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창턱에 놓아둔 말린 라벤더 주머니에서 아련하고 포근한 향이 배어 나오는 밤입니다. 방 안의 공기는 한없이 부드럽고 따스하지만, 그 온기 아래에는 아주 가늘고 위태로운 실금이 가 있습니다.

불안했던 폭우가 지나간 자리, 당신은 곁에 누운 서하의 고른 숨소리를 들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긴장감이 풀린 탓일까요. 당신의 눈꺼풀이 서서히 무거워집니다. 하지만 깊은 잠에 빠져들기 직전, 반쯤 풀린 의식의 틈새로 미세한 부스럭거림이 감각을 깨웁니다.

서하가 자리에서 조용히 몸을 일으켰습니다.

당신은 눈을 뜨지 않은 채, 규칙적인 호흡을 가장하며 가만히 귀를 기울입니다. 어둠 속에서 조심스럽게 살을 맞부딪치는 소리, 그리고 이내 당신의 얼굴 위로 떨어지는 시선이 느껴집니다. 그 시선은 방안을 채운 라벤더 향보다 더욱 짙고, 겨울철 눈 속에서 힘겹게 고개를 내민 설강화의 연약한 잎사귀처럼 바르르 떨리고 있습니다.

서하는 가만히 당신을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어둠 속에서도 그녀의 눈동자가 슬프게 반짝이는 것이 눈꺼풀 너머로 느껴지는 듯합니다. 그녀는 손을 뻗어 당신의 이마가에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려다, 이내 허공에서 손을 멈춥니다. 닿고 싶지만 닿아서는 안 될 존재를 대하듯, 그녀의 손끝에는 깊은 망설임이 서려 있습니다.

그녀는 과연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당신이라는 따뜻한 안식처를 찾았음에도, 왜 그녀의 슬픔은 가시지 않는 걸까요. 자신이 당신의 깨끗하고 평온한 삶을 진흙탕으로 끌어들이는 오염원이라고 생각하는 걸까요? 당신이 베푸는 고귀한 다정함이, 그녀에게는 언감생심 감당할 수 없는 마음의 빚으로 쌓이고 있는 걸까요?

"정우야……."

아주 작은, 나비의 날갯짓보다 더 은밀한 속삭임이 정적을 가릅니다. 당신의 이름을 부르는 서하의 목소리는 물기 가득 머금은 이끼처럼 축축하고도 애달픕니다.

그녀의 시선이 당신의 얼굴에서 천천히 멀어지며, 창밖의 어두운 밤하늘로 향합니다. 의붓어머니의 전화가 걸려온 이후로 그녀의 마음속에 드리운 그림자는, 당신이 채워준 온기마저 잠식해 가고 있었습니다. 서하는 자신이 이대로 당신 곁에 머문다면, 언젠가 당신마저 꺾어버릴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서하가 침대 아래로 발을 내딛는 서늘한 기척이 느껴집니다. 그녀가 이 방을, 마침내 당신의 곁을 영영 떠나려 하고 있습니다. 마치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사람처럼, 어둠 속에서 고요히 이별을 준비하는 그녀의 실루엣이 다가옵니다.

당신은 지금 이 순간, 감은 눈꺼풀 밑에서 폭풍 같은 갈등을 마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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