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창틈으로 스며드는 새벽녘의 공기는 유난히 시리고 서늘합니다. 당신은 눈을 뜹니다. 이불 속, 늘 온기가 남아있던 옆자리가 이미 오래전에 비어 구슬픈 냉기만을 머금고 있습니다. 손을 뻗어 그 흔적을 더듬어보지만, 손끝에 닿는 것은 오직 쓸쓸하게 식어버린 시트의 감촉뿐입니다. 방 안에는 그녀가 평소 품고 다니던 말린 라벤더의 아련하고도 쓸쓸한 향기만이 허공에 가늘게 흩날리며 이별을 고하고 있습니다.

마치 모진 한겨울의 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송이째 툭 떨어져 버린 슬픈 동백꽃처럼, 그녀는 아무런 예고도 없이 당신의 세상에서 영영 떨어져 나갔습니다.

당신은 흐트러진 옷가지를 대충 걸치고 다급히 문을 열고 밖으로 뛰쳐나갑니다. 낮게 깔린 안개 너머로 거칠게 밀려드는 동해의 파도 소리만이 외로운 어촌 마을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당신이 그녀를 위해 건넸던 조심스러운 배려와 묵묵한 기다림이, 사실은 그녀에게 다가설 수 없는 거대한 마음의 벽이었음을 이제야 깨닫습니다. 깨질까 봐 차마 만지지도 못하고 바라만 보았던 그 깊은 침묵이, 그녀의 눈에는 자신 때문에 서서히 망가져 가는 당신의 고통스러운 인내로 비쳤던 것입니다.

당신은 왜 진작 알지 못했을까요. 상처를 건드릴까 두려워 말을 아끼던 당신의 사려 깊은 시선이, 그녀에게는 차마 닿지 못할 아득함으로 느껴졌음을 왜 몰랐을까요? 당신이 외면하려 애쓰던 슬픔의 무게가 모두 자신 탓이라는 죄책감에, 그녀가 얼마나 홀로 가슴을 가누며 어둠 속에서 눈물 흘렸을까요? 이토록 처절하게 가슴을 쥐어뜯으며 부르는 이름은, 왜 이 차가운 바람 속에서 길을 잃고 흩어지기만 하는 걸까요?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 소리를 뚫고 해변을 달리며 목이 터져라 소리쳐 봅니다. "서하야... 서하야...!"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차가운 바다 안개와 가슴을 에이는 바람의 조롱 섞인 메아리뿐입니다. 백사장 위, 물기 머금은 모래에 희미하게 남아있던 그녀의 발자국마저 밀려온 파도가 매정하게 쓸어가 버립니다.

수평선 너머로 아침 해가 떠오르며 바다 위를 시린 금빛 조각으로 물들이지만, 그 눈부신 온기는 당신의 얼어붙은 이 겨울을 녹이지 못합니다. 당신은 힘없이 바닷바람이 몰아치는 모래바닥에 주저앉습니다. 그녀를 구원하겠다며 온 삶을 던졌던 당신의 조심스러운 사랑은, 결국 서로를 비껴간 서글픈 침묵 속에 묻혀 길을 잃었습니다.

당신은 가만히 고개를 숙인 채 돌아오지 않을 메아리를 향해 메마른 눈물을 흘립니다. 이제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차갑게 바스러지는 모래알을 쥔 채, 다시는 찾을 수 없는 이름을 부르고 또 부르며 이 차가운 바닷가에 홀로 남아 영원한 겨울을 견디는 것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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