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창가로 비쳐 드는 오후의 햇살은 이제 제법 다사로운 온기를 품고 있습니다. 지루하게 이어지던 봄비가 그친 뒤, 창밖의 대지는 물기를 머금은 채 조각조각 눈부신 빛을 반사합니다. 코끝을 스치는 바람결에는 젖은 흙내음과 함께, 길가 모퉁이에 피어난 야생 캐모마일의 알싸하고도 달콤한 향기가 섞여 듭니다. 모진 비바람을 견디고 마침내 고개를 든 그 푸른 잎사귀들의 끈질긴 생명력이, 지금 당신들이 서 있는 이 작은 방 안에도 소리 없이 차오르는 듯합니다.
당신은 조용히 찻잔을 내려놓고, 테라스 너머 먼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서하의 뒷모습에 시선을 맞춥니다. 법정에서의 가혹했던 시간들이 지나고, 그녀의 삶을 옥죄던 폭력의 굴레는 마침내 끊어졌습니다. 하지만 마음에 깊숙이 새겨진 자상은 지우개로 지우듯 단번에 사라지지 않습니다. 문득문득 찾아오는 미세한 어깨의 떨림, 깊은 밤 작은 소리에도 깜짝 놀라 깨어나는 그녀의 눈동자를 볼 때마다 당신의 가슴은 아릿하게 저려옵니다.
그녀의 영혼에 새겨진 그 오랜 흉터는 언제쯤 온전히 아물 수 있을까요. 우리가 함께 맞이할 내일은 어제보다 조금 더 다정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당신은, 그녀의 삶에 영원히 마르지 않는 단단하고 포근한 대지가 되어줄 수 있을까요.
끝이 없는 물음표들이 가슴속에서 피어나지만, 당신은 조급해하지 않기로 합니다. 서하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당신과 시선을 마주합니다. 세상을 서성거리던 슬픈 눈빛은 여전하지만, 그 깊은 눈동자 속에는 이제 거친 불안 대신 은은한 신뢰가 머물러 있습니다. 서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당신의 손등 위에 자신의 손을 조심스레 얹습니다. 늘 차갑게 얼어붙어 있던 그녀의 손끝에서, 당신이 품어온 온기가 조금씩 배어 나오는 것이 느껴집니다.
두 사람 사이를 채우는 침묵은 더는 외롭거나 두렵지 않습니다. 그것은 서로의 흉터를 가만히 쓰다듬는 가장 애틋한 위로입니다. 당신은 손바닥을 뒤집어 그녀의 손가락 사이로 손을 밀어 넣고, 한 치의 틈도 없이 단단하게 맞잡습니다. 서두르지 않고, 비를 흠뻑 맞은 대지가 천천히 새싹을 틔워내듯 서로의 보조를 맞춰 한 걸음씩 걸어 나갈 준비를 합니다. 당신과 그녀의 눈앞으로, 따스한 바람을 타고 눈부신 활기를 띠는 초록빛 내일이 조용히 번져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