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독강시(毒疆屍)라 했느냐."

제갈휘의 목소리가 묵직하게 깔렸다. 협곡을 타고 흘러드는 바람에 섞인 유황의 탄내가 한층 걸쭉해졌다.

보고를 마친 척후병은 입가에 거무스름한 핏울음을 물고 쓰러졌다. 그의 호흡기는 이미 독 가스에 노출되어 굳어 가고 있었다. 백골지야를 둘러싼 사천의 산맥들이 거대한 독의 감옥으로 변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참상이었다.

"당천악, 그 미치광이 놈이 결국 일을 저질렀군."

백무결이 이를 갈며 거친 손으로 대망치를 움켜잡았다. 망치의 자루에 밴 굳은살이 뻣뻣하게 긴장했다.

제갈휘는 뒤를 돌아보았다. 바닥에 머리를 꿇고 부르르 떨고 있는 금의위 사신 조필의 목덜미가 보였다. 조필의 손에 쥐여 있던 독점 압수 칙서는 이미 바닥에 떨어져 구겨져 있었다.

"조 대인."

제갈휘가 낮게 읊조렸다. 그의 음성은 쇠사슬을 끄는 것처럼 건조했다.

"대명률(大明律) 예전(禮典) 종묘(宗廟) 조항을 똑똑히 기억하시오. 국가의 대제에 상용되는 자동 가동식 인형 기구는 어떠한 세법과 가압류에서도 면책되는 전례가 있소. 홍무(洪武) 연간에 제정된 법률이오."

조필의 어깨가 크게 들썩였다.

"이…… 이 무쇠 괴물이 어찌 종묘 제례용이란 말이냐!"

"황실의 종묘 사직을 수호하는 제례용 수호 신상(神像)이라 상소하면 그만이오. 황실 비선 세무 사신들과 가문의 관료들이 결탁해 이를 탈취하려 했다는 밀서가 예 있소. 그대들이 사천당문과 결탁해 황실의 제례 기물을 사사로이 유용하려 했다는 죄목이 씌워진다면, 그대의 삼족이 보존되겠소?"

조필의 안색이 흙빛으로 변했다. 제갈휘가 들이민 밀서에는 그가 사천당문으로부터 수수한 뇌물의 궤적과 백골지야 압류 모의가 일목요연하게 적혀 있었다. 황실의 권위를 등에 업고 호가호위하던 사신은 이제 법률의 궤변과 실질적 증좌 앞에 완전히 무릎이 꺾였다.

"살려 주게…… 제갈 공자, 내가 생각이 짧았네. 내, 내 어찌하면 되겠는가?"

"칙서를 태우고, 오늘 본 것은 모두 종묘의 제례 의식을 위한 시험 구동이었다 보고하시오. 그리하면 저 장부는 영원히 어둠 속에 묻힐 것이오."

"그, 그렇게 하겠네! 당장 그리하겠네!"

조필은 기어 다니듯 공방 밖으로 도망쳤다. 가문을 짓누르던 황실의 세무 압박과 원로원의 가압류 획책이 대명률의 허점과 뇌물 장부라는 두 개의 칼날 앞에 완전히 와해된 순간이었다.

그러나 승리의 여운을 즐길 시간은 없었다.

협곡의 입구로부터 검붉은 안개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고 있었다. 당천악이 부리는 독강시 군단의 기운이었다. 공기가 썩어 들어가는 냄새가 공방 안까지 침투했다.

"보급로가 막혔다, 휘(輝)야! 탄석과 유황의 추가 공급이 없으면 저 가마들은 세 시진도 버티지 못하고 식어 버릴 것이다!"

백무결이 땀을 흘리며 소리쳤다.

제갈휘는 묵묵히 연무장 중앙에 우뚝 선 거대한 한철 철갑 기공 기체를 올려다보았다. 무쇠의 등껍질을 두른 장갑 인형. 그것은 아직 미완성이었다. 관절의 비틀림 응력을 견디지 못해 구동 시 연동 기어가 파괴되는 치명적인 결함이 발목을 잡고 있었다.

'시간이 없다.'

제갈휘는 눈을 감았다. 그의 머릿속에서 이성적 연산 장치가 회전을 시작했다.

[만물성리분개(萬物性理分解)를 기동합니다.]

귓가에 이명이 울렸다. 뇌수가 끓어오르는 듯한 극심한 열화가 전신을 덮쳤다.

동시에 머릿속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툭, 하고 끊어져 나갔다. 어린 시절, 누군가와 함께 보았던 붉은 노을의 풍경과 그때 느꼈던 따스한 온기의 기억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슬픔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오직 눈앞의 기계 도면만이 극도로 선명해질 뿐이었다.

'소실된 기억의 대가는 충분하다. 이제 해답을 내놓아라.'

제갈휘의 안광이 푸르게 빛났다. 만물성리분개의 안목이 한철 철갑의 관절 부위를 투시했다.

백무결이 이전에 제공했던 한철 가공 샘플의 미세한 결정 구조가 뇌리에 입체적으로 떠올랐다. 그 샘플의 단면에는 미세한 결정 응력의 균열 패턴이 붕괴성 흉터처럼 흐르고 있었다. 보통의 대장장이들이라면 불량으로 판정하고 버렸을 흠집이었다.

하지만 제갈휘의 계산기는 다르게 움직였다.

'이것은 약점이 아니다.'

물질에 가해지는 외력은 전도 경로를 따라 흐른다. 기어의 회전 오차로 주저앉던 관절의 압력을 역으로 이용하는 것이다. 미세한 균열 패턴이 존재하는 경로를 따라 강제적으로 응력을 방출할 수 있는 미세한 홈을 파낸다면, 비틀림 응력은 한곳에 고이지 않고 외부로 발산된다.

이것은 열역학적 압력 분산의 원리다. 쇠가 받는 피로 한계를 인위적인 미세 홈으로 유도하여 파괴 현상을 지연시키는 기술이다.

"무결 형님, 정과 망치를 잡으시오."

제갈휘가 차갑게 지시했다.

"무슨 소리냐? 이 다급한 판국에 조각이라도 하겠다는 말이냐!"

"관절 가림새의 홈을 따라 0.3푼 깊이로 미세한 한천 분사 홈을 파내야 하오. 그 흐름이 쇠 내부의 균열 패턴과 완벽히 일치해야 하오. 내가 짚어 주는 곳을 성형(成形)하시오."

백무결은 군말 없이 망치를 쥐었다. 무인들의 고정관념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지시였다. 전설 속 고대의 명검에 존재하던 약점 기포와 균열을 오히려 비틀림 응력을 제어하는 완충 홈으로 전용하는 역발상. 그것은 오직 제갈휘만이 설계할 수 있는 지식의 영역이었다.

깡! 깡! 깡!

백무결의 정밀한 망치질이 한철 관절 표면을 때렸다. 제갈휘가 지시한 미세한 유로(流路)가 관절 가림새 홈에 가공 절삭되기 시작했다. 한 치의 오차도 허용되지 않는 극도의 정밀 작업이었다.

그와 동시에 제갈휘는 수조 내부의 화학적 결함을 해결하기 위해 움직였다.

백골지야의 수조에서는 고열의 증기와 유황, 그리고 미세한 한철 가루가 이질적으로 결합하여 단단한 회백색 석화(石化) 현상을 일으키고 있었다. 이 석회질 침전물이 가압 실린더와 기어의 틈새를 막아 구동을 중단시키던 골칫거리였다.

"유황의 산성 성분과 한철의 철 이온이 수중에서 결합하며 황산칼슘과 유사한 결정성 석화 물질을 형성하는 것이다. 이를 차단하려면 흐름의 길목을 막아야 한다."

제갈휘는 수조의 인입구에 황석(석회질)과 다공성 탄석을 결합한 특수 수분 차단 필터를 강제로 끼워 넣었다.

이 필터는 유황 성분의 산도를 중화시키고 한철 가루의 미세 입자를 사전에 걸러내는 역할을 수행한다. 화학적 침전 반응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토법(土法) 정화 장치였다.

"필터 장착 완료. 기압 댐퍼를 복구한다."

제갈휘가 레버를 강하게 당겼다.

치이이이익!

수밀하게 밀폐된 기압 댐퍼가 고압의 증기를 빨아들이며 단단히 맞물렸다. 황석 필터를 거친 깨끗한 증기가 막힘없이 실린더를 밀어붙였다.

쿠구구구구!

무거운 철갑 기공 기체의 관절이 마침내 움직이기 시작했다. 미세한 한천 분사 홈을 통해 비틀림 응력이 분산되는 소리가 기분 좋은 금속성 공명음으로 울려 퍼졌다. 고속 회전하는 관절 압력이 해수나 부식성 유황 가스의 마모 없이, 부드럽고 유연한 구동 한계에 완전히 도달한 것이다.

"성공이다……!"

백무결이 땀 범벅이 된 얼굴로 소리쳤다.

그러나 기뻐할 틈도 없이, 공방의 전면 목책이 거대한 충격과 함께 부서져 나갔다.

콰아앙!

먼지 구름 속에서 검푸른 피부를 가진 괴물들이 들이닥쳤다. 당천악이 부리는 독강시들이었다. 그들의 손톱은 푸른 독액으로 물들어 있었고, 입에서는 사람의 폐를 녹여 버릴 유독 가스가 뿜어져 나왔다.

"크아아아!"

독강시들이 괴성을 지르며 제갈휘를 향해 쇄도했다.

"휘야, 뒤는 내가 지킨다! 기갑의 주입구 밸브를 열어라!"

백무결이 대망치를 휘두르며 제갈휘의 등 뒤로 나섰다. 가쁜 숨을 몰아쉬는 그의 눈빛에는 추호의 망설임도 없었다. 그는 뜨거운 증기가 뿜어져 나오는 기갑 주입구의 원석 밸브를 맨손에 가까운 가죽 장갑으로 움켜쥐고 고정 제어했다.

치익! 고열의 증기가 백무결의 팔뚝을 스치며 살가죽을 태웠지만, 그는 이빨을 악물고 밸브를 놓지 않았다.

"어서 시동을 걸어라!"

백무결의 외침이 공방을 울렸다. 그것은 목숨을 건 기계 동맹의 맹세와도 같았다.

제갈휘는 차가운 손길로 제어반의 주 기어 레버를 끝까지 밀어 올렸다.

"철갑 기공 기체, 구동."

웅웅웅웅!

강철의 거인이 대지를 흔들며 일어섰다.

관절의 균열 패턴을 응력 해방 홈으로 전용한 결과는 실로 압도적이었다. 무인들이 고수하던 '완벽한 쇠의 강도'라는 고정관념을 비틀어 버린 지식의 승리였다. 철갑 인형의 움직임에는 거대한 질량에 어울리지 않는 기괴할 정도의 유연함과 속도가 실려 있었다.

쿠웅!

철갑 기공 기체의 거대한 강철 주먹이 대기를 가르며 독강시들의 전면을 내리쳤다.

퍼어억!

독강시 세 마리가 뼈와 살이 으스러지는 소리와 함께 사방으로 飛산했다. 어떠한 외공으로도 파괴할 수 없다던 강시의 육체가, 수만 근의 증기 압력을 실은 한철 주먹 앞에서는 그저 조악한 진흙 인형에 불과했다.

"어찌 저런 속도가……!"

협곡 위쪽에서 전황을 지켜보던 당문의 무인들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 무거운 철갑은 느릴 수밖에 없다는 그들의 상식이 무참히 깨져 나가고 있었다. 고속 회전 관절 압력을 완벽하게 제어한 기갑은 가벼운 표묘보법보다도 빠르게 적의 요해를 타격했다.

철갑 기공 기체는 멈추지 않았다. 강철의 관절들이 한천 분사 홈을 통해 압력을 뿜어내며 한 치의 막힘도 없이 회전했다. 휩쓸리는 독강시들의 시체가 협곡 바닥을 뒹굴었다.

백골지야의 장인들이 그 압도적인 광경을 보며 넋을 잃었다. 법 조문으로 황실을 묶고, 과학의 힘으로 무림의 괴물들을 파쇄하는 제갈휘의 모습은 공포마저 자아냈다.

하지만 제갈휘의 시선은 이미 연무장 너머, 백골지야의 심장부로 향해 있었다.

저 멀리, 붉은색 도포를 입은 신경질적인 사내의 실루엣이 보였다. 사천당문의 천재 암기 제작자이자, 이번 습격의 주동자인 당천악이었다.

당천악의 얼굴은 열등감과 광기로 일그러져 있었다.

"제갈휘……! 네놈의 장난감이 아무리 대단한들, 이 계곡의 심장이 멈추면 끝이다!"

당천악이 비장의 마도 강시 세 마리를 이끌고 우회하여 돌파한 곳은, 다름 아닌 백골지야의 보급 저장고였다. 그곳은 대량의 유황과 석탄이 보관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공방 전체에 고압의 유황 가스를 공급하는 주 배관이 지나는 요해처였다.

"이 배관을 뜯어내면, 이 백골지야 전체가 유황 불바다가 될 것이다! 너와 네 쇠붙이 놈들 모두 잿더미로 만들어 주마!"

당천악의 손이 주 유황 배관의 안전 차단 밸브선으로 뻗어 나갔다. 그의 손가락 끝에 장착된 강철 손톱이 난폭하게 밸브선을 움켜쥐고 뜯어내려는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그 선이 끊어지는 순간, 백골지야는 대폭발과 함께 종말을 고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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