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천악의 소매가 미세하게 들썩였다.
그의 손목 회전 반경 끝에서 무형의 독기가 밤안개처럼 피어오르려 했다. 본당의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제갈휘는 눈을 가늘게 뜨며 주변의 기류 변화를 읽었다. 사방에 잠입한 세작들의 기운이 가죽을 찌르듯 차갑게 와닿았다. 황실의 이빨이 여전히 어둠 속에서 번뜩이고 있었다.
금의위 백호가 한 걸음 내딛으며 바닥의 청동 종을 가리켰다.
"이 기괴한 자동 종각의 도면은 황실이 수거한다. 사천당문의 독물 투사는 황실 자산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하겠다."
당천악의 손끝이 굳었다. 황실의 권위 앞에서는 당문조차 멸문지화의 공포를 피하기 어렵다. 제갈무창 역시 기회를 놓치지 않고 노안을 치켜떴다.
"가풍을 더럽히는 잡술이다. 서자의 불법 공방을 압수하고 도면을 황실에 헌납함이 마땅하다."
제갈휘의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갔다. 냉소적인 조소가 대회의당의 고요를 깼다.
"대명률(大明律) 예제(禮制) 제십오조를 아는가."
제갈휘의 건조한 목소리가 청동 종의 공명처럼 울려 퍼졌다. 백호가 미간을 좁혔다.
"무슨 헛소리냐."
"종묘와 사가의 조상을 기리는 제례용 자동 기물은 공물 징발과 과세에서 영구히 제외된다. 이 종각은 단순한 무기가 아니다. 제갈세가 선조들의 영령을 위로하는 자동 향로 연동 제례용 종각이다."
대명률에 명시된 종묘 제례 조항의 허점이었다. 황실조차 조상을 기리는 제례용 기기에는 세금을 매기거나 함부로 압수할 수 없다. 제갈휘는 이미 며칠 전 가문 서고에서 법 조문을 샅샅이 뒤져 이 예외 전례를 파악해 두었다.
"황실의 국법이 이를 엄격히 보장하거늘, 감히 누가 선조의 제기를 빼앗겠다는 말인가."
백호의 안색이 흙빛으로 변했다. 대명률의 예외 조항을 들이밀자 황실의 명분은 일순간에 꺾였다. 제갈무창의 턱 끝이 파르르 떨렸다. 사법권을 장악한 원로원조차 대명률 위에 군림할 수는 없었다.
당천악은 결국 소매 속의 독기를 거두었다. 황실의 법률을 정면으로 위배하는 위험을 감수할 배포는 그에게 없었다.
그 순간, 천장의 어둠 속에서 기와가 미세하게 긁히는 소리가 났다. 도면의 기밀을 탐내던 황실 소속의 또 다른 세작이었다. 그림자 하나가 창살을 깨고 본당 밖으로 신형을 날렸다.
제갈휘는 지체하지 않았다. 그는 단상 아래에 미리 감추어 두었던 목갑을 열었다. 그 안에서 기괴한 철제 화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압축 구동 공기 소총(壓縮驅動空氣小銃).
고압으로 축기된 공기를 밀폐된 금속 실린더에 저장하는 방식이다. 방아쇠를 당기면 내부 밸브가 순간적으로 개방된다. 팽창하는 공기압이 탄환을 밀어내어 발사하는 물리 원리다. 화약의 폭발음과 불꽃이 전혀 발생하지 않는 극도의 무성(無聲) 병기였다.
제갈휘는 소총을 어깨에 밀착시키며 본당 밖으로 나섰다. 백골지야의 가파른 산길이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잠겨 있었다. 달아나는 세작의 신형은 산바람 속에서 빠르게 멀어지고 있었다.
"툭."
바람을 찢는 미세한 마찰음이 일었다. 달아나던 세작의 발밑 암석이 가차 없이 깨져 나갔다. 돌가루가 사방으로 비산했다.
"윽!"
세작이 비명을 지르며 궤도를 틀었다. 제갈휘는 그를 단숨에 죽이지 않았다. 대신 그의 퇴로를 완벽히 통제했다. 탄환은 세작의 발가락 앞, 암벽 모퉁이, 도주로의 흙바닥을 정확히 타격했다.
소리 없는 충격파가 세작의 발목을 구속하는 형국이었다. 한 발씩 격발될 때마다 세작은 험준한 절벽 아래의 독곡(毒谷)으로 밀려났다. 퇴로를 완전히 상실한 짐승의 몰이였다.
"툭. 툭."
두 발의 고압 공기탄이 세작의 무릎 뒤편 암벽을 강타했다. 부서진 돌 파편이 세작의 허벅지를 깊게 긁었다. 비틀거리던 그림자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습한 흙바닥 위로 굴러떨어졌다.
제갈휘가 내려다보는 계곡 아래에서 세작은 무릎을 꿇은 채 신음했다. 소음도 없이 뼈를 부수는 무기의 위용 앞에 세작은 완전히 무기력해졌다.
그 순간 제갈휘의 뇌리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습한 밤바람의 풍속과 탄환의 자이로 효과를 실시간으로 연산한 대가였다. 만물성리분개의 발동은 그의 뇌세포를 가혹하게 열화시켰다. 관자놀이를 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극통이 밀려왔다.
머릿속 깊은 곳에서 어떤 기억이 바스러지기 시작했다.
유년 시절, 비 내리는 오후에 어머니가 등 뒤에서 나직이 불러주던 자장가의 온화한 곡조였다. 어머니의 숨결과 따뜻했던 멜로디가 기계적인 백색 소음으로 변하더니 이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슬픔이라는 감정의 규격마저 함께 마모되어 나갔다.
제갈휘는 마른 침을 삼켰다. 그의 눈동자는 한층 더 황량하고 차갑게 침전했다. 감정의 상실은 그에게 손실이 아니었다. 완벽한 기계적 통제력을 얻기 위한 필요조건일 뿐이었다.
어둠 속에서 가죽 장화를 신은 발소리가 들렸다. 제갈설명이었다. 그녀의 손에는 붉은 밀서 한 장이 들려 있었다.
"세무 사신이 원로원의 제갈무창과 은밀히 거래한 문서다."
제갈설명이 밀서를 건넸다. 그녀의 눈빛은 실익을 챙긴 상인의 그것처럼 번뜩였다.
"백골지야의 철 주조 생산량을 축소 보고하여, 황실 세무작들이 관세 침탈을 감행하려 한 구체적인 정황이 적혀 있다. 원로원이 뒤를 봐주는 대가로 막대한 사금고를 챙기려 한 흔적이지."
제갈휘는 밀서를 받아 품에 넣었다. 이것으로 원로원의 목줄을 완전히 틀어쥘 패가 완성되었다.
제갈설명은 제갈휘가 들고 있는 압축 구동 공기 소총을 유심히 관찰했다.
"기괴한 무기로군. 이 독곡의 습한 유황 연기 속에서도 기어와 밸브가 전혀 녹슬거나 굳지 않는 비결이 무엇이냐."
제갈휘가 차가운 어조로 답했다.
"석화(石化) 현상이다."
그는 이전에 수조에서 발견했던 화학적 결합을 응용했다. 유황 성분과 미세한 한철 가루가 물과 결합하면 단단한 석회질 화합물로 고착된다. 제갈휘는 소총의 고압 공기실 내부에 '석회질 수분 차단 필터'를 장착했다.
외부의 습한 공기가 주입될 때, 필터 내부의 유황과 한철 성분이 수분을 즉시 흡수하여 석화 고착시킨다. 내부의 정밀 기어는 물 분자가 단 한 방울도 닿지 않는 극도의 건조 상태를 유지하게 된다. 조악한 토착 재료의 단점을 화학적 반응으로 극복한 토법(土法)의 결실이었다.
제갈설명의 입가에 기이한 만족감이 어렸다.
그때,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던 세작이 광적인 조소를 터뜨렸다.
"황실의 비밀을 안 놈들은 살려두지 않는다!"
그가 품 안에서 검붉은 초소형 유리 용기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바닥의 돌출된 암석에 사정없이 내리쳤다.
"쨍강!"
용기가 깨짐과 동시에, 고농축 유황 독가스가 기화되어 계곡 위쪽을 향해 무섭게 상승하기 시작했다. 바람의 방향은 정확히 백골지야의 공방 지대를 향하고 있었다. 가스가 상부의 가마터로 흘러들면 수많은 장인들이 순식간에 몰살당할 위기였다.
바로 그 순간, 수풀을 사납게 헤치며 거대한 무쇠의 형체가 나타났다.
백무결이 탑승한 한철 철갑 기갑(鐵甲 機甲)의 시제품이었다. 육중한 강철 장갑이 달빛을 받아 검푸르게 빛났다.
그러나 기갑의 거동이 비정상적이었다.
"콰르르릉! 끼이이이이익!"
기갑의 우측 무릎 관절 부위에서 고막을 찢는 듯한 금속 마찰음이 터져 나왔다. 미세한 결정 응력의 균열 패턴이 한계에 도달하면서 기어의 맞물림이 완전히 어긋나고 있었다.
진동이 장갑판 전체로 퍼져 나갔다. 관절이 완전히 파쇄되어 기갑이 폭발하듯 주저앉기 직전의 굉음이었다.
독가스는 상부로 무섭게 밀려들고, 백무결이 탄 기갑은 붕괴의 위기에 직면했다.
파국이 코앞이었다.
제갈휘의 안광에 이채가 서렸다. 그는 망설임 없이 ‘만물성리분개’를 종극까지 끌어올렸다. 시야가 백색의 수식과 기하학적 격자로 뒤덮였다. 우측 무릎 관절의 한철 내부에 숨겨진 미세한 균열들이 선명한 적색 선으로 부각되었다.
응력 집중(Stress Concentration) 현상이었다. 금속 구조물에 외력이 가해질 때 미세한 흠집이나 모서리에 힘이 과도하게 몰려 균열이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하는 물리 법칙이다. 지금 당장 조치하지 않으면 한철 기어는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완전히 파쇄된다.
두뇌가 타들어 가는 극통이 척추를 타고 흘렀다. 머릿속 깊은 곳에서 한 조각 기억이 먼지처럼 바스러졌다. 대학 시절, 밤새워 전공 서적을 읽던 도서관의 서늘한 공기와 종이 냄새였다. 그는 미련 없이 그 기억을 지워냈다. 오직 눈앞의 기계적 수식만이 실재였다.
"백무결! 우측 외측 흡기 밸브를 최대로 개방하고 고압 증기를 역분사해라!"
제갈휘의 마른 고함이 계곡에 울렸다. 철갑 조종석 내부에서 백무결이 붉은 레버를 미친 듯이 내려쳤다.
"쿠우우웅!"
기갑의 측면 배기구에서 백색의 고압 증기가 폭발하듯 뿜어져 나왔다. 이는 어긋나던 한철 기어에 역방향의 압력을 가해 응력의 균형을 강제로 맞추는 응급 제어였다. 동시에 분출된 섭씨 백 도 이상의 증기 열풍이 계곡 하부로 무섭게 쏟아졌다.
바람의 흐름이 급변했다. 상승하던 유황 독가스가 고온의 강한 대류 풍압에 밀려 계곡 바깥의 황무지로 빠르게 흩어졌다. 독무의 확산이 완벽히 차단된 순간이었다.
기갑의 기어 비명도 잦아들었다. 육중한 무쇠 발이 대지를 짚으며 균형을 회복했다. 백무결이 조종석 창을 열고 거친 숨을 내쉬었다.
"살았군. 제갈 공자, 네놈의 미친 계산이 아니었다면 쇳가루가 될 뻔했다."
제갈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이미 계곡의 입구를 향해 있었다.
"타다닥!"
수많은 횃불이 어둠을 찢으며 계곡으로 난입했다. 원로원의 사가 무사들이 아니었다. 그들의 갑주는 붉은 광택을 뿜어내고 있었다. 황실 직속의 세무 수조관들이었다.
그들의 중앙에 한 사내가 준마를 타고 나타났다. 금의위의 호위를 받는 황실 세무 감찰 사신, 조필(趙弼)이었다. 그의 눈빛은 독사처럼 차갑고 탐욕스러웠다.
"서자 제갈휘가 황실 세작을 살해하고, 미공인 군기를 불법 주조하여 역모를 꾀했다!"
조필이 섭정의 인장을 찍은 황색 칙서를 높이 쳐들었다.
"백골지야의 모든 기계를 압수하고 관련자 전원을 참수하라!"
가문의 종법을 넘어선 황실의 직접적인 무력 징발이었다. 백무결이 장갑 안에서 도를 움켜쥐었다. 제갈설명의 얼굴도 차갑게 굳어졌다.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제갈휘가 품속의 붉은 밀서를 천천히 꺼내 들었다. 그의 입가에 잔인한 호선이 그려졌다.
"이것이 무엇인지 알아보겠는가."
제갈휘의 목소리가 계곡의 밤바람을 가르며 낮게 깔렸다. 그의 손가락 끝에 들린 붉은 밀서가 횃불의 붉은 빛을 받아 기괴하게 일렁였다.
조필의 눈동자가 순간적으로 수축했다. 밀서의 표지에 찍힌 은밀한 인장. 그것은 세무 사신인 자신과 원로원 제갈무창만이 나누어 가진 극비의 표식이었다.
"그, 그것을 네놈이 어떻게……!"
"사천당문의 독점법 고발은 허울에 불과하다. 본질은 백골지야의 철 생산량을 축소하여 황실의 정세(丁稅)를 가로채려 한 그대들의 탐욕이지."
제갈휘는 밀서를 펼쳐 조필의 눈앞에 들이밀었다.
"이 밀서에 적힌 필적과 인장은 황실 세무부의 공문서와 정확히 일치한다. 대명률 제구십삼조, 황실 세세를 횡령하고 사적으로 축재한 자는 거열형(車裂刑)에 처한다."
조필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그가 거느린 금의위 백호의 시선이 조필의 등 뒤를 서늘하게 찔렀다. 금의위는 황제의 직속 이빨이다. 관료의 비위와 횡령을 포착하는 순간, 그들의 칼날은 가차 없이 조필의 목을 향할 터였다.
제갈휘는 틈을 주지 않았다.
"더구나 이 백골지야의 철갑 기갑과 자동 종각은 이미 대명률 예제에 따라 종묘 제례용 자동 장치로 등록 절차를 밟고 있다. 황실의 제기를 역모의 증거라 참칭하여 압수하려 한 죄, 조 사신은 이를 감당할 수 있겠는가."
완벽한 법률적 역공이었다. 대명률의 빈틈을 찌르는 제갈휘의 궤변은 조필의 명분을 뿌리째 흔들었다.
조필의 안색이 극도로 흉포하게 일그러졌다. 이대로 물러선다면 밀서의 내용이 금의위를 통해 조정에 보고될 것이다. 그의 관직은 물론 목숨줄마저 날아갈 절대적인 위기였다.
"닥쳐라! 서자 놈이 감히 황명(皇命)을 참칭하여 궤변을 늘어놓는구나!"
조필이 허리춤의 보검을 뽑아 들었다.
"금의위는 무엇을 하느냐! 저 역적 무리가 황실의 문서를 위조하여 사신을 모함하고 있다! 즉시 격살하라!"
조필의 외침에 그의 사가 무사들과 일부 매수된 금의위 세작들이 일제히 병기를 뽑아 들었다. 타오르는 횃불 아래로 수십 자루의 강철 검날이 살기를 뿜었다.
제갈휘는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의 눈동자 속에서 수많은 수식과 궤적이 기하학적으로 연산되기 시작했다.
백골지야 전체를 관통하는 증기 파이프라인. 그것은 단순한 동력 전달 장치가 아니다. 제갈휘가 이 험준한 골짜기 전체에 구축해 둔 거대한 기계식 방어 진형의 핵심 연동 축이었다.
'만물성리분개(萬物性理分解).'
그의 시야가 다시 한번 차가운 백색 격자로 뒤덮였다. 계곡 암벽 사이에 매설된 동관(銅管)의 내압과 밸브의 위치가 수치화되어 뇌리에 박혔다.
관자놀이가 터질 듯한 극통이 뇌를 유린했다. 머릿속 깊은 곳, 가장 소중하게 간직되어 있던 기억의 파편이 바스러졌다.
어린 시절, 열병을 앓던 자신을 밤새 간호해 주던 누이의 따뜻했던 손길. 그녀의 다정한 이름과 얼굴 윤곽이 기계 기어의 회전음 속으로 갈려 나가며 완전히 소멸했다.
제갈휘의 눈빛에서 마지막 온기마저 사라졌다. 오직 극도의 냉소와 기계적인 계산만이 그의 영혼을 지배했다.
"백무결. 기갑의 우측 압력 도관을 중앙 보일러에 직결해라."
제갈휘의 건조한 명령에 백무결이 조종석에서 소리쳤다.
"미쳤나! 중앙 보일러의 지열 압력을 그대로 받으면 기갑의 동력로가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다!"
"삼 초만 버티면 된다."
제갈휘는 망설임 없이 오른발로 바닥의 석판을 강하게 밟았다. 흙먼지 속에 숨겨져 있던 기계식 답판(踏板)이 작동했다.
"콰르르릉!"
계곡 사방의 암벽에서 거대한 무쇠 수문들이 일제히 열렸다. 그 안에서 고압의 증기가 뿜어져 나와 계곡 전체를 순식간에 백색의 장막으로 뒤덮었다.
증기 차폐(Steam Screening) 현상이다. 밀폐된 공간에서 고온, 고압의 기체를 급격히 방출하면 주변의 빛을 굴절시키고 시야를 완벽히 차단하는 인위적인 안개 장벽이 형성된다. 기온 차에 의한 대류 현상으로 인해 상대의 호흡기를 일시적으로 마비시키는 효과도 겸했다.
"쿨럭! 눈이, 앞이 보이지 않는다!"
"적습이다! 방어 대형을 취하라!"
황실 무사들이 갑작스러운 증기 폭풍에 휩쓸려 갈팡질팡했다. 제갈휘는 그 혼란을 놓치지 않았다.
그가 압축 구동 공기 소총의 격발 레버를 당겼다.
"툭. 툭. 툭."
소리 없는 바람의 채찍이 안개 속을 뚫고 지나갔다. 조필을 호위하던 사가 무사들의 어깨와 손목이 정확히 관통당했다. 뼈가 부서지는 둔탁한 파열음이 증기 소음 속에서 연달아 터졌다.
단 한 발의 오차도 없는 저격이었다. 제갈휘의 가혹한 연산력은 안개 너머의 열원(熱源)마저 정확히 포착하고 있었다.
"으아악! 내 손이!"
무사들이 무기를 떨어뜨리며 비명을 질렀다. 보이지 않는 사신(死神)의 그림자 앞에 황실의 정예들이 추풍낙엽처럼 쓰러져 갔다.
조필은 공포에 질려 뒤로 물러섰다. 안개 너머로 서서히 다가오는 제갈휘의 푸른 안광은 인간의 그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오직 효율만을 추구하는 냉혹한 기계의 눈빛이었다.
"이, 괴물 같은 놈……!"
조필이 비틀거리며 도망치려던 순간, 그의 발밑 대지가 기이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쿵…… 쿵…… 쿵……"
지하 깊은 곳에서부터 거대한 심장박동 같은 파동이 울려 퍼졌다. 단순한 기계의 구동음이 아니었다. 땅속 깊은 곳에 매설된 고압 지열 보일러의 균열이 한계에 도달한 소리였다.
제갈휘의 황색 안광이 급격히 흔들렸다.
만물성리분개의 시야에 들어온 백골지야 전체의 압력 수치가 붉은색 경고등처럼 명멸하고 있었다. 아까의 증기 역분사로 인해 역류한 압력이 중앙 지열 제어 장치의 밸브를 파손시킨 것이다.
지열 증기의 압력이 임계점을 넘어 내압 한계치인 300기압을 돌파하려 하고 있었다.
이대로 내버려 둔다면, 삼십 호흡 이내에 백골지야 전체를 지탱하는 거대 보일러 가마가 대폭발을 일으킬 터였다. 공방의 장인들은 물론, 이 골짜기에 있는 모든 생명체가 고압의 끓는 열수와 파편에 찢겨 흔적도 없이 사라질 대재앙의 전조였다.
백무결이 기갑의 해치를 열고 절규하듯 외쳤다.
"제갈 공자! 중앙 보일러의 압력 게이지가 미쳤다! 당장 제어 밸브를 수동으로 차단하지 않으면 우리 모두 이 자리에서 삶아 죽는다!"
설상가상으로, 조필의 손에 들려 있던 황색 칙서 끝에 장착된 초소형 기계 장치가 붉은 빛을 발하며 구동되기 시작했다. 그것은 황실 비선 사신들이 사용하는 자폭용 화약 시한 신호기였다.
"흐흐흐…… 함께 죽자. 백골지야의 비법은 단 한 조각도 가문의 밖으로 나가지 못한다!"
광기에 젖은 조필이 칙서를 보일러 배관의 틈새로 던져 넣었다.
초고압의 증기 폭발 위기, 그리고 황실 사신의 자폭 시도.
제갈휘의 뇌리에 다시 한번 극렬한 과부하가 걸리기 시작했다. 이번 수식을 전개하면, 그의 머릿속에 남은 인간으로서의 마지막 조각마저 영원히 소멸할 터였다.
그럼에도 제갈휘의 손가락은 이미 기계의 레버를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