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부서진 철문 사이로 매큼한 화약 냄새가 밀려들었다.

당천악의 파견 집사장, 조팽의 손에 들린 가압류 서장이 가을바람에 파르르 떨렸다. 관청의 붉은 직인은 어둠 속에서도 흉측하게 빛났다.

"제갈세가의 서자 제갈휘는 듣거라!"

조팽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백골지야의 암벽을 때렸다.

"네놈은 가문의 영지 내에서 황실 허가 없이 대량의 유황을 초가공하고, 사천당문의 독점 무기 제조권을 침해하였다. 이에 당문과 대명 관아의 이름으로, 백골지야의 모든 자산과 기계 설비에 대한 소유권 가압류를 선포하노라!"

제갈설명의 안색이 흙빛으로 변했다. 방금 서명한 계약서가 품 안에서 무겁게 가라앉았다. 백무결은 한철 도끼를 고쳐 쥐며 이빨을 갈았다. 금방이라도 뼈를 부술 듯한 기세였다.

오직 제갈휘만이 고요했다.

그의 검은 눈동자는 조팽의 손에 들린 서장을 꿰뚫고 있었다. 궤변과 율법의 세계. 그곳은 무공의 고수들이 칼을 휘두르는 곳보다 더 잔인하고 정교한 전쟁터였다.

"가압류라."

제갈휘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낮고 건조했다.

"대명 관아의 직인이 찍혔으니 법적 효력이 있다고 믿는 모양이군."

"어디서 수작질이냐! 관청의 명이다. 당장 공방의 화덕을 끄고 무릎을 꿇어라!"

조팽이 기세등등하게 외쳤다. 그의 뒤에 선 당문의 무사들이 검자루에 손을 올렸다. 철컥이는 쇳소리가 사방을 메웠다.

제갈휘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의 시선은 조팽의 얼굴을 지나 공방 구석에 위치한 거대한 석회질 수조로 향했다.

그 수조 안에는 탁한 액체가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수조 밑바닥에는 굳어버린 돌덩어리들이 가득했다. 유황 가루와 조악한 한철 가루가 물속에서 이질적으로 결합하여 일어난 석화(石化) 현상의 결과물이었다.

2일 차 가마 점화 당시, 제갈휘는 이 기괴한 침전 현상을 목격했다.

철가루와 유황이 물속에서 결합하면 황화 반응이 일어난다. 그것이 물속의 석회 성분과 엉겨 붙으며 극도로 단단한 규산염 결합을 형성한다. 일반적인 무인들에게는 가마를 망치는 쓰레기 침전물에 불과했다.

하지만 제갈휘의 뇌는 그것을 다르게 연산했다.

이것은 훌륭한 차단재다. 한철 가압 기어의 급격한 마모와 부식을 막아줄 석회질 수분 차단 필터 기술. 그것이 이 수조 안에 잠겨 있었다.

"너희는 내가 유황을 초가공하여 화약을 만들었다고 주장하는군."

제갈휘가 수조 옆의 나무 바가지를 들어 올렸다. 탁하고 회색빛이 도는 걸쭉한 점액질이 흘러내렸다.

"사천당문의 독점권은 '군사용 무기 및 화약 제조'에 국한된다. 대명률 병률(兵律) 제3조에 명시된 바와 같지."

"그, 그것이 무슨 상관이냐! 유황을 대량으로 들여와 가공하는 것 자체가 불법이다!"

조팽의 눈썹이 꿈틀했다.

"상관이 아주 크지."

제갈휘의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갔다.

"대명 세무 조세율 제7조를 읽어본 적이 있는가?"

조팽은 대답하지 못했다. 무림의 가신이 제국의 세법을 상세히 알 리 만무했다.

"지방 한철 도가 가공 민간 면제(地方 寒鐵 陶家 加工 民間 免除)."

제갈휘의 목소리가 공방의 증기 소음을 뚫고 명확하게 울려 퍼졌다.

"지방에서 한철이나 옹기, 혹은 도가를 가공하기 위해 민간에서 사용하는 부자재는 관아의 전매 제한 및 가압류 대상에서 제외된다. 이것은 태조 고황제께서 반포하신 대명률의 철칙이다."

"도가 가공이라니? 이 흉물스러운 철제 괴물들이 도자기란 말이냐!"

조팽이 붉은 대형 보일러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저것은 열을 전달하는 가마의 일종이다. 그리고 우리가 유황을 쓰는 이유는 화약을 만들기 위함이 아니다."

제갈휘가 수조 속의 석회질 점액을 손가락으로 찍어 조팽의 발밑에 던졌다. 툭, 하고 떨어진 회색 덩어리는 공기 중의 열기를 받자마자 빠르게 굳어갔다.

"이것은 한철 기어의 열팽창을 막고 마모를 방지하는 석회질 수분 차단 필터다. 유황과 한철 가루를 이질적으로 결합시켜 석화시키는 도가 기술이지. 화약의 점화 성분은 단 일 푼도 들어가지 않는다."

"궤변이다! 관아의 포교들이 직접 확인하면 네놈의 목이 날아갈 것이다!"

조팽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해보아라."

제갈휘가 한 걸음 더 다가섰다. 그의 눈빛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상위 법률인 대명 세무 조세율 제7조를 무시하고 무리하게 가압류를 집행한 관리는 직권남용으로 유배형에 처해진다. 사천 관아의 세무관이 당문의 개가 되어 제 목숨을 걸려 하겠느냐? 이 서류를 들고 온 관원은 필시 네놈들에게 뇌물을 받고 대충 도장만 찍어준 하급 관리일 터."

제갈휘가 조팽의 손에 든 가압류장을 낚아챘다.

만물성리분개(萬物性理分解)가 발동했다.

종이의 섬유질 마모 상태, 직인의 주사(朱砂) 성분 비율이 뇌리로 쏟아졌다. 정식 관청의 대장에 기록되지 않은, 급조된 야매 서류였다.

"역시나."

제갈휘가 서장을 조팽의 가슴팍에 거칠게 던졌다.

"대장에 등록되지 않은 사문서위조다. 이 가압류장을 관아에 정식으로 고발하면, 가장 먼저 목이 달아나는 것은 이 도장을 찍어준 관리와 이를 사주한 사천당문이 될 것이다. 사천당문이 감히 대명 황실의 율법을 참칭하려 드는가?"

"이, 이 자가……!"

조팽의 전신이 부르르 떨렸다.

그의 뒤에 선 무사들이 서로의 눈치를 보며 주춤거렸다. 황실의 법률을 어겼다는 명분은 무림인들에게도 치명적이었다. 특히 황권이 강력한 대명 제국 하에서는 더더욱 그러했다.

"돌아가라."

제갈휘가 조용히 명령했다.

"당천악에게 전해라. 잔머리를 굴릴 시간에 기어의 오차나 줄이라고."

조팽은 이를 악물었다. 사천당문의 권세를 믿고 기세등등하게 들이닥쳤던 가신단은, 단 한 줌의 무력도 쓰지 못한 채 율법의 칼날 앞에 스스로 무너져 내렸다.

"두고 보자. 제갈세가의 서자 놈아……! 이 수모는 반드시 갚아주마!"

조팽이 흙먼지를 일으키며 황급히 도망치듯 공방을 빠져나갔다. 그의 뒤를 따르는 무사들의 발걸음이 어지러웠다.

완벽한 사이다 같은 승리였다.

제갈설명은 입을 벌린 채 제갈휘를 바라보았고, 백무결은 콧방귀를 뀌며 도끼를 내려놓았다.

"역시 휘 공자요! 율법의 구멍을 그렇게 파고들 줄이야!"

그러나 제갈휘는 백무결의 칭찬을 듣지 못했다.

극심한 통증이 그의 두뇌를 관통했다.

'아악……!'

뇌세포가 비명을 질렀다. 만물성리분개의 과도한 연산과 대명률의 수만 가지 조항을 한순간에 대조한 대가였다. 머릿속이 끓는 기름처럼 뜨거워졌다.

정신이 혼미해지는 와중에, 그의 영혼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툭 끊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기억의 소실이었다.

어스름한 저녁, 주황색 전등 불빛이 일렁이던 좁은 골목길이 떠올랐다. 겨울바람이 불어닥치던 서울의 어느 길거리 가판대. 늙은 사내가 구워내던 노란 붕어빵의 달콤한 냄새. 그것을 보며 침을 삼키던 어린 날의 자신.

그 따스하고 비생산적인 기억의 파편이, 마치 불타는 도화지처럼 가장자리부터 검게 그을려 가며 사라졌다.

연기조차 남지 않았다.

그 기억이 존재했다는 사실조차 이제는 희미해졌다.

머릿속에 남은 것은 오직 차가운 기계 설계도와, 대명률의 메마른 법 조문들뿐이었다.

제갈휘의 눈빛이 한층 더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그에게 인간적인 온정이나 추억 따위는 사치였다. 오직 자신만의 완벽한 독립지를 구축해야 한다는 편집증적인 갈망만이 굳건해질 뿐이었다.

"공자, 괜찮으십니까?"

제갈설명이 다가와 물었다. 그의 눈에는 제갈휘를 향한 경외심과 함께, 실질적인 이익을 가져다줄 파트너로서의 탐욕이 서려 있었다.

"아무것도 아니다."

제갈휘가 차갑게 대꾸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감정의 고저가 전혀 없었다.

"제갈설명. 본가에서 가져온 장부를 내놓아라."

"예? 아, 여기 있습니다."

제갈설명이 품에서 붉은 비단으로 감싼 두꺼운 책자를 꺼냈다. 본가의 회계 전표와 밀서들이었다.

제갈휘는 장부를 받아들여 바닥에 펼쳤다.

만물성리분개의 안목이 장부의 줄마다 그어진 붉은 선들과 먹의 번짐을 추적했다.

"원로원주 제갈무창."

제갈휘의 입에서 그 이름이 흘러나왔다.

"이 가압류의 배후는 당문이 아니라 본가다."

장부의 세부 내역 중, 당문으로 흘러 들어간 자금의 흐름과 제갈무창의 직인이 찍힌 비밀 통행증 발급 대장이 일치했다. 제갈무창이 당문과 결탁하여, 서자인 제갈휘를 백골지야에서 합법적으로 축출하려 한 음모였다.

"종법(宗法)을 수호하기 위해 가문의 이익을 적에게 팔아넘기다니."

제갈휘가 냉소했다.

"어리석은 노정객이군. 가문을 지키겠다는 명분 아래 가문을 갉아먹고 있어."

"어찌하시겠습니까? 본가의 원로원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하면, 저로서도 자금줄을 대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제갈설명의 눈이 가늘어졌다. 이익이 나지 않는 판이라면 언제든 발을 뺄 준비가 되어 있는 계산적인 눈빛이었다.

"연계를 구축한다."

제갈휘가 장부의 한 페이지를 가리켰다.

"황실의 세무 감찰이 조만간 사천에 당도한다. 제갈무창이 당문과 결탁하여 유황을 무단 거래한 내역이 이 장부에 고스란히 적혀 있지. 이것을 세무 조세율 제7조와 연계하여 관아에 제보할 것이다."

"그것은 가문 전체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악수 아닙니까?"

제갈설명이 놀라 물었다.

"가문 전체가 아니라, 오직 원로원과 제갈무창만이 파멸할 것이다. 백골지야는 이미 대명률의 예외 조항을 통해 안전지대로 격상되었다. 가문이 흔들릴 때, 우리는 그 시체를 딛고 일어선다."

제갈휘의 계산은 정교하고 잔인했다. 타인의 호의를 믿지 않기에, 오직 완벽한 손익계산서만을 무기로 삼았다.

"준비해라, 제갈설명. 본가의 숨통을 끊을 준비를."

"……알겠습니다. 공자의 뜻대로 움직이지요."

제갈설명이 고개를 숙였다. 그의 입가에 잔인한 미소가 걸렸다.

그때였다.

쿠구구구구!

공방 외곽, 계곡을 가로질러 설치된 거대한 수차 지대에서 귀를 찢는 굉음이 들려왔다.

"무슨 소리냐!"

백무결이 소리치며 밖으로 뛰어나갔다. 제갈휘 역시 급히 걸음을 옮겼다.

달빛 아래, 백골지야의 가파른 계곡을 따라 설치된 외곽 증기 수차가 보였다.

그 수차는 백골지야에서 채굴한 엄청난 하중의 한철 광석을 상부 가마로 운반하는 핵심 동력원이었다. 가속화된 생산 일정을 맞추기 위해 무리하게 출력을 끌어올린 상태였다.

콰아아앙!

수차의 중심축을 지탱하던 거대한 차축 기어가 엄청난 하중을 견디지 못하고 비명을 질렀다.

철과 철이 맞물리며 일어나는 마찰열로 인해 기어 표면이 붉게 달아올랐다.

"안 돼! 기어가 버티지 못한다!"

백무결이 절규했다.

제갈휘의 눈동자가 급격히 흔들렸다. 만물성리분개의 시야 속에서, 차축 기어의 중심부에 미세하게 가던 금이 순식간에 사방으로 뻗어 나가는 것이 보였다.

피지직!

기어의 이빨이 하나씩 부러져 나가며, 엄청난 고압 증기를 뿜어내던 보일러관이 팽창하기 시작했다. 이대로 차축이 부서지면, 백골지야의 모든 공방이 폭발과 함께 붕괴할 터였다.

철컥, 카강!

차축 기어가 일순 삐걱거리며 멈추어 섰고, 강철의 표면에 깊고 붉은 균열이 번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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