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화산의 매화는 혹독한 한설(寒雪) 속에서 더욱 붉게 피어난다고 했던가.

허물어진 대조사의 청석 바닥 위에 하나둘 사람들이 모여든다. 영락한 문파의 이름을 가슴에 묻고 초야에 숨어 살던 화산의 옛 무인들, 그리고 당신의 등 뒤에서 겨우 목숨을 보전한 어린 사제들이다. 그들의 행색은 남루하고 몸 곳곳에는 사파의 고문에 닳고 진 흉터가 가득하다. 그러나 당신을 바라보는 그들의 눈빛만큼은 밤하늘의 성화(聖火)처럼 뜨겁게 타오른다.

"대사형…… 정말 대사형이 돌아오신 것입니까?"

장문인의 빈 자리를 지키던 백발의 이대제자가 무릎을 꿇으며 눈물을 흘린다. 그의 거친 손이 당신의 소맷자락을 붙잡는다.

당신은 묵묵히 그 손을 맞잡아 일으켜 세운다. 가슴 밑바닥에서 뜨거운 열기가 치밀어 오른다. 과거 사도련의 발굽 아래 철저히 짓밟혔던 낙목(落木)의 동산에, 마침내 새로운 움이 돋아나고 있는 것이다. 화산이 강호로 다시 나아가 노도와 같이 몰아칠 권토중래(捲土重來)의 서막이 바로 지금 당신의 발끝에서 시작된다.

하나, 하늘은 화산의 완전한 부활을 그리 쉽게 허락할 생각이 없는 듯하다.

"대사형! 큰일이옵니다!"

숨을 헐떡이며 본산으로 뛰어 들어온 전포(戰袍) 차림의 사제가 바닥에 엎어진다. 그의 전신은 피와 흙먼지로 뒤범벅이 되어 있다.

"사도련의 대부대가…… 화산의 초입인 화음현(華陰縣)을 지나 본산을 향해 진격하고 있습니다! 그 수가 어림잡아 수백을 헤아립니다!"

장내에 찬물이 끼얹어지듯 무거운 침묵이 가라앉는다. 이제 막 숨통이 트인 화산의 싹을 아예 뿌리째 뽑아 버리겠다는 사도련의 잔혹한 의지리라. 현재 화산에 모여든 인원은 오십여 명 남짓, 그나마 태반은 부상자이거나 아직 검조차 제대로 쥐지 못하는 어린아이들이다. 그야말로 바람 앞의 등불, 풍전등화(風前燈火)의 형국이나 다름없다.

"부끄럽게도 소제들이 사형의 짐이 되는구려."

이대제자가 떨리는 손으로 검자루를 쥐며 참담하게 읊조린다.

당신은 검을 굳게 쥐며 종남산 너머로 붉게 타오르는 석양을 바라본다. 서풍을 타고 피비린내가 은은하게 풍겨온다. 적들의 진격 속도로 보아 지척에 가닿기까지 남은 시간은 단 반나절뿐.

아직 여물지 않은 매화의 새싹들을 무자비한 삭풍으로부터 지켜내야 한다. 화산의 존망이 다시금 당신의 양어깨에 묵직하게 내려앉는다. 이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당신의 뇌리에 두 갈래의 계책이 스쳐 지나간다. 검자루를 쥔 당신의 손끝에 팽팽한 긴장감이 감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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