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의 모퉁이를 돌아 서둘러 찾아온 초겨울의 공기가 가정법원 대기실의 창문을 차갑게 두드립니다. 창밖으로 보이는 말라붙은 단풍나무 가지들이 회색빛 하늘을 배경으로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손에 들린, 서하를 위해 준비한 종이컵 속 따스한 캐모마일 차는 달큼한 사과 향 같은 온기를 은근하게 피워 올립니다. 하얗게 피어오르는 김이 이 건조하고 가혹한 공간의 모서리를 조금이나마 둥글게 깎아내 주는 듯합니다.
"서하야."
당신이 나지막이 그녀의 이름을 부릅니다. 당신의 곁에 앉은 서하는 마치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감추려는 듯 어깨를 잔뜩 웅크리고 있습니다. 무릎 위에 가지런히 모은 그녀의 작은 손은 온기를 잃은 하얀 밀랍처럼 차갑게 굳어 있습니다.
오늘은 서하가 과거의 끔찍한 기억들을 타인의 언어로 재구성해 진술해야 하는 날입니다. 복지기관의 개입과 법적 절차가 시작되면서 찾아온 필연적인 과정이지만, 상처의 딱지를 강제로 떼어내야 하는 고통은 온전히 서하의 몫입니다. 문 너머에서 들려오는 딱딱하고 사무적인 목소리들은 존재만으로도 심장을 얼게 만듭니다.
어린 시절, 두 사람이 함께 걷던 철길 모퉁이에는 추위 속에서도 꿋꿋하게 향을 내뿜던 야생 캐모마일이 있었습니다. 발에 밟히고 찬바람에 꺾여도, 기어이 노란 꽃망울을 터트리며 달콤한 향을 키워내던 그 강인한 풀잎. 당신에게 서하는 언제나 그 캐모마일을 닮은 존재였습니다. 가장 아픈 곳에서 가장 아름다운 향을 품고 마는 사람.
그녀가 이 모진 폭풍을 정말 안간힘을 다해 버텨낼 수 있을까요? 당신의 보잘것없는 온기가 그녀의 얼어붙은 마음을 온전히 녹여줄 수 있을까요? 진실을 밝히는 이 눈부신 조명 아래에서, 그녀의 깊은 흉터는 마침내 아물 수 있을까요, 아니면 다시 피를 흘리며 깊어질 뿐일까요? 꼬리를 무는 질문들이 잔잔한 슬픔처럼 머릿속을 맴돕니다.
"임서하 씨, 들어오세요."
조사관이 문을 열고 서하의 이름을 부릅니다. 무표정한 그의 시선에는 악의가 없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더 차가운 침묵으로 서하의 숨을 막아옵니다. 서하는 굳어버린 듯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합니다. 찰나의 침묵이 우주처럼 무겁게 내려앉는 순간, 당신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그녀의 차가운 손위로 당신의 따뜻한 손을 겹쳐 포갭니다.
살포시 전해지는 온기에 서하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당신을 바라봅니다. 눈물이 고여 투명해진 그녀의 눈동자가 흔들리며 당신의 눈빛마저 애틋하게 담아냅니다. 긴장감으로 얼어붙었던 대기실에 오직 두 사람만의 체온이 고요하게 흘러듭니다. 서하의 가쁜 숨소리가 당신의 차분한 호흡을 따라 서서히 안정을 찾아갑니다.
조사관이 다시 한번 문손잡이를 잡으며 눈길을 보냅니다. 이제 발걸음을 옮겨야 할 시간입니다. 당신은 생사의 갈림길에 선 것처럼, 그녀의 깊은 눈동자를 마주하며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