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컥, 둔탁한 쇳소리와 함께 제3부검실의 철문이 완전히 닫혔다. 노란색 봉쇄 테이프가 사선으로 엇갈리며 시야를 차단하는 순간, 천장 조명마저 가차 없이 꺼졌다. 보건복지부와 국과수 원장의 이름으로 내려진 초법적 행정 명령. 그것은 단순한 자격 정지가 아니었다. 진실을 파헤치던 백강현의 손발을 묶고, 숨통을 조여 궤멸시키겠다는 한지태와 차민혁 일가의 노골적인 선전포고였다.
어둠이 내려앉은 영안실 내부에는 기괴할 정도의 고요가 찾아왔다. 냉동고의 웅웅거리던 모터 소리마저 끊기자, 사방에서 스며드는 한기가 피부를 사정없이 찔렀다.
"이대로 물러설 줄 알고."
강현은 어둠 속에서 낮게 읊조렸다. 목소리에는 분노 대신 얼음처럼 차가운 이성이 서려 있었다. 면허가 박탈되고 공간이 폐쇄되었다고 해서 메스를 놓을 그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의 눈동자는 어둠 속에서 더욱 날카롭게 빛났다.
"부장님, 어떡합니까? 저 새끼들이 아예 전원까지 내려버렸어요. 냉동고 온도 올라가면 시신 부패 시작되는 건 순식간입니다."
오덕팔이 어둠 속에서 휴대전화 손전등을 켜며 이빨을 갈았다. 손전등 불빛이 사정없이 흔들리며 벽면에 붙은 봉쇄 테이프를 비추었다.
"서 검사, 준비는 됐나?"
강현이 고개를 돌려 서은우를 바라보았다. 주먹을 꽉 쥔 채 입술을 깨물고 있던 은우가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빛에는 이미 주저함 따위는 남아있지 않았다.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더라도 진실을 쫓겠다는, 검사로서의 커리어를 통째로 던진 자의 결연함이었다.
"제 개인 오피스텔 지하에 예전에 쓰던 사설 창고가 있어요. 아버지가 물려주신 건물이라 사설 보안 장치가 철저해서 영장 없이 함부로 들어올 수 없는 곳이에요. 그리로 옮겨야 합니다. 사설 영안 냉동고도 급히 수소문해 뒀어요."
"좋아. 덕팔이 형, 영구차 준비해."
"벌써 시동 걸어놨지. 가자고, 부장님. 저 오만한 의사 나부랭이들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줘야지."
덕팔이 투덜거리며 부검대 위의 시신을 조심스럽게 들것으로 옮겼다. 한지태가 집도한 VVIP 대리 수술의 유일한 증거이자, 억울하게 숨진 망자의 육신이었다.
경비원들의 순찰 시간을 피해 지하 주차장으로 통하는 화물 엘리베이터로 향하는 길은 팽팽한 긴장감으로 가득 찼다. 강현은 국과수 지하 통로의 구조와 감시 카메라의 사각지대를 완벽하게 꿰뚫고 있었다. 그의 천재적인 두뇌는 수술실의 혈관 지도뿐만 아니라, 이 낡은 건물의 도면까지 머릿속에 정밀하게 그려내고 있었다.
"카메라 렌즈 보지 말고, 몸을 최대한 낮춰서 왼쪽 벽면 밀착해."
강현의 속삭임에 맞춰 세 사람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붉은색 감시 카메라의 표시등이 머리 위를 아슬아슬하게 비추고 지나간 순간, 그들은 화물 하역장 구석에 대기 중이던 낡은 스타렉스 차량에 시신을 싣는 데 성공했다.
차가 빗길을 뚫고 국과수를 빠져나갈 때까지,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백강현은 조수석 창밖으로 흘러내리는 빗줄기를 바라보며, 허공에 대고 손가락을 미세하게 움직였다. 이미 그의 머릿속에서는 다음 단계의 집도가 분 단위로 시뮬레이션되고 있었다.
***
사대문 안쪽의 인적 드문 이면도로. 낡은 상가 건물의 지하 주차장을 지나 더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자, 두꺼운 철문이 나타났다. 은우가 비밀번호를 누르고 문을 열자, 퀴퀴한 먼지 냄새와 함께 차가운 공기가 뿜어져 나왔다.
내부는 오합지졸 그 자체였다. 은우가 급히 공수해 온 백색 LED 작업등 몇 개가 삼각대에 걸려 사방을 벌겋게 비추고 있었고, 방 한가운데에는 수술대 대신 커다란 녹슨 철제 테이블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벽면 구석에는 소형 이동식 냉동고가 불길한 기계음을 내며 돌아가고 있었다.
"장비가 형편없어서 미안해요. 이게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어요."
은우가 젖은 머리를 쓸어올리며 말했다.
"이 정도면 훌륭해. 메스를 들 손과 진실을 볼 눈만 있으면 충분하니까."
강현이 외투를 벗어 던지며 대답했다. 하지만 그 순간, 강현의 안색이 급격히 창백해졌다. 심장 부근을 짓누르는 극심한 통증과 함께 오른쪽 다리부터 시작된 마비 증상이 순식간에 척수를 타고 올라왔다.
"윽……!"
강현이 철제 테이블을 붙잡으며 무릎을 꿇었다. 이마에서 굵은 식은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고, 거친 호흡이 좁은 지하실을 채웠다. 망자의 부검 대장을 너무 자주 가동한 탓에, 심장에 가해진 피독의 누적이 한계치에 다다른 것이다.
"백 부장님!"
은우가 놀라 다가가려 하자, 덕팔이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
"오지 마요, 검사님. 저 고집불통 인간, 남이 약한 모습 보는 거 죽기보다 싫어하니까."
덕팔은 이미 익숙하다는 듯 품 안에서 가죽 파우치를 꺼냈다. 파우치 안에는 정밀한 주사기와 몇 개의 푸른색 유리 앰플이 들어 있었다.
"자, 이 고집쟁이 녀석아. 목 늘여 빼라."
덕팔이 강현의 낡은 의사 가운 서랍에서 몰래 빼돌려 두었던 '심장 조절 신약'의 빈 용기들을 분석해, 사적으로 구해온 응급 심장 약물이었다. 덕팔은 주설량과 주사 각도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맞추며 강현의 경정맥에 주삿바늘을 찔러 넣었다.
"아후…… 진짜 내가 이 나이 먹고 영구 훔치고 약물 밀수까지 해야 쓰겠냐? 넌 나 없으면 벌써 황천길 삼도천 건넜어, 알아?"
덕팔이 투덜거리며 강현의 등을 거칠게 두드렸다. 약물이 혈관을 타고 들어가자, 심장의 불규칙한 박동이 서서히 안정을 찾아갔다. 강현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덕팔을 바라보았다. 고맙다는 말 대신, 강현은 그저 거칠게 흐트러진 호흡을 가다듬으며 메스를 쥐었다. 이 묵묵한 신뢰야말로 그들이 피보다 진하게 나누는 연대였다.
"서 검사, 문 잠궈."
강현의 목소리가 다시 차갑고 정교하게 돌아왔다.
"이제부터 진짜 수술을 시작하지."
***
강현이 시신의 가슴 위에 메스를 얹었다.
스스스스윽.
메스가 차가운 피부를 가르고 들어가는 순간, 강현의 대뇌 피질이 번쩍이며 강렬한 스파크를 일으켰다.
'망자의 부검 대장, 가동.'
순식간에 지하실의 초라한 풍경이 사라지고, 사방이 극도로 청결하고 번쩍이는 명성대학병원 VVIP 전용 수술실로 탈바꿈했다. 홀로그램 시뮬레이션이 강현의 시야를 360도로 감싸 안았다.
"하아…… 하아……!"
동시에 시신이 죽기 직전 느꼈던 극심한 호흡 곤란과 가슴을 짓누르는 마비 통증이 강현의 육체로 고스란히 전이되었다. 목구멍이 불타는 것 같았고, 심장이 터질 것처럼 요동쳤다. 하지만 강현은 어금니를 사려 물며 눈을 부릅떴다. 망자의 마지막 기억을 단 한 순간도 놓칠 수 없었다.
수술대 위에는 지금 눈앞에 누워 있는 피해자가 산소마스크를 쓴 채 가쁘게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 앞에는 수술 가운을 입은 한지태가 오만한 표정으로 메스를 쥐고 있었다.
"심장 박동수 저하됩니다. 부원장님, 이대로 진행하면 환자가 견디지 못합니다!"
마취과 의사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한지태는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손짓했다.
"시끄러워. 기증자 상태는 상관없어. 수혜자 스케줄에 맞춰야 하니까, 마취 강도 높여."
"하지만 이 상태에서 일반 마취제를 더 쓰면 호흡 정지가……."
"누가 일반 마취제 쓰래? 창고에서 아티케인-D 가져와."
아티케인-D.
그 이름을 듣는 순간, 강현의 뇌리에 1화에서 부검했던 돌연사 시신의 정보가 번개처럼 스쳐 지나갔다.
당시 강현은 그 시신의 위벽 주름 틈새에서 희귀하게 고착되어 있던 푸르스름한 액상 성분을 발견했었다. 일반적인 병원에서는 결코 사용하지 않는, 오직 명성병원 VVIP 밀실에서만 비밀리에 수입해 사용하는 특수 마취제 잔류 성분이었다.
"찾았다."
강현이 현실의 지하실에서 메스를 움직여 시신의 위벽을 정밀하게 절개했다.
서은우와 오덕팔은 숨을 죽인 채 강현의 손끝을 바라보았다. 강현의 손가락이 위벽의 미세한 주름 틈새를 헤집고 들어갔다.
"은우 씨, 라이트 더 가까이 비춰줘요."
은우가 다급히 작업등을 끌어당겨 시신의 위 내부를 비추었다.
놀랍게도, 위벽의 점막 주름 사이에 미세하게 남아있는 푸르스름한 액상 고형물이 빛을 받아 반짝였다. 1화의 피해자에게서 발견되었던 것과 완벽하게 동일한 화학적 특성을 지닌 아티케인-D의 잔류물이었다.
"이게…… 뭡니까?"
은우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명성병원이 자랑하는 '조용한 죽음'의 열쇠지."
강현의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갔다.
"아티케인-D는 극소량으로도 심근을 일시적으로 마비시키고 뇌사를 유도하는 특수 마취제야. 흔적이 거의 남지 않아 부검에서도 단순 심근경색으로 처리되기 십상이지. 하지만 위벽의 이 미세한 주름 틈새까지는 완전히 지우지 못했어. 한지태, 이 멍청한 자식은 1년 전 나를 모함해 쫓아낼 때 썼던 수법을 지금도 똑같이 반복하고 있는 거야."
강현의 머릿속 시뮬레이션에서 1년 전의 기억이 겹쳐졌다.
당시 자신에게 의료 사고 누명을 씌웠던 수술방의 풍경. 한지태의 메스 궤적, 봉합 방식, 그리고 약물을 투여하던 독특한 타이밍과 습관적인 설계 지문이 지금 이 시신의 장기 손상 패턴과 100% 일치하고 있었다.
"의사로서의 기술은 천재적일지 몰라도, 범죄자로서의 지문은 너무나도 선명하군."
강현이 차갑게 읊조렸다.
"법정에서 제아무리 위증을 늘어놓고, 행정 명령으로 내 입을 막으려 해도, 이 시신에 새겨진 메스의 궤적과 마취제 성분은 속일 수 없어. 한지태, 네가 휘두른 메스가 바로 네 목을 겨누는 칼날이 될 거다."
은우의 눈에 흥분이 서렸다.
"이 정도 증거라면 법원의 영장 기각과 면허 정지 처분의 부당성을 정면으로 돌파할 수 있어요! 카르텔의 위증 수뇌부들을 한 번에 기소할 수 있는 스모킹 건이에요!"
"아직 끝이 아니야."
강현이 메스를 조금 더 깊숙이 움직였다. 시신의 흉골 아래, 장기 적출의 흔적이 남아있는 부위를 정밀하게 해부하기 시작했다.
그 순간, '망자의 부검 대장'이 가동되는 시각적 홀로그램의 밀도가 급격히 짙어졌다. 붉은색 경고등이 강현의 시야 전체를 뒤덮으며, 6화에서 한지태의 태블릿을 해킹해 확보했던 'VVIP 특수 불법 장기이식 관리 정량 비밀 명표'의 데이터가 홀로그램 화면 위로 떠올랐다.
지이이잉.
가상의 반투명 스크린 속에서 명표의 텍스트들이 빠르게 스크롤되었다.
[수혜자: 차민혁 이사장 일가 및 정재계 VVIP 3인] [기증자 코드: D-09]
강현은 기증자 코드 아래에 적힌 실제 인적 사항을 확인하는 순간, 메스를 쥔 손을 멈추고 굳어버렸다.
"이건……."
강현의 목소리가 어둠 속에서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의 얼굴이 전보다 더 하얗게 질려갔다. 분노와 경악이 뒤섞인 감정이 강현의 눈동자를 사정없이 흔들었다.
"부장님? 왜 그래요? 뭐 발견했어요?"
덕팔이 이상함을 감지하고 다가왔다.
강현은 아무 말 없이 시신의 얼굴과 가슴에 남은 수술 자국, 그리고 뇌리에 떠오른 비밀 장부의 다음 페이지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장부의 가장 아랫줄, 붉은색 글씨로 '대기 중'이라 적힌 문구가 강현의 시야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다음 타깃 기증자 코드: D-10 (실종자 은지 - 미성년자, 피해자의 친자식)] [상태: 강제 입원 및 약물 투여 완료. 뇌사 유도 예정.] [수술 일정: 내일 아침 07시 00분. 집도의: 한지태.]
현재 시각은 새벽 2시 15분.
남은 시간은 단 4시간 45분이었다.
한지태와 차민혁 일가는 자신들의 범죄를 은폐하기 위해, 이미 숨진 피해자의 미성년 자식까지 납치해 강제로 뇌사를 유도하고 심장을 적출하려는 살인 계획을 실시간으로 가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미친 새끼들……."
강현의 손가락바디가 하얗게 질릴 정도로 메스를 꽉 쥐었다. 고립된 지하 밀실의 차가운 공기 속에서, 시간을 다투는 새로운 지옥의 카운트다운이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