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방 안은 온통 다정함으로 가득 차 있다. 빗물에 젖었던 옷을 갈아입고 주저앉은 서하의 머리칼에서는, 네가 건넨 샴푸의 은은한 라벤더 향과 비누 냄새가 포근하게 피어오른다. 주방에서 뭉근한 불로 정성껏 끓여낸 흰 죽의 구수한 온기가 노란 식탁 조명 아래로 부드러운 수증기를 그리며 퍼져 나간다.

조심스레 숟가락 꼭지를 쥔 서하의 하얗고 얇은 손가락은, 마치 혹독한 겨울 서리를 견디고 겨우 고개를 내민 설강화(snowdrop)의 가냘픈 잎새를 닮았다.

"천천히, 조심해서 먹어. 뜨거우니까."

네 조용한 목소리에 서하는 그제야 안심했다는 듯 고개를 살짝 끄덕인다. 한 숟가락, 아주 조금씩 죽을 입에 머금는 그녀의 하얗던 뺨 위로 어느새 발그레한 온기가 차오른다. 비바람 속에 얼어붙었던 영혼이 이 따뜻한 공간에서 조금씩 녹아내리는 것이다. 겨우 찾아낸 이 작은 평화가, 그녀의 입가에 아주 작지만 다정한 미소를 소리 없이 띄워 보낸다.

너는 가만히 숨을 죽이고 그녀의 고요를 지켜본다. 이 작은 식탁 위에서 피어나는 온기만으로 그녀의 찢겨 나간 마음을 온전히 꿰맬 수 있을까? 그녀의 유년 시절을 온통 검게 물들였던 그 아픈 기억들로부터, 네가 온전한 안식처가 되어줄 수 있을까? 더는 상처받지 않도록, 이 다정한 등불 아래에 그녀를 평생 품어 안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 간절한 바람을 비웃기라도 하듯, 고요를 깨뜨리는 날카로운 진동음이 식탁을 울린다. 징-. 징-. 서하가 먹던 숟가락을 멈추고 제자리에서 굳어버린다. 식탁 위에 올려진 그녀의 스마트폰 화면이 파랗게 빛난다. 액정 위에 선명하게 떠오른 글자는 그녀를 끝없는 지옥으로 몰아세우던 의붓어머니의 이름이다.

순식간에 방 안의 온도가 급강하한다. 방금 전까지 공간을 채우고 있던 포근한 온기마저 차갑게 서리 내리는 것만 같다. 서하의 눈동자가 갈 곳을 잃고 초조하게 흔들린다. 그녀의 시선은 진동하는 액정 화면에 닿았다가, 이내 구원을 요청하듯 떨리는 눈빛으로 네 눈을 조용히 바라본다.

아무런 말도, 모진 언사도 오가지 않는 침묵의 공간 속에서 오직 스마트폰의 진동음만이 잔인하게 두 사람의 고막을 두드린다. 너는 겁에 질린 채 꼼짝도 못 하는 그녀를 지키기 위해, 손을 뻗어 액정 위로 손가락을 가져다 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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