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다다다당!

대지를 찢어발길 듯한 기병들의 말발굽 소리가 백골지야의 협곡 입구를 사정없이 뒤흔들었다. 자욱한 황토 먼지 너머로 적색의 원로원 기치를 치켜든 기병 삼십여 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선두에 선 자는 제갈세가 원로원의 수석 집사, 제갈태(諸葛泰)였다. 그의 매서운 안광이 임시 장벽 너머로 연기를 뿜어내는 가마와 제갈휘를 향해 고정되었다.

"망나니 서자 놈이 결국 가규를 어기고 마도의 사술을 부리는구나!"

제갈태가 채찍을 치켜들며 사납게 고함을 질렀다. 말들의 콧김이 밤안개 속에서 하얗게 서렸다. 원로원 기병들이 두른 철갑 옷자락이 가차 없이 덜커덕거렸다. 기병들의 난입은 가차 없었고, 그들의 기세는 백골지야의 메마른 흙먼지를 단숨에 집어삼킬 듯 맹렬했다.

"저 조악한 고철 가마를 당장 때려 부수고, 서자 휘를 오라로 묶어라! 원로원의 영령이다!"

기병들이 장검을 뽑아 들었다. 시퍼런 검막이 밤하늘을 갈랐다.

백무결이 쇠망치를 움켜쥐며 제갈휘의 앞을 막아서려 했다. 그의 우람한 어깨가 긴장으로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휘 공자, 피하시오! 저들은 가문의 정예 사수들이오. 아무리 나라도 저 무리 전체를 상대하기는 어렵소!"

그러나 제갈휘는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의 동공은 기병들의 움직임을 쫓는 대신, 방금 전 가동을 시작한 증기 보일러의 압력계를 향해 있었다.

만물성리분개(萬物性理分解)의 안광이 무색의 기류를 훑었다.

[연소실 압력: 12.4bar] [주 배출 밸브 한계 응력: 15.0bar] [임계점 도달 시간: 12초 전]

제갈휘의 입꼬리가 차갑게 비틀려 올라갔다. 인간의 감정을 배제한 그의 뇌세포는 오직 열역학적 수치와 물리적 인과관계만을 연산하고 있었다. 가문의 권위도, 기병들의 무력도 그에게는 단순한 질량과 가속도의 합에 불과했다.

"백 장인."

제갈휘의 나직한 목소리가 기계음 사이를 뚫고 나갔다.

"예, 예?"

"동력 가압 파이프의 제3 분출 밸브를 개방하십시오. 시계 반대 방향으로 반 바퀴입니다."

"그, 그걸 열면 압력이 빠져나가 기계가 멈추지 않소?"

"멈추지 않습니다. 오히려 분출됩니다."

제갈휘의 눈동자에 기계적인 냉혹함이 서렸다.

"저 무지한 자들의 면상 위로 말입니다."

백무결은 망설였다. 하지만 제갈휘의 눈빛에서 느껴지는 기이한 확신에 압도되어, 자신도 모르게 붉게 달아오른 무쇠 밸브로 손을 뻗었다. 가죽 장갑을 낀 손으로 밸브를 움켜쥐고 힘껏 돌렸다.

끼이이이익!

쇠와 쇠가 맞물리며 비명을 질렀다. 그 순간, 보일러의 측면에 가로로 길게 늘어서 있던 굵은 구리 파이프의 끝단 노즐들이 기병들을 향해 일제히 조준되었다.

쉬이이이이이익!

귀를 찢는 듯한 고주파의 비명이 백골지야의 계곡에 울려 퍼졌다.

화씨 수백 도에 달하는 초고온의 가습 수증기가 노즐을 통해 폭발적으로 분출되었다.

고압으로 가둬져 있던 포화 증기가 대기 중으로 방출되는 순간, 단열 팽창(adiabatic expansion)을 일으키며 부피가 수백 배로 급증하는 물리 현상이었다. 눈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짙고 뜨거운 안개 장벽이 기병들의 전면을 가로막았다.

푸허허헉!

"히히힝!"

말들이 먼저 비명을 질렀다. 짐승의 예민한 피부에 닿은 고열의 수증기는 단순한 연기가 아니었다. 살갗을 데어 내는 지옥의 열기였다. 말들은 이성을 잃고 날뛰기 시작했다. 선두에 서 있던 기병들의 군마가 앞다리를 쳐들며 뒤로 넘어졌다.

"으악! 이게 무슨 요술이냐!"

"눈이, 눈이 안 보인다!"

철갑을 두른 기병들이 중심을 잃고 낙마했다. 웅덩이의 진흙탕 위로 묵직한 철갑들이 처박히며 볼품없는 마찰음이 일었다. 뜨거운 수증기는 그들의 시야를 완벽히 차단했고, 가습된 고열은 철갑 내부를 한증막처럼 달구어 숨조차 쉬지 못하게 만들었다.

쿵! 쾅!

수십 마리의 군마가 뒤엉키며 아수라장이 연출되었다. 단 한 홉의 내공도 쓰지 않은, 오직 물과 불, 그리고 철관의 직경 차이만으로 만들어 낸 완벽한 제압이었다.

제갈태 역시 말에서 굴러떨어져 진흙투성이가 된 채 꼴사납게 기어 다녔다. 그의 화려한 비단 도포는 오물로 얼룩졌고, 손에 쥔 원로원의 영령서는 축축하게 젖어 볼품없이 구겨졌다.

"이…… 이 천하의 망나니 서자 놈이 감히 원로원의 집사단에게 손을 대?"

제갈태가 이빨을 부득부득 갈며 장검을 짚고 일어섰다. 그의 얼굴은 분노와 수치심으로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제갈휘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그의 가죽 장화가 진흙을 밟는 소리가 규칙적으로 울렸다. 흐트러짐 없는 그의 태도는 방금 전의 소란과 극명한 대비를 이루었다.

"원로원의 집사시여."

제갈휘의 목소리는 건조했다. 가을날의 낙엽처럼 바스락거리는 냉소가 묻어났다.

"누가 누구에게 손을 댔다는 말씀이십니까. 저는 그저 새로이 주조한 한철 보일러의 압력을 방출하는 안전 조치를 취했을 뿐입니다. 가규 어디에도 세가 영지 내에서 안전을 위해 수증기를 배출하는 행위를 금한다는 조항은 없습니다만."

"궤변이다! 너는 지금 무단으로 사가(私家)의 공방을 차려 가문의 철광을 횡령하고 있다! 이는 가규 제십조, 가문의 자산을 사사로이 유용하는 자는 가형에 처한다는 법에 의거하여 즉시 압수 및 체포의 대상이다!"

제갈태가 품에서 젖은 영령서를 치켜들며 소리쳤다. 그의 뒤에서 낙마한 기병들이 신음하며 겨우 자세를 잡고 있었다.

제갈휘는 멈춰 섰다. 그리고 품 안에서 미리 준비해 두었던 두꺼운 한지 묶음을 꺼내 들었다. 그것은 제갈세가의 가규 서적과 대명 법률의 초록이었다.

"가규 제십조라."

제갈휘가 한지를 한 장씩 넘겼다.

"확실히 가문의 자산을 사사로이 유용하는 것은 죄가 맞습니다. 하지만 제갈태 집사, 당신은 대명률(大明律) 호율(戶律) 제삼조를 망각하신 모양이군요."

제갈태의 눈썹이 꿈틀했다. 무인인 그에게 대명률이라는 단어는 낯설고도 껄끄러운 법조문이었다.

"무슨 헛소리냐! 무림세가의 가규는 황실의 법보다 우선하는 천해의 규칙이거늘!"

"참으로 무지한 발언입니다."

제갈휘의 눈빛이 급격히 가라앉았다.

"대명률은 천하의 모든 신민에게 적용되는 황상의 법입니다. 제갈세가가 제아무리 독자적인 사법권을 행사한다 한들, 황실의 세법과 제례법을 전면으로 거스르는 순간 역모의 굴레를 피할 수 없습니다. 제가 서고에서 집요하게 수집해 둔 황령에 따르면 말입니다."

제갈휘가 한 구절을 소리 내어 읽기 시작했다.

"대명률 율조 제백이십사조, '종묘용 기제(祭器) 및 자동 가동식 인형 기구는 황실의 제례와 예법을 보조하는 기물로 규정하여, 가문의 사유 재산 압수 조항 및 지방 관청의 과세 대상에서 강제로 면제한다.' 또한, '이를 사사로이 방해하거나 압수하는 자는 황실의 제례를 모독한 죄로 치죄한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제갈태의 안색이 하얗게 질리기 시작했다.

"종…… 종묘용 기제라니? 저 괴상한 무쇠 덩어리가 어찌 제례용 기물이란 말이냐!"

"이 기계는 단순한 무쇠 덩어리가 아닙니다."

제갈휘가 등 뒤의 거대한 피스톤을 가리켰다.

"이것은 황실의 종묘 제례 시 향을 피우고 제단을 정화하는 '자동 가습 및 향 분사 장치'의 핵심 동력원입니다. 이미 가문의 재무 담당이신 제갈설명 누님을 통해, 이 장치의 설계도와 명세를 황실 예부(禮部)의 하급 관료에게 공식 접수하고 확인 서명을 받아 두었습니다. 즉, 이 백골지야의 공방은 황실 제례용 기물을 제작하는 '임시 관허 공방'의 지위를 가집니다."

그것은 철저한 법률적 궤변이었으나, 완벽하게 합법적인 사각지대였다.

제갈세가의 원로원이 제아무리 기고만장하더라도, 황실 예부의 확인 도장이 찍힌 서류를 무시하고 이 공방을 강제 압수할 수는 없었다. 만약 이를 강행한다면, 제갈세가 전체가 황실의 제례를 방해했다는 명목으로 가혹한 세무 감찰과 조사를 받게 될 터였다.

"이…… 이 악랄한 놈이……!"

제갈태의 손이 부르르 떨렸다. 장검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지만, 차마 검을 휘두르지 못했다. 황실이라는 거대한 권력의 그림자가 제갈휘의 등 뒤에서 일렁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돌아가십시오, 집사."

제갈휘가 차갑게 쏘아붙였다.

"가서 원로원 노인네들에게 고하십시오. 백골지야는 더 이상 버려진 쓰레기 땅이 아닙니다. 이곳은 황실의 예법을 보조하는 신성한 국법의 보호를 받는 영지입니다. 만약 다시 한번 무단으로 난입하여 공방의 가동을 방해한다면, 대명률의 예외 조항을 어긴 죄로 원로원 전체를 관아에 고발할 것입니다."

제갈태는 이를 악물었다. 그의 뒤에 선 기병들은 이미 전의를 상실한 채 끙끙 앓고 있었다. 고열의 증기에 데인 말들은 코를 씩씩거리며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두고 보자, 서자 놈아. 가문의 종법이 그리 만만한 줄 아느냐!"

제갈태는 결국 젖은 영령서를 움켜쥔 채 말을 돌렸다.

"철수한다!"

기병들이 꼴사납게 엉금엉금 기며 협곡 밖으로 퇴각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뒷모습 위로 백골지야의 매캐한 유황 연기가 흩날렸다.

정적 속에서 기계의 피스톤 소리만이 다시 정적을 깨우며 규칙적으로 울려 퍼졌다.

쿠르릉. 쿠르릉.

백무결이 쇠망치를 내려놓으며 제갈휘를 쳐다보았다. 그의 붉은 수염이 경악으로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휘 공자…… 자네, 정말 대단하군. 무공 한 자락 쓰지 않고 원로원의 기병들을 기어 다니게 만들다니. 게다가 그 해괴한 법조문은 또 어디서 찾아낸 것이오?"

"법은 무기보다 정교한 도구일 뿐입니다, 백 장인."

제갈휘가 대명률 서류를 정리해 품에 넣으며 대답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승리의 기쁨 따위는 없었다. 그저 계산이 완벽하게 맞아떨어졌다는 안도감만이 미세하게 남아 있을 뿐이었다.

백무결은 제갈휘의 등 뒤에서 힘차게 왕복 운동을 하고 있는 무쇠 피스톤을 바라보았다.

석화 점토로 밀봉된 구리 파이프, 불량 석탄과 유황의 혼합 연료가 뿜어내는 열기, 그리고 물의 팽창력을 이용해 수차를 돌리는 기괴하면서도 완벽한 시스템. 무림의 그 어떤 명장도 생각지 못한, 오직 물리적 법칙과 기계적 수치만으로 구동되는 신화적인 광경이었다.

"이것이…… 증기의 힘인가."

백무결의 눈에 광적인 열기가 어렸다. 그는 평생을 한철을 두드리고 강도를 높이는 데 바쳐온 장인이었다. 그러나 눈앞에 있는 이 서자는 쇠의 강도만을 고집하는 대신, 쇠를 움직이는 '근본적인 동력'의 규칙을 창조해 내고 있었다.

"휘 공자. 내가 졌소."

백무결이 솔직하게 고개를 숙였다.

"내가 자네를 그저 미친 망나니로 보았던 것을 사과하겠소. 이 움직이는 무쇠 심장은 내 평생 보아온 그 어떤 기장(奇器)보다도 위대하오. 자네의 설계가 옳았소."

"사과는 필요 없습니다."

제갈휘가 냉정하게 말을 자르며 백무결을 응시했다.

"필요한 것은 합의와 결과물입니다. 저는 백 장인의 기술이 필요하고, 장인은 제 설계가 필요합니다. 서로의 이익이 일치하는 한, 우리는 가장 완벽한 동맹이 될 수 있습니다."

백무결은 제갈휘의 극도로 냉소적이고 계산적인 태도에 잠시 혀를 내둘렀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이 상황에서 신뢰와 우정을 논하련만, 이 서자는 오직 손익계산서만을 들이밀고 있었다. 하지만 그 냉혹함이 오히려 기계의 정밀함과 닮아 있어, 장인인 그로서는 묘한 안도감을 느끼게 했다.

"좋소. 손익이라…… 마음에 드는군. 그렇다면 나도 장인으로서 내 가치를 증명해 보이지."

백무결이 품 안에서 가죽 가방을 꺼내 들었다. 그 안에서 묵직하고 푸르스름한 광택을 뿜어내는 둥근 구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제갈휘가 물었다.

"내가 사천의 심부에서 채굴한 극품 한철(寒鐵)을 백 번 정련하여 깎아 만든 구체요. 장차 자네가 설계할 그 기계식 장갑 인형의 관절 축으로 쓸 수 있도록 정밀하게 주조한 물건이지. 표면에 단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완벽한 구형(球形)을 이루고 있소. 내 삼십 년 야철 인생의 정수를 담은 명작이라 자부하오."

백무결의 얼굴에 자부심이 가득했다. 그는 이 구체를 제갈휘에게 건네며, 자신의 기술력이 그의 설계도를 완벽히 구현해 낼 수 있음을 증명하고자 했다.

제갈휘는 묵묵히 한철 구체를 받아들었다. 차가운 금속의 감촉이 손바닥을 타고 전해졌다.

그는 구체를 눈앞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만물성리분개(萬物性理分解)를 구동했다.

우우웅!

그의 뇌세포가 급격히 연산을 시작했다. 뇌 속의 시냅스들이 뜨겁게 타오르며, 현대 마도공학자 시절의 기억 파편 하나가 지워져 나갔다. 대학 시절, 친구들과 함께 마시던 차가운 맥주의 맛과 웃음소리가 연기처럼 사라졌다.

대신, 그의 안광에는 한철 구체의 내부 분자 구조가 입체적으로 투영되기 시작했다.

[대상 물질: 정련 한철 구체] [밀도 균일도: 94.2%] [열팽창 계수: 불균일]

제갈휘의 눈동자가 급격히 굳어졌다.

구체의 표면은 눈으로 보기에 완벽한 구형이었고, 거울처럼 매끄러웠다. 하지만 만물성리분개의 시야로 들여다본 구체의 내부, 중심부에서 약간 비껴간 지점에 치명적인 어둠이 도사리고 있었다.

미세한 균열.

그리고 내부 응력이 한곳으로 쏠려 있는 오목한 결함 구조가 그의 망막에 선명하게 붉은색 경고등으로 깜빡였다.

"이것은……."

제갈휘의 나직한 읊조림에 백무결이 득의양양한 미소를 지었다.

"어떻소? 내 정련 기술이 만든 완벽한 구체가? 이 정도면 자네의 그 대단한 기계의 관절로 쓰기에 부족함이 없겠지?"

제갈휘는 한철 구체를 쥐고 백무결을 차갑게 올려다보았다. 그의 안광 밑바닥에서 흔들리는 붉은 결함의 실루엣이, 백무결의 자부심을 단숨에 조각내 버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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