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검 끝에 품어냈던 서슬 퍼런 살기가 마침내 푸른 청연(靑煙)이 되어 흩어진다.
강호를 피로 물들였던 사파의 거목들이 꺾이고, 무림맹의 위선자들이 제 허물에 무너진 후, 천하는 화산파의 이름 아래 무릎을 꿇을 준비를 마쳤었다. 당신이 손만 뻗었다면 '천하제일문'이라는 장엄한 칭호는 온전히 화산의 차지였을 터였다.
그러나 당신은 그 찬란한 패업의 길 대신, 깊고 깊은 매화골로의 회귀를 택한다.
"대사형, 오늘 사제들의 무맥(武脈)은 아주 바르게 흐르고 있습니다."
어린 사제들의 검술을 지도하던 사제 백현이 이마의 땀을 닦으며 다가와 정중히 포권을 취한다. 한때 사파의 침공 아래 검을 잡는 법조차 잊을 뻔했던 사제들의 얼굴에는 이제 완연한 평화가 깃들어 있다. 당신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연무장 너머로 푸르게 펼쳐진 화산의 능선을 바라본다.
패권은 달콤하나 그 대가는 언제나 피의 세례였다. 당신이 독보적인 무공으로 천하를 호령하려 했다면, 화산은 끊임없는 도전과 암투의 소용돌이 속에서 또다시 누군가의 피를 흘려야 했을 터. 당신은 칼날의 예기를 거두고, 자연의 이치에 순응하는 **화광동천(和光同塵)**의 도를 택한 것이다. 스스로 빛을 늦추어 세상의 티끌과 함께하기를 주저하지 않음으로써, 마침내 문파의 참된 안식과 사제들의 목숨을 지켜내었다.
그것은 나약한 후퇴가 아닌, 대종사(大宗師)의 풍모를 지닌 자만이 내릴 수 있는 위대한 결단이다.
스승의 묘비 앞에 바치는 맑은 청주 한 잔. 잔 위에 어린 분홍빛 매화 꽃잎이 조용히 흔들린다.
"사부님, 화산의 매화는 이제 결코 지지 않을 것입니다."
당신의 나지막한 읊조림이 바람에 실려 계곡 사방으로 퍼져나간다.
비록 강호의 호사들은 화산이 천하제일의 자리를 스스로 버렸다며 아쉬워할지 모른다. 하지만 당신은 알고 있다. 진정한 검도의 진리는 거창한 이름이나 피조물 위에 군림하는 오만함에 있지 않음을. 매일 아침 사제들의 무딘 목검이 맞부딪치는 소리, 저물어가는 노을을 등지고 마시는 차 한 잔의 여유 속에 진정한 무(武)의 완성이 있음을 말이다.
골짜기 깊은 곳에서 불어온 청량한 바람이 당신의 옷자락을 흔들고 지나간다. 눈을 감으면, 천하를 뒤흔들던 당신의 이름 '백청우'라는 석 자보다 더 깊고 은은한 매화향이 온 산을 안개처럼 감싸 안는다.
당신은 조용히 미소 지으며 미완의 검을 다시 손에 쥔다. 완성되지 않았기에 끊임없이 나아갈 수 있는 길. 그 참되고 영원한 검의 길을 향해, 당신은 다시금 발걸음을 옮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