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발걸음을 재촉해 닿은 숲속 깊은 곳, 두 사람만의 비밀기지였던 낡은 정자는 다행히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습니다. 처마 끝으로 투명한 빗방울이 고여 떨어질 때마다, 흙먼지 냄새와 섞여 드는 알싸한 젖은 솔잎 향이 코끝을 스칩니다. 열 살의 가을, 서로의 손을 잡고 비를 피했던 그날처럼 온통 회색빛으로 물든 풍경 속에서, 당신은 떨고 있는 서하를 정자 모퉁이 안쪽으로 이끕니다.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서하의 어깨가 가늘게 떨립니다. 젖은 머리칼 사이로 비치는 그녀의 얼굴은 마치 한여름이 지나고 빛이 바랜 수국 잎처럼 창백하게 질려 있습니다. 당신은 조심스레 입고 있던 재킷을 벗어 그녀의 어깨 위에 얹어줍니다. 온기가 닿은 순간, 서하는 움찔하며 스스로를 껴안듯 어깨를 웅크립니다.

"서하야."

나직하게 부르는 당신의 목소리에 서하의 속눈썹이 잘게 흔들립니다. 그녀는 당신과 시선을 맞추지 못한 채, 낡은 마루 바닥의 거친 나뭇결만 내려다봅니다. 언제부터였을까? 매일 마주 보며 웃던 그녀의 눈동자에 이토록 깊은 그늘이 내린 것은. 왜 당신은 그녀의 미소 뒤에 숨겨진 슬픔의 냄새를 더 일찍 알아채지 못했을까. 그녀의 손목을 타고 흐르는 빗물이 마치 아물지 않은 상처의 눈물처럼 느껴져 가슴이 저려옵니다. 지켜주겠노라 약속했던 그 수많은 밤들은 다 어디로 흩어져 버린 걸까요.

정적을 깨뜨린 것은 서하의 작은 터짐이었습니다. 꼭 쥐고 있던 그녀의 주먹 사이로 붉은 손톱자국이 선명하게 드러나고, 마침내 억눌러왔던 울음이 가느다란 호흡을 타고 새어 나옵니다.

"나... 사실은, 정우야..."

서하가 천천히 고개를 듭니다. 빗물인지 눈물인지 모를 액체가 볼을 타고 흘러내립니다. 그녀가 조심스럽게 재킷 자락을 걷어 올리자, 가녀린 팔목 위로 푸르스름하게 멍든 자국들이 어두운 정자 안에서도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누군가의 거친 손아귀에 붙잡혔던 흔적. 집이라는 이름의 감옥에서 매일같이 감내해야 했던 아픔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흔적이었습니다.

"갈 곳이 없었어. 그 집에서는 숨을 쉴 때마다 가슴이 막혀서... 내가 아무리 애를 써도, 나는 그냥 아빠의 화풀이 대상일 뿐이니까."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하는 서하를 보며 당신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습니다. 직접적인 폭력의 묘사 없이도, 그녀의 야윈 몸과 떨리는 목소리가 전하는 고통은 날카로운 가시가 되어 당신의 마음을 깊숙이 찌릅니다. 서하는 이제 힘없이 무릎을 꺾고 주저앉아, 얼굴을 묻은 채 흐느끼기 시작합니다. 빗소리가 점점 더 거세지며 정자의 지붕을 거칠게 두드리고, 당신과 그녀 사이에는 오직 애틋하고 시린 침묵만이 흐릅니다.

우는 그녀를 바라보는 당신의 손끝이 허공에서 갈 길을 잃고 방황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첫사랑을 눈앞에 두고, 당신은 터져 나오려는 감정을 억누르며 깊은 숨을 들이쉽니다. 이 비를 멈출 수는 없어도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고 싶은 지금, 당신은 서하의 곁으로 한 걸음 더 다가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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