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산의 영봉 위로 먹구름이 낮게 내리깔립니다. 불어오는 칼바람에는 피비린내 섞인 살기가 서려 있고, 산문 아래편으로부터는 대지를 흔드는 수천 마리의 말발굽 소리가 진동합니다. 마침내 사도련(邪道聯)의 본대가 화산의 턱밑까지 다다른 것입니다. 그 선두에 선 자는 사도련의 좌호법, 독안귀(獨眼鬼) 갈평입니다. 그가 이끄는 수천의 검은 무리가 화산의 기슭을 시커멓게 뒤덮으며 조여옵니다.
올려다보는 적들의 기세는 하늘을 찌를 듯 흉포합니다. 저들에게 화산파는 그저 과거의 전유물이며, 이 고요한 영산은 피로 씻겨 나갈 무덤에 불과할 터였습니다.
당신은 묵묵히 청강검을 뽑아 듭니다. 검신을 타고 흐르는 찬연한 검기가 무형의 바람이 되어 사방으로 휘몰아치자, 소란스럽던 산문 앞이 일순 정적에 잠깁니다. 당신의 등 뒤에 서 있는 사제들의 눈빛에는 더 이상 과거의 비겁하고 두려운 기색이 없습니다. 오직 장문인 대행인 당신을 향한 절대적인 신뢰와, 문파를 다시 세우겠다는 결연한 의지만이 불타고 있을 뿐입니다.
"검을 세워라."
당신의 나직한 음성이 뇌뢰처럼 사제들의 이성을 깨웁니다.
"화산의 매화는 한풍(寒風) 속에서 피어날 때 비로소 가장 붉은 법이다."
사제들이 일제히 검을 떨치며 자리를 잡습니다. 수십 명의 발걸음 소리가 약속된 악보처럼 완벽히 하나로 뭉치고, 푸른 검강이 서로의 호흡을 타고 장엄하게 연결됩니다. 화산파 역사상 가장 치명적이면서도 아름답다고 칭송받는 전설의 진법, 바로 매화검진(梅花劍陣)이 마침내 그 완벽한 모습을 세상에 드러내는 순간입니다.
"화산의 잔당 놈들이 장난질을 치는구나! 모두 쓸어버려라!"
갈평의 잔인한 표효와 함께 사도련의 선봉대가 도를 치켜들고 폭포처럼 쏟아져 내립니다. 기세등등하게 아군을 삼키려 드는 일촉즉발(一觸卽發)의 순간.
"진(陣)을 가동하라!"
당신의 불호령과 함께 매화검진이 생명력을 얻어 살아서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검진의 구동은 번개와 같이 빠르고 군더더기가 없습니다. 사제들의 신형이 정교한 톱니바퀴처럼 교차하며 끊임없는 검풍을 일으킵니다. 사파 무인들의 흉도(凶刀)가 내려치면 좌측의 사제가 이를 받아내고, 찰나의 반탄력을 이용해 우측의 사제가 적의 가슴을 꿰뚫습니다.
번잡한 초식은 배제되었습니다. 다만 찌르고, 빗겨 내고, 베어 넘기는 본질적인 궤적만이 존재할 뿐입니다. 단 한 호흡에 적의 목숨을 앗아가는 매서운 검선(劍線)들이 사방으로 사선을 그리며 뻗어 나갑니다. 하늘 가득 흩날리는 붉은 영기(靈氣)는 흡사 만개한 혈매화(血梅花)가 낙화하는 양 장엄한 풍경을 자아냅니다.
"이, 이것이 정녕 화산의 검진이란 말이냐!"
철옹성 같은 매화검진의 기세 앞에서 사도련의 선봉 수백 명이 추풍낙엽처럼 쓰러져 갑니다. 갈평의 외눈에 난생처음으로 깊은 경악과 공포가 서립니다.
화산의 명운을 건 건곤일척(乾坤一擲)의 결전. 매화검진으로 적들의 기세를 한 차례 꺾었으나, 적의 본대는 여전히 살아 움직이며 아군의 수십 배에 달하는 숫자로 압박해 들어옵니다.
적들의 지휘부로 직접 쇄도하여 좌호법 갈평의 목을 베어 단숨에 전쟁을 끝낼 것인가, 아니면 진법의 영격을 유지하며 사제들의 피해를 원천 차단하고 사도련의 본대를 천천히 무너뜨릴 것인가.
칼바람이 당신의 도포 자락을 세차게 매질하고, 당신의 청강검 끝이 서늘한 광망을 뿜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