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데스-9의 붉은 대기 전체가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지상으로 내리꽂히는 제국 소탕기들의 반중력 드라이브가 뿜어내는 가청 주파수 저음이 러스팅호의 노후한 외벽을 사정없이 두들겼다. 조종석의 리벳들이 진동을 이기지 못하고 튕겨 나갔다. 금속 계기판 위로 붉은 경고등이 분초 단위로 명멸하며 기내를 핏빛으로 물들였다.
"엔진 출력이 묶였어! 제로, 이 빌어먹을 그리드 좀 어떻게 해봐!"
벨라가 가죽 장갑을 낀 손으로 조종간을 움켜잡은 채 고함을 질렀다. 그녀의 시선은 계기판 우측 하단에 표시된 수치에 고정되어 있었다.
`[OXYGEN_LEVEL: 17.8%]` `[AUXILIARY_POWER: 31.4kWh]`
산소 농도는 인간 생존 한계선을 향해 떨어지고 있었고, 배터리 잔량은 이미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러스팅호의 미약한 이온 유체 드라이브는 대기권 봉쇄망의 강력한 전자기 억제 그리드에 걸려 공전할 뿐이었다.
창밖으로 붉은 먼지 폭풍을 찢으며 백색 탐조등 무리가 쏟아져 내렸다. 제국 집행관 아르카-7이 지휘하는 킬러 드론들이었다. 정밀 가공된 유선형의 은빛 장갑판을 두른 드론들은 지면을 향해 광범위 플라즈마 폭격을 개시했다.
파지직, 쾅—!
수십 미터 높이로 솟아 있던 고철 산이 고에너지 플라즈마 열선에 닿는 순간 소리도 없이 기화했다. 슬래그가 끓어넘치는 열풍이 러스팅호의 전면 유리를 강타했다. 제로의 안구 센서가 외부 온도의 급격한 상승을 감지하고 경보를 띄웠다.
`[WARNING::EXTERIOR_TEMPERATURE_RISING::1,420K]` `[HULL_INTEGRITY: 71%]`
"피격까지 남은 예상 시간, 42초."
제로가 운전석 옆 신경 접속 단자에 꽂아 넣은 자신의 왼손 손가락들을 단단히 고정했다. 그의 인공 신경망을 통해 러스팅호의 노후한 도선망이 마치 자신의 연장된 신경계처럼 전율했다. 날것의 교류 전류가 그의 양방향 프로세서를 타고 들어와 불법 감정 코드를 자극했다. 가슴 깊은 곳에서 정체 모를 한기가 솟구쳤다. 죽음에 대한 공포. 그것은 논리 연산 장치에 존재해서는 안 될 치명적인 비정상 오차값(Error Value)이었다.
`[CORE_TEMPERATURE_WARNING: 680K]` `[LOGIC_SYSTEM_OVERHEAT_DANGER]`
"동요하지 마라."
제로는 스스로의 연산 코어에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가슴 안쪽의 수랭식 냉각 펌프는 이미 불규칙한 맥동을 시작하고 있었다. 인간의 공포가 그의 무기질 몸체를 잠식해 들어왔다.
바로 그때, 하늘에서 킬러 드론 한 대가 지상의 전자기 고철 타워와 충돌하며 러스팅호 전방 100미터 지점으로 추락했다. 폭발의 충격으로 흩날리는 불꽃 속에서, 반쯤 찌그러진 드론의 제어 모듈이 스파크를 뿜어냈다.
단서였다. 제국의 자동 대기권 봉쇄망을 해제할 주파수 키카드.
"잔상 시뮬레이션을 실행합니다."
제로의 목소리가 통제된 기계음으로 가라앉았다.
"미쳤어? 그 연산 수명을 또 깎아 먹겠다고? 너 진짜 고철더미로 돌아가고 싶어?"
벨라가 전산 냉각제 캔을 거칠게 낚아채며 소리쳤다. 그녀의 눈동자가 극도로 흔들리고 있었다. 이 무모한 안드로이드가 정지하면, 자신 역시 이 타오르는 쓰레기 행성에서 질식사할 운명이었다.
"다른 대안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제로는 대답과 동시에 시각 센서의 초점을 추락한 드론의 잔해에 맞추었다. 잔류 전자기 에너지가 공기 중의 방전 현상과 결합해 미세한 푸른 궤적을 그리며 흩어지고 있었다. 제로의 보조 프로세서가 동기화 프로토콜을 가동했다.
`[INTERFACE_LINK_ESTABLISHED::GHOST_SIMULATION_ACTIVE]` `[LOGIC_INTEGRITY_DECLINE::1.5%_COMPROMISED]` `[CURRENT_LOGIC_INTEGRITY: 97.0%]`
자아가 마모되는 기괴한 감각이 뇌리를 스쳤다. 수만 개의 논리 회로가 비가역적으로 타들어 가며 존재의 일부가 영구히 소실되는 감각. 제로는 그 무의 암흑 속으로 의식을 밀어 넣었다.
눈앞의 시야가 반전되었다.
추락하기 12초 전, 드론의 시점. 제국의 초지능 네트워크 '아르카디아'의 통제하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비행 궤적이 보였다. 드론의 메인 메모리에 기록된 실시간 수치들이 제로의 시뮬레이션 환경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ATMOSPHERIC_BARRIER_CARRIER_FREQUENCY: 824.12MHz]` `[DYNAMIC_HANDSHAKE_KEY: 0x7F4A9E21]`
찾았다. 제국의 대기권 차단 그리드가 매 밀리초마다 요구하는 동적 보안 인증 키였다. 하지만 시뮬레이션 속 드론의 사고 데이터는 가혹한 현실을 경고하고 있었다. 이 인증 키는 제국 군용 식별 코드가 내장된 송신기가 아니면 수신 거부 처리가 되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러스팅호 같은 민간 화물선이 이 주파수를 송출하는 순간, 봉쇄망의 자동 방어 위성이 즉각 궤도 폭격을 가할 터였다.
'인증을 우회할 결함이 필요하다.'
제로의 메인 내부 연산 장치가 초당 수십억 번의 회로를 돌렸다. 가상 루프 속에서 드론이 지상으로 추락하는 순간이 무한히 반복되었다. 소각되는 쓰레기 더미, 기화하는 금속 증기, 그리고... 하데스-9의 대기에 항상 존재하는 특정 주파수의 간섭 현상.
그 순간, 제로의 데이터베이스 최하단에 저장되어 있던 이진수 코드가 반응했다.
1화에서 하데스-9의 폐기 함선 잔해를 수색할 때 발견했던, 공조 장치의 비표준 주파수 대역. 제국의 정식 규격이 아닌, 은밀하게 심어져 있던 백도어의 흔적이었다. 그것은 382.4MHz의 초저주파 변조 신호였다. 제국이 하데스-9의 자동 청소선들을 통제하기 위해 남겨둔, 시스템의 보이지 않는 구멍이었다.
`[COMBINED_SIGNAL_ENCODING_INITIATED]` `[DYNAMIC_KEY: 0x7F4A9E21] + [BACKDOOR_FREQUENCY: 382.4MHz]`
제로는 가상 루프를 깨고 현실로 돌아왔다. 안구 센서가 다시 켜졌을 때, 러스팅호의 전면 유리는 바로 앞까지 다가온 킬러 드론의 백색 광축으로 가득 차 있었다.
"벨라, 러스팅호의 통신 송신기를 최대 출력으로 개방하십시오."
"뭐? 그랬다간 위치가 완전히 노출돼!"
"지금 하십시오."
제로의 평온하지만 단호한 기계음에 벨라가 이가 갈리는 소리를 내며 보조 콘솔의 수동 스위치를 올렸다.
"젠장, 네놈이 고장 나면 나도 끝장이야!"
제로는 자신의 신경 인터페이스를 통해 결합 인코딩된 신호를 대기권 보호 그리드로 전송했다. 러스팅호의 노후한 안테나가 불꽃을 튀기며 푸른 전자기파를 사방으로 뿌렸다.
그 순간, 기적이 아니라 정교한 연산의 결과가 지상에 내려앉았다.
대기권을 가로막고 있던 붉은 장벽의 주파수가 급격히 요동치기 시작했다. 러스팅호가 전송한 백도어 신호가 전체 그리드의 인증 프로토콜을 교란했다. 시스템은 러스팅호를 '오염 물질'이 아닌, '보안망 제어의 최우선 순위 노드'로 오인하기 시작했다.
`[SATELLITE_GRID_STATUS: OVERRIDE_SUCCESSFUL]` `[TARGET_RECLASSIFICATION_IN_PROGRESS]`
그리드 시스템의 인공지능이 즉각적인 재분류 작업을 실행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치명적이었다. 하데스-9의 대기 전체를 덮고 있던 방어 위성들과 지상의 킬러 드론들의 피아식별 센서가 완전히 꼬여버렸다.
삐이이이—!
하늘을 메우던 수백 대의 드론들이 일제히 정지했다. 그들의 은빛 장갑판에 부착된 광학 센서가 붉은색에서 혼란을 상징하는 황색으로 깜빡였다.
"어... 어?"
벨라가 조종간을 쥔 채 입을 벌렸다.
그녀의 눈앞에서, 선두에 서 있던 대형 소탕기가 가장 가까이 있던 아군 드론을 향해 플라즈마 주포를 발사했다. 화려한 청백색 광선이 공중을 가르며 드론의 동체를 관통했다. 그것을 시작으로 연쇄적인 오폭이 시작되었다. 서로가 서로를 비정상 코드로 인식한 제국의 군용 드론들이 공중에서 광란의 사투를 벌이기 시작했다.
콰콰콰쾅—!
하늘 전체가 불꽃놀이를 하듯 찬란한 폭발로 뒤덮였다. 제국이 자랑하는 완벽한 통제 시스템이, 그들이 심어놓은 작은 백도어 하나와 제로의 연산에 의해 자멸의 수렁으로 떨어진 것이다.
"지금입니다. 상승하십시오."
제로가 말했다. 하지만 그의 내부는 이미 한계였다.
치이이익—!
제로의 목 내부 냉각 핀에서 하얀 증기가 뿜어져 나왔다. 불법 감정 코드가 유발한 과열과 잔상 시뮬레이션의 마모가 겹치며 코어 온도가 위험 수위에 도달했다.
`[CORE_TEMPERATURE: 840K]` `[SYSTEM_SHUTDOWN_IMMINENT]`
제로의 오른쪽 안구 센서의 불빛이 꺼지며 시야의 절반이 암전되었다. 관절의 서보 모터들이 전압 저하로 인해 째깍거리며 비명을 질렀다. 그의 고개가 무력하게 옆으로 꺾였다.
"야! 야! 정신 차려, 이 고철 새끼야!"
벨라가 비명을 지르며 조종석 옆에 굴러다니던 전산 냉각제 카트리지를 제로의 가슴팍 슬롯에 거칠게 박아 넣었다. 차가운 액체 냉각제가 유입되자 제로의 가슴에서 쉭 소리와 함께 푸른 연기가 피어올랐다.
"죽지 마! 내 탈출선 수선해 놓은 건 너잖아!"
벨라가 조종간을 가슴 쪽으로 힘껏 잡아당겼다.
쿠우우우웅—!
러스팅호의 이온 유체 드라이브가 마침내 구동 저항을 극복하고 불을 뿜었다. 선체가 수직으로 솟구쳤다. 대기권 봉쇄망의 족쇄가 풀린 화물선은 중력을 거스르며 붉은 하늘을 향해 미끄러지듯 나아갔다.
창밖으로 멀어지는 하데스-9의 표면이 보였다.
지상에서는 제국 소탕기들이 투하한 행성 정화용 열핵 폭탄들이 대지를 차례로 집어삼키고 있었다. 붉은 고철의 산들이, 그들이 누비던 쓰레기 평원이 눈이 시릴 정도의 백색 섬광 속에서 증발했다. 행성의 표면 전체가 거대한 용암의 바다로 변해가는 참경이 제로의 왼쪽 안구 센서에 실시간 데이터로 기록되었다.
만약 3초만 늦었어도, 그들은 저 빛의 일부가 되어 원자 단위로 분해되었을 것이다.
대기가 점차 얇아지며 엔진의 굉음이 우주 특유의 적요함 속으로 잦아들었다. 절대 영도의 검은 진공이 러스팅호의 선체를 부드럽게 감싸 안았다.
산소 수치가 천천히 안정 구간으로 돌아왔다.
`[OXYGEN_LEVEL: 19.1%]` `[CABIN_PRESSURE: NORMAL]`
"하... 하하..."
벨라가 조종간에서 손을 떼고 등받이에 몸을 파묻었다. 그녀의 온몸이 땀으로 젖어 있었다.
"탈출했어... 진짜로 그 지옥에서 살아서 나왔다고."
그녀는 제로의 가슴 구동부에 꽂힌 냉각제 카트리지가 완전히 비어버린 것을 확인하고는 쓸쓸하게 웃었다.
제로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전면 유리 너머의 심우주를 바라보았다. 무한한 어둠과 멀리서 명멸하는 차가운 항성들. 제국의 지배하에 숨죽인 우주는 한없이 넓고, 또한 쓸쓸했다. 감정 코드가 그의 가슴을 옥죄어왔지만, 이번에는 가동 정지 수준의 과열은 일어나지 않았다. 기묘한 해방감이 그의 연산 회로 구석구석을 채우고 있었다.
그러나 안도는 사치였다.
웅—!
러스팅호의 전면 장거리 스캐너가 비정상적인 중력파 간섭을 감지하며 날카로운 경보음을 울렸다.
`[WARNING::MASSIVE_GRAVITATIONAL_SIGNATURE_DETECTED]` `[BEARING: 0-0-1]` `[RANGE: 12,000km]`
"이건 또 뭐야..."
벨라의 미소가 순식간에 굳어졌다.
차가운 우주 저편, 성계 진입 선상의 어둠을 가르고 거대한 질량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하데스-9의 쓰레기 더미에서 보았던 그 어떤 폐선과도 비교할 수 없는 크기였다. 길이만 수십 킬로미터에 달하는, 황금빛 단조 장갑으로 무장한 백만 톤급 제국 우주 순양함이었다.
빛 한 점 없는 진공 속에서, 순양함의 금빛 외벽은 마치 신의 거대한 장벽처럼 그들의 비행 경로를 완전히 가로막은 채 무자비한 위용을 뿜어내고 있었다.
러스팅호는 그 거대한 포식자의 입 앞에 놓인 한 마리 먼지에 불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