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비는 그칠 줄 모르고 낡은 정자의 지붕을 두드린다. 열린 틈새로 스며드는 가을철 늦비의 찬 공기는 당신의 볼을 차갑게 식히지만, 두 사람이 나누어 마시는 가쁜 숨결만큼은 좁은 공간 속에 작은 온기를 채우고 있다. 방금 흘려보낸 당신의 진심, 그 애틋한 고백은 서리가 내린 이른 봄, 채 피지 못하고 바스러질 듯 위태롭게 떨리는 하얀 백합 송이처럼 둘 사이에 피어올라 격렬히 흔들린다.

그러나 돌아온 서하의 반응은 당신의 가슴을 세차게 후벼판다. 어둠 속에서도 투명하게 빛나던 그녀의 눈동자가 깊은 자책감으로 사정없이 흔들린다. "안 돼, 정우야..." 그녀는 당신의 고백을 받아안는 대신, 스스로를 격리하듯 몸을 잘게 웅크린다. 물기 젖은 목소리는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처럼 가늘게 갈라지고 있다. "난 이미 망가졌어. 너까지 내 어둠에 물들게 할 수는 없어. 바보같이 왜 나 같은 애한테 네 아까운 인생을 걸어? 넌 더 좋은 사람을 만나서, 아주 평범하고 따뜻하게 행복해야지..."

그녀의 절망 어린 거절이 들이치는 가을비보다 더 시리게 당신의 가슴을 파고든다. 어째서 그녀는 스스로를 그토록 쓸모없는 존재라 여기는 걸까? 그녀를 향한 당신의 오랜 연심이, 어둠 속에 오래 갇혀 있던 그녀에겐 외려 감당할 수 없는 눈부신 햇살처럼 고통을 주는 걸까? 당신의 구원하겠다는 다짐이, 그녀에게는 되돌릴 수 없는 마음의 빚이자 또 다른 상처인 걸까?

정자 안에는 무거운 침묵이 툭 내려앉는다. 빗물에 젖은 흙내음과 정자 기둥에서 풍겨 나오는 해묵은 솔잎 향이 뒤섞여 코끝을 아리게 스민다. 당신은 성급하게 그녀를 몰아세우는 대신, 가쁜 숨을 몰아쉬며 바닥으로 시선을 떨어뜨린 서하를 가만히 바라본다. 상처 입어 웅크린 작은 짐승처럼, 그녀는 소리 없이 눈물만 흘리며 당신과의 눈맞춤을 필사적으로 피하고 있다. 거친 언쟁보다, 오직 자신만을 탓하며 안으로 골멍이 드는 그녀의 고요한 침묵이 더 가슴 저린 서스펜스를 자아낸다.

"나 같은 건... 태어나지 않았어야 했어." 그녀는 어깨를 들썩이며 마침내 꾹 참았던 울음을 토해낸다. 당신이 덮어준 셔츠 자락을 손에 꼭 쥔 채, 마치 깊고 어두운 바다 한가운데로 발을 내딛는 것처럼 위태로워 보인다.

스스로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가려는 첫사랑을 보며, 당신의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파온다. 이제 당신의 차례다. 그녀의 삶을 옭아맨 죄책감의 사슬을 끊어내기 위해, 당신은 손을 뻗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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