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제생 에단 리드. 불법 광산 점거 및 아카데미 자산 횡령 혐의로 너를 즉결 처단한다."
얼음 송곳 같은 목소리가 지부 내부의 공기를 차갑게 얼려 버렸다.
은발을 휘날리는 아카데미 수석, 세레나 폰 하르트.
그녀의 검 끝이 내 목덜미를 겨누자, 뒤에 포진한 50명의 정화 집행 기사단이 일제히 무기를 고쳐 잡았다.
철컥, 하는 불길한 쇠붙이 소리가 사방에서 공명했다.
보통 녀석들이라면 이 기세에 눌려 오줌부터 지렸을 터다.
하지만 내 머릿속은 지극히 차분했다.
오히려 시야 한구석에서 반짝이는 녹색 시스템 창이 내 도파민을 자극하고 있었다.
[돌발 퀘스트: 엘리트의 오만을 꺾어라!] [난이도: A] [개요: 현인단의 꼭두각시 세레나 하르트가 무단 침입했습니다. 그녀의 오만한 법적 명분을 완벽하게 분쇄하십시오.] [보상: 세레나의 인과율 균열 정보 획득, 마력 정화석 3개]
'어이쿠, 굴러들어 온 떡이네.'
나는 슬그머니 미소를 지었다.
세레나는 내 미소를 보더니 눈살을 찌푸렸다.
그녀의 눈빛에 깃든 불쾌감이 한층 더 짙어졌다.
"죽음을 앞두고 미쳐버린 모양이군. 낙제생 무리들이 감히 아카데미의 영토를 침범하고 자원을 훔치다니. 용서받지 못할 대죄다."
세레나의 말에 기사단이 한 걸음 더 좁혀왔다.
숨이 막힐 듯한 압박감 속에서, 나는 천천히 양손을 들어 올렸다.
항복의 표시가 아니었다.
단지 품 안에서 무언가를 꺼내기 위함이었다.
"어이, 차가운 낙하산 수석님. 말은 바로 하셔야지."
나는 품에서 빳빳하게 풀이 죽은 양피지 한 장을 꺼내 촤르륵 펼쳤다.
"불법 점거? 자산 횡령? 그거 참 무서운 단어네."
내가 내민 종이에는 황금빛으로 번쩍이는 제국 황실의 인장과 함께 복잡한 마법 기하학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세레나의 푸른 눈동자가 순간적으로 떨렸다.
"그건……?"
"이름하여 '황실 인증 영구 상업 점유권'. 이 지하 구역의 소유권은 아카데미가 아니라 제국 황실에 있고, 그 황실이 나한테 영구 임대를 줬다는 소리야. 한마디로 여기 내 땅이라고."
나는 양피지를 세레나의 코앞까지 들이밀며 씩 웃었다.
"남의 사유지에 기사단 50명이나 끌고 와서 철문을 부수다니. 이거 제국법 제3조 1항, 주거침입 및 재물손괴죄에 해당하는데? 귀족 가문 딱지 떼고 감옥 가고 싶어?"
"말도 안 되는 소리! 이 지하 유적은 아카데미의 소유다! 황실이 이런 무가치한 슬럼가에 점유권을 발행했을 리가 없다!"
세레나가 바락 악을 썼다.
그녀의 얼음 같은 포커페이스가 단숨에 깨지는 모습은 꽤 볼만했다.
그녀의 반응은 지극히 정상이다.
원래라면 이런 구석진 슬럼가 따위에 황실이 직접 점유권을 끊어줄 리가 없으니까.
하지만 나한테는 '상태창'이 있었다.
그것도 인과율을 제멋대로 주무르는 고인물 전용 치트키가.
이 서류를 손에 넣기 위해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저 엘리트 나부랭이들은 꿈에도 모를 것이다.
머릿속으로 며칠 전의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체펠린 지하 유적탑 1층 깊숙한 곳, 이끼로 뒤덮여 방치되어 있던 붕괴된 제단.
그곳에는 고대인들이 새겨둔 정체불명의 문자가 있었다.
시스템조차 제대로 해석하지 못해 깨진 글자로 출력되던 기믹.
그것이 바로 세계의 억지력조차 눈치채지 못한 시스템의 치명적인 구멍, '오블리비언 블록(리셋 오류)'이었다.
나는 위키 상태창을 켜고 그 제단을 조작했었다.
[고대 문자 리셋 오류(오블리비언 블록) 감지!] [인과율 개변 비용이 일시적으로 50% 감쇄됩니다.]
원래라면 제국 황실의 데이터베이스를 조작해 영구 점유권을 뜯어내려면 최소 수천 골드의 등가교환 대가나 80% 이상의 마력 오염 변이치를 감당해야 했다.
하지만 나는 이 오블리비언 블록의 리셋 오류를 링크시켰다.
시스템의 계산 능력을 마비시키고 인과율을 우회하는 편법을 쓴 것이다.
그 결과, 단돈 10골드라는 거저나 다름없는 제물만 바치고 이 완벽한 진짜 '황실 인증 영구 상업 점유권'을 역사 속에 편입시켰다.
역사 자체가 개변되어, 제국 대장부에는 백 년 전부터 이 땅이 내 소유로 기록되어 버린 것이다.
완벽한 합법.
완벽한 사이다 빌드업.
"못 믿겠으면 거기 마법 통신기 들고 있는 통신병한테 제국 중무성 데이터베이스나 조회해 보라고 하든가."
내가 턱짓으로 뒤쪽의 통신병을 가리키자, 세레나의 안색이 하얗게 질려갔다.
그녀의 지시에 통신병이 다급하게 마법 구체를 두드렸다.
그리고 몇 초 뒤, 통신병이 사시나무 떨듯 떨며 세레나에게 귓속말을 속삭였다.
"수, 수석님…… 진짜입니다. 제국 중앙 문서고에 이 구역의 영구 상업 점유권자가 '에단 리드'로 등록되어 있습니다. 그것도…… 세금을 한 푼도 밀리지 않은 초우량 납세자로 말입니다……."
"뭐, 뭐라고?!"
세레나의 목소리가 뒤집어졌다.
그녀의 뒤에 서 있던 기사들도 술렁이기 시작했다.
그때, 내 등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펠릭스가 부채질을 하며 우아하게 걸어 나왔다.
"아이고, 수석님. 법을 수호하신다는 현인단의 후계자께서 제국의 정식 상업권을 침해하시다니요. 이거 황실 감사원에 정식으로 제소하면 아카데미 예산 지원이 대폭 삭감될 텐데, 감당 가능하시겠습니까?"
펠릭스의 능청스러운 혓바닥이 세레나의 염장을 질렀다.
그의 손에는 이미 피해 보상 청구서가 들려 있었다.
"부서진 철문 가격 50골드. 기사단의 불법 침입으로 인한 정신적 피해보상 200골드. 그리고 우리 상단의 영업 방해 손실 금액…… 대략 500골드 정도 청구해 드리면 되겠습니까?"
"이, 이 벌레 같은 장사꾼 놈들이 감히……!"
세레나의 이마에 핏대가 돋아났다.
그녀의 손이 부르르 떨리며 검자루를 강하게 움켜쥐었다.
"서류의 장난질 따위로 아카데미의 절대적인 질서를 어지럽힐 순 없다! 이곳은 유해한 오염물질들이 가득한 슬럼가! 정화의 대상일 뿐이다!"
세레나가 기어코 이성을 잃고 검을 뽑아 들었다.
푸른 서리가 서린 그녀의 검이 내 목을 향해 짓쳐 들어오려는 찰나.
*카아아앙-!*
고막을 찢을 듯한 날카로운 금속음과 함께, 세레나의 검이 허공에서 튕겨 나갔다.
엄청난 충격파가 지부 내부를 휩쓸며 기사단의 대열을 흔들었다.
"누구냐!"
세레나가 뒤로 두 걸음 물러나며 소리쳤다.
그녀의 검을 막아선 것은, 푸른빛의 정교한 마력 오라를 전신에 두른 미카엘라였다.
미카엘라의 검 끝에는 범접할 수 없는 예기가 서려 있었다.
'판테온의 심판' 오라.
직전 화에서 검술서를 완독하고 각성한 그녀의 새로운 경지였다.
"하르트 가문의 영애여. 법적으로 명백한 타인의 영지에서 무력을 행사하려 들다니. 기사로서의 명예는 어디로 갔는가?"
미카엘라의 목소리에는 무거운 위압감이 실려 있었다.
이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강해진 그녀의 기세에, 세레나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미카엘라 드 브로이……! 몰락한 가문의 계집이 감히 나를 가로막는 거냐?"
"가문의 몰락 여부는 내 검의 날카로움과 무관하다. 그리고 지금 내 검은 그 어느 때보다 날카롭지."
미카엘라가 가볍게 검을 털어내자, 바닥의 돌판이 쩍 갈라졌다.
기사단 50명이 일제히 긴장하며 무기를 겨누었지만, 미카엘라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의 뒤에서 내가 피식 웃으며 거들었다.
"어이, 수석님. 머릿수로 밀어붙이면 이길 수 있을 것 같지? 근데 어쩌냐. 내 땅에서 날 공격하는 순간, 황실 경비대와 제국 기사단이 즉각 개입하도록 계약 주술을 걸어놨거든."
나는 슬그머니 상태창의 가짜 경고창을 허공에 띄웠다.
물론 뻥카다.
하지만 기가 막힌 서류의 정당성 앞에서는 이 뻥카도 진실이 된다.
세레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의 오만한 얼굴이 분노와 수치심으로 붉게 물들었다.
법적으로도, 무력으로도 지금 당장 나를 찍어 누를 방법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현인단의 수장이자 아카데미의 수석.
이대로 물러설 위인이 아니었다.
그녀가 심호흡을 하며 검을 검집에 쑤셔 넣었다.
그녀의 푸른 눈동자에 독기가 가득 찼다.
"……좋다. 얄팍한 법의 테두리 뒤에 숨어 쥐새끼처럼 구는구나, 에단 리드."
세레나가 나를 매섭게 째려보며 품에서 붉은색 인장이 찍힌 도전장을 꺼내 내 발밑에 던졌다.
"하지만 아카데미의 규율은 서열이 지배한다. 네가 진정 이 구역의 소유권을 주장하고 싶다면, 아카데미의 방식대로 증명해라."
나는 발밑에 떨어진 도전장을 내려다보았다.
[아이템: 학원 결투 선언서] [효과: 아카데미 공식 결투를 신청하는 문서. 거절 시 학업 서열 점수가 대폭 삭감되며, 수락 시 승자는 패자의 모든 권리를 박탈할 수 있음.]
"호오, 결투라."
내가 흥미롭다는 듯이 중얼거리자, 세레나가 비장한 표정으로 외쳤다.
"공식적인 지상 검증 '학원 결투'를 신청한다. 네놈이 그 하찮은 낙제생 딱지를 떼고 진짜 이 땅의 주인으로 인정받을 자격이 있는지, 아카데미 전체가 보는 앞에서 증명해라!"
그녀의 제안에 펠릭스와 미카엘라가 내 눈치를 살폈다.
세레나는 내가 거절할 것이라 생각했는지 오만한 미소를 지었다.
"도망쳐도 좋다. 평생 지하 슬럼가 구석에 처박혀 쥐새끼처럼 푼돈이나 만지며 살겠다면 말이지."
하지만 내 머릿속은 이미 승리의 방정식을 끝마친 상태였다.
세레나 폰 하르트.
그녀가 지닌 아티팩트 '치천사의 눈물'에 생긴 미세한 균열과 공명 주파수의 불일치.
나는 이미 위키 상태창을 통해 그녀의 치명적인 약점을 파악하고 있었다.
결투라고?
나한테는 그저 합법적으로 세레나를 짓밟고 현인단에게 빅엿을 먹일 최고의 무대일 뿐이다.
나는 발밑의 도전장을 밟아 뭉개며, 세레나를 향해 세상에서 가장 잔인하고 여유로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피할 이유가 없지. 언제 어디서 할까, 수석님?"
세레나가 어금니를 깨물며 선언했다.
"결투는 삼일 뒤 검 투기장이다. 너희 하찮은 고혈을 빠는 벌레들에게 진짜 서열의 무게를 알려주지."
그렇게 쏘아붙인 세레나가 등을 돌려 밖으로 걸어 나가려 했다.
"잠깐."
내가 나직하게 그녀의 발걸음을 붙잡았다.
"그냥 가려고? 수석님, 결투장을 던졌으면 판돈 정도는 걸어 주셔야지."
세레나가 불쾌한 기색을 숨기지 않으며 고개를 반쯤 돌렸다.
"판돈?"
"내가 지면 이 지하 구역의 소유권을 포기하고 아카데미를 자퇴하지. 엘리트님들이 딱 좋아할 조건이잖아?"
나는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하지만 내가 이기면? 너는 뭘 걸 건데?"
"……내가 질 리가 없다."
"입만 살아가지고. 쫄리면 그냥 꼬리 내리고 꺼지든가. 온 아카데미에 '수석 세레나가 낙제생 무서워서 도망쳤다'고 친절하게 소문내 줄 테니까."
내 도발에 세레나의 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좋다. 원하는 게 뭐냐? 명예? 지위? 네놈이 평생 가질 수 없는 귀족의 권리라도 원하나?"
"아니, 그런 쓸데없는 쓰레기 말고."
나는 오른손 검지를 치켜세우며 환하게 웃었다.
"제국 금화 2,000골드."
"……!"
지부 내부가 순식간에 찬물을 끼얹은 듯 고요해졌다.
2,000골드.
평민 6,000가구의 한 달 생활비에 달하는, 그야말로 천문학적인 액수였다.
아무리 대귀족 하르트 가문의 후계자라 해도 일개 학생이 감당하기엔 뼈가 시린 금액이었다.
"왜? 2천 골드는 없고 자존심만 가득해? 그럼 그냥 기사단 데리고 꺼져."
"……받아들이지."
세레나가 이를 갈며 외쳤다.
"어차피 네놈이 가져가지 못할 돈이다. 삼일 뒤, 네놈의 그 거만한 주둥이를 찢어 발겨 주마."
그녀는 소맷자락을 거칠게 휘날리며 기사단을 이끌고 지부를 빠져나갔다.
쾅!
부서진 철문 잔해 너머로 그들의 발소리가 멀어졌다.
"후우…… 에단, 정말 괜찮겠어? 세레나는 비록 성격은 파탄 났지만, 실력만큼은 진짜야. 게다가 그녀의 아티팩트는……."
미카엘라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내 시선은 그녀가 아닌, 허공에 둥실 떠오른 붉은색 시스템 경고창에 고정되어 있었다.
[경고! 인과율의 급격한 변동이 감지되었습니다!] [세레나 폰 하르트가 퇴장하며 남긴 '정화의 낙인'이 당신의 영혼에 기생했습니다.] [마력 오염 변이치가 강제로 상승합니다!] [현재 변이치: 12%... 25%... 43%...]
'이런 미친?'
내 안색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그 오만한 수석 계집이 그냥 순순히 물러간 게 아니었다.
말을 섞는 와중에 은밀하게 마력 저주를 심어놓고 간 것이다.
[마력 오염 변이치: 65%] [변이치 80% 돌파 시, 세계의 억지력 '플레로마'가 작동하여 아카데미 내부에 '재앙 등급'의 토벌 퀘스트가 강제 생성됩니다.] [남은 시간: 12시간 00분]
정화할 돈은 아까 50골드를 써서 이제 수중에 남은 골드가 거의 없었다.
이대로 12시간이 지나면, 나는 결투장에 서기도 전에 아카데미 전체의 '공공의 적'이 되어 집단 사냥을 당하게 된다.
"에단? 얼굴색이 왜 그래?"
미카엘라의 목소리가 아득하게 들려왔다.
식은땀이 목덜미를 타고 흘러내렸다.
체펠린 지하 유적탑 2층을 당장 돌파해서, 돈이 될 만한 코어나 유물을 12시간 안에 털어와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삼일 뒤의 결투는커녕 오늘 밤 내 목숨이 날아갈 판이었다.
그때, 내 시야에 새로운 정밀 위키 퀘스트가 번쩍이며 나타났다.
[돌발 퀘스트: 12시간의 데드라인] [목표: 지하 2층의 봉인된 '파수기 코어'를 강제 해제하고 탈취하십시오.] [경고: 지하 2층에는 아드리안 베르네 교수가 직접 배치한 '특급 경비 마수'가 동면 중입니다.]
나는 마른침을 삼키며 질척하게 젖은 손으로 검자루를 꽉 쥐었다.
살기 위한 폭풍 같은 질주가, 지금 막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