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당장 콜업 서류 준비해! 아더 워드한테 연락해서 당장 계약서 새로 쓰자고 해!”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단장 알라드 카터의 고함이 포트마이어스 구장 VIP 특별석의 유리창을 흔들었다. 그의 손에 들린 블랙베리 휴대폰 액정에는 프런트 분석팀이 실시간으로 전송한 트랙맨(TrackMan) 데이터가 붉은빛으로 번쩍이고 있었다.
[강태윤 - 9회초 투구 분석] - 포심 패스트볼 평균 구속: 98.7 mph (최고 99.1 mph) - 회전수(RPM): 2,610 rpm - 수직 무브먼트: 21.4인치 (리그 상위 1% 수준)
사흘 전 74구 완봉승을 거둔 싱글A 투수가 단 3일만 쉬고 마운드에 올라 99마일을 찍었다. 그것도 경기 후반인 9이닝에 말이다. 야구 역사상 존재하지 않았던 초인적인 회복력이었다. 단장의 지시를 받은 프런트 직원들이 허겁지겁 노트북을 두들기며 메이저리그 등록용 40인 로스터 명단을 수정하기 시작했다. 통화 버튼을 누르는 손가락들이 미세하게 떨렸다.
마운드 위, 강태윤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포수 루크 에반스의 미트를 응시했다. 귓가에 심장 박동 소리가 이명처럼 쿵쿵 울렸다. 왼팔 끝에서 시작된 미세한 열기가 어깨 관절을 타고 목덜미까지 올라왔다. 과거 어깨가 걸레짝처럼 찢어졌던 그 15년 전의 감각이 뇌리를 스쳤다. 순간적으로 시야가 흐려지고 숨이 턱 막히는 공황의 전조.
태윤은 어금니를 사려 물었다. 왼손 끝을 글러브 속에서 강하게 쥐었다 폈다. 손가락 끝의 감각에 신경을 집중하자, 눈앞에 푸른색 홀로그램 창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육체 관리 장부 시스템 정상 작동 중] - 어깨 관절 와순 마모도: 0.02% - 회전근개 피로도: 0.00% - 내측 측부 인대(UCL) 상태: 완벽 (마모도 0.01%) - 현재 회복 상태: 리커버리 프로토콜 완수 (ATP 세포 에너지 500% 활성화)
완벽했다. 머릿속의 공포증은 허상일 뿐, 그의 육체는 마모도 0%에 수렴하는 신의 상태였다.
덕아웃을 슬쩍 바라보았다. 제임스 밀러 감독은 넋이 나간 채 벤치 난간을 붙잡고 있었다. 그의 발밑에는 마커스 스톤이 쓰러지며 흘린 땀자국이 아직도 선명했다.
밀러 감독이 그토록 비웃었던 태윤의 극저온 치료와 미세 전류 리페어 프로토콜. ‘겁쟁이 새끼들이나 하는 얼음장난’이라며 사흘 휴식 후 등판을 강요했던 밀러의 무식한 야구관은, 결국 마커스 스톤의 팔꿈치 인대 파열이라는 잔혹한 파국으로 증명되었다. 마커스는 구급차에 실려 가며 비명을 질렀지만, 철저하게 과학적으로 몸을 복원한 태윤은 이 순간 99마일의 불꽃을 뿜어내고 있었다.
“타석, 대타 헥터 바르가스.”
장내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마운드 주변의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원정팀 덕아웃에서 걸어 나오는 사내의 풍채는 싱글A 수준이 아니었다. 메이저리그 통산 148홈런을 기록한 베테랑. 부상 재활을 위해 잠시 마이너에 내려와 있는 헥터 바르가스였다.
바르가스는 헬멧을 고쳐 쓰며 태윤을 향해 비열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야구계에서 사인을 훔쳐 마운드를 초토화하는 것으로 악명 높은 타자였다. 상대 포수의 허벅지 틈새, 투수의 미트 높낮이, 심지어 2루 주자의 움직임을 완벽하게 간파해 구종을 알아채는 여우 같은 인물이었다.
바르가스가 타석에 들어서며 배트로 홈플레이트를 툭툭 두드렸다. 그의 눈빛은 이미 태윤의 모든 것을 꿰뚫어 보고 있다는 듯 오만했다.
루크 에반스가 마스크 너머로 태윤을 바라보며 사인을 보냈다. 바깥쪽 슬러브. 그 순간, 바르가스의 어깨가 미세하게 움츠러들었다. 2루 주자의 헬멧 손짓을 통해 이미 사인이 넘어간 것이 분명했다. 바르가스는 슬러브의 궤적을 머릿속으로 그리며 우타석 안쪽으로 바짝 붙어 섰다. 몸쪽으로 들어오는 실투를 잡아당겨 담장 밖으로 넘겨버리겠다는 노골적인 자세였다.
태윤의 입꼬리가 차갑게 올라갔다.
‘사인을 읽었나? 그렇다면 읽은 대로 던져주지.’
태윤은 피칭 터널링의 개념을 극한으로 끌어올리기로 했다. 포수가 요구한 공은 바깥쪽 슬러브였지만, 태윤은 손가락 끝의 그립을 미세하게 조정했다. 중지의 손톱 끝으로 실밥의 측면을 강하게 누른다.
[시스템 가이드: 회전축 2도 미세 조정 적용] [예상 궤적: 포심 패스트볼 터널 진입 후 홈플레이트 앞 7.2m 지점에서 몸쪽으로 급격히 꺾임]
평범한 슬러브의 터널에서 출발하지만, 마지막 순간에 타자의 몸쪽 깊숙한 곳으로 파고드는 변형 컷 패스트볼. 사인을 훔쳐 바깥쪽 사선 궤적을 기다리는 바르가스의 머리를 완전히 부숴버릴 기상천외한 변칙 투구였다.
태윤이 와인드업에 들어갔다. 왼 다리가 부드럽게 지면을 차고 나갔다. 그의 어깨가 채찍처럼 휘어지며 공이 손가락 끝을 떠났다.
*슈우욱—!*
공기는 찢어지는 듯한 파열음을 내며 홈플레이트를 향해 돌진했다. 바르가스의 눈이 번쩍였다. 자신의 정보대로 공은 정확히 슬러브의 궤적을 그리며 바깥쪽으로 흘러가는 것처럼 보였다.
“걸렸다, 애송이!”
바르가스가 힘차게 배트를 돌렸다. 메이저리거 특유의 빠른 배트 스피드가 바람을 가르며 홈플레이트 위를 덮쳤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홈플레이트 앞 7.2미터, 타자의 안구 인식이 한계에 다다르는 극도의 짧은 구간에서 공의 회전축이 요동쳤다. 바깥쪽으로 흘러가야 할 공이 갑자기 우타자의 몸쪽 정면, 배트의 가장 취약한 안쪽 목 부분을 향해 뱀처럼 꺾여 들어왔다.
2도의 미세한 회전축 변화가 만들어낸 기적 같은 횡적 변화였다.
“어……?”
바르가스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배트의 스위트 스폿이 아닌, 손잡이 바로 윗부분에 공이 정면으로 충돌했다.
*콰강—!*
천지를 진동하는 듯한 파열음이 구장을 가득 채웠다. 단단한 단풍나무 배트가 종잇장처럼 반으로 갈라지며 공중으로 비산했다. 부러진 배트 조각들이 사방으로 튀는 가운데, 공은 무력하게 3루수 앞으로 굴러갔다.
“아웃!”
1루수의 미트에 공이 빨려 들어가는 것과 동시에 주심의 아웃 콜이 선언되었다. 바르가스는 손바닥을 타고 올라오는 극심한 진동에 비명을 지르며 손에 남은 배트 손잡이를 바닥에 내팽개쳤다. 그의 두 손은 벌겋게 부어올라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이, 이게 무슨…… 슬러브가 아니었어? 어떻게 공이 저기서 꺾여 들어와!”
바르가스가 마운드를 향해 삿대질하며 소리를 질렀지만, 태윤은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그저 차가운 시선으로 부러진 배트 조각을 내려다본 뒤, 루크 에반스를 향해 가볍게 글러브를 부딪쳤다.
꼼수를 부리던 베테랑 타자에게 선사한 완벽한 굴욕이자 파괴였다.
관중석에서는 터져 나올 듯한 함성이 쏟아졌고, VIP석의 알라드 단장은 머리를 감싸 쥐었다. “저건 마구가 아니야…… 완벽한 과학이야. 투구의 터널을 완벽하게 통제하고 있어!”
같은 시각, 구장 한구석에서 태윤의 투구를 지켜보던 에이전트 아더 워드는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아이패드의 전송 버튼을 눌렀다. 그가 전용한 데이터는 단순한 경기 기록이 아니었다. 태윤이 마운드 위에서 보여준 피칭 터널링 데이터, 그리고 3일 휴식 후에도 완벽하게 유지된 회복력 수치였다. 이 데이터는 실시간으로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구단주와 주요 주주들이 참석한 이사회 미팅룸으로 전송되었다.
[수신처: 자이언츠 이사회] [첨부 데이터: 강태윤의 신체 리커버리 효율 및 메이저리그 타자 상대 가상 시뮬레이션 결과]
아더 워드는 지체 없이 단장실로 전화를 걸었다. 단장 알라드가 전화를 받자마자 아더는 특유의 기계적이고 냉정한 목소리로 쐐기를 박았다.
“단장님, 방금 구단주님께 강태윤의 실시간 투구 분석 보고서가 들어갔습니다. 이사회 측에서는 이미 강태윤의 가치를 메이저리그 2선발급 이상으로 판단하고 있더군요.”
“아더! 지금 협상을 그런 식으로……”
“계약서 수정안을 방금 팩스로 보냈습니다. 메이저리그 승격 즉시 보장 연봉 120만 달러, 그리고 경기당 투구 수 90구 제한 및 사흘 휴식 등판 절대 금지 조항. 이 조건에 사인하지 않으신다면, 우리는 드래프트 규정상의 허점을 이용해 계약을 파기하고 자유계약선수(FA) 신분으로 뉴욕 양키스와 접촉할 겁니다. 양키스 측 에이전트가 제 대기 라인에서 기다리고 있거든요.”
수화기 너머로 알라드 단장의 거친 숨소리가 들려왔다. 아더 워드는 단장의 숨통을 쥐고 흔들고 있었다. 싱글A를 초토화하고 메이저리그의 베테랑 타자마저 장난감처럼 다루는 이 괴물을 놓친다면, 단장의 목이 날아갈 것은 자명했다.
“……알겠네. 사인하지. 지금 당장 빅리그 콜업 서류에 서명할 테니, 계약서 조항대로 진행하세.”
단장의 굴복이었다.
경기가 끝난 뒤, 싱글A 클럽하우스는 터질 듯한 열기로 가득 찼다. 동료 투수들은 태윤의 주변을 에워싸며 환호성을 질렀고, 루크 에반스는 태윤의 어깨를 꽉 쥐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태윤! 네가 전수해 준 프레이밍 기술 덕분에 그 녀석의 시선을 완전히 교란할 수 있었어! 우리가 해냈다고!”
태윤은 루크의 손을 맞잡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파트너십은 이제 시작에 불과했다. 루크에게 전수한 ‘표적 시각 동화’ 기술은 앞으로 메이저리그의 더 거친 타자들을 상대할 때 태윤의 가장 강력한 방패가 될 터였다.
그때, 클럽하우스의 무거운 철문이 벌컥 열렸다. 싸늘한 침묵이 흘렀다. 들어선 사람은 다름 아닌 알라드 단장과 프런트 간부들이었다.
단장은 뒤편에 힘없이 서 있는 제임스 밀러 감독을 한번 쳐다본 뒤, 곧장 태윤의 락커 앞으로 걸어왔다. 그의 손에는 흰색 서류 봉투가 들려 있었다.
“강태윤.”
단장의 목소리가 클럽하우스 전체에 묵직하게 울렸다.
“더 이상 이곳에서 네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네가 증명한 데이터와 실력은 이미 이 리그의 수준을 초월했으니까.”
단장이 서류 봉투를 태윤에게 내밀었다. 봉투 겉면에는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로고와 함께 붉은색 글씨가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MAJOR LEAGUE CALL-UP ORDER]
“일주일 뒤다.”
단장의 눈빛이 형형하게 빛났다.
“샌프란시스코 홈구장에서 열리는 LA 다저스와의 3연전. 그 첫 번째 경기의 선발 투수는 바로 너다. 상대 선발은 메이저리그 최고의 에이스이자 올해 월드시리즈 우승 후보의 주축인 클레이튼 커쇼다.”
클럽하우스 안의 모든 공기가 일순간 얼어붙었다. 메이저리그 데뷔전의 상대가 다름 아닌 내셔널리그 최강의 팀이자, 메이저리그를 지배하고 있는 최고의 투수라니.
태윤은 서류 봉투를 받아들며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의 심박수가 다시금 요동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공포가 아니었다. 15년 동안 눈물 젖은 마이너리그의 빵을 먹으며 그토록 갈망했던 그 무대. 마침내 그가 지배해야 할 진짜 전쟁터가 눈앞에 다가와 있었다.
태윤의 입가에 짙은 미소가 번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