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놈은 또 어떤 놈이냐? 화산의 잔당인가?"
더러운 가죽옷을 걸친 사내 하나가 이빨을 드러내며 비웃는다. 그들의 발아래에는 무참히 헤집어진 사부의 가묘가 처참하게 흩어져 있다. 분노가 가슴 깊은 곳에서 치밀어 올라 단전을 뜨겁게 달군다. 황량한 침묵 속에서 당신은 서서히 허리춤의 검을 뽑아 든다.
스릉.
매화검의 차가운 철음이 산야를 가른다. 찰나의 순간, 당신의 신형이 흐려진다.
"무, 무슨...!"
비웃던 사내의 눈동자가 경악으로 물든다. 그의 목소리가 다 찢어지기도 전에, 청백색의 검광이 허공에 서슬 퍼런 호선을 그렸다.
파앗!
단 한 번의 휘두름이었다. 초식이라 부르기 무색할 정도로 간결하고도 무거운 일격. 은빛 검풍이 거세게 휘몰아치자, 무뢰배들의 신형이 추풍낙엽(秋風落葉)처럼 사방으로 쓸려 나간다.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피를 뿜으며 쓰러지는 자들 속에서, 우두머리로 보이는 사내가 사지를 부르르 떨며 흙바닥을 기었다.
"사, 살려... 살려주시오!"
당신은 피 묻은 검날을 그에게 겨눈다. 무릎을 꿇은 자의 어깨 위로 매화검의 차가운 서기( sword aura )가 닿자, 사내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한다. 살기등등(殺氣騰騰)한 기세가 장내를 압도한다.
"네놈들의 배후는 누구냐."
나직하지만 내력이 실린 목소리가 사내의 고막을 찢을 듯 울린다.
"흑, 흑호채입니다! 저희는 그저 사도련의 하부 조직인 흑호채의 명을 받고 화산의 잔재를 뒤지던 삼류 무뢰배일 뿐입니다! 제발 목숨만은...!"
사도련(邪道聯). 그리고 그 수하의 흑호채(黑虎寨).
그 이름들을 되씹자, 가슴 속에서 타오르던 불길이 빙하처럼 차갑게 식어 어둠으로 응결된다. 사스레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는 황량한 소리만이 장문인의 묘역을 채운다.
사파의 무리들이 감히 화산의 영토를 제 안방처럼 드나들며 가문과 문파의 자존심을 짓밟고 있었다. 이들을 이대로 둔다면 화산의 이름은 정녕 강호에서 영원히 지워질 터였다. 흑호채의 깃발을 찢고 그들의 목을 베어, 화산의 귀환을 차가운 칼날로 선포해야 할 때다.
당신은 검을 거두며 쓰러진 자들을 차갑게 내려다본다. 머릿속에는 이미 다음 행보를 위한 냉철한 계산이 서기 시작한다. 분노는 이성의 칼날을 더욱 날카롭게 벼려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