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이이이이익!
고압의 유황 증기가 좁은 균열을 뚫고 뿜어져 나왔다. 매캐한 황색 연기가 눈을 찔렀다. 시야가 흐려졌다. 폐부가 타들어 가는 감각에 목구멍에서 쇳소리가 샜다.
가마의 외벽을 구성한 조악한 한철 파이프가 붉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열팽창률의 차이로 인해 이음새가 비틀어지는 소리가 고막을 찢었다.
"서자 놈아! 피해라! 터진다!"
백무결이 쇠망치를 내던지며 소리쳤다. 그의 굵은 팔뚝에 핏대가 솟구쳐 있었다.
피할 수 없었다. 여기서 가마가 터진다면 백골지야의 첫 기지는 고철 더미로 화할 터였다. 제갈휘의 눈동자가 기괴할 정도로 빠르게 회전했다. 동공 속에 차가운 청색의 빛무리가 일렁였다.
[만물성리분개(萬物性理分解) 기동] [대상: 시범 가마 유황 가압 파이프] [상태: 국소 열팽창으로 인한 응력 집중률 180%] [임계점 도달 시간: 9초]
눈앞의 파이프가 수십만 개의 미세한 격자무늬로 쪼개져 보였다. 붉은색으로 점멸하는 부위가 보였다. 용접선이 어긋난 틈새였다. 금속 피로도가 한계에 달해 찢어지기 직전인 균열이다.
현대의 재료공학에서 말하는 응력 집중 현상이다. 구조물에 구멍이나 홈 같은 불연속적인 부분이 존재할 때, 그 주변으로 응력이 국소적으로 수배 이상 증폭되어 파괴를 유도하는 물리적 법칙이다.
해결책을 찾아야 했다. 정상적인 밸브는 고온으로 고착되어 회전하지 않았다. 기압을 강제로 방출하거나 외부에서 압력을 억제해야 했다.
제갈휘는 바닥으로 몸을 날렸다. 지열 분출구 옆, 진흙과 유황 찌꺼기가 고여 있는 웅덩이가 보였다.
"백 대장! 웅덩이의 진흙을 퍼라! 당장!"
"미쳤느냐! 이 판국에 흙장난을 하자는 게냐!"
"죽기 싫으면 퍼라! 굳지 않은 유황 점토다!"
제갈휘는 맨손으로 웅덩이의 걸쭉한 황토 진흙을 한 움큼 움켜쥐었다. 뜨거운 열기가 손바닥의 살가죽을 지지는 듯했다. 그러나 고통을 느낄 여유는 없었다. 그 진흙은 단순한 흙이 아니었다. 침전조에서 흘러나온 황 성분과 수분이 섞인 천연 가압 밀봉재였다.
그는 붉게 달아오른 파이프의 이음새를 향해 가차 없이 진흙 덩어리를 내던졌다.
치이이이이익!
물이 끓어오르는 비명과 함께 하얀 수증기가 사방으로 비산했다. 젖은 진흙이 한철 파이프의 표면에 닿는 순간, 수분이 증발하며 급속도로 열을 빼앗아 갔다. 동시에 진흙 속에 섞여 있던 유황 성분이 고온의 철 표면과 반응하기 시작했다.
[반응 개시: 유황-한철 화학 결합] [밀봉 점토의 급속 경화 및 외부 가압 가동]
"백 대장! 틈새에 한철 슬래그 핀을 박아라! 가스가 나오는 길을 꺾어야 한다!"
제갈휘가 소리치며 주머니에서 끝이 뾰족한 쐐기 모양의 한철 핀을 꺼냈다. 제련 과정에서 나온 불순물 덩어리였다. 백무결은 영문을 모르면서도 본능적인 야철공의 감각으로 움직였다. 그는 제갈휘가 가리킨 균열의 우회로를 향해 쇠망치를 휘둘렀다.
쾅! 쾅!
묵직한 타격음이 가마터를 울렸다. 한철 핀이 파이프의 틈새를 비틀며 박혀 들어갔다. 가스의 유로(流路)가 강제로 꺾였다. 압력이 한곳에 집중되지 않고 파이프 전체로 분산되기 시작했다.
[내부 압력 저하: 140%... 120%... 95%] [안정권 진입 수렴]
쿠구구구 하며 진동하던 가마가 점차 안정을 찾았다. 불길하게 내뿜어지던 황색의 가스도 잦아들었다. 진흙이 덮인 부위는 단단한 회색의 석화(石化) 껍질로 변해 파이프를 고정하고 있었다.
"후우……."
제갈휘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손바닥이 화상으로 붉게 짓무르고 진흙 범벅이 되어 있었다.
그 순간,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극심한 두통이 뇌하수체를 자극했다. 뇌세포가 타들어 가는 듯한 열감이 관자놀이를 타고 흘렀다. 만물성리분개를 무리하게 전개한 대가였다.
[연산 과부하로 인한 대뇌 열화 발생] [영구 소실 영역 지정: 현대의 인적 네트워크 기억] [소실 정보: 대학 시절 동기 '민우'의 연번 및 연락처, 그와 나누었던 포장마차에서의 대화]
기억의 실타래 한 가닥이 연기처럼 바스러졌다.
민우.
그 이름을 떠올려 보았으나, 얼굴조차 안개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어떤 목소리로 웃었는지, 무슨 대화를 나누며 소주잔을 기울였는지 이제는 영원히 알 수 없었다. 가슴 한구석이 텅 빈 것처럼 서늘했지만,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다.
소실된 자리는 철저한 열역학 공식과 기계의 수치화된 데이터로 채워졌다.
"기억 따위, 이 세상에서는 쌀 한 톨의 가치도 없다."
제갈휘는 차갑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감정을 배제해야 했다. 오직 계산만이 생존을 보장한다. 타인의 호의도, 잃어버린 과거도 모두 무용할 뿐이었다.
"이봐, 서자. 방금 그건 대체 무슨 조화냐?"
백무결이 망치를 내려놓고 다가왔다. 그의 굳은살 박힌 얼굴에 경악의 빛이 서려 있었다.
"단순한 화학 반응과 압력의 유도다."
제갈휘는 옷자락을 찢어 화상 입은 손을 대충 감싸 쥐었다.
"진흙 속의 유황이 철의 거친 표면과 만나 열을 받으면 가황(加黃) 반응을 일으킨다. 철의 미세한 구멍을 메워 기밀을 유지하는 천연 고무와 같은 역할을 하는 거지. 그리고 슬래그 핀으로 압력의 방향을 분산시켰을 뿐이다."
"가황? 기밀? 무슨 소리인지 하나도 모르겠군. 하지만…… 이 조악한 진흙더미가 쇠붙이의 폭발을 막았다는 것은 내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백무결은 회색으로 굳어 버린 파이프 표면을 손가락으로 쓸어내렸다. 돌처럼 단단해진 기밀층은 그 어떤 정밀한 용접보다 견고하게 결함을 메우고 있었다.
"이것이 내가 말한 토법(土法)이다. 중원의 야철 기술이 조악하다면, 그 조악함을 역이용해 시스템을 구축하면 된다."
제갈휘가 몸을 일으켰다. 그의 시선이 마당 한구석에 쌓여 있는 석탄 상자들로 향했다.
제갈설명이 가문 내부의 재정을 쪼개어 보내온 가탄(佳炭)들이었다. 그러나 상자 틈새로 흘러나온 석탄의 빛깔이 예사롭지 않았다. 제갈휘는 걸음을 옮겨 상자 하나를 발로 걷어찼다.
쩌적!
나무 상자가 부서지며 검은 연석(軟石)들이 쏟아져 내렸다.
제갈휘는 쏟아진 석탄 조각 하나를 집어 들었다. 손끝에 닿는 촉감이 지나치게 가볍고 푸석했다. 손가락으로 힘을 주자 힘없이 바스러지며 거친 재가 날렸다.
[물질 분석: 저품질 갈탄 및 토탄 혼합물] [회분 함량: 45% 초과] [발열량: 2,500 kcal/kg 미만 (기준치 달성 불가)] [성분: 다량의 점토질 및 수분 내포]
"이런 쓰레기를 보냈군."
제갈휘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가탄이란 모름지기 발열량이 높고 회분이 적은 무연탄이어야 했다. 그러나 상자 안에 가득 찬 것은 열효율이 극도로 떨어지는 갈탄과 진흙이 뒤섞인 불량 가탄이었다. 이 정도의 화력으로는 가마의 온도를 높여 증기 피스톤을 구동하는 데 턱없이 부족했다.
"제갈설명, 그 영리한 장사꾼이 이런 실수를 했을 리가 없지."
제갈설명은 이익에 미친 자다. 철저한 계산하에 움직이는 자가 이따위 불량품을 보냈다는 것은, 가문 내부에서 그녀의 목을 죄는 압박이 존재한다는 뜻이었다.
"원로원 늙은이들의 짓이겠지."
제갈무창을 필두로 한 원로원의 집사단. 그들은 서자인 제갈휘가 백골지야에서 자립하는 것을 눈뜨고 볼 수 없었을 터였다. 제갈설명의 보급로를 차단하거나, 중간에서 물품을 바꿔치기하여 공방의 가동을 조직적으로 방해한 것이다.
"나를 굶겨 죽이거나, 가마를 터뜨려 죽이려 했군."
제갈휘의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갔다. 냉소적인 미소였다.
그들이 가문의 권위와 종법을 앞세워 장난질을 친다면, 자신은 철저히 물리적 효율과 시스템의 힘으로 그들의 목을 조를 것이다.
"백 대장, 이 석탄들을 전부 가마의 하부 연소실로 옮겨라."
"이런 젖은 흙 같은 놈들을 구겨 넣겠다고? 화력이 나지 않아 피스톤은 미동도 하지 않을 거다!"
"방법이 있다. 무조건 화력을 높이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니까."
제갈휘는 부서진 석탄 상자 옆의 유황 찌꺼기 포대를 가리켰다.
"이 저품질 갈탄에 유황 가루와 미세하게 빻은 한철 슬래그 가루를 일정 비율로 혼합한다. 그리고 연소실 입구의 공기 유입구를 좁혀 역화(逆火) 현상을 유도한다."
"역화라고?"
"공기의 양을 극도로 제한하면 불완전 연소가 발생하지만, 유황과 한철 가루가 촉매 역할을 하여 순간적인 고온 가스를 분출하게 만든다. 현대의 분말 야금 기술에서 응용되는 고체 연료의 연소 제어 방식이다. 산소를 억제함으로써 오히려 가스의 팽창력을 극대화하는 거지."
백무결은 침을 꿀꺽 삼켰다. 제갈휘의 눈빛에는 광기 어린 확신이 서려 있었다.
"좋다. 네 놈의 대가리를 믿어 보지."
백무결이 포대를 나르기 시작했다.
제갈휘는 짓무른 손으로 직접 석탄과 유황, 한철 가루를 배합했다. 가루가 상처에 닿아 아려 왔지만, 그의 손길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한 비율을 지켰다. 저울도 없이 오직 만물성리분개의 안목으로 물질의 밀도를 정확히 맞추어 섞어 나갔다.
연소실에 혼합 연료가 채워졌다.
"점화해라."
제갈휘의 명령과 함께 백무결이 화승을 들이댔다.
화르르륵!
매캐한 불꽃이 연소실 내부를 삼켰다. 초기에는 검은 연기만 뿜어져 나오며 불길이 사그라지는 듯했다. 그러나 가마 입구의 공기 조절 판막을 좁히자, 내부에서 크허억 하는 기괴한 흡기음이 들려왔다.
압축된 가스가 좁은 통로를 지나며 급격히 팽창하기 시작했다.
쉬이이이이!
유황 기압 파이프가 팽창된 압력을 받아 흔들렸다. 아까와는 달랐다. 회색의 석화 점토가 파이프의 이음새를 단단히 붙잡고 있었기에, 가스는 밖으로 새어 나가지 못하고 오직 한 곳, 피스톤 실린더를 향해 돌진했다.
덜컥!
정지해 있던 거대한 무쇠 피스톤이 움찔했다.
"움직인다……!"
백무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철컥! 콰르릉!
우렁찬 기계음이 백골지야의 고요한 계곡을 강타했다. 조악한 불량 석탄과 진흙, 그리고 유황 점토가 만들어 낸 완벽한 물리적 조화였다. 피스톤이 왕복 운동을 시작하자, 그와 연결된 목재 수차가 거세게 회전하며 주변의 한철 주조 틀로 동력을 전달했다.
쿠르릉! 쿠르릉!
대지가 요동쳤다. 기계의 심장이 고동치고 있었다. 무인들이 검기로 산천을 가를 때, 제갈휘는 흙과 기계의 힘으로 대지를 지배하기 시작한 것이다.
"해냈군…… 서자 놈아, 네가 정말로 기적을 만들었어!"
백무결이 환호성을 지르며 제갈휘의 어깨를 쳤다.
그러나 제갈휘의 얼굴은 여전히 차가웠다. 그의 시선은 가마 너머, 백골지야의 가파른 협곡 입구를 향해 고정되어 있었다.
쿵. 쿵. 쿵. 쿵.
기계의 피스톤 소리와는 다른, 불규칙하고 묵직한 진동이 대지를 따라 전해져 왔다.
수십 마리의 군마가 달리는 소리.
철갑을 두른 기병들의 발굽 소리가 백골지야의 임시 수문 장벽 앞까지 당도하고 있었다. 장벽 위에 설치된 풍경이 요란하게 울려댔다.
"이 시간에 누구냐?"
백무결이 쇠망치를 고쳐 잡으며 안색을 굳혔다.
제갈휘는 흙먼지가 자욱한 협곡 입구를 바라보았다. 붉은색 깃발을 치켜든 원로원의 기병대였다. 그들의 선두에는 제갈무창의 직속 집사가 차가운 눈빛으로 채찍을 휘두르고 있었다.
가문의 율법을 집행하는 집사단의 난입이었다. 그들의 손에는 가규 위반과 무단 공방 설립을 치죄하겠다는 적색의 원로원 영령서가 들려 있었다.
완성된 증기 기계의 우렁찬 박동 소리 위로, 가문의 폭압적인 발자국 소리가 겹쳐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