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당천악의 강철 손톱이 주 유황 배관의 안전 차단 밸브선을 움켜쥐었다.

끼이익!

이빨이 시린 마찰음이 협곡의 고요를 찢었다. 당천악의 악력에 밸브선이 터질 듯 팽팽하게 당겨졌다. 그 도포 자락 너머로 누런 유황 연기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배관이 뜯겨 나가면 백골지야 전체가 화염의 수렁에 침몰할 터였다.

그러나 제갈휘의 안광은 미동조차 없었다.

그의 시야가 푸른 연산의 궤적으로 물들었다. 만물성리분개(萬物性理分解)의 권능이 가동되었다. 뇌리를 점령한 수식들이 배관의 내부 압력과 유황 가스의 밀도를 실시간으로 분해했다.

"어리석은지고."

제갈휘가 나직하게 읊조렸다.

탁.

그가 손가락을 튕겼다. 신호였다.

치이이익!

당천악의 손끝이 배관을 찢어발기기 직전, 배관 하단에 설치된 다공성 청동 노즐이 일제히 작동했다. 뿜어져 나온 것은 물이 아니었다. 백골지야의 지하 수조에서 끌어올린 특수 석회수였다.

파지직!

그것은 단순한 분무가 아니었다.

본래 유황 가스는 고온의 철과 접촉하면 급격한 황화 반응을 일으킨다. 과거 제갈휘는 수조 가마에서 유황과 한철 가루가 결합할 때, 특정 산성도에서 회백색의 단단한 석고상으로 변하는 석화(石化) 현상을 포착한 바 있었다.

황산염 이온이 칼슘 성분과 만나 석고 결정을 형성하는 화학적 석화 메커니즘이었다.

콰르르릉!

배관 내부로 분사된 석회수가 누출되려던 유황 가스와 만나는 순간, 가스는 팽창하기도 전에 단단한 석회질 고체로 굳어 버렸다. 당천악이 뜯어낸 배관 단면은 붉은 가스 대신 회백색의 돌덩어리로 꽉 막혀 있었다.

"이, 이게 무슨……!"

당천악의 눈동자가 경악으로 뒤흔들렸다.

가스가 터져 나와 지옥도를 만들어야 할 배관이 한순간에 거대한 석상처럼 굳어 있었다. 기압의 역류조차 없었다. 완벽한 화학적 봉쇄였다.

"내 영지에서 부식과 누출은 용납되지 않는다."

제갈휘의 목소리는 건조했다.

그가 손을 들어 올리자, 연무장 한편에 대기하고 있던 거대한 철갑 기공 기체가 육중한 발걸음을 옮겼다. 쿠웅, 쿠웅, 대지를 울리는 진동이 당천악의 심장을 압박했다.

철갑 기공 기체의 어깨 부위에 장착된 증기 장갑 보루가 회전하기 시작했다.

철커덕!

기어들이 맞물리며 고압의 증기가 배출구를 통해 뿜어졌다. 보루의 포구 끝에 응축된 유황 분쇄 탄환들이 장전되었다.

"쏴라."

제갈휘의 명령과 함께, 포구가 불을 뿜었다.

콰아아아앙!

뇌전이 치는 듯한 굉음이 협곡을 휩쓸었다.

발사된 것은 단순한 쇠구슬이 아니었다. 한철 고철을 초정밀 규격으로 주조한 유황 분쇄 탄환이었다. 탄환의 표면에는 나선형의 홈이 파여 있어, 공기 저항을 뚫고 초속 수백 장의 속도로 회전하며 날아갔다.

퍼어억! 퍼억!

당천악이 거느리던 마도 강시들의 가슴팍에 탄환이 박혔다. 강철과도 같다던 강시의 외공은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했다. 탄환이 박히는 순간, 탄심에 내장되어 있던 고압의 유황 분말이 내부에서 사방으로 비산했다.

콰과광!

강시들의 신체가 안쪽에서부터 터져 나갔다. 뼈와 살가죽이 사방으로 비산하며 독혈이 흩뿌려졌다.

"크아악!"

당천악이 급히 신형을 뒤로 날렸으나, 탄환의 파편이 그의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살점이 타들어 가는 매캐한 냄새가 진동했다.

그뿐이 아니었다.

사방으로 퍼지려던 독강시의 유황 가스는, 백골지야의 가압 진공 환기 장치가 만들어 낸 거대한 흡입력에 가로막혔다. 협곡 도처에 세워진 배기탑들이 거대한 뱀처럼 울부짖으며 가스를 빨아들였다.

쉭, 시이익!

대형 수차의 회전력으로 구동되는 진공 펌프가 공기를 강제로 흡입했다. 흡입된 유황 가스는 배기탑 내부의 석회 필터층을 통과하며 공중에서 완전히 증화(蒸化) 소멸되었다. 독가스로 백골지야를 마비시키려던 당천악의 계책이, 거대한 공학적 환풍 시스템 앞에 무참히 분쇄된 것이다.

"말도 안 된다……! 무공도 없는 무지몽매한 공인 놈들이 어찌 이런 힘을……!"

당천악이 피가 섞인 침을 뱉으며 울부짖었다.

그의 오만한 자존심이 철저히 짓밟히고 있었다. 내공의 깊이도, 가문의 비전도 없는 쇳덩이와 바람의 흐름에 자신의 비술이 이토록 무력하게 깨질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하지만 제갈휘는 당천악의 절규를 들을 여유가 없었다.

두두둥!

머릿속에서 거대한 종소리가 울리는 듯한 격통이 일었다. 만물성리분개를 연달아 전개한 대가였다. 뇌 세포가 급격히 연소하며 과부하를 일으키고 있었다.

스스스스…….

기억의 도서관에서 책장 하나가 불타올랐다.

그것은 현대의 기억이었다.

빛바랜 대학교 졸업식 날의 풍경. 학사모를 던지며 환하게 웃던 동기들의 얼굴, 양손에 가득 들려 있던 붉은 장미꽃의 향기, 그리고 자식의 졸업장을 보며 눈시울을 붉히던 어머니의 거친 손길. 그 따스했던 감정의 파편들이 차가운 재가 되어 흩어졌다.

가슴 한구석이 서늘하게 비어 갔다.

무언가 소중한 것을 잃었다는 자각은 있었으나, 그것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떠오르지 않았다. 슬픔조차 거세된 뇌는 그 빈자리를 차가운 공학적 연산 수치로 신속하게 메워 나갔다.

'기억의 손실율 3.2%. 연산 효율 1.8% 상승.'

제갈휘는 핏기가 가신 입술을 조용히 깨물었다. 가슴 시린 상실감은 이내 무덤덤한 공학적 희열로 대체되었다. 감정 따위는 이 영지를 완성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직 오차 없는 법칙만이 자신을 지켜줄 뿐이었다.

터벅. 터벅.

제갈휘가 앞으로 걸어 나갔다.

철갑 기공 기체가 그의 뒤를 호위하듯 거대한 그림자를 드리웠다. 기체의 관절 부위에서 치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한천(寒天) 가스가 분사되었다.

그것은 백무결이 발견했던 한철의 미세한 결정 응력 균열을 해결하기 위한 장치였다.

쇠가 지속적인 마찰과 비틀림을 받으면 내부의 결정 격자가 붕괴하며 미세 균열(Micro-crack)이 자라난다. 제갈휘는 관절의 응력이 집중되는 부위에 미세한 강제 응력 해방 홈을 파고, 회전할 때마다 차가운 기체를 분사해 마찰열을 극도로 낮추었다.

열팽창으로 인한 관절부의 걸림 현상을 강제로 제어하는, 이른바 응력 완화 냉각 시스템이었다.

이 기술 덕분에 철갑 인형은 수만 번의 구동에도 삐걱거림 없이 유연하고 기괴한 속도로 움직일 수 있었다.

"제, 제갈 공자……."

협곡 입구를 봉쇄하고 있던 제갈세가 원로원의 사병들이 주춤주춤 뒤로 물러섰다.

그들의 손에 들린 검이 사정없이 떨렸다. 가문의 법을 집행한다는 명분으로 기세등등하게 쳐들어왔던 그들이었다. 하지만 눈앞에 펼쳐진 것은 인간의 무공을 초월한 강철의 군대였다.

스르릉.

사병들의 대장이었던 제갈태가 검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그의 얼굴은 공포로 하얗게 질려 있었다. 원로원의 명의로 발행된 가압류 서장은 이미 물에 젖은 종이쪼가리에 불과했다. 무력의 압도적인 격차 앞에서는 그 어떤 명분도 통하지 않았다.

"우, 우리는 그저 원로원의 명을 따랐을 뿐입니다……!"

제갈태가 무릎을 꿇었다.

그 뒤를 이어 수십 명의 원로원 사병들이 일제히 무기를 버리고 바닥 복판에 엎드렸다. 흙먼지가 그들의 머리 위로 내려앉았다.

"살려 주십시오! 공자! 저희는 가문의 종복일 뿐입니다!"

제갈태가 품속에서 가죽으로 장정된 장부를 꺼내 양손으로 받쳐 들었다.

"이것은…… 이번 출정에 동원된 사병들과 원로원 직속 무인들의 연명부(聯名簿)입니다. 원로원의 명줄이나 다름없는 문서입니다. 이것을 바치겠으니, 제발 노여움을 거두어 주십시오!"

제갈휘의 시선이 그 장부로 향했다.

그것은 단순한 명부가 아니었다. 원로원의 가신들이 비밀리에 사병을 조직했음을 증명하는 역모의 증거이자, 백골지야가 가문의 사법권을 장악할 수 있는 거대한 권력의 열쇠였다.

제갈휘가 손을 뻗어 장부를 거두었다.

"원로원의 종법(宗法)이라."

제갈휘가 장부를 가볍게 털며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내 내공도 없는 서자라 하여 가규로 옭아매려 했더냐. 하지만 대명률(大明律) 상, 너희의 법 집행은 원천 무효다."

"예, 예?"

제갈태가 조아리던 머리를 조심스럽게 들었다.

제갈휘는 소매 안에서 누렇게 바랜 율법 서류 한 장을 꺼내 들었다. 그것은 대명률 예율(禮律) 중, 종묘 제례에 관한 예외 조항이었다.

"대명률 제이백사십조, 종묘의 제례와 황실의 위엄을 돋우기 위한 자동 가동식 인형 기구(自動禮器)는 그 제조와 보관에 있어 일체의 세금을 면제하며, 가문의 사법권이나 지방 관청의 간섭을 받지 아니한다."

제갈휘의 목소리가 협곡에 울려 퍼졌다.

"내가 제작한 이 철갑 기공 기체는 단순한 무기가 아니다. 황실의 제례와 의장을 위해 설계된 천공의 기구다. 이미 사천 관청을 통해 황실 예부(禮部)에 헌납 청원서를 제출해 두었다. 즉, 이 기체들은 대명 황실의 보호를 받는 물건이다."

"그, 그럴 리가……!"

당천악이 바닥을 기며 외쳤다.

"이 살인 병기가 어찌 제례용 기구란 말이냐! 뻔뻔한 궤변이다!"

"법 조문이 그리 규정하고 있다."

제갈휘가 차갑게 대꾸했다.

"규격화된 크기와 의장용 도색, 그리고 내공을 사용하지 않는 순수한 기계 장치. 황실의 율법학자들은 이 기체를 '움직이는 동상'으로 분류할 뿐이다. 법이란 본래 문자의 틈새를 찾아내는 자의 것이다. 너희 무인들이 검날을 갈고 있을 때, 나는 법의 칼날을 갈았다."

원로원이 들이밀었던 '불법 무기 제조'라는 올가미는 대명률의 거대한 면책 특권 앞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오히려 가문의 사법권을 남용해 황실의 제례 기구를 압류하려 한 원로원이 역풍을 맞게 된 꼴이었다.

완벽한 법리적, 물리적 파멸이었다.

"공자…… 제발 가문의 정을 생각하시어……."

제갈태가 눈물을 흘리며 애원했다.

"정(情)이라."

제갈휘가 그 단어를 나직하게 읊조렸다.

그의 머릿속 연산 장치에는 존재하지 않는 단어였다. 손익계산서의 수치만이 명확할 뿐이었다.

"너희의 목숨 값은 이 충성 명부와 백골지야의 노역 삼 년으로 대치하겠다. 억울하다면 원로원의 노인네들을 원망해라."

제갈휘의 선언에 사병들은 절망하면서도 목숨을 건졌다는 안도감에 머리를 조아렸다. 백골지야의 장인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무쇠와 증기의 요새가 거둔 완벽한 승리였다.

그때, 제갈설명이 어둠 속에서 조용히 걸어 나왔다. 그녀의 손에는 붉은 밀랍으로 봉인된 서신 한 장이 들려 있었다.

"공자, 일이 그리 간단히 끝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제갈설명의 목소리에는 평소의 냉정함 속에 미세한 긴장이 섞여 있었다.

"황실 비선 세무 감찰 사신 조필이 원로원과 결탁한 밀서를 입수했습니다. 황실에서 백골지야의 기술력을 탐내어, 아예 역모의 누명을 씌워 가문 전체를 압류하려는 움직임이 포착되었습니다."

제갈휘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9화에서 심어두었던 황실 관료들의 금전 압류 모의가 드디어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었다.

그 순간, 박살 난 마도 강시들의 잔해 더미 속에서 당천악이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그의 입가에서 검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미친 듯한 웃음소리가 그의 깨진 이빨 사이로 새어 나왔다.

"흐흐흐…… 하하하핫! 제갈휘! 네놈이 아무리 기묘한 쇠붙이를 만들고 율법을 주물러 댄들 무슨 소용이냐!"

당천악의 눈에 광기가 서렸다. 그는 붉은 도포를 찢어발기며 제갈휘를 향해 가늘고 긴 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어차피 네놈은 대명 황실의 세금 압류 칙령서 한 장이면 역적 가문으로 사지가 찢길 것이다! 황실의 탐욕이 이 계곡을 들이치는 순간, 네놈의 그 오만한 쇳덩이들은 전부 황실의 사냥개가 되어 네놈의 목을 물어뜯을 터! 두고 보아라! 멀지 않았다!"

당천악의 저주 섞인 외침이 백골지야의 험준한 협곡 사이를 사납게 메아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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