콰아아아앙!
고막을 찢어발기는 굉음과 함께 별채의 대리석 지붕이 사정없이 함몰되었다. 단단한 천장을 버티고 있던 이오니아식 석주들이 힘없이 꺾여 내렸고, 사방으로 비산하는 대리석 파편들이 야간의 정적을 무자비하게 난도질했다.
호흡이 단번에 턱 막혔다. 대공저의 전용 별채를 감싼 정교한 물리 방어 결계가 한순간에 유리창처럼 박살 나며, 허공에 기이한 푸른빛의 파동이 소용돌이쳤다.
발루아 공작가만이 독점하고 있는 살상 병기. ‘진공 마법 폭발 폭약’이었다.
[경고: 고농도 진공 압축 마력 반응 감지. 회피 불가 영역.] [경고: 좌측 2.5미터 지점, 2차 연쇄 폭발 카운트다운 시작.]
시야를 붉게 물들이는 ‘진혼의 예시안’의 멸렬한 경고등이 망막을 찔렀다. 머릿속이 깨질 듯이 울렸고, 전신을 타고 흐르는 마력의 왜곡은 이내 뼛속까지 얼려 버릴 듯한 극심한 오한을 몰고 왔다.
“하윽……!”
침대 시트를 움켜쥔 손끝이 하얗게 질려 갔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는 절망적인 마비가 시작되고 있었다. 진혼의 예시안이 강제하는 미래 예지의 대가, 영혼을 얼려 죽이는 무자비한 한기가 심장 가장 깊은 곳을 향해 얼음 송곳처럼 파고들었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폐포가 얼어붙어 바스러지는 듯한 고통에 에일라는 입술을 깨물었다. 핏방울이 터져 나와 턱 끝으로 흘러내렸으나, 그조차 바닥에 닿기도 전에 차갑게 굳어 갈 정도였다.
창문 너머로 그림자들이 번득였다. 칠흑 같은 가죽 갑옷을 걸치고 소리 죽여 접근하는 살수들의 형체가 희뿌연 먼지 구덩이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날카롭게 벼려진 비수가 에일라의 목덜미를 향해 사선으로 그어지던 그 찰나였다.
“어디를 감히.”
천둥과도 같은 포효가 고요한 복도와 무너진 별채의 공간을 단숨에 장악했다.
쾅! 하고 믿기지 않는 파쇄음이 울렸다. 무너져 내리던 육중한 돌기둥을 맨손으로 받아쳐 날려 버리며, 한 사내가 폭풍처럼 안으로 난입했다.
라인할트 폰 크로이츠.
그의 은색 머리칼이 먼지와 불꽃 속에서 눈부시게 휘날렸다. 분노로 형형하게 빛나는 금안은 야수의 그것과 다름없었다. 라인할트는 단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에일라의 침상 앞으로 도약했다. 그의 단단한 팔이 에일라의 얇은 허리를 낚아채듯 끌어당겨 품에 안았다.
닿는 순간, 기적 같은 온기가 전신을 관통했다.
그의 신성한 불꽃이 에일라의 피부를 타고 스며들며, 심장을 옥죄던 혹독한 한기를 단숨에 녹여 내렸다. 얼어붙었던 혈관이 요동치며 뜨거운 피가 다시 돌기 시작했다. 에일라는 본능적으로 그의 단단한 가슴팍에 뺨을 묻으며, 탐욕스럽게 그 신성의 온기를 흡수했다.
동시에 기이한 감각이 비집고 들어왔다. 일찍이 그녀의 마력 중심부에 기생하듯 자리 잡았던 그의 미세한 불꽃 씨앗이, 주인의 거대한 마력과 호응하듯 미친 듯이 박동하는 느낌이었다. 깊은 심연 속에서 타오르는 작은 불씨가 그의 강력한 파동을 흡수하며 제 크기를 키우는 기현상. 에일라는 고통 속에서도 그 신비로운 동조를 또렷이 인지했다.
“내 영역에서, 내 것을 건드린 대가를 치러라.”
라인할트의 목소리는 낮고 낮아, 흡사 지옥의 밑바닥에서 울리는 명음 같았다.
그가 허리춤에서 성검을 뽑아 들자, 검신을 따라 태양의 정수를 그대로 녹여 낸 듯한 맹렬한 금색 화염이 뿜어져 나왔다. 눈이 멀 것 같은 신성한 불꽃이 별채의 어둠을 완전히 지워 버렸다.
스스스스—!
어둠 속에서 비수를 치켜들고 쇄도하던 다섯 명의 살수들이 미처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허공에서 굳어졌다. 라인할트가 검을 가볍게 휘두른 순간, 뿜어져 나간 화염의 해일이 그들의 신체를 통째로 집어삼켰다. 사악한 마력을 머금고 있던 진공 폭약의 잔해들이 성스러운 불꽃에 닿자마자 하얀 재가 되어 흩날렸다.
단 일검이었다. 대공의 무자비한 신성 화염은 침입자들의 영혼까지 태워 버리겠다는 듯 잔혹하게 타올랐고, 바닥에는 오직 그들이 차고 있던 금속 장비의 파편들만이 붉게 달아오른 채 나뒹굴었다.
사위가 고요해졌다. 매캐한 연기와 타오르는 불꽃의 열기 속에서, 라인할트는 여전히 에일라를 품에 안은 채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의 심장이 에일라의 가슴팍에 맞닿아 미친 듯이 뛰는 것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에일라. 괜찮은가? 대답해라.”
그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제국의 수호자이자 냉혈한이라 불리던 대공이, 오직 한 여자의 안위를 확인하기 위해 이토록 흐트러진 음색을 내고 있었다.
하지만 에일라의 이성은 이미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녀의 푸른 눈동자는 그의 다정한 안부나 걱정 어린 시선에 머물지 않았다. 극단적인 거래주의로 무장한 그녀의 머릿속은 오직 이 상황을 어떻게 ‘가장 치명적인 무기’로 환산할 것인가에 대해서만 작동하고 있었다.
그녀는 라인할트의 품에서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여전히 전신에 남아 있는 미미한 전율을 억누르며, 바닥에 굴러다니는 살수들의 잔해로 시선을 돌렸다.
[진혼의 예시안: 대상의 본질을 분석합니다.] [분석 완료: 타버린 흉갑 내부, 제국 국방성 특수 제련 인장 존재. 발루아 공작가 사설 점유 물품.]
시야에 투명한 돋보기 형상의 마법 궤적이 그려지며, 그을린 가죽 갑옷 파편의 안쪽을 정확하게 지목했다. 에일라의 입꼬리가 호선을 그리며 우아하게 올라갔다.
“라인할트, 잠시 나를 놓아주세요.”
“아직 온기가 부족할 텐데…….”
“더 중요한 일이 있습니다.”
에일라는 그의 손길을 냉정하게 뿌리치고 침상에서 내려왔다. 얇은 실크 슬립 차림이었으나, 그녀의 걸음걸이는 제국의 그 어떤 여왕보다 오만하고 기품이 넘쳤다. 그녀는 그을린 바닥으로 걸어가, 반쯤 녹아내린 철제 파편 하나를 집어 들었다.
마침 폭발 소음을 듣고 대공저의 성휘 기사단원들이 무기를 빼든 채 현장으로 들이닥치던 참이었다.
“대공 전하! 습격입니까!”
부단장이 이끄는 기사들이 경악에 찬 얼굴로 파괴된 별채의 참상을 바라보았다. 에일라는 그들 모두가 볼 수 있도록, 손에 쥔 철제 파편을 높이 들어 올렸다.
“모두 똑똑히 보십시오.”
그녀의 맑고 서늘한 목소리가 무너진 대리석 벽 사이를 메웠다.
“이것은 단순한 도적이나 정체불명의 살수단이 저지른 사사로운 테러가 아닙니다. 여기 녹아내린 낙인을 보십시오. 발루아 국방성 허가, 군용 마력인입니다. 가문의 정규 군사 자산이자, 황실의 엄격한 통제를 받아야 하는 특급 군수품이지요.”
기사들의 시선이 일제히 에일라의 손끝으로 향했다. 그들의 눈이 경악으로 커졌다. 타버린 철판 안쪽에 선명하게 박혀 있는 발루아 공작가의 문장과 국방성의 검인. 그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명백한 증거였다.
“제국 맹약법과 군법에 의거하여, 황실의 공식 허가 없이 사적으로 군용 마법 폭약을 유출해 제국 대공의 사저를 폭격한 행위는 무엇으로 규명됩니까, 부단장?”
에일라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부단장을 압박했다. 부단장은 침을 삼키며 엄숙하게 대답했다.
“……명백한 반역죄입니다. 황실과 제국 전체를 향한 선전포고와 다름없습니다.”
“그렇지요.”
에일라의 눈동자가 잔혹한 희열로 번뜩였다.
그녀의 머릿속에서는 이미 정교한 체스판의 말들이 완성되어 가고 있었다. 황제 안드레아스는 발루아 공작가를 이용해 대공저를 견제하고, 종국에는 둘 다 파멸시키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었다. 이번 기습 역시 황제의 암묵적인 동조나 묵인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터였다.
하지만 공작가가 대공의 처소를 직접 침탈하여 군용 무기로 테러를 가한 이상, 상황은 완전히 달라진다. 이것은 사적인 암투의 영역을 넘어선 ‘물적 반역죄’다.
제아무리 황제라 할지라도, 제국의 법과 기사단의 명예가 걸린 이 명백한 반역 행위를 대놓고 비호할 수는 없다. 만약 황실 사법 위원회가 이를 덮으려 한다면, 성휘 기사단과 제국의 모든 무관 세력이 황실에 등을 돌릴 것이기 때문이었다.
“라인할트.”
에일라가 몸을 돌려 대공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얼굴에는 방금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었다고는 믿기지 않는, 서늘하고 완벽한 통제력이 깃들어 있었다.
“기사단을 소집하세요. 그리고 이 즉시 황실 사법 위원회와 기사단 영지에 이 채증 자료를 송부하십시오. 발루아 공작가가 대공저를 오염시키고 제 체온 연성 계약을 방해하여 대공 가문의 후사를 위협했다는 죄목을 추가해서 말입니다.”
대공저 오염 테러. 그리고 맹약 관계에 있는 대공비 후보에 대한 살해 기도.
이것은 황실과 법 전체를 동원해 가문을 파멸의 구렁텅이로 구겨 넣는 가장 완벽하고 격조 높은 궤멸 전술이었다. 루드비히가 자신을 죽이기 위해 보낸 최후의 자객들이, 도리어 가문의 목을 죄는 가장 단단한 밧줄이 되어 돌아간 셈이었다.
라인할트는 제 안위보다 가문의 파멸을 설계하는 데 여념이 없는 에일라를 복잡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녀의 철저한 무감각함과 기만적인 태도에 심장이 아려왔지만, 동시에 그녀가 제안한 판이 완벽하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었다.
“……그대의 뜻대로 하지.”
라인할트가 낮게 읊조리며 기사들에게 손짓했다.
“지금 즉시 증거물을 보존하고, 황실 사법 위원회에 기소장을 발부하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발루아 가문의 모든 자산을 동결하고 반역죄로 다스릴 준비를 마쳐라.”
“존명!”
기사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파괴된 별채에 서늘한 승리의 기운이 감돌았다. 에일라는 먼지 자욱한 창밖을 보며 차갑게 미소 지었다.
‘이제 끝장이에요, 루드비히.’
***
같은 시각, 수도 플로렌의 발루아 공작저.
우아한 촛불이 켜진 집무실에서 루드비히 드 발루아는 초조하게 회중시계를 바라보고 있었다. 시간이 꽤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별채가 소멸했다는 낭보가 들려오지 않고 있었다.
가문을 위해 기꺼이 희생되어야 할 사냥개, 에일라를 완벽하게 제거하고 대공저를 혼란에 빠뜨려 황실과의 전면전을 유도하려던 그의 계획이었다.
스산한 바람과 함께 집무실의 문이 거칠게 열렸다. 헐떡이는 숨을 몰아쉬며 들어온 친위대장의 얼굴은 잿빛으로 변해 있었다.
“공작 각하……! 큰일났습니다!”
“어떻게 되었느냐? 에일라의 목은 가져왔는가?”
루드비히가 다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나며 물었다. 그러나 친위대장은 무릎을 꿇은 채 고개를 들지 못했다.
“실패했습니다……! 기습조 전원이 대공의 신성 화염에 소멸당했습니다. 게다가…… 그들이 사용한 진공 폭약의 잔해에서 가문의 군용 인장이 채증되어, 황실 사법 위원회에 반역죄 기소장이 접수되었다고 합니다!”
“무엇이라?! 그게 무슨 소리냐!”
루드비히의 노안이 믿을 수 없다는 듯 경악으로 일그러졌다.
비밀리에 보낸 자객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도 모자라, 군용 인장이 적발되어 반역죄로 기소되다니. 그것은 단순한 실패가 아니었다. 가문의 존립 자체가 뿌리째 뒤흔들리는 파멸의 전조였다.
“황실 사법 위원회에서 가문의 비자금 채권과 자산 동결령을 발부했으며, 대공저의 수호 기사단이 지금 이쪽으로 행군해 오고 있습니다!”
“이, 이럴 수가……! 그 계집이…… 에일라 그 교활한 년이 감히 나를……!”
루드비히는 책상 위의 화려한 크리스탈 장식품들을 바닥으로 쓸어버렸다. 요란한 파편 소리가 방 안을 가득 메웠다. 가슴이 터질 듯한 공황이 그를 덮쳤다. 황제가 암묵적으로 지지해 줄 것이라 믿었던 판이, 단 한순간에 자신을 옥죄는 단두대로 변해 버렸다.
허옇게 질린 입술을 부르르 떨던 루드비히의 눈에 광기가 어렸다.
이대로 무너질 수는 없었다. 그는 가문의 마지막 비장의 수, 대공의 성휘 기사단을 무력화하기 위해 준비해 두었던 ‘위조 감금 결계’의 제어 인장을 손에 쥐었다. 손끝이 분노와 공포로 사정없이 떨리고 있었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결코 이렇게 망할 수는 없어……!”
***
깊은 밤, 대공저의 본채 내부에 마련된 임시 침소.
은은한 앰버 향이 감도는 방 안에는 오직 서늘한 침묵만이 흐르고 있었다. 별채의 습격 여파로 임시로 옮겨온 이곳은, 라인할트의 마력이 가장 짙게 배어 있는 공간이었다.
에일라는 침대 가장자리에 걸터앉아 있었다. 그녀의 전신은 여전히 차가웠다. 진혼의 예시안을 극한으로 끌어다 쓴 페널티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사지가 마비되듯 굳어 가고, 체온이 급격히 떨어지는 고통이 다시금 그녀를 엄습했다.
스윽.
따뜻하고 단단한 손길이 에일라의 차가운 손을 감싸 쥐었다.
어느새 다가온 라인할트가 그녀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그의 금빛 눈동자에는 일찍이 본 적 없는 깊은 갈망과 결핍, 그리고 애달픈 고통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그가 에일라의 손등에 제 입술을 꾹 눌렀다. 그의 숨결을 타고 뜨거운 신성의 불꽃이 그녀의 혈관으로 흘러들어왔다. 얼어붙던 손가락 끝에 온기가 돌며, 마비가 기적처럼 풀려나갔다.
에일라는 그 온기를 고스란히 받아들이면서도, 눈동자만큼은 한없이 냉정하게 유지했다. 그녀에게 이 행위는 오직 생존을 위한 ‘해독제 수혈’이자, 철저하게 정량화된 거래의 일환일 뿐이었다.
“온기가 더 필요하겠지.”
라인할트가 속삭이며 그녀의 다른 손마저 잡아 제 뺨에 가져다 대었다. 그의 뜨거운 체온이 차가운 에일라의 손바닥을 녹였다.
“……이것으로 오늘 밤의 해독은 충분합니다, 대공 전하. 가문의 반역죄 기소가 시작되었으니, 이제 맹약의 기한도 얼마 남지 않았군요.”
에일라의 무미건조한 목소리가 방 안에 울렸다. 그녀는 이미 제국을 떠나 독립된 영토인 ‘헤이븐’으로 탈출할 계획서의 마무리를 생각하고 있었다. 라인할트라는 해독제를 완전히 다 써버리고 버릴 날이 머지않았음을 선언하는 차가운 어조였다.
그 순간, 라인할트의 눈동자가 격렬하게 흔들렸다.
그는 에일라가 자신을 철저하게 비즈니스 파트너이자, 생명 유지용 도구로만 취급하고 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알고 있었다. 단 한 조각의 미련도, 단 한 방울의 감정도 섞이지 않은 완벽한 거래.
하지만 그 사실을 직시할 때마다, 그의 심장은 갈기갈기 찢겨 나가는 것 같았다. 이미 그녀 없이는 숨조차 쉴 수 없게 되어 버린 것은 그였다. 자존심도, 오만함도, 기사단장으로서의 규율도 그녀의 서늘한 눈빛 한 번에 모두 무너져 내린 지 오래였다.
라인할트는 에일라의 손을 더욱 세게 움켜쥐었다. 그의 손아귀 힘이 떨리고 있었다. 그는 고개를 들어, 극도의 결핍 어린 눈으로 에일라를 올려다보며 나직하게 속삭였다.
“처음부터 나를 도구로 썼다 해도 좋으니…….”
그의 목소리가 젖어 있었다. 애원하고 있었다. 제국의 가장 고고한 대공이, 오직 살아남기 위해 자신을 착취하는 악녀의 발밑에 기꺼이 엎드려 무릎을 꿇고 있었다.
“평생 내 곁에서 내 불꽃을 전부 가져가는 조건으로 살아가는 건 불가능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