손끝이 떨리면…… 서진 선생의 의사 생명뿐만 아니라 진짜 목숨이 위험해질 수 있어요. 제발 한 걸음만 물러서요."
걱정과 두려움이 가득 찬 그녀의 목소리가 멸균실의 정적을 두드렸다.
서진은 마스크 너머로 차가운 숨을 내쉬었다. 그의 눈동자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오히려 전생의 선왕이 승하할 때 차가운 용상 아래에서 무릎을 꿇고 무력하게 눈물을 흘려야 했던 어의 백서진의 깊은 심연이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한 선생."
서진이 그녀의 어깨를 스쳐 지나가며 나직하게 속삭였다.
"나는 죽어서 어의의 한을 되풀이하지 않습니다. 환자의 생사가 내 손끝에 달려 있는 한, 그 어떤 권력도, 육체의 한계도 나를 막아설 수 없습니다. 그것이 내가 이 시대에 다시 눈을 뜬 이유이자, 내가 증명할 절대의권입니다."
그의 목소리에 담긴 지독한 독점욕과 압도적인 기백에 한채원은 숨을 들이켰다. 그의 차가운 눈빛은 사람을 밀어내면서도, 동시에 그 어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반드시 환자를 살려내겠다는 절대적인 구원의 확신을 주고 있었다.
한채원은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떨리던 눈빛이 이내 단단하게 굳어졌다.
"……어시스트는 제가 들어갑니다. 당신의 손이 떨리면, 이번에도 제가 잡을 테니까요."
"준비하십시오."
서진이 수술실 문을 열었다.
***
제1특별수술실 '천수각' 내부.
우주선 내부를 연상시키는 고해상도 모니터들과 국내에 단 한 대뿐인 보스턴 하이브리드 초미세 외과 수술 로봇이 방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었다. 은빛으로 빛나는 로봇 팔 4개가 환자의 머리맡 위로 정교한 촉수처럼 뻗어 있었다.
서진은 로봇 제어 콘솔에 앉아 양손을 마스터 컨트롤러에 끼웠다.
그의 눈앞에 가상현실 3D 헤드셋이 내려앉았다. 일반적인 양의사들에게 이 기계는 복잡한 전자 회로와 유압 장치의 집합체겠지만, 서진에게는 달랐다. 손가락 끝에 전해지는 햅틱 피드백의 미세한 저항감은 과거 그가 침통에서 가장 날카로운 은침을 꺼내어 손가락 사이에 끼울 때의 감각과 완벽하게 맞아떨어졌다.
‘도구가 정교해졌을 뿐, 혈로를 찾아 기맥을 뚫는 이치는 다르지 않다.’
서진은 콘솔을 조작해 미세 메스와 일렉트로바이폴라(전기 소작기)의 작동 상태를 점검했다.
*위잉-*
로봇 팔의 미세 모터가 고주파음을 내며 회전했다. 서진의 손끝이 움직일 때마다 화면 속의 0.1밀리미터 단위의 마이크로 메스가 허공을 가르며 가상의 혈로 저항을 분석했다. 기맥 투안을 가동하기 전, 이미 그의 뇌 속에는 환자의 뇌 구조와 혈류의 흐름이 한 폭의 정밀한 산수화처럼 그려지고 있었다.
"윤창선 회장, 마취 유도 완료되었습니다. 바이탈은 수축기 혈압 140, 맥박 85회로 유지 중입니다."
마취과 의사의 보고와 함께 수술실 내의 긴장감이 극에 달했다.
"두개골 절개(Craniotomy) 시작합니다."
서진의 명령과 함께 수술이 시작되었다. 로봇 메스가 윤 회장의 두피를 절개하고, 고속 드릴이 뼈를 깎아내는 날카로운 마찰음이 수술실을 가득 채웠다. 뼈 타는 냄새와 함께 하얀 연기가 흡입기를 통해 빨려 들어갔다.
황백색의 단단한 두개골이 열리고, 마침내 뇌를 둘러싼 최후의 방어막인 경막(Dura mater)이 모습을 드러냈다.
서진의 우측 안구에 푸른빛의 미세한 기맥이 돌기 시작했다. 기맥 투안의 각성. 그의 시야 속에서 경막 아래로 흐르는 수천, 수만 개의 뇌혈관이 천연색의 빛나는 선형 에너지로 투시되어 보였다.
그중에서도 가장 깊은 곳, 뇌간 앞쪽의 뇌저동맥 분지부가 붉다 못해 검붉은 빛을 뿜어내며 요동치고 있었다. 마치 당장이라도 터질 듯 부풀어 오른 화산의 마그마처럼 아슬아슬하게 맥동하는 형태였다.
"경막 절개합니다. 미세 가위 세팅하십시오."
서진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로봇 팔 끝에 달린 마이크로 가위가 경막을 가르고 뇌의 심부로 진입하려는 찰나였다.
*삐-------!*
갑작스럽게 바이탈 모니터가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혈압 급상승! 수축기 190 돌파! 뇌압(ICP)이 미친 듯이 올라갑니다!"
마취과 의사의 다급한 외침과 동시에, 경막이 열린 틈새로 엄청난 고압을 견디지 못한 뇌척수액과 붉은 혈액이 뿜어져 나왔다.
*치익!*
로봇 카메라의 초미세 렌즈 쪽으로 분수처럼 뿜어 나온 고압의 혈액이 화면 전체를 덮쳐버렸다. 3D 헤드셋을 통해 수술 시야를 확보하던 서진의 시야가 순식간에 암전되듯 붉은 피막으로 가로막혔다.
"시야 완전 차단! 흡인기(Suction)로 안 잡힙니다! 뇌저동맥이 완전히 터진 것 같습니다!"
어둠과 핏빛이 뒤섞인 혼돈 속에서, 바이탈 경고음만이 수술실의 종말을 고하듯 찢어지게 울려 퍼졌다.
"흡입기 최대(Maximum suction)! 생리식염수로 세척(Irrigation) 계속해!"
한채원의 목소리가 멸균실 벽에 부딪혀 날카롭게 튀었다. 붉은 액체가 렌즈를 뒤덮어 모니터는 그저 검붉은 지옥도처럼 변해 있었다. 시야가 완벽히 차단된 상태에서 맹목적으로 기구를 움직이는 것은 캄캄한 밤중에 고속도로를 역주행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마취과 의사의 손길이 급박해졌다. 모니터의 심박수 그래프가 가파른 침엽수림처럼 솟구치며 경고음을 토해냈다.
"안 됩니다! 시야 확보가 안 되면 클립을 고정할 수 없습니다! 손을 떼야 합니다, 백 선생!"
"가만히 계십시오."
서진의 음성은 기묘할 정도로 고요했다.
그는 3D 헤드셋 너머로 눈을 감았다. 감은 눈꺼풀 아래로, 감각의 심연이 열렸다.
기맥 투안(腦氣脈 透眼).
우측 안구 깊숙한 곳에서부터 벼락이 치는 듯한 격통이 일었다. 망막 뒤쪽의 시신경이 터져 나가는 것 같은 고통에 서진의 어금니가 사정없이 맞물렸다. 비정상적인 열감이 오른뺨을 타고 흘러내렸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그 고통의 대가로, 피바다로 변한 모니터 화면 너머의 진짜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물리적인 빛은 피에 가로막혔으나, 생명의 기운인 기맥은 가릴 수 없었다. 검붉은 어둠 속에서 오직 윤 회장의 뇌저동맥만이 눈이 시릴 정도의 선명한 청색과 금색의 선으로 박동하고 있었다. 파열된 분지부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맥은 마치 부러진 대나무 끝에서 뿜어 나오는 푸른 안개와 같았다.
"한 선생, 흡인 팁을 좌측 3밀리미터 방향으로 고정하십시오. 그 상태로 흡인만 유지하면 됩니다."
"네? 하지만 앞이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나를 믿으십시오."
서진은 마스터 컨트롤러를 쥔 양손에 힘을 주었다.
기구의 금속 마찰음이 그의 미세한 손동작에 맞춰 미끄러지듯 울렸다. 로봇 팔의 끝에 달린 마이크로 클립이 핏빛 어둠을 뚫고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뇌저동맥의 파열 부위로 다가갔다. 그것은 장님이 바늘구멍에 실을 꿰는 것보다 더 정교하고 불가능에 가까운 궤적이었다.
바로 그때였다.
*쿵!*
수술대 위에서 윤 회장의 상체가 미세하게 들썩였다.
"어, 어? 환자 움직입니다!"
마취과 의사가 비명을 질렀다.
"말도 안 돼! 근이완제와 흡입마취제가 최대 용량으로 들어가고 있는데 어떻게 움직여!"
"뇌파(BIS) 센서가 90을 돌파했습니다! 마취가 풀리고 있어요! 환자가 깨어납니다!"
수술 중 환자의 움직임은 곧 사망 선고다. 0.01밀리미터의 오차로 혈관을 꿰매는 로봇 팔이 뇌 속에 박혀 있는 상태에서 환자가 머리를 흔든다면, 정교한 수술 도구들은 순식간에 뇌간을 짓이기는 흉기로 돌변한다.
"근이완제 재투여해! 당장 마취 심도 올려!" 한채원이 소리쳤다.
"이미 최고치입니다! 약물이 전혀 반응하지 않아요! 이건…… 약물 길항 작용입니다! 사전에 마취제를 무력화하는 다른 성분이 체내에 투입되어 있었던 게 분명합니다!"
마취과 의사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비오듯 흘러내려 바닥으로 떨어졌다.
누군가 사전에 윤 회장의 체내에 마취 저해 성분을 주입해 둔 것이 분명했다. 수술이 시작되면 마취가 풀려 환자가 급사하도록 설계된, 민태구와 그 카르텔이 심어둔 마지막 치명적인 덫이었다.
환자의 뇌압이 다시 한번 요동치며 뇌실 전체가 팽창하기 시작했다. 로봇 팔에 가해지는 압력이 마스터 컨트롤러를 통해 서진의 손끝으로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동시에, 과부하된 서진의 우측 안구에서 핏방울이 고여 마스크 위로 툭, 떨어졌다. 오른팔 전체를 타고 올라오는 격렬한 떨림과 마비 증세가 그의 손가락을 조여왔다.
환자가 완전히 발작하기까지 남은 시간은 단 몇 초.
로봇 팔을 빼내면 환자는 과다출혈로 즉사한다. 이대로 고정하려 하면 환자의 움직임에 뇌간이 파괴된다.
진퇴양난의 절벽 끝에서, 서진의 눈동자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수술실의 모든 소음이 아득해지며, 오직 폭발 직전의 기맥만이 그의 시야를 가득 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