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은 소리 없이 흐르고, 길고 길었던 겨울의 끝자락에서 마침내 온기가 배어 나오는 봄이 찾아옵니다. 베란다 창가에 놓아둔 작은 프리지아 화분에서 싱그러운 노란빛이 피어나며, 방 안 가득 달콤하고도 은은한 향기를 퍼뜨립니다. 그 향기는 마치 차디차게 얼어붙었던 서하의 마음을 부드럽게 녹여내기 위해 피어난 조그마한 기적 같습니다.
당신은 가만히 곁에 앉은 서하의 옆모습을 바라봅니다. 법정에서의 힘들었던 시간들, 스스로를 망가진 존재라며 당신을 밀어내려 했던 푸르스름한 밤들이 이제는 저 멀리 밀려가는 파도처럼 희미해져 갑니다. 서하의 뺨 위에 얹힌 햇살은 포근하고, 그녀의 속눈썹은 더 이상 불안하게 떨리지 않습니다.
"정우야."
나직하게 당신의 이름을 부르는 그녀의 목소리에 깊은 안도가 담겨 있습니다. 당신은 대답 대신 그녀의 가냘픈 손을 꼭 쥡니다. 손바닥을 타고 전해지는 온기는 겨우내 품어왔던 서로의 시린 상처를 말없이 보듬어 안습니다.
언제나 스스로를 세상의 짐이라 생각했던 그녀였습니다. 상처투성이인 자신 때문에 당신의 삶마저 어두워질까 봐 밤마다 숨죽여 울던 그녀였습니다. 하지만 이제 서하의 맑은 눈망울에는 슬픔 대신 잔잔한 신뢰가 머물고 있습니다.
정말로 그녀를 구원할 수 있었던 걸까요? 당신의 서툰 진심이 그녀의 어둠을 밝히는 등불이 되어준 걸까요? 그리하여 마침내, 온전한 계절의 순환처럼 서로의 진정한 구원자가 될 수 있었던 걸까요?
서하가 고개를 돌려 당신을 마주 봅니다. 그녀의 입가에 잔잔히 피어난 미소는 겨우내 얼었던 대지를 뚫고 나온 봄꽃을 닮아 있습니다.
"나, 이제 두렵지 않아. 네가 늘 옆에 있으니까."
그녀의 한마디는 당신의 마음속에 오래도록 갇혀 있던 어린 소년의 불안마저 깨끗이 씻어내 줍니다. 서로를 구원하기 위해 온 삶을 던져 버텨온 두 사람의 시간들이 밝은 햇살 아래 눈부시게 흩어집니다.
당신은 그녀의 손가락 사이로 당신의 손목을 교차하며, 마주 잡은 손에 단단히 힘을 줍니다. 더 이상 어두운 기억의 노예가 아닌, 서로의 세상이 되어준 두 사람의 발걸음이 마침내 눈부신 봄날의 길 위로 향합니다. 손끝에서 번지는 프리지아 향기처럼, 당신과 서하의 첫사랑은 마침내 가장 온전하고 성숙한 구원이라는 완벽한 마침표를 찍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