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같은 재능을 가진 자가…… 왜 이 쓰레기장에 격리되어 있었던 거지? 대체 정체가 뭐냐?"
코끝이 닿을 듯한 거리였다.
그녀의 서늘한 은빛 눈동자가 내 동공을 뚫어버릴 기세로 이글거렸다.
어깨를 움켜쥔 미카엘라의 손아귀는 강철 바이스처럼 단단했다.
조금만 더 힘을 주면 뼈에 금이 갈지도 모르겠다는 직감이 뇌리를 스쳤다.
[경고: 주요 인물 '미카엘라 드 브로이'의 호기심 수치가 임계치를 초과했습니다!]
[새로운 인과율 루트가 요동칩니다.]
[인과율 안정도: 89% -> 82%]
붉은색 경고창이 눈앞에서 디스코텍 미러볼처럼 요란하게 깜빡였다.
인간 불신증 말기 환자인 나로서는 이 상황이 썩 유쾌하지 않았다.
머릿속에서 수십 가지의 도주 경로와 알리바이가 초고속으로 회전했다.
하지만 고인물의 뇌세포는 가장 효율적인 답안지를 이미 도출해 낸 상태였다.
지금은 발뺌할 타이밍이 아니다. 오히려 이 고지식한 검사 나으리의 뚝배기를 정보로 깨부술 타이밍이지.
"브로이 영애."
나는 아픔을 내색하지 않으며 입꼬리를 느긋하게 올렸다.
"그 고결한 기사 가문의 손아귀 힘을 조금만 빼 주시겠습니까? 뼈가 아우성을 치는군요."
"질문에 대답이나 해. 헛소리하면 이 자리에서 무단 침입 및 위험 분자로 규정하고 구금하겠다."
"구금이라. 참 무서운 단어네요. 하지만 그 전에 이것부터 보시는 게 어떨까요?"
나는 품 안으로 손을 뻗었다.
미카엘라의 눈빛이 매섭게 좁아지며 내 손끝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조금이라도 수상한 짓을 하면 바로 목을 베어버리겠다는 무인의 살기.
하지만 내가 꺼낸 것은 단검도, 마법 주문서도 아니었다.
구겨지고 때가 묻은, 그러나 붉은색 아카데미 행정 인장이 선명하게 찍힌 한 장의 양피지 서류였다.
"이게 뭐지?"
그녀가 미간을 찌푸렸다.
"아카데미 최상부, 그러니까 당신이 그토록 존경하는 아드리안 베르네 교수의 집무실에서 흘러나온 행정 명령서 초안입니다."
나는 서류를 그녀의 코앞에 살짝 흔들었다.
"정확히는 '브로이 가문 소속 기사단에 대한 아카데미 내 치안 권한 회수 및 강제 징집령' 수립 계획서죠."
순간, 미카엘라의 은빛 눈동자가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크게 흔들렸다.
그녀의 손아귀에서 스르륵 힘이 빠져나갔다.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가볍게 어깨를 빼내며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기회는 이때다.
불신 강박증 환자의 완벽한 시나리오대로 판을 짜야 한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우리 가문은 대대로 아카데미의 방패 역할을 해왔다. 베르네 교수님이 그럴 리가 없어!"
"그럴 리가 없는 일이 일어나는 곳이 바로 여기, 로얄 판테온 아카데미입니다."
나는 냉소적인 미소를 지으며 양피지를 그녀의 손에 쥐여주었다.
"읽어보시죠. 가문의 영광을 위해 목숨을 바치던 브로이 기사단이, 어떻게 '낙제생'들과 똑같은 소모품 취급을 받으며 지하 유적 깊은 곳으로 강제 투입될 예정인지."
미카엘라는 떨리는 손으로 서류를 받아들었다.
그녀의 시선이 양피지 위에 적힌 빽빽한 문자들을 훑어내려 갔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녀의 하얀 얼굴이 핏기를 잃고 창백하게 질려갔다.
서류에 적힌 내용은 잔인하리만큼 명확했다.
[단서: 브로이 가문의 마력 적합도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지하 3층 전력 핵 동조 계획]
베르네 교수의 친필 서명과 함께, 브로이 가문의 젊은 검사들을 유적 정화의 도구로 소모하겠다는 효율성 극대화 방안이 적혀 있었다.
"이건…… 조작이야. 이런 조잡한 서류로 나를 속일 수 있을 것 같나?"
"글쎄요. 그 서류 하단에 찍힌 마력 인장을 보십시오. 아카데미 행정처의 고유 파동입니다. 검사 가문의 영애라면 그 정도는 감별할 수 있겠죠?"
미카엘라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의 손끝이 파르르 떨렸다.
맹목적으로 믿어왔던 아카데미의 '질서'가, 사실은 자신과 가문을 톱니바퀴처럼 갈아 넣으려는 거대한 기계 장치에 불과했다는 사실.
그 정교하고 위선적인 현실이 그녀의 고결한 마인드를 사정없이 난타했다.
"왜…… 나에게 이걸 보여주는 거지? 너는 대체 무슨 이득이 있어서?"
그녀가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그 눈빛에는 아까의 매서운 경계심 대신, 깊은 혼란과 알 수 없는 경외감이 서려 있었다.
낙제생 구역의 먼지 같은 존재로 알았던 에단 리드가, 가문의 존망이 걸린 극비 정보를 쥐고 흔들고 있었다.
이 상황 자체가 그녀에게는 거대한 충격이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브로이 영애."
나는 양손을 가볍게 펼치며 싱긋 웃었다.
"저 혼자서는 이 거대한 썩은 물을 다 퍼낼 수 없거든요. 든든한 방패막이이자, 검이 되어줄 아군이 필요합니다."
"내가 너와 손을 잡을 거라고 생각하나?"
"선택은 자유입니다. 가문이 통째로 지하 유적의 동력원으로 갈려 나가는 걸 지켜보시든가, 아니면 저와 손을 잡고 이 판을 뒤집어엎으시든가."
침묵이 방 안을 무겁게 채웠다.
미카엘라는 입술을 피가 날 정도로 짓씹었다.
자존심과 기사도, 그리고 가문의 생존이라는 현실이 그녀의 머릿속에서 격렬하게 충돌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는 무겁게 고개를 숙였다.
"……원하는 게 뭐지? 에단 리드."
됐다.
가문의 영광밖에 모르던 철부지 천재 검사가, 마침내 고인물의 덫에 완벽하게 걸려들었다.
"현명한 선택입니다. 우선은 이 쥐새끼 같은 쓰레기장을 벗어나 제대로 된 자금부터 융통해야겠군요."
나는 상태창을 띄웠다.
[정밀 공략 위키 가동]
[목표: 체펠린 지하 유적탑 1층 미개척 통로]
[숨겨진 인과율 루트 탐색 중……]
[경로 탐색 완료: 붕괴된 제단의 '오블리비언 블록'을 활성화하십시오.]
내 눈앞에 유적탑의 입체 지도가 3D 홀로그램처럼 화려하게 펼쳐졌다.
일반적인 마법사들은 평생을 뒤져도 찾지 못할 비밀 통로의 위치가 붉은색 선으로 선명하게 그려져 있었다.
"따라오십시오. 진짜 '자원'이 어디에 묻혀 있는지 보여드릴 테니."
우리는 어두운 유적탑의 통로를 따라 빠르게 이동했다.
미카엘라는 검 자루를 쥔 채 내 뒤를 묵묵히 따랐다.
그녀의 걸음걸이에는 아까와는 다른 기묘한 긴장감과 신뢰가 공존하고 있었다.
이윽고 도달한 곳은 어스름한 빛조차 닿지 않는 유적탑 1층의 한구석.
무너진 돌무더기와 이끼로 뒤덮인 낡은 제단이 우리를 맞이했다.
"여긴 이미 수백 번은 탐색이 끝난 폐허다. 아카데미 탐사대도 아무것도 없다고 결론 내린 곳인데?"
미카엘라가 의구심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
"원래 진짜 보물은 멍청이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법입니다."
나는 제단 앞으로 다가갔다.
돌판 표면에는 기괴한 형태의 고대 문자가 음각되어 있었다.
이것이 바로 내가 1화에서 발견해 둔 맹점.
시간 왜곡 장치의 리셋 오류가 발생하는 특이점, '오블리비언 블록'이다.
[위키 정보 개변 요청] - 대상: 오블리비언 블록의 인과율 - 개변 내용: 고대 문자의 인과 오류를 강제로 폭주시켜, 정화 장치를 기동하고 숨겨진 유물 보관소를 개방한다.
[개변 예상 비용: 10골드]
[특수 조건 감지: '오블리비언 블록'의 존재를 미리 파악하고 있음.]
[리셋 오류 맹점 악용으로 인해 등가교환 비용이 50% 할인됩니다!]
[최종 비용: 5골드]
달콤한 시스템 알림음이 머릿속을 울렸다.
역시 고인물의 꼼수는 언제나 옳다.
정보를 미리 선점해 둔 덕에 마력 오염 변이치를 올리지 않고도 저렴하게 인과를 개변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주머니에서 번쩍이는 제국 금화 5닢을 꺼내 제단 홈에 밀어 넣었다.
짤랑—!
금화가 홈에 들어맞는 순간, 제단 전체가 미세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뭐, 무슨 짓을 한 거지?!"
미카엘라가 놀라 검을 반쯤 뽑아 들었다.
"가만히 계십시오. 돈이 일하는 소리니까요."
돌판에 새겨진 고대 문자들이 푸른색 빛을 발하며 회전하기 시작했다.
스르릉—!
쿠르르릉!
제단 뒤편의 거대한 석벽이 양옆으로 갈라지며, 그 너머로 한 번도 개척되지 않은 비밀 통로가 모습을 드러냈다.
통로 내부에서 흘러나오는 것은 마력을 정화하는 상쾌한 바람이었다.
그리고 그 바람을 타고, 황금빛 광채가 우리 눈을 가득 채웠다.
"이건……!"
미카엘라의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통로 안쪽의 석대에 가득 쌓여 있는 것은, 고대 제국 시대의 황금 주화들이었다.
최소 수백 골드는 가뿐히 넘어 보이는 엄청난 양의 보물.
"아카데미는 낙제생들이 쓸모없다며 지하로 밀어 넣고 죽어가게 만들었죠."
나는 통로 안으로 걸어가며 차갑게 읊조렸다.
"하지만 그들이 죽어 나간 진짜 이유는 마력 부족이 아닙니다."
나는 석대 옆에 설치된 거대한 구리 관을 가리켰다.
그 관을 통해 낙제생들이 노역을 하며 흘린 피와 마력이, 아카데미 상부의 마도 장치로 고스란히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낙제자 가혹 패널티 법안의 실체는 기득권의 배를 불리기 위한 '합법적 생명력 착취'입니다."
미카엘라의 얼굴이 다시 한번 경악으로 물들었다.
"우리가 낸 마력과 생명이…… 베르네 교수의 개인 연구와 기득권의 유지비로 쓰이고 있었다고?"
"예. 그리고 저기 쌓인 고대 주화들은, 그 착취를 은폐하기 위해 유적의 정화 기능을 고의로 정지시켜 둔 결과물이죠."
나는 고대 주화 한 움큼을 집어 들며 미카엘라를 돌아보았다.
"이제 현실이 좀 보이십니까? 브로이 영애."
그녀는 멍하니 고대 주화와 마력 흡수 관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자신이 믿어왔던 세상의 정의가 완전히 무너져 내리는 순간이었다.
그녀는 천천히 내 앞으로 다가와, 한쪽 무릎을 꿇었다.
"에단 리드. 내 검을 너에게 빌려주겠다. 가문을 구하고, 이 위선자들의 대가리를 깨부술 수만 있다면…… 기꺼이 네 사냥개가 되지."
[주요 인물 '미카엘라 드 브로이'와 임시 동맹 계약이 체결되었습니다.]
[인과율 안정도가 95%로 대폭 상승합니다!]
[마력 오염 변이치 제어 능력이 강화됩니다.]
머릿속에 울리는 유쾌한 알림음과 함께, 나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첫 번째 방패막이이자 강력한 딜러를 포섭하는 데 성공했다.
이제 이 막대한 자금을 회수해서 지상으로 올라가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세상은 그리 만만한 곳이 아니었다.
우리가 보물을 챙기려던 바로 그 순간.
통로 깊은 곳, '붉은 이끼 지대'라 불리는 금단의 구역 방향에서 기괴한 소음이 들려왔다.
쉬이이익—!
붉은빛을 띠는 끈적하고 기분 나쁜 안개가, 통로 바닥을 타고 무서운 속도로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에단! 저 안개는……!"
미카엘라가 급히 검을 뽑아 들며 소리쳤다.
"치명적인 맹독입니다. 닿는 순간 마력이 부패하죠."
나는 혀를 찼다.
안개는 순식간에 우리가 들어온 비밀 통로 입구까지 뒤덮으며, 우리의 유일한 퇴로를 완벽하게 차단해 버렸다.
치이이익—!
안개가 닿은 석벽이 녹아내리는 소리가 동굴 안에 불길하게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