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콰르르릉!"

대지를 찢는 굉음이 백골지야의 협곡을 흔들었다.

체포되어 무릎이 꿇려 있던 사천당문의 세작이 품속에서 꺼내 든 것은 단순한 암기가 아니었다. 당문의 비전 화공약이 충진된 적동색 독가스 통이었다.

"모두 죽어라! 당문의 비기를 훔친 도적 놈들아!"

광소와 함께 깨진 금속 통에서 자색의 탁한 연기가 폭포처럼 뿜어져 나왔다. 바람을 타고 계곡 상부의 공방 지대로 무섭게 확산하는 독무(毒霧). 비소와 유황, 그리고 백골을 녹이는 부식성 독액이 기화된 치명적인 기체였다.

동시에 백무결이 탑승한 한철 철갑 기갑의 하반신에서 이빨이 갈리는 듯한 파쇄음이 터져 나왔다.

지열 보일러의 고압 증기가 내부 도관을 타고 급격히 역류한 탓이었다. 관절을 연결하는 기어 마차가 임계 압력을 버티지 못하고 뒤틀리고 있었다.

"제갈 공자! 관절 축의 한철 톱니가 어긋났다! 이대로 가압하면 기갑 전체가 내부에서 터져 나간다!"

백무결의 비명이 장갑판 틈새로 흘러나왔다.

사방은 자색 독안개로 가득 차 숨을 쉴 때마다 허파가 타들어 가는 고통이 엄습했다. 도망치려던 황실 사신 조필은 바닥을 기며 각혈하고 있었다.

위기였다. 자칫 독가스에 중독되어 전멸하거나, 한철 기갑이 폭발하여 백골지야의 반쪽이 날아갈 판국이었다.

제갈휘의 안광이 황색으로 침잠했다.

뇌 신경 세포가 일제히 활성화되며 극렬한 고열을 방출하기 시작했다. 만물성리분개(萬物性理分解). 대상 물질의 물리적 결함과 원소 성질을 꿰뚫어 보는 절대의 안목이 켜졌다.

‘연산 개시.’

머릿속에서 현대의 기억 한 조각이 하얗게 증발했다. 대학 시절 동기들과 나누었던 실없는 농담, 그 시시한 웃음의 파편이 영구히 소멸했다.

그 대가로 얻은 것은 차갑고 명징한 물리적 수치들의 세계였다.

가스의 밀도, 풍향, 그리고 기어 관절의 응력 분포가 3차원 투영도처럼 시야에 펼쳐졌다.

"백 장인, 기갑의 주 밸브를 잠그지 마라. 오히려 압력을 우측 송풍관으로 전량 우회시켜라."

제갈휘의 목소리는 광풍 속에서도 기이할 정도로 차분했다.

"미쳤는가! 우측 송풍관은 아직 완공되지 않은 가압 환풍기다! 기어가 버티지 못해!"

"버틴다. 내가 그렇게 설계했다."

제갈휘는 주저 없이 거대한 청동 레버를 움켜쥐었다.

이곳 백골지야의 수조에는 특별한 비밀이 있었다. 일찍이 유황 광맥과 한철 광산이 인접한 탓에, 물속에서 유황 성분과 한철 가루가 이질적으로 결합하여 단단한 석회질 침전물을 형성하는 현상을 포착한 바 있었다.

유황과 철가루의 화학적 결합은 특정한 산도(pH)와 온도에서 급격한 결착력을 가지며 석화(石化)한다. 이 성질을 역이용해 다공성 석회질 차단막을 형성하면, 고온의 유황 복합 가스를 흡착하여 걸러내는 천연 필터가 완성된다.

제갈휘는 미리 송풍기 내벽에 배치해 두었던 석회질 수분 차단 필터를 작동시켰다.

"송풍 가마, 점화."

우르릉!

백무결이 기갑 내부에서 레버를 당기자, 중기 구동 송풍기가 비명을 지르며 회전하기 시작했다.

조악한 야철 기술로 제작된 거대한 철제 날개가 공기를 빨아들였다. 가압 환풍기의 흡입구로 자색 독가스가 무섭게 빨려 들어갔다.

치직, 치지직!

독가스에 포함된 황화물과 부식성 기체들이 송풍기 내부의 석회질 필터에 닿자마자 급격한 화학 반응을 일으켰다. 유독 물질이 단단한 석회질 결정으로 변환되며 필터 표면에 흡착되었다.

유독 성분이 완전히 거러진 맑은 고압 공기만이 배기구를 타고 상공 백 장 위로 뿜어져 나갔다.

"오오……! 가스가, 가스가 하늘로 흩어진다!"

공방의 인부들이 머리를 감싸 쥐고 소리쳤다.

골짜기를 가득 채웠던 자색의 장막이 거대한 백색 증기둥이 되어 하늘 높이 솟구쳐 올랐다. 대기 중의 바람을 타고 독기가 사방으로 흩어져 소멸하는 광경은 실로 경이로웠다.

하지만 아직 안심할 단계가 아니었다.

기갑의 관절부에서 발생하는 진동은 여전히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송풍기로 가압 압력을 우회하는 과정에서, 관절 연결 마차에 가해지는 비틀림 응력이 극도에 달했다.

"크아악! 관절이 쪼개진다! 쇠가 버티지 못해!"

백무결이 조종석에서 균형을 잃고 흔들렸다.

만물성리분개의 시야에 붉은색 경고등이 명멸했다.

기어 연결부의 마찰 계수가 한계를 돌파하고 있었다. 백무결이 제공했던 한철 가공 샘플의 응력 균열 패턴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금속을 단조할 때 균일하게 식히지 못해 내부에 잔류한 미세한 응력의 흉터들. 특정 진동 주파수가 인가되면 이 흉터들이 도미노처럼 무너지며 금속 자체가 유리가 깨지듯 파쇄된다.

이것은 무공의 내력으로 막을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열역학적 제어만이 유일한 해법이었다.

"백 장인, 왼쪽 보조 실린더의 냉각수 밸브를 완전히 차단해라. 그리고 오른쪽 고온 증기 도관을 개방하여 관절부로 역류시켜라."

"무슨 소리냐! 고열의 증기를 관절에 바로 쏘면 쇠가 팽창해서 완전히 눌어붙는다!"

백무결이 경악하여 소리쳤다.

"눌어붙기 직전의 열 팽창을 유도하는 것이다. 내부 응력을 고온으로 이완시킨 뒤, 급속으로 식히며 진동을 쇄신한다. 내 계산을 믿어라."

제갈휘의 눈빛에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금속의 급격한 단조 과정에서 잔류한 미세 응력은 특정 진동 주파수와 공명할 때 파괴적인 균열을 낳는다. 고압의 열기를 순환시켜 응력을 일시적으로 이완하고 진동 감쇄 유체를 주입하면 금속의 피로 파괴를 막을 수 있다.

백무결은 이를 악물었다. 제갈휘의 눈에 서린 광적인 확신이 그의 장인 정신을 자극했다.

"에잇, 염라대왕을 만나거든 공자 탓을 하겠소!"

백무결이 가압 제어판의 동 레버를 끝까지 밀어 넣었다.

화아아악!

기갑의 관절 틈새로 시뻘건 고온의 증기가 폭풍처럼 분사되었다.

동시에 제갈휘가 기갑 하단에 장착된 석회유(石灰油) 윤활액 분사 장치의 밸브를 발로 차 열었다. 고온으로 팽창하며 응력이 풀린 한철 관절 사이로 차가운 윤활액이 침투했다.

"치이이이익!"

극렬한 온도 차로 인해 백색의 수증기가 사방을 덮었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귀를 찢던 관절의 파쇄 진동 소음이 뚝 멈추었다.

덜컹, 덜컹.

기갑의 무거운 금속 다리가 완벽한 궤적을 그리며 대지를 디뎠다. 어긋났던 톱니바퀴들이 오차 없이 맞물려 부드럽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기운이나 기연에 기대지 않고, 오직 정밀한 물리학적 진동 감쇄 구조와 열기 순환 장치를 적용하여 대형 한철 증기 장갑을 완벽하게 제어해 낸 순간이었다.

"성공…… 성공이다!"

백무결이 기갑의 해치를 열고 밖으로 상체를 내밀었다. 그의 얼굴은 검은 그을음과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으나, 눈빛만큼은 불꽃처럼 타오르고 있었다.

그는 천천히 기갑에서 내려와 제갈휘의 앞에 섰다.

수십 년 동안 쇠를 만지며 무수한 무인과 세가들을 보아왔다. 그러나 눈앞의 이 서자처럼 물질의 본질을 꿰뚫고, 자연의 물리 법칙을 완벽히 지배하는 인간은 단 한 명도 보지 못했다. 이것은 무공보다 더 위대하고 두려운 힘이었다.

백무결은 무겁게 무릎을 꿇었다. 그의 거친 손이 흙바닥을 짚었다.

"제갈 공자. 아니, 주공(主公)."

"장인, 무릎을 꿇을 필욘 없소."

"아니오. 내 평생 이토록 완벽한 쇠의 통제를 본 적이 없소. 주공의 기계는 단순한 잡술이 아니라 천하를 바꿀 대도(大道)요. 백무결의 망치와 목숨은 이제 온전히 백골지야와 주공의 도면을 위해 존재할 것이오."

야철 장인의 전폭적인 맹세였다. 제갈휘의 입꼬리가 냉소적으로 비틀렸다. 타인의 호의를 신뢰하지 않는 성정이었으나, 철저한 기술적 우위로 맺어진 이 동맹만큼은 손익계산서상 가장 신뢰할 만한 자산이었다.

"약조는 접수했소. 이제 쓰레기들을 치울 시간이지."

제갈휘가 고개를 돌려 바닥에 쓰러져 신음하는 황실 사신 조필을 내려다보았다.

조필은 독가스를 마셔 폐가 망가진 채 비틀거리고 있었다. 그의 손에는 여전히 황실의 세무 감찰 권한을 위임받은 황색 칙서가 쥐여 있었다.

"이…… 이 역적 놈들…… 무단으로 군용 기갑을 제조하고, 황실의 관리를 공격했으니…… 가문 전체가 멸문지화를 면치 못할 것이다……!"

조필이 피침을 뱉으며 악을 썼다.

제갈휘는 차가운 눈빛으로 품속에서 낡은 서책 한 권을 꺼내 들었다. 대명률(大明律)이었다. 그가 율법의 사각지대를 샅샅이 뒤져 찾아낸 절대적인 무기였다.

"조 대인. 대명률 여공조(禮工條) 제삼십사 항을 아시오?"

"무, 무엇이……?"

"종묘의 제례 및 황실의 안녕을 위해 제작된 자동 가동식 인형 기구(自動機具)는 일체의 관세와 양세를 면제하며, 그 제조 공방 역시 황실의 직할 영지로 간주하여 지방 관청의 간섭을 배제한다. 또한, 이를 방해하는 관료는 태형 일백 대와 유배 삼천 리에 처한다."

제갈휘가 율법의 조항을 낭독하자, 조필의 안색이 흙빛으로 변했다.

"이, 이 기갑이 어찌 종묘 제례용이란 말이냐! 이것은 살육을 위한 병기다!"

"병기라니요? 법전의 정의에 따르면, 내공을 사용하지 않고 스스로 움직이는 기계 장치는 모두 '자동 가동식 인형 기구'에 해당하오. 우리는 황실의 조상들께 바칠 거대한 제례용 수호 인형을 제작하고 있었을 뿐이오. 백 장인이 증명하지 않았소?"

백무결이 옆에서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이것은 제례용 인형이다! 춤을 추기 위해 관절을 부드럽게 만든 것이지!"

"억지다! 그런 궤변이 통할 것 같으냐!"

"통하고 말고는 조 대인이 결정할 문제가 아니오."

제갈휘가 싸늘하게 웃으며 조필의 코앞에 밀서 한 장을 들이밀었다. 그것은 일전에 입수했던 황실 비선 세무 감찰 사신들과 제갈세가 관료들의 은밀한 금전 압류 모의 장부였다.

"당신들이 백골지야를 압수해 사천당문과 결탁하여 사리사욕을 채우려 했다는 증좌요. 이 상장서가 황제 폐하의 침소에 오르는 날, 당신들의 목이 몇 개나 남아날지 계산해 보았소?"

조필의 눈동자가 격렬하게 흔들렸다.

대명률의 완벽한 예외 조항과 자신들의 비위 장부. 이 두 가지 칼날 앞에 황실 사신의 권위는 완전히 조각나 버렸다.

"내, 내가 졌다…… 칙서는 거두겠다……."

조필이 결국 머리를 땅에 박았다. 백골지야의 기술 독점을 황실의 이름으로 억압하려던 시도가 완벽하게 분쇄된 순간이었다.

공방의 장인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가문의 종법적 압박과 황실의 세무 횡포를 오직 법률의 궤변과 과학의 힘으로 격퇴해 낸 완벽한 승리였다.

그러나 제갈휘의 계산기는 아직 멈추지 않았다.

환호하는 군중 뒤편, 백골지야의 어두운 밤하늘 너머에서 기이한 비린내가 바람을 타고 밀려왔다.

타닥, 타닥!

급박한 발소리와 함께, 온몸에 피를 흘리는 척후병 한 명이 협곡 입구에서 뛰어 들어와 주저앉았다.

"보, 보고드립니다……!"

병사의 목소리는 극도의 공포로 덜덜 떨리고 있었다.

"무슨 일이냐?"

제갈휘가 미간을 찌푸렸다.

"사천당문의 당천악이…… 제갈세가의 원로원 수장 제갈무창과 밀약하였습니다! 지금 백골지야로 통하는 유일한 탄광 진입로와 모든 계곡 입구에……!"

병사가 각혈하며 손가락으로 어둠을 가리켰다.

"수백 마리의 독강시(毒疆屍) 군단을 배치하여, 백골지야 전역을 유독성 가스 진공벽으로 완전히 가두었습니다! 외부에서의 탄석 보급이 차단되었고, 누구도 이 골짜기를 나갈 수 없습니다……!"

장내의 환호성이 순식간에 차가운 침묵으로 얼어붙었다.

원로원의 배신, 그리고 당문의 독강시 포위망.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백골지야를 고사시키려는 거대한 음모의 이빨이 드러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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