쨍그랑!
날카로운 파편 음이 고막을 찢었다. 투명한 크리스탈 잔이 대리석 바닥에 부딪혀 산산조각 나며, 붉은 루비 빛깔의 샴페인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그 파편 위로 붉게 물든 환영이 겹쳐 흘렀다.
‘성수 저장고 대폭파. 성휘 기사단 집단 독사.’
피를 토하는 듯한 이명이 귓가를 난타하는 것과 동시에, 발끝에서부터 지독한 오한이 타고 올랐다. 혈관마다 돋아나는 서릿발에 숨통이 턱 막혔다. 심장이 돌처럼 굳어가며 육체의 모든 제어권을 박탈당하는 감각. 에일라의 무릎이 꺾였다. 비틀거리며 쓰러지는 그녀의 시야 끝에, 연회장의 화려한 샹들리에 불빛이 기괴하게 왜곡되어 흩어졌다.
그 암전의 나락 속에서, 에일라는 마지막 남은 생존 본능으로 손을 뻗었다.
석탄처럼 뜨거운 온기가 그녀의 손목을 낚아챈 것은 찰나의 순간이었다.
“에일라!”
낮고 묵직한 음성이 머리 위로 떨어졌다.
라인할트였다. 그의 단단한 손아귀가 에일라의 허리를 단단히 감싸 안아 지탱했다. 허공에 붕 떴던 몸바탕이 그의 넓은 가슴팍에 가닿는 순간, 옷감 너머로 전해지는 비정상적일 정도의 열기가 에일라의 얼어붙은 뺨을 자극했다.
그는 당혹감으로 일그러진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은빛 자수가 촘촘히 박힌 대공의 제복 소매 사이로, 그의 굵직한 손가락이 에일라의 차디찬 손을 찾아 얽어맸다.
손가락과 손가락이 단단히 맞물려 깍지를 꼈다.
화아아아─!
그의 손바닥에서부터 흘러나오는 신성한 불의 마력이 에일라의 손끝을 타고 심장을 향해 들이쳤다. 얼음장 같던 혈관 속으로 끓어오르는 용암 같은 열기가 수혈되듯 주입되었다. 전신을 좀먹던 마비가 서서히 풀리고, 폐부 깊숙이 뜨거운 산소가 들어찼다.
“……하아, 윽…….”
에일라는 그의 가슴팍에 이마를 기댄 채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흐트러진 흑발 사이로 드러난 그녀의 목덜미가 잘게 떨렸다.
라인할트는 심장이 터질 듯이 뛰는 것을 느끼며, 품에 안긴 가냘픈 육체를 더 세게 끌어안았다. 그의 금빛 눈동자에 짙은 불신과 안도감이 뒤섞여 소용돌이쳤다.
“갑자기 왜 이러는 거지? 방금 전까지 발루아 공작을 몰아세우던 기세는 어디로 가고.”
“놓치지…… 마세요.”
에일라는 그의 옷깃을 움켜쥐며 나직하지만 단호하게 속삭였다. 그녀의 입술 사이로 하얀 김이 피어올랐다.
“지금 저를 안고…… 사제관 뒤편의 성수고로 가야 합니다. 당장.”
“성수고? 연회 도중에 갑자기 거긴 왜 가겠다는 건가.”
“질문할 시간은 정량적으로 계산되지 않았습니다, 대공. 제 목숨과, 당신 기사단의 목숨이 걸린 일이니까요.”
그녀의 눈동자는 여전히 얼음처럼 차갑고 투명했다. 방금 전 죽음의 문턱을 밟고 온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이성적인 안광이었다.
라인할트는 턱끝을 굳혔다. 그녀가 자신을 철저하게 ‘해독제’이자 정보원으로만 이용하고 있다는 불쾌감이 치밀었지만, 동시에 그녀의 비정상적인 예지력이 번번이 진실을 가리켰음을 부정할 수 없었다.
그는 에일라를 안아 들고 연회장의 소란을 피해 뒤쪽 테라스로 몸을 날렸다.
사제관으로 이어지는 어두운 회랑은 차가운 침묵에 잠겨 있었다.
대공의 신성 마력을 지속적으로 흡수하자, 에일라의 체온은 겨우 정상 궤도로 돌아왔다. 그녀는 라인할트의 품에서 내려와 스스로 대리석 바닥을 딛고 섰다. 다리가 여전히 조금 떨렸지만, 그녀는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은 채 드레스 자락을 정돈했다.
“성수고 주변에 쳐진 결계가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군.”
라인할트가 검자루를 쥐며 낮게 읊조렸다. 그의 말대로, 성수고 입구의 아치형 석조 구조물 주변으로 보라색 마력의 잔상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고 있었다. 외부인이 강제로 결계를 우회하려 할 때 발생하는 특유의 기화 현상이었다.
에일라는 품 안에서 작은 비단 주머니를 꺼냈다. 그 안에서 나온 것은 1화에서 황실 추적자가 자신을 독살하려 했을 때 사용했던 ‘위장 독잔의 마개’였다.
그녀는 손끝으로 그 마개의 단면을 쓸어내렸다.
겉보기에는 평범한 은제 마개였지만, 마이크로 단위의 정밀한 세공 안쪽에는 세 갈래로 미세하게 갈라진 나선형 균열 구조가 숨겨져 있었다. 이는 황실 비밀 공방에서 제작된 독극물 용기에만 새겨지는 독점적인 각인이었다.
“이게 무엇인가?”
라인할트가 미간을 좁히며 물었다.
“황실이 발루아 공작가를 멸문시키기 위해, 그리고 저를 처리하기 위해 보냈던 독잔의 마개입니다.”
에일라는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마개를 불빛에 비추어 보았다.
“이 독특한 균열 구조는 특정한 산성 독물과 반응했을 때만 마개가 부식되면서 내부의 지연성 폭발 물질을 방출하도록 설계되어 있죠. 예시안이 보여준 환영 속에서, 성수고를 폭파시킨 기폭 장치는 바로 이 마개와 동일한 공법으로 만들어진 독병이었습니다.”
그녀는 직접 성수고의 약품 보관대로 다가갔다.
성수의 정화력을 유지하기 위해 사제들이 사용하는 각종 연금술 약병들이 삼나무 선반 위에 가득 진열되어 있었다. 에일라는 망설임 없이 손을 뻗어, 푸른빛을 띠는 정화제 병들을 하나씩 검사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손가락이 약병들의 마개를 빠르게 훑었다.
스치는 유리 마찰음 속에서, 에일라의 손끝이 어느 한 병의 주둥이에서 멈췄다.
“찾았군요.”
에일라가 집어 든 갈색 약병의 마개는 다른 것들과 외관상 완전히 똑같았다. 하지만 마개 밑바닥을 비스듬히 기울이자, 촛불 밑에서 미세하고 정교한 세공의 균열이 세 갈래로 뻗어 나가는 것이 선명히 보였다.
1화에서 보았던 황실 독잔 마개의 균열 구조와 100% 일치하는 기하학적 문양이었다.
“이 병 안의 물질이 성수와 섞이는 순간, 기사들이 마시는 성수는 치명적인 독수로 변하고, 그 반동으로 성수고 전체가 대폭발을 일으키게 되어 있었습니다. 5일 뒤에 말이죠.”
라인할트의 안색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의 전신에서 푸른빛을 띤 신성한 불꽃이 성나게 일렁였다.
“성수고의 약품 관리는 내부 기사단 대리관과 고위 사제들만이 접근할 수 있다. 외부 침입의 흔적이 결계에만 남았다는 건…….”
“내부의 배신자가 있다는 뜻이죠.”
에일라는 약병을 조심스럽게 내려놓으며, 사제관 입구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그 배신자는, 자신이 설치해 둔 기폭 장치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실시간으로 감시해야 했을 겁니다. 폭발의 타이밍을 황실의 움직임과 맞춰야 하니까요.”
두 사람의 시선이 사제관 앞 대광장으로 향했다.
그곳에서는 기사단과 사제들이 밤샘 기도를 준비하며 촛불을 밝히고 있었다. 그 장엄하고 성스러운 침묵 속에, 한 남자가 초조한 빛을 감추지 못한 채 성수고 입구를 힐끔거리고 있었다.
발루아 가문 출신의 기사단 대리관, 에드가였다.
그는 발루아 가문의 방계 혈족이자, 기사단 내에서 성실하고 온화한 성품으로 신망을 얻어 의심의 눈초리를 교묘히 피해 가던 자였다.
“에드가 대리관.”
에일라의 맑고 서늘한 목소리가 대광장의 고요를 깨뜨렸다.
광장에 모여 있던 수십 명의 성휘 기사들과 사제들의 시선이 일제히 에일라와 그 뒤를 지키는 라인할트 대공에게로 쏠렸다. 에드가는 순간적으로 어깨를 움츠렸으나, 곧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며 우아하게 한쪽 무릎을 꿇었다.
“대공 전하를 뵙습니다. 그리고 공녀 전하, 밤이 깊었는데 성수고에는 무슨 일로…….”
“비즈니스를 하러 왔습니다, 에드가 경.”
에일라는 천천히 그에게 다가갔다. 그녀의 화려한 드레스 자락이 대리석 바닥을 쓸며 스산한 소리를 냈다.
“공녀 전하, 비즈니스라니요? 소신은 기사단의 공무를 수행 중일 뿐입니다.”
“공무라. 황실의 검은 추적자들과 내통하여 대공의 기사단을 몰살시키고, 그 책임을 발루아 가문에 덮어씌우려는 것이 경이 말하는 공무입니까?”
순간, 대광장에 찬물을 끼얹은 듯한 침묵이 흘렀다.
기사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고, 사제들은 십자가를 쥐며 경악한 눈빛을 교환했다. 에드가의 눈동자가 눈에 띄게 흔들렸다. 하지만 그는 이내 억울하다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
“무슨 터무니없는 모함이십니까! 저는 발루아 가문의 이름을 걸고 신성한 기사단에 헌신해 왔습니다. 증거도 없이 가문의 직계라는 신분을 이용해 저를 파멸시키려 하시다니요!”
“증거?”
에일라는 가볍게 코방귀를 꼈다.
그녀는 에드가의 앞으로 한 걸음 더 다가서며, 그의 품에 숨겨진 안주머니를 정확히 가리켰다.
“경의 왼쪽 품속에 들어 있는 은제 약병을 꺼내 보시죠.”
“이, 이것은 개인적인 비상 약물일 뿐…….”
“그 약물의 마개를 열어 대광장의 성수 분수대에 던져 넣으면 어떨까요? 황실 비밀 공방에서 제작된 지연성 폭발제와 독극물이 섞인 마개 말입니다.”
에일라는 품에서 자신이 가져온 황실 독잔의 마개를 꺼내 공중에 들어 올렸다.
“이 독잔은 황실의 사냥개들이 저를 죽이려 했을 때 사용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 마개 안쪽에는 미세한 세 갈래 균열 세공이 되어 있죠. 경이 가지고 있는 약병의 마개와 완전히 동일한 공법입니다. 이것은 제국 내에서 오직 황실의 극비 공방에서만 주조되는 특수 규격입니다.”
그녀의 목소리가 낭랑하게 광장을 메웠다.
“에드가 경. 발루아 공작이 경에게 약속한 가문의 가주 자리가, 기사단 전체를 독살하고 황실의 가스라이팅에 놀아난 대가치고는 너무 값싸지 않습니까?”
“이, 이 미친년이……!”
몰린 에드가가 본색을 드러내며 품속에서 단검을 뽑아 들었다.
서슬 퍼런 칼날이 에일라의 목덜미를 향해 쇄도한 순간.
콰아아아앙─!
황금빛 불꽃이 사방으로 터져 나가며 에드가의 단검을 박살 냈다. 라인할트가 순식간에 에일라의 앞을 가로막으며 에드가의 가슴팍을 걷어찼다.
“커흑!”
에드가는 대리석 바닥을 구르며 피를 토했다. 그의 품에서 튕겨 나간 갈색 약병이 바닥을 굴렀다.
라인할트가 차가운 눈빛으로 그 약병을 주워 들어 마개를 열었다. 마개 안쪽을 확인한 대공의 안색이 걷잡을 수 없이 분노로 물들었다. 에일라가 제시한 황실 특유의 세 갈래 균열 세공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기사단장으로서 명한다.”
라인할트의 목소리에 신성한 압박감이 실렸다.
“대리관 에드가를 반역 및 대공가 시해 음모 혐의로 즉각 지하 감옥에 구금하라. 그리고 이 독물의 출처와 황실의 연계성을 사법부에 공식 제소한다.”
“존명!”
철갑을 두른 기사들이 일제히 검을 뽑아 들며 에드가를 압송했다.
순식간에 상황이 정리되었다. 기사단 전체가 독사할 뻔한 대참사를 미연에 방지한, 그야말로 빈틈없는 역공이었다. 대광장에 모인 기사들과 사제들은 에일라를 향해 경외와 두려움이 섞인 시선을 보냈다.
사태가 일단락되자, 라인할트는 숨을 몰아쉬며 에일라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안색은 여전히 창백했고, 손끝에는 아직 온기가 온전히 돌아오지 않아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라인할트는 가슴 깊은 곳에서 정체 모를 통증과 함께 벅차오르는 감정을 느꼈다. 그는 천천히 다가와 에일라의 차가운 두 손을 자신의 큰 손으로 감싸 쥐었다. 자신의 신성한 불꽃을 아낌없이 흘려보내며, 그녀의 손가락뼈 마디마디를 따스하게 녹여주려 했다.
“에일라. 그대의 예지 덕분에 기사단이 구원받았군. 고맙다.”
그의 눈빛에는 전례 없는 다정함과 흔들림이 깃들어 있었다. 오만하던 성기사단장이 한 여자에게 완전히 굴복해 가는 첫 페이지였다.
그러나 에일라는 그 따스한 온기를 가만히 응시하다가, 아무런 미련도 없이 손가락을 비틀어 그의 손아귀에서 빼냈다.
스스륵.
온기가 끊기는 서늘한 마찰음이 두 사람 사이에 떨어졌다.
“해독의 정비 시간은 충분했습니다, 대공. 이제 그만 놓아주시죠.”
에일라의 말투는 지극히 정량적이고 냉혹했다.
“이것은 단순한 비즈니스 거래의 일환일 뿐입니다. 제가 정보를 제공하고, 당신이 제 신체적 페널티를 완화해 준다. 등가교환 법칙에 어긋나지 않는 깔끔한 정산이죠. 감사의 인사나 사적인 교감은 불필요한 사치입니다.”
라인할트의 손이 허공에서 굳었다.
그의 눈동자에 짙은 상처와 배신감이 스쳐 지나갔다. 자신을 오직 ‘해독제 가축’이자 ‘안전 보장용 도구’로만 취급하는 그녀의 철저한 태도에, 가슴속 깊은 곳에서 비틀린 소유욕과 갈증이 끓어올랐다.
하지만 에일라는 그의 감정 변화 따위에는 관심조차 없다는 듯, 이미 대광장 한편에 대기하고 있던 황실 직속 사법 장교들에게로 걸음을 옮겼다.
그녀의 걸음걸이는 당당했고, 오만했다.
“사법관 각하.”
에일라는 장교들 앞에서 우아하게 고개를 까딱였다.
“제국 맹약법 제14조에 의거, 기사단 내의 황실 첩자를 적발하고 대역죄를 미연에 방지한 공로를 인정해 주시겠습니까?”
사법 장교들은 라인할트 대공의 눈치를 살폈으나, 명백한 증거와 기사단 전체의 증언이 있는 상황에서 거부할 명분이 없었다.
“……예, 에일라 공녀 전하. 공녀의 공적은 황실 법정에 공식 기록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보상으로, 성휘 기사단의 고문 자격 임명장과 함께 제국 북부 영지를 제한 없이 통과할 수 있는 ‘특별 영지 통과 비표’의 발행을 청구합니다.”
에일라가 미리 준비해 둔 서류를 내밀었다.
그녀의 최종 목적은 이 지긋지긋한 제국과 가문을 벗어나 북쪽 국경 너머 혹한의 무법지대 ‘헤이븐’으로 탈출하는 것. 이 비표야말로 황실의 감시망을 뚫고 합법적으로 제국을 빠져나갈 수 있는 최고의 무기였다.
라인할트는 멀찍이서 그 광경을 지켜보며 턱관절을 거칠게 맞물렸다.
그녀가 요구하는 ‘특별 영지 통과 비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의 날카로운 두뇌는 본능적으로 직감하고 있었다. 그녀는 지금 탈출을 준비하고 있다. 자신과의 계약 연애라는 안전망 안에서 단물만 빨아먹은 뒤, 기한이 끝나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기 위한 퇴로를 닦고 있는 것이다.
서류에 사법부의 붉은 인장이 찍히고, 영롱한 금빛 비표가 에일라의 손에 쥐어졌다.
에일라는 비표의 모서리를 손끝으로 쓸어내리며 만족스런 미소를 지었다. 이제 모든 것이 계획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그녀가 사제관 지하 통로를 통해 자신의 처소로 돌아가기 위해 어두운 복도로 들어선 순간이었다.
타앗!
거친 발소리와 함께 강한 힘이 에일라의 어깨를 낚아챘다.
“앗……!”
순식간에 시야가 회전하며, 에일라의 등 허리가 사제관의 차가운 돌벽에 거칠게 부딪혔다. 둔탁한 통증과 함께 시야가 좁혀졌을 때, 그녀의 눈앞에 나타난 것은 핏발이 선 채 분노로 이글거리는 라인할트의 얼굴이었다.
그는 두 손으로 에일라의 머리 양옆 벽을 짚고 그녀를 완전히 가두었다.
두 사람의 숨결이 닿을 듯 가까운 거리에서 엉켰다. 라인할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압도적인 신성 마력의 열기가 좁은 복도의 공기를 터질 듯이 팽창시켰다.
“대공, 이게 무슨 무례한 짓입니까?”
에일라가 미간을 찌푸리며 차갑게 쏘아붙였다.
그러나 라인할트는 그녀의 날 선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성을 잃은 듯한 목소리로 나직하게 읊조렸다. 그의 붉은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비즈니스? 등가교환?”
그의 뜨거운 손가락이 에일라의 턱끝을 강하게 움켜쥐어 자신을 바라보게 만들었다. 그의 금빛 눈동자 속에는 소유욕과 집착, 그리고 깊은 의구심이 광포하게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내 손을 잡고 체온을 나눌 때마다, 그대는 오직 살아남기 위한 계산서만 두드리고 있었던 건가?”
“당연한 이야기를 삼가 주십시오. 계약서의 조항은 명백합…….”
“거짓말하지 마.”
라인할트가 그녀의 말을 난폭하게 자르며 얼굴을 더 밀착시켰다. 그의 숨결이 에일라의 입술에 닿았다.
“그 비표를 들고 어디로 가려는 거지? 이 계약서 이면에 숨겨진 그대의 진짜 목적이 무엇이냐 말이다, 에일라 드 발루아!”
어둠 속에서, 집착으로 얼룩진 대공의 눈동자가 기괴하게 빛났다. 에일라는 자신의 턱을 쥔 그의 손길에서 벗어나려 버둥거렸으나, 그의 완력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두 사람의 숨 막히는 대치 속에서, 차가운 복도에는 오직 거친 숨소리만이 벽을 타고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