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줄을 쥔다니, 펠릭스. 판이 너무 작잖아."
내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갔다.
펠릭스는 침을 꿀꺽 삼키며 내 눈치를 살폈다.
그의 이마에 맺힌 식은땀이 턱을 타고 바닥으로 뚝 떨어졌다.
"……판이 작다니요? 현인단의 목줄을 쥐는 게 작단 말입니까?"
"그 영감탱이들 목줄 좀 쥔다고 세상이 바뀌나? 결국 그 밥에 그 나물이지."
나는 가죽 보고서를 툭툭 치며 펠릭스의 어깨를 툭 쳤다.
"우리가 할 건 협박이 아니야. 합법적이고도 완벽한 '대체'지."
"대체…… 라고 하심은?"
"그들이 낙제생들을 갈아 넣어서 얻던 마력과 자원, 그걸 우리가 더 효율적으로, 더 압도적으로 뽑아내서 시장을 독점하는 거다."
기득권의 룰 안에서 짤랑이는 푼돈을 구걸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판 자체를 엎어버리고 새로운 룰러가 되는 것.
그것이 수천 번 게임을 지배했던 고인물의 기본 소양이니까.
"하지만 에단 씨, 지하 유적의 자원은 이미 아카데미가 샅샅이 긁어갔습니다. 남은 건 찌꺼기뿐이에요."
펠릭스가 난색을 표했다.
그의 말도 일리는 있었다.
아카데미 수색대가 바보도 아니고, 돈이 될 만한 광맥이나 유물은 이미 다 털어갔을 터였다.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말이지.
"그건 걔들 대가리가 장식이라 그런 거고."
나는 가볍게 몸을 돌려 지하 유적탑 1층 깊숙한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따라와 봐. 진짜 노다지가 뭔지 보여줄 테니까."
미카엘라가 검 자루를 꽉 쥔 채 뒤를 따랐고, 펠릭스는 반신반의하는 얼굴로 허겁지겁 쫓아왔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1층 구석에 처박힌, 사방이 무너져 내린 고대 제단터였다.
이끼와 먼지로 뒤덮여 형체조차 알아보기 힘든 돌덩어리들.
아카데미 교수단이 '가치 없음' 판정을 내리고 방치한 쓰레기장이다.
하지만 내 눈은 달랐다.
내 눈앞에는 오직 나에게만 보이는 반짝이는 텍스트들이 춤을 추고 있었다.
[정밀 공략 위키 활성화] [분석 대상: 붕괴된 제단 하부 균열] [숨겨진 인과율: 고대 문자의 리셋 오류(오블리비언 블록) 감지!]
이거지.
1화에서 지하 유적을 탐색할 때 미리 마킹해 두었던 치트키가 바로 여기 있었다.
이 제단 구석에 새겨진 고대 문자는 마법적 인과를 왜곡할 때 발생하는 페널티를 '초기화'하는 버그 존이었다.
쉽게 말해, 시스템의 감시망을 우회하는 일종의 '우회 VPN' 같은 녀석이다.
"에단, 여긴 그냥 다 무너진 제단이잖아? 여기서 뭘 어쩌겠다는 거야?"
미카엘라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원래 진짜 명품은 포장지가 구린 법이지."
나는 제단 중앙의 깨진 톱니바퀴 문양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위키의 개변 권능을 호출했다.
[퀘스트 경로 개변 요청] [목표: 슬럼가 하부 400m 지점의 '고순도 티타늄 광맥' 루트 해방] [원래 요구 마력 오염 변이치: +45%]
마력 오염도가 45%나 치솟는 엄청난 작업이다.
만약 이걸 그대로 받아들였다간 세계의 억지력에 의해 대가리가 깨질 확률이 비약적으로 상승한다.
하지만 나에게는 '오블리비언 블록'이 있다.
나는 제단 모퉁이의 깨진 문자 블록을 구두 굽으로 쾅 밟았다.
*적막한 마찰음과 함께 고대 문자가 한 칸 옆으로 밀려났다.*
[시스템 오류 발생!] [오블리비언 블록(Oblivion Block)의 간섭으로 인과 왜곡 페널티가 경감됩니다.] [마력 오염 변이치 증가량 변경: +45% -> +22%]
"개이득."
거의 반값 할인을 받은 기분이다.
이 맛에 고인물 짓 하는 거지.
스르릉!
순간 제단 바닥이 잘게 떨리며, 굳게 닫혀 있던 석판이 양옆으로 갈라졌다.
그 틈새로 눈이 시릴 정도로 푸르스름한 안개가 뿜어져 나왔다.
"이, 이게 무슨……!"
펠릭스가 비명을 지르며 뒤로 자빠졌다.
상인의 직감이 그의 뇌를 사정없이 두들기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안개 사이로 드러난 구멍 밑바닥에는, 인공적으로 조성된 듯한 거대한 광산 통로가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그 벽면 전체를 가득 채운 것은 실버와 블루가 뒤섞인 영롱한 광물들이었다.
[아이템: 고순도 블루 티타늄 광맥] [등급: 영웅 (Heroic)] [설명: 마도 갑옷 및 고위 마법 지팡이의 핵심 재료. 현재 제국 내 공급 부족으로 가격 폭등 중.]
"블, 블루 티타늄……?"
펠릭스의 목소리가 사정없이 떨렸다.
그는 거의 기어가다시피 구멍가에 붙어 광물을 쳐다보았다.
"이 정도 규모면…… 아카데미 1년 예산을 통째로 사고도 남을 수준입니다! 어떻게 이런 곳이 여기에 숨겨져 있었지?!"
"말했잖아. 걔들은 머리가 장식이라고."
나는 펠릭스의 덜덜 떨리는 어깨를 짚었다.
"이 광맥의 단독 개발권을 너한테 주지. 단, 조건이 있어."
"무, 무슨 조건이든 말씀만 하십시오! 영혼이라도 팔겠습니다!"
펠릭스의 눈에 황금빛 탐욕이 번쩍였다.
완벽하게 낚였다.
"첫째, 이 광산의 채굴 인력은 오직 지하 슬럼가의 낙제생들로만 구성한다."
"낙제생들이요? 하지만 그들은 마력도 불안정하고……."
"그러니까 쓰는 거야. 그들에게 아카데미가 주던 노역 임금의 세 배를 줘라. 그리고 안전 장비와 식사를 아낌없이 제공해."
미카엘라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녀는 내가 낙제생들을 구제하려 한다는 사실에 깊은 감명을 받은 듯했다.
물론 나는 자선사업가가 아니다.
낙제생들을 포섭해 내 든든한 사병이자 정보원으로 만들기 위한 철저한 밑그림일 뿐이다.
"둘째, 채굴된 광물의 70%는 내 명의로 세탁해서 유통한다. 30%는 네 몫이야."
"7대 3……! 좋습니다. 그것만으로도 가문 전체를 먹여 살리고도 남습니다!"
펠릭스는 군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이미 내 지배력 아래 완전히 굴복했다.
"좋아, 계약 성립이다. 당장 인부를 모으고 장비를 투입해."
"예! 당장 움직이겠습니다!"
펠릭스가 미친 듯이 지상으로 뛰어 올라갔다.
돈 냄새를 맡은 상인의 속도는 광속보다 빠른 법이다.
나는 남겨진 미카엘라를 돌아보았다.
그녀는 자신의 대검을 만지작거리며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에단, 너는 정말 알다가도 모를 사람이군. 낙제생들을 구원하려는 건가?"
"구원 같은 오글거리는 소린 사양이야. 그냥 내 몫의 지분을 챙기는 것뿐이지."
나는 품 안에서 묵직한 가죽 주머니를 꺼내 그녀에게 던졌다.
짤랑!
금화가 부딪히는 맑은 소리가 골방을 가득 채웠다.
"이게 뭐야?"
"펠릭스에게 선금으로 뜯어낸 돈이다. 대략 20골드쯤 되지."
미카엘라의 눈이 동그래졌다.
20골드면 평민 가족이 몇 년은 떵떵거리고 살 수 있는 거금이다.
"이걸 왜 나한테 주지?"
"그 돈으로 아카데미 상부 상점에 가서 '판테온 기사의 고위 검술서'를 사 와라."
"……! 그건 가문의 비급에 맞먹는 고위 마도서잖아? 낙제생 신분인 내가 그걸 구매하는 건 금지되어 있어."
"규칙 따위 알 게 뭐야. 펠릭스의 유통망을 통하면 이름 없는 대리인을 내세워 얼마든지 살 수 있어."
나는 그녀의 어깨를 강하게 움켜쥐었다.
"미카엘라, 네 검이 녹슬어 있으면 내 계획에도 차질이 생겨. 당장 네 마력을 정화하고 강해져라. 그게 네가 내 곁에 있을 수 있는 유일한 자격이야."
차가운 말투였지만, 미카엘라는 오히려 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네 기대에 부응하지."
그녀의 눈빛에 다시금 불꽃이 일었다.
몰락해가던 천재 검사가 각성하는 순간이었다.
***
사흘 뒤.
지하 슬럼가의 풍경은 그야말로 천지개벽 수준으로 바뀌어 있었다.
지저분하고 칙칙하던 골목길에는 활기가 넘쳐흘렀다.
"어이! 오늘 일당 나왔다! 무려 은화 다섯 개라고!"
"세상에, 아카데미 징벌방에서 하루 종일 채찍 맞아가며 일할 때는 동전 한 푼 안 주더니……!"
"이게 다 에단 님 덕분이야! 그분이 우리를 구원해주셨어!"
낙제생들의 얼굴에는 더 이상 절망이 없었다.
그들은 이제 '고소득 광부'라는 새로운 신분을 얻고, 아카데미의 착취 체제에서 완벽히 독립했다.
돈이 돌자 슬럼가의 상권이 살아났고, 정보는 자연스럽게 내 손아귀로 모여들었다.
아카데미 수색대원들이 어디로 움직이는지, 교수들이 무슨 음모를 꾸미는지 슬럼가 아이들이 가장 먼저 내게 보고했다.
진정한 부의 복리 구축이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 있는 나에게, 가장 달콤한 보상이 찾아왔다.
"에단 씨! 이번 기수 정산금입니다!"
펠릭스가 땀을 뻘뻘 흘리며 황금으로 가득 찬 상자를 내밀었다.
상자 안에는 눈을 멀게 만들 정도로 찬란한 금빛이 일렁이고 있었다.
정확히 제국 금화 100골드.
내 입꼬리가 주체할 수 없이 올라갔다.
자, 이제 지갑 전사의 진가를 보여줄 때가 왔다.
나는 즉시 상태창을 열었다.
[경고: 현재 마력 오염 변이치 23%] [세계의 억지력 작동 임박 (100% 도달 시 최종 보스로 규정됨)]
"시스템, 등가교환 가동. 금화 50골드를 제물로 바친다."
[등가교환 법칙 작동!] [제물: 제국 금화 50골드 흡수 완료] [마력 오염 변이치 정화 중……]
위이이잉!
내 몸을 감싸고 있던 칙칙한 보랏빛 마력이 순식간에 정화되며, 맑고 투명한 마력의 파동이 전신을 관통했다.
[마력 오염 변이치: 0%] [완전한 정화 상태에 도달했습니다!] [영혼의 조율이 완료되어 최대 마력 통이 15% 서치(Surge) 상승합니다!]
"크으, 이 맛에 돈 벌지."
온몸의 세포가 다시 태어나는 듯한 극상의 쾌감이 몰려왔다.
돈으로 페널티를 찍어 누르는 쾌감은 그 어떤 마법보다도 짜릿했다.
이제 세계의 억지력 따위는 아득히 먼 나라 이야기가 되었다.
자본의 힘으로 인과율을 완벽하게 통제한 것이다.
그때, 슬럼가 지부의 문을 열고 미카엘라가 걸어 들어왔다.
그녀의 주위로 푸른빛의 정교한 마력 오라가 아른거리고 있었다.
"에단, 검술서를 완독했어. 내 가문의 검술과 판테온의 비급이 융합되니, 막혀 있던 마력의 혈이 뚫렸어."
그녀가 가볍게 검을 휘두르자, 허공이 찢어지는 듯한 날카로운 마찰음이 들렸다.
[인물 검색: 미카엘라 드 브로이] [상태: 마력 정화 완료 / '판테온의 심판' 오라 각성] [전투력: 기존 대비 200% 상승]
"훌륭하군. 돈 값을 하는군."
나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금융망의 펠릭스, 무력의 미카엘라.
나의 완벽한 양날 검이 완성된 것이다.
모든 것이 내 시나리오대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자, 이제 아카데미 상부의 늙은이들이 이 변화를 눈치채고 비명을 지를 차례였다.
하지만.
*쾅-!*
갑작스러운 폭음과 함께 슬럼가 지부의 단단한 철문이 통째로 날아갔다.
매캐한 화약 냄새와 함께, 차가운 은빛 갑옷을 입은 무리들이 지부 내부로 쏟아져 들어왔다.
그들의 가슴팍에 새겨진 문양은 아카데미 수석 집단인 '현인단'의 직속 부대.
'정화 집행 기사단'이었다.
무려 50명에 달하는 기사들이 순식간에 우리를 포위했다.
그리고 그들의 중심에서, 얼음처럼 차가운 미모를 가진 은발의 소녀가 걸어 나왔다.
아카데미 수석, 세레나 폰 하르트.
그녀가 푸른 눈동자로 나를 내려다보며 검을 뽑아 들었다.
"낙제생 에단 리드. 불법 광산 점거 및 아카데미 자산 횡령 혐의로 너를 즉결 처단한다."
그녀의 검 끝이 내 목덜미를 겨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