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핏자국을 쫓아 당도한 곳은 산의 허리를 깊게 도려낸 듯한 음습한 동굴이다. 입구를 가린 마른 덩굴을 걷어내자, 퀴퀴한 곰팡내와 함께 지독한 피비린내가 코끝을 찌른다.

어둠 속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당신은 조용히 내력을 운기하며 동굴 안쪽으로 시선을 던진다. 그곳에는 땟구정물 흐르는 전포를 뒤집어쓴 채, 서로의 체온에 의지해 떨고 있는 어린 아이들이 있다. 구사일생(九死一生)으로 살아남은 화산의 마지막 불씨들이다.

"누... 누구냐!"

한 아이가 부러진 목검을 치켜들며 앞을 가로막는다. 사시나무 떨리듯 떨리는 손끝에서도 눈빛만큼은 꺾이지 않았다. 화산의 기개다. 당신은 서서히 무릎을 꿇으며 눈높이를 맞춘다. 허리에 찬 매화검의 검날을 반쯤 드러내며 나직이 속삭인다.

"두려워 마라. 내가 늦었다."

매화 향이 동굴 안의 비린내를 가신다. 검신에 새겨진 화산의 문양을 본 아이들의 눈에 눈물이 고인다. 스승의 사후, 천지를 떠돌던 대사형이 살아서 돌아온 현장이다. 그러나 해후의 비장함을 나눌 시간 따윈 사치에 불과하다.

동굴 바깥, 숲을 거칠게 헤치는 발소리와 횃불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기 시작한다. 적들의 추격대다.

"이 근방이다! 쥐새끼들의 피비린내가 진동을 하는구나!" "화산의 싹을 완전히 잘라버려라! 한 놈도 살려두지 마라!"

사파 무뢰배들의 천박한 조소가 계곡을 뒤흔든다. 횃불의 붉은빛이 동굴 입구로 시시각각 조여 오는 일촉즉발(一觸即發)의 위기. 아이들의 눈동자에 다시금 깊은 공포가 서린다.

당신은 검을 쥔다. 손끝에서부터 기연으로 얻은 자하기공(紫霞氣功)이 발현된다. 자색의 진기가 검신을 타고 흐르며 차가운 쇳소리를 낸다. 검명이 어두운 동굴을 나직하게 울린다.

마침내 동굴 입구의 덩굴이 거칠게 찢겨 나가며, 도(刀)를 치켜든 사파의 도도(刀徒)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들의 이빨이 흉측하게 드러난다.

뒤편에는 상처 입고 굶주린 채 숨을 헐떡이는 어린 사제들이 있고, 앞에는 살기를 뿜어내며 목을 죄어오는 사파의 무리가 가로막고 있다. 검을 뽑아 저들의 목을 치는 것은 어렵지 않으나, 난전 중에 아이들의 목숨을 온전히 보존할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

바람이 거세게 불어와 동굴 안으로 들이친다. 당신의 뇌리에서 두 갈래의 갈등이 번개처럼 스쳐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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