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끼이이이익!”
쇠가 비명을 질렀다. 백골지야의 외곽 계곡. 거대한 수차의 차축 기어가 붉게 달아올랐다. 한철 광석의 하중이 축을 짓눌렀다. 톱니의 이빨이 으스러지기 직전이었다.
“안 돼! 기어가 버티지 못한다!”
백무결의 절규가 계곡을 찢었다. 가속된 연마 공정이 부른 참사였다. 붉은 균열이 강철 표면에 번져갔다. 이대로 축이 부서지면 보일러가 터진다. 백골지야의 공방 전체가 날아갈 판이었다.
제갈휘는 차가운 침묵 속에서 눈을 부릅떴다. 뇌리가 번뜩였다. ‘만물성리분개(萬物性理分解).’ 망막 위에 붉은 선들이 그어졌다. 차축 내부의 격자 구조가 투명하게 보였다. 결정들이 찢어지며 붕괴하는 조짐이 잡혔다.
“으윽……!”
머리가 깨질 듯한 통증이 밀려왔다. 두뇌의 강제 연산이 시작된 대가였다. 기억의 한 자락이 모래처럼 바스러졌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끓여주던 찌개의 냄새. 그 따스한 감각이 머릿속에서 영원히 지워졌다. 제갈휘는 이빨을 악물어 통증을 흘려보냈다. 어차피 이 세계에서 감정은 사치였다. 살아남는 것만이 유일한 손익이었다.
그는 즉시 도면을 머릿속으로 수정했다. 가열된 한철은 내부에서 열팽창을 일으킨다. 압력이 갇히면 쇠는 유리처럼 깨진다. 이를 막으려면 외력의 작용 방향을 비틀어야 한다.
“무결! 동(銅) 합금으로 만든 가위 쐐기를 가져와라!”
제갈휘의 목소리가 굉음을 뚫고 울렸다.
“쐐기라고? 이 압력에 쐐기를 넣으면 구리 따위는 짓이겨진다!”
“말대꾸할 시간 없다. 당장 가져와!”
백무결이 이를 갈며 연장통을 뒤엎었다. 두꺼운 가위 모양의 구리 쐐기가 제갈휘의 손에 쥐어졌다. 제갈휘는 열기가 뿜어지는 기어 틈새로 손을 뻗었다. 조금만 어긋나도 손목이 날아갈 위치였다.
그는 만물성리분개로 포착한 응력의 중심점을 노렸다. 구리 쐐기를 회전하는 차축의 유도 홈에 밀어 넣었다. ‘연마 유도(硏磨誘導)’. 무른 구리가 강한 한철 사이에서 으깨지며 윤활막 역할을 하도록 만드는 기술이었다.
콰아아앙!
기어와 쐐기가 맞물리며 엄청난 불꽃이 튀었다. 제갈휘는 멈추지 않았다. 그는 차축 후방의 배기 밸브로 시선을 돌렸다.
“우측 배기 밸브를 최대로 개방해라! 좌측은 완전히 잠가라!”
“한쪽만 열면 압력이 비대칭으로 쏠려 보일러가 터진다!”
대장간 무인들이 비명을 질렀다. 그들은 고압 증기의 성질을 몰랐다.
“비대칭 배기가 답이다. 가스를 한쪽으로만 뿜어내어 회전축의 원심력을 상쇄시킨다. 팽창하는 열기를 한 방향으로 분출시켜 축의 비틀림을 억제하는 원리다.”
제갈휘의 단호한 명령에 무인들이 황급히 밸브를 조작했다.
푸쉬이이이이익!
우측 배기구에서 백색의 고압 증기가 폭포처럼 쏟아졌다. 동시에 가위 쐐기가 기어 틈새에서 부서지며 마찰 저항을 극대화했다. 미쳐 날뛰던 차축의 회전 속도가 급격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쿠구구궁…… 툭.
마침내 거대한 수차가 거친 숨을 내쉬며 정지했다. 붉게 달아올랐던 차축이 서서히 식어갔다. 파괴는 없었다. 보일러의 폭발도 일어나지 않았다. 공방 내부에는 오직 무거운 침묵과 거친 호흡 소리만 가득했다.
제갈휘는 소매로 이마의 식은땀을 닦아냈다.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머릿속의 연산 장치는 여전히 뜨거웠다. 그는 냉정하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수차 아래의 냉각 수조에 고인 물이 탁하게 흐르고 있었다. 그 수조의 바닥에는 노란 유황 가루와 한철의 미세한 분말이 뒤섞여 있었다. 제갈휘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과거, 수조에서 일어났던 기묘한 화학 반응이 기억났다. 유황과 한철 가루가 물과 만나 진흙처럼 엉겨 붙던 현상. 그것은 단순한 오염이 아니었다. 이질적인 두 물질이 결합하여 단단한 석화(石化) 물질을 형성하는 물리 현상이었다.
‘이것이다.’
제갈휘는 무릎을 꿇고 수조 바닥의 회백색 침전물을 손가락으로 긁어 올렸다. 점성이 강하고, 열을 가해도 쉽게 녹지 않는 성질. 이 석화 물질을 가압 기어의 접합부에 도포하면 어떻게 될까. 수분을 완벽히 차단하는 동시에, 고온에서도 형태를 유지하는 극상의 필터가 된다. 기어의 고질적인 문제였던 수분 침투와 마모를 원천 차단할 수 있는 열쇠였다.
“무결.”
제갈휘가 침전물을 묻힌 손을 들어 올렸다.
“이 침전물을 모아라. 유황과 한철 분말의 비율을 일 대 삼으로 섞어 가열하면 이 석화 필터가 완성된다. 이것을 모든 가압 기어의 밀폐재로 사용한다.”
백무결이 다가와 그 물질을 만져보았다. 그의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이…… 이 쓸모없는 찌꺼기가 기어의 마모를 막는단 말이냐?”
“쇠와 황이 만나 이룬 성질이다. 자연의 이치를 결합하면 굳이 값비싼 한철을 덧대지 않아도 내구성을 얻을 수 있다.”
백무결은 말문이 막힌 듯 제갈휘를 쳐다보았다. 그는 제갈휘가 보여주는 기행에 가까운 기술력에 매번 압도당하고 있었다.
그때 백무결이 품바지에서 묵직한 돌덩이 하나를 꺼내 놓았다. 검은빛이 감도는, 아주 기묘한 형태의 한철 광물 응괴였다.
“이것은 백골지야 심부에서 채굴한 특별한 한철이다. 강도는 최상이나, 제련할 때마다 자꾸만 균열이 가서 버려진 놈이지. 네 안목으로 한번 봐다오.”
제갈휘가 그 응괴를 받아들었다. 다시 한번 눈앞에 푸른 성리분개의 시야가 펼쳐졌다. 응괴의 표면은 단단해 보였지만, 내부 깊숙한 곳에 미세한 기포들이 얽혀 있었다. 금속 결정들이 서로 밀어내며 응축된, 이른바 ‘응력 균열의 흉터’였다.
이 광물은 겉보기에는 단단하나, 특정 주파수의 진동을 받으면 도미노처럼 무너질 치명적인 결함을 품고 있었다. 제갈휘는 입가에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이것은 훌륭한 무기가 되겠군.’
그는 붓을 들어 품속의 정밀 해체 대장에 응괴의 구조와 균열 패턴을 상세히 기록했다. 이 정보를 쥐고 있다면, 훗날 당문이나 원로원이 이 한철을 가공해 무기를 만들 때 단 한 번의 타격으로 파괴할 수 있는 저격점을 확보하는 셈이었다. 지식을 독점하는 자가 전장을 지배한다. 그것이 제갈휘의 철칙이었다.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대장간 무인들이 서서히 뒤로 물러섰다. 그들의 눈빛은 이전과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그들은 원로원의 사주를 받거나, 혹은 서자 공자의 잡술을 경멸하던 본가의 정예 철공들이었다. 하지만 방금 전의 상황은 그들의 상식을 초월했다.
무림 최고의 도가 공장에서도 고압 기어가 파손되면 가마를 통째로 폐기해야 했다. 그 누구도 흐르는 용암처럼 달아오른 한철의 파손을 멈추지 못했다. 그러나 제갈휘는 구멍 몇 개를 뚫고, 배기 밸브를 조절하는 것만으로 그 대재앙을 막아냈다. 이것은 단순한 운이 아니었다. 철의 성질과 공기의 흐름을 완벽히 지배하는 자만이 보일 수 있는 신기(神技)였다.
“공자님…….”
늙은 철공 한 명이 떨리는 무릎을 꿇었다. 그의 손에는 대장간의 상징인 무거운 망치가 들려 있었다.
“저희가 눈이 멀어 장인의 도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이토록 완벽하게 쇠를 다루시는 분을 잡배라 욕하다니…….”
그의 시작으로 뒤에 서 있던 십여 명의 무인들이 일제히 지복을 꿇었다. 그들의 이마가 백골지야의 차가운 흙바닥에 닿았다.
“제갈세가의 철공들, 이제야 진정한 대장인을 뵙습니다!”
우렁찬 외침이 공방 가득 울려 퍼졌다. 제갈휘는 그들의 굴복을 담담하게 내려다보았다. 감흥은 없었다. 이들의 충성심 역시 오직 압도적인 기술력과 실리 앞에서만 유지되는 가변적인 수치일 뿐이다. 그는 냉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무릎을 꿇을 시간이 있다면 기어나 닦아라. 공정은 멈추지 않는다.”
“존명!”
무인들이 활기찬 목소리로 외치며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공방의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이제 그들은 제갈휘의 명령을 가문의 가규보다 앞선 절대적인 법칙으로 따르고 있었다.
그때, 그림자 속에서 제갈설명이 조용히 걸어 나왔다. 그녀의 손에는 가죽 가방과 몇 장의 서류가 들려 있었다.
“대단한 구경을 했군요, 공자.”
“계산서는 가져왔나.”
제갈휘가 건조하게 물었다.
“물론입니다. 대명률의 종묘 제례 조항을 조사한 결과입니다.”
제갈설명이 서류 한 장을 내밀었다. 서류에는 붉은 관인이 찍혀 있었다.
“대명률 예제(禮制) 편에 따르면, 황실의 종묘 제례에 사용되는 ‘자동 가동식 인형 기구’는 국가의 전매법과 무기 통제법에서 완전히 제외된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세금 역시 면제 대상이지요.”
제갈휘가 서류를 훑어보았다. 그의 치밀한 계획의 핵심 고리였다. 원로원과 사천당문이 유황 거래와 무기 제조로 자신을 옭아매려 할 때, 이 조항은 완벽한 방패가 될 터였다. 백골지야에서 만드는 기계 인형들을 ‘황실 제례용 도구’로 위장하는 것. 황실의 권위에 대항할 수 있는 가문은 중원에 없다.
“준비는 끝났군.”
제갈휘가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그때였다.
공방 입구의 거대한 철문이 거칠게 열렸다. 차가운 밤바람과 함께, 화려한 관복을 입은 사자 한 명이 호위 무사들을 거느리고 들어섰다. 그의 가슴에는 원로원의 문장인 청색 매화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사자는 오만한 걸음걸이로 제갈휘의 앞까지 걸어왔다. 그리고 품속에서 황금색 비단으로 감싸인 두루마리를 꺼내 들었다.
“원로원주이신 제갈무창 어른의 조령(條令)이시다! 서자 제갈휘는 무릎을 꿇고 받들어라!”
차갑고 날카로운 목소리가 공방의 열기를 일순간에 얼려버렸다. 제갈휘는 무릎을 꿇지 않았다. 그저 냉랭한 눈으로 사자를 응시할 뿐이었다.
사자는 불쾌한 기색을 숨기지 않으며 두루마리를 펼치고 소리 높여 낭독했다.
“서자 제갈휘는 가문의 명예를 더럽히는 마도 잡술을 행하고, 법통을 어지럽혔다. 이에 원로원은 가규에 의거하여, 사흘 뒤 열릴 가문의 성소 ‘천해 대제례(天海大祭禮)’에서 백골지야의 모든 기계 자산과 설비를 가문 명의로 강제 몰수 및 징발함을 선포한다!”
사자의 목소리가 메아리쳤다. 공방 안의 무인들이 일제히 동요했다. 사흘 뒤. 가문의 모든 권력이 모이는 천해 대제례에서, 제갈무창이 직접 제갈휘의 모든 것을 빼앗겠다는 선전포고였다.
사자가 조령을 제갈휘의 발밑에 던지듯 내려놓았다.
“이의는 허락되지 않는다. 사흘 뒤, 네놈이 이룬 모든 고철 덩어리는 가문의 소유가 될 것이다.”
사자가 비웃음을 흘리며 몸을 돌렸다. 제갈설명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백무결은 이빨을 갈며 망치를 꽉 쥐었다.
그러나 제갈휘의 입가에는 기묘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의 머릿속 연산 장치가 새로운 공식의 답을 도출해내고 있었다.
‘천해 대제례라.’
그것은 파멸의 덫이 아니었다. 오히려 황실의 면세 조항을 원로원과 당문의 머리 위에 통째로 터뜨릴 수 있는, 가장 완벽한 무대가 마련된 셈이었다.
제갈휘는 발밑의 조령을 밟으며 나직하게 읊조렸다.
“사흘이라…… 충분한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