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그럭!
쇠사슬이 바닥을 긁는 파음이 공방의 습한 공기를 찢었다.
청색 장포를 걸친 원로원 집법 집사단 다섯이 무기를 가로지르며 압박해 왔다. 그들의 손에는 시퍼런 철제 포박줄이 쥐어 있었다. 가문 내부의 사법권을 틀어쥔 원로원의 수하들이다.
"가문의 비전술을 도적질하고 사사로이 기계를 부린 죄, 엄벌로 다스려야 마땅하다."
집사장의 목소리는 쇳소리가 섞여 차가웠다.
"서자 휘를 압류 사형장으로 강제 압송하라!"
제갈형이 그 뒤에서 잔인한 미소를 지었다. 검 끝이 제갈휘의 목을 겨누고 있었다.
압력 보일러의 균열은 깊어졌다. 쩌적, 소리가 울릴 때마다 붉은 경고등이 제갈휘의 망막을 때렸다.
[압력 보일러 내부 응력: 142%] [폭발 잔여 시간: 8초]
뇌가 타들어 가는 연산을 시작했다. 제갈휘는 피가 배어 나오는 입술을 깨물었다. 수압을 낮추면 원로원의 검에 목이 날아갈 것이요, 이대로 버티면 가마가 터져 형체도 없이 사라질 터였다.
"잔머리를 굴리는구나, 서자 놈이."
제갈형의 눈에 독기가 올랐다. 그는 율법의 허점을 찔린 수치심을 살의로 덮으려 했다.
"법은 멀고, 검은 가깝다. 여기서 너를 죽이고 사고사로 위장하면 그만이다."
"과연 그렇겠습니까."
제갈휘가 밸브를 잡은 손을 놓지 않았다. 오히려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질리도록 움켜쥐며 집사들을 노려보았다.
"대명률(大明律) 호율(戶律) 전택(田宅) 조항을 아는가."
낭랑한 목소리가 폭발 직전의 증기 가마 소음을 뚫었다.
집사들의 발걸음이 멈칫했다. 포박줄을 던지려던 손길들이 허공에서 굳었다.
"무슨 헛소리냐!"
제갈형이 소리쳤다. 제갈휘는 품에서 미리 준비해 둔 법전 사본을 꺼내 바닥에 던졌다.
"명나라 국법은 명시하고 있다. 천하의 황지(荒地) 중 주인이 없는 버려진 땅을 스스로 개간하는 자는 3년간 전세를 면제하며, 개간한 자에게 영구히 그 점유권을 귀속시킨다. 사천성 포정사(布政司)의 직인이 찍힌 공문이다. 가규가 지엄한들, 명나라 황권의 법률 위에 설 수 있는가?"
집사장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명나라 황실은 무림 세력의 사법권 남용을 극도로 경계하고 있었다. 만약 세가 내부의 가규를 핑계로 합법적인 토지 개간업자를 사사로이 처형했다는 상소가 올라간다면, 가문 전체가 반역이나 불법 사형 집행으로 엮여 황실 세무 관료들의 표적이 될 터였다.
"이곳은 가문의 영지다!"
제갈형이 검을 떨며 외쳤다.
"이 땅은 가문이 방치한 백골지야(白骨地野)의 초입이다. 가풍을 수호한다는 핑계로 국법을 참칭하여 나를 죽인다면, 당장 내일 아침 사천 관아에 이 공문과 함께 원로원의 악행이 고발될 것이다. 내가 미리 안배해 둔 서찰이 관아로 향하고 있으니까."
제갈휘의 목소리에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철저히 손익을 계산하고, 목숨을 담보로 판을 흔드는 괴물의 형상이었다.
"이, 이놈이……!"
집사장이 이빨을 갈았다. 검을 쥔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법률이라는 정교한 궤변의 칼날이 그들의 목을 겨누고 있었다.
그때였다.
"그쯤 해 두거라."
공방 입구의 어둠을 가르고 차가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비단 장포를 단정히 차려입은 여인, 제갈설명이었다. 그녀는 가식적인 친애보다 실질적인 수입과 손익을 최우선시하는 철저한 계산형 수용가였다. 그녀의 등장에 집사들이 길을 열었다.
"설명 누님!"
제갈형이 반색하며 소리쳤으나, 제갈설명은 그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녀의 시선은 오직 제갈휘와 그 뒤에서 굉음을 내뿜는 기계 장치에 머물러 있었다.
"서자 휘야. 네가 가문의 재정을 뒤흔들 국법의 약점을 쥐고 흔드는구나."
제갈설명이 가볍게 실소를 흘렸다.
"하지만 이 기계가 터지면 네 목숨도 없다. 나와 거래를 하겠느냐, 아니면 여기서 한 줌의 재로 사라지겠느냐."
제갈휘는 밸브의 압력 수치를 실시간으로 읽었다.
[압력 보일러 내부 응력: 148%] [폭발 잔여 시간: 3초]
"거래를 제안하지."
제갈휘가 레버를 반대 방향으로 꺾었다.
치이이이익!
고압의 증기가 배출구를 통해 허공으로 뿜어져 나왔다. 뜨거운 안개가 공방을 가득 채웠다. 집사들이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섰다. 압력 게이지가 급격히 하강하기 시작했다.
"나는 가문의 재정에 조금도 관심이 없다. 내가 원하는 것은 오직 하나."
제갈휘가 안개 속에서 걸어 나왔다. 그의 눈빛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백골지야(白骨地野). 그 버려진 땅의 소유권을 내게 완전히 넘겨라. 가문은 그 땅에서 나오는 모든 세금과 관리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다. 대신, 내가 그곳에서 생산할 마도 기계의 이익 중 일부를 가문의 재정에 보태 주지."
제갈설명의 눈이 가늘어졌다.
"백골지야라... 그곳은 쓸모없는 광물 쓰레기와 메마른 흙만 가득한 죽음의 땅이다. 가문에서도 매년 전세만 축내는 골칫덩이지. 네가 그곳으로 가겠다고?"
"그렇다. 나를 그곳으로 유배 보내라. 그것이 원로원의 체면을 살리고, 가문의 재정을 보존하며, 나를 합법적으로 쫓아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제갈설명은 손가락으로 가볍게 턱을 톡톡 두드렸다. 머릿속의 주판알이 미친 듯이 굴러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원로원의 입장에서는 눈엣가시 같은 서자를 합법적으로 변방에 유배 보내는 격이었고, 재정을 담당하는 자신으로서는 골칫덩이 영토를 처분하면서 동시에 새로운 수익원을 확보할 기회였다.
"형님."
제갈설명이 제갈형을 바라보았다.
"이 자를 여기서 죽여 관아와 마찰을 빚는 것보다, 백골지야로 유배 보내 가규의 엄정함을 보이는 것이 원로원의 뜻에도 부합합니다. 안 그렇습니까?"
제갈형은 분노로 얼굴이 붉게 물들었으나, 제갈설명의 논리를 반박할 말을 찾지 못했다. 집사장 역시 포박줄을 거두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원로원에 보고하여 서자 휘를 백골지야로 유배 조치하겠다. 단, 그곳에서 발생하는 모든 일은 네 스스로 책임져야 할 것이다."
제갈휘는 속으로 냉소했다.
인간의 관계란 결국 손익계산서의 합치에 불과하다. 호의나 신뢰 따위는 물리적 법칙만큼이나 불확실한 신기루일 뿐이다.
***
사흘 뒤.
사천성의 변방, 백골지야(白骨地野).
험준한 산세 사이에 위치한 그곳은 이름 그대로 백골처럼 하얗게 마른 흙과 거친 암석만이 가득한 황량한 대지였다. 가파른 계곡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은 살을 에일 듯 차가웠고, 지열 분출구에서는 매캐한 유황 냄새가 끊임없이 피어올랐다.
그러나 제갈휘의 눈에 이 땅은 버려진 지옥이 아니었다.
무한한 지열과 풍부한 한철 광맥, 그리고 외부의 간섭을 완벽히 차단할 수 있는 천혜의 요새. 자신만의 마도 기술 독립지를 건설하기에 이보다 더 완벽한 장소는 없었다.
"정말 이런 썩은 땅에서 기계를 만들겠다는 거냐?"
등 뒤에서 굵직한 목소리가 들렸다.
백무결이었다. 우직하고 다혈질적인 대장장이인 그는 제갈휘가 싣고 온 조악한 기계 부품들을 보며 혀를 차고 있었다.
"이곳의 한철은 불순물이 너무 많아. 가마에 넣고 구워봐야 쓸 만한 쇠가 나오지 않는다니까? 열을 받으면 금방 깨져 버린단 말이다."
"그것은 기존의 야철 방식으로 다루었기 때문입니다."
제갈휘가 주철제 시범 가마의 하부 밸브를 조절하며 대답했다.
"한철의 열팽창율과 내구 한계를 계산하면, 불순물을 완전히 제거하지 않고도 강도를 유지할 방법이 있습니다. 시스템의 힘으로 재료의 결함을 보완하는 것입니다."
제갈휘는 시범 가마의 압력을 올리기 시작했다. 지열 분출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고온의 가스를 가마 하부로 유입시키는 구조였다.
치이이이이!
가마가 진동하며 열기를 뿜어냈다.
제갈휘는 가마 옆에 설치된 유황 침전조를 응시했다. 수조 안에는 지열 분출구에서 끌어올린 유황수와 광산에서 나온 한철 가루가 뒤섞여 있었다.
'만물성리분개(萬物性理分解).'
비전술을 발동하는 순간, 제갈휘의 시야가 급격히 변했다.
세상의 색이 바래고, 오직 물질의 분자 구조와 내재된 결함, 수치적 한계만이 붉은색 선과 숫자로 드러났다. 유황수 속에서 소용돌이치는 한철 가루의 미세한 입자들이 확대되어 보였다.
"아윽...!"
극심한 두통이 뇌를 찌르고 들어왔다.
두뇌의 초과 연산에 따른 과부하였다. 뇌세포가 타들어 가는 고통과 함께, 머릿속의 기억 한 조각이 모래성처럼 허물어졌다.
'무엇이 사라졌지?'
어린 시절, 어머니가 만들어 주던 따뜻한 수프의 냄새였던가. 누군가와 나누었던 다정한 눈빛이었던가.
기억나지 않았다. 소실된 기억의 공백은 차가운 기계 공식과 원소 기호로 빠르게 대체되었다. 제갈휘는 입가에 흐르는 붉은 피를 훔쳐내며 눈을 부릅떴다. 슬퍼할 시간 따위는 없었다. 감정은 사치다. 오직 생존과 독립만이 유일한 공식이었다.
그의 눈에 기이한 물리 현상이 포착되었다.
유황 침전조 속에서, 유황 성분과 한철 가루가 이질적으로 결합하기 시작했다. 단순한 혼합이 아니었다. 특정 온도와 압력 조건하에서, 유황의 황 성분이 한철 표면의 불순물과 반응하여 단단한 회색의 석화(石化) 물질을 형성하고 있었다.
[물질 분석: 유황-한철 화합물] [성질: 수분 및 산성 물질에 대한 극도의 차단성 보유] [결합 밀도: 상(上)]
"이것은……."
제갈휘는 펜을 들어 양피지에 이 신이한 현상을 정밀하게 기록했다.
유황과 한철 가루가 결합하여 석화되는 이 독특한 현상은, 기계 장치의 고질적인 문제인 수분 침투와 부식을 막아줄 훌륭한 원료가 될 수 있었다. 비록 지금은 조악한 찌꺼기에 불과해 보이지만, 훗날 한철 가압 기어의 급격한 마모를 막아줄 석회질 수분 차단 필터 기술의 핵심이 될 터였다.
그는 양피지를 접어 품에 넣었다.
"어이, 서자 놈! 기계가 이상하다!"
백무결의 다급한 외침이 고요한 가마터를 흔들었다.
제갈휘가 고개를 돌렸다.
지열 분출구와 연결된 시범 가마의 유황 가압 파이프가 기괴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쿠구구구, 하는 불길한 진동이 대지를 울렸다.
"뭐가 어떻게 된 거지?"
백무결이 쇠망치를 쥔 채 뒤로 물러섰다.
제갈휘의 눈앞에 다시금 붉은 경고등이 점멸했다.
[유황 가압 파이프 내부 압력: 160% 초과] [원인: 한철 파이프 내부의 미세한 결정 응력 불균형으로 인한 국소 과열] [폭발 한계선 도달까지: 15초]
쉬이이이이익!
파이프의 이음새 사이로 시커먼 유황 연기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매캐한 연기가 사방을 가득 채우며 가마터 전체의 시야를 가렸다.
"대피해라, 백 대장! 파이프가 견디지 못한다!"
제갈휘가 소리쳤으나, 이미 제어 레버는 고온으로 가열되어 손을 댈 수조차 없는 상태였다.
철컥, 철컥, 철컥!
압력 게이지의 바늘이 붉은색 한계선을 넘어 파르르 떨렸다. 가마 전체가 폭발하기 직전의 시한폭탄처럼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백골지야의 첫 점화가, 파멸로 이어지기 직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