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러운 쥐새끼들, 내일 새벽 지하 3층까지 전원 영구 정화 소탕한다."
슬럼가 벽면에 매달린 녹슨 마법 스피커가 찢어지는 고음을 토해냈다.
아드리안 베르네 교수.
그 질서 결벽증 말기 환자의 목소리가 지하 광장 전체를 차갑게 얼려 버렸다.
"들었느냐, 에단 리드."
세레나 폰 하르트가 서늘한 미소를 지으며 검자루를 매만졌다.
"베르네 교수님의 인내심은 끝났다. 너희 같은 오염물질들은 내일 새벽이 오기 전에 전부 마력로의 연료로 정제될 것이다."
"와, 진짜 무섭네. 오줌 지리겠어, 수석님."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귓구멍을 파는 시늉을 했다.
겉으로는 태연한 척 연기 대상 감정 조절을 시전 중이었지만, 내 눈앞의 상황은 전혀 태연하지 않았다.
[!!초비상 경고!!] [예상치 못한 인과율 왜곡 변수 발생!] [베르네 교수가 지하 3층의 '봉인된 시간 왜곡 마도 병기'를 가동했습니다!] [정화 소탕 작전의 시간이 강제로 단축됩니다!] [남은 시간: 09분 54초!]
내일 새벽이라던 소탕 작전이 10분 뒤로 당겨졌다.
미래 정보를 비틀어 대가를 치르게 하려는 세계의 억지력, '플레로마'의 장난질이 분명했다.
"에단! 저 여자의 아티팩트가 반응하고 있어!"
미카엘라가 허리춤의 대검을 뽑아 들며 내 앞을 가로막았다.
그녀의 시선이 세레나의 목덜미에서 붉게 빛나는 목걸이, '치천사의 눈물'에 가닿았다.
[위키 정보 검색 가동: '치천사의 눈물'] [스캔 결과: 해당 아티팩트 내부의 은밀한 각도 균열 감지.] [특이 사항: 미세한 공명 주파수 불일치 존재. 현재 저격 성공률 12%.]
'저건 나중에 깨부수면 되고, 지금 급한 건 10분 뒤에 들이닥칠 저 백골의 법률 수호단 놈들인데.'
베르네의 친위대인 수호단이 들이닥치면 아무리 나라도 슬럼가 인원들을 데리고 무사할 수 없다.
결국 답은 하나뿐이었다.
'정밀 공략 위키'의 인과율 개변 권능을 사용하는 것.
문제는 수수료가 자비 없다는 점이었다.
[인과율 개변 퀘스트 생성 완료!] [목표: 베르네 교수의 소탕 부대 진입 법적 근거 무효화 및 소탕 중지] [소모 비용: 제국 금화 600골드] [마력 오염 변이치 상승률: +40%] [현재 보유 골드: 412골드 / 현재 마력 오염 변이치: 42%]
"장난하냐? 돈도 모자라는데 오염치 82%면 바로 세계관 보스 몹 판정 뜨잖아."
이대로라면 개변을 시도하기도 전에 억지력에 대가리가 깨질 판이었다.
하지만 나는 수천 번 이 게임을 플레이한 썩은물 중의 썩은물.
이런 악랄한 과금 유도 시스템을 순순히 따라줄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펠릭스가 준비해 둔 판돈이 있고, 내 대가리 속에 썩어 넘치는 버그 리포트가 있지."
나는 씨익 웃으며 머릿속으로 시스템의 맹점을 파고들었다.
체펠린 지하 유적탑 1층.
그 구석진 곳에 방치된, 붕괴된 제단에 새겨진 고대 문자 리셋 오류.
일명 '오블리비언 블록(Oblivion Block)'.
그것은 시스템의 임시 캐시 메모리를 강제로 초기화하여 인과율 왜곡 로그를 세척해 주는 고대 신들의 코딩 실수였다.
"위키 상태창, 오블리비언 블록 연계 경로 활성화. 현재 좌표의 인과 왜곡 데이터를 1층 제단의 소거 영역으로 강제 우회한다."
[……!] [시스템 내부 정합성 검증 중…….] [경로 확인 완료! 우회 적용 성공!] [오블리비언 블록의 간섭으로 인과율 개변 비용이 50% 감쇄됩니다!] [최종 소모 비용: 제국 금화 300골드] [마력 오염 변이치 상승률: +20%]
"그렇지! 이게 바로 고인물의 정석 할인 혜택이지!"
나는 소리 없이 쾌재를 불렀다.
300골드라면 현재 보유한 자금으로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액수였다.
"300골드 즉시 지불. 개변을 확정한다."
[300골드가 시스템 제물로 바쳐졌습니다.] [마력 오염 변이치가 62%로 상승합니다. (경고: 80% 초과 시 위험 단계 진입)] [인과율 개변 가동: '제국 연합 감찰단 소환 및 소탕령 법적 분쇄' 루트가 활성화됩니다.]
쿠구구구궁-!
지하 3층의 심연에서 뿜어져 나오던 진동이 돌연 뚝 끊겼다.
"……어라?"
승리를 확신하며 검을 겨누고 있던 세레나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녀의 귀에 꽂힌 전령 마도구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기 때문이다.
- 세, 세레나 님! 큰일났습니다! 지상 정문으로 제국 연합 감찰단이……!
콰아아앙-!
지하 2층과 3층을 잇는 철문이 마력 폭발과 함께 산산조각 나며 튕겨 나갔다.
자욱한 먼지 구덩이 사이로, 제국의 황금 사자 문양이 새겨진 제복을 입은 사내들이 들이닥쳤다.
그 중심에 서 있는 자는 제국 연합 감찰장관, 헨리크였다.
"모든 무장을 해제하고 제자리에서 대기하라! 제국 감찰법 제12조에 의거, 이곳의 모든 군사 행동을 일시 중단한다!"
헨리크의 벼락같은 고함에 세레나의 정예병들이 멈칫하며 검 끝을 내렸다.
"감찰장관님? 이게 무슨 무례입니까!"
세레나가 차갑게 쏘아붙였다.
"이곳은 로얄 판테온 아카데미의 자치령입니다! 현인단의 수장이신 베르네 교수님의 사법권이 미치는 곳이란 말입니다!"
"자치령?"
감찰장관의 뒤에서 낯익은 실루엣이 걸어 나왔다.
단정하게 빗어 넘긴 머리에 장사꾼 특유의 능글맞은 미소를 지은 사내.
내 든든한 자금줄이자 동업자, 펠릭스 발트였다.
"세레나 님, 자치권이라는 건 제국의 헌법을 준수할 때나 보장받는 특권이랍니다."
펠릭스가 품에서 두꺼운 가죽 장부와 제국 황실의 인장이 찍힌 기소장을 꺼내 들어 올렸다.
"여기에 아주 재밌는 숫자들이 가득하거든요."
"그게 무슨……."
세레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들어갔다.
"베르네 교수가 지난 5년간 낙제생 소탕 및 유적 정화라는 명목으로 청구한 국고 지원금 12,000골드."
펠릭스가 장부를 펄럭이며 낭독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실제 정화 작업에 소모된 비용은 단 2,000골드에 불과하더군요? 나머지 10,000골드는 어디로 갔을까요?"
"……!"
"여기, 베르네 교수의 개인 비밀 금고와 연계된 유령 상단의 은밀한 금융 누락 보고서가 있습니다. 제국 특별세 탈루 정합성 오류가 아주 예술적으로 박혀 있더군요."
펠릭스가 5화에서 가문 내부의 정보망을 털어 확보해 왔던 바로 그 '치명적인 약점'이었다.
내가 위키의 인과 개변으로 감찰단의 발걸음을 이곳으로 강제 유도했고, 펠릭스가 그 증거를 감찰장관의 눈앞에 들이민 것이다.
"제국 세법 위반, 국가 공금 횡령, 그리고……."
감찰장관 헨리크가 기소장을 세레나의 코앞에 들이밀었다.
"낙제생들을 마력 전력원으로 불법 개조하여 소모품으로 사용한 '도덕적 살인' 및 '인체 연금술 금지령 위반' 혐의다."
"말도 안 돼! 그건 아카데미의 발전을 위한 합리적인……!"
"입 다물어라, 하르트 영애!"
장관의 일갈이 지하 통로를 울렸다.
"제국법 위에 군림하려 드는 오만은 거기까지다. 아드리안 베르네는 현재 지하 3층에서 우리 감찰단 정예 병력에 의해 마력이 봉인된 채 체포되었다."
치지지직-!
스피커 너머로 베르네 교수의 다급한 비명이 흘러나왔다.
"이, 이건 음해다! 제국의 미래와 질서를 위한 필연적인 소모(마진)일 뿐이거늘! 감히 나를 손대려 드느냐-!"
툭.
소리와 함께 베르네의 통신이 완전히 끊겼다.
동시에 슬럼가를 뒤흔들던 시간 왜곡 병기의 기계음도 거짓말처럼 멈추어 섰다.
"와우."
나는 입을 쩍 벌리며 박수를 쳤다.
"정의는 살아 있네요, 장관님. 저런 파렴치한 세금 도둑놈이 아카데미의 최고 엘리트인 척 거드름을 피웠다니, 정말 끔찍합니다."
세레나는 몸을 부르르 떨며 나를 노려보았다.
그녀의 눈빛은 당장이라도 나를 찢어 죽이고 싶어 안달이 나 있었다.
하지만 이미 승패는 정해졌다.
학원 사법권은 완전히 정지되었고, 베르네의 소탕령은 한 장의 기소장에 의해 먼지처럼 사라졌다.
"이로써 지하 유적의 독점적 상업 권한과 슬럼가의 영유권은……."
나는 허공에 떠 있는 붉은 계약서를 손가락으로 튕겼다.
"현인단의 서명이 들어간 이 문서대로, 공식적으로 내 소유가 되겠네? 안 그래, 수석님?"
"에단 리드……! 너, 너 이 비열한 쥐새끼가……!"
세레나의 고결하던 얼굴이 흙빛으로 일그러졌다.
그녀가 쌓아 올린 완벽한 엘리트로서의 명예, 후계자로서의 미래가 단 한순간에 시궁창으로 처박힌 것이다.
감찰관들이 그녀의 양옆으로 다가섰다.
"하르트 영애, 당신 역시 베르네 교수의 공범 혐의로 임시 구금해 조사하겠다. 무기를 내려놓아라."
"싫어."
세레나의 입술 사이로 소름 끼치도록 가라앉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녀의 눈동자가 서서히 핏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내가 왜? 저런 낙제생 벌레들의 농간에 내가 왜 무릎을 꿇어야 하지?"
세레나가 품속에서 검붉은 액체가 담긴 유리병을 꺼내 들었다.
그 병 안에서 꿈틀거리는 불길한 마력은, 아카데미 금기 서고에나 봉인되어 있을 법한 '광폭화 저주 비약'이었다.
"에단 리드…… 너만큼은 내 손으로 찢어 죽이겠다."
그녀가 망설임 없이 병의 마개를 따고, 붉은 입술 사이로 그 저주받은 액체를 단숨에 들이켜기 시작했다.
꾸르륵, 쿠구구구궁-!
그녀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력이 대기를 찢어발기며 폭발적인 기세로 팽창하기 시작했다.
"크아아아악!"
세레나의 목구멍에서 찢어지는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녀의 등 뒤로 뿜어져 나온 마력이 칠흑 같은 날개의 형상으로 요동쳤다.
"이, 무슨……! 현인단의 수석이 심연의 저주를 받아들이다니!"
감찰장관 헨리크가 경악하며 뒤로 물러섰다.
그의 호위 기사들이 방패를 세웠지만, 세레나의 발끝에서 시작된 충격파 한 방에 사방으로 날아갔다.
쿠웅! 쿠구궁!
지하 슬럼가의 천장에서 흙먼지와 돌가루가 폭포처럼 쏟아졌다.
"완전 미쳐 돌아가는구만. 수석이라는 년이 마약 사범으로 전직을 하네?"
나는 혀를 차며 품속에서 싸구려 마력 촉매석 하나를 꺼내 들었다.
[!!경고!!] [대상 '세레나 폰 하르트'의 마력 출력이 통제 불가능한 수준으로 폭주합니다!] [위험도: 극대(S)]
"에단, 위험해! 내 뒤로 숨어!"
미카엘라가 검기를 끌어올리며 내 앞을 굳건히 막아섰다.
그녀의 어깨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상대의 힘이 상식을 초월했다는 걸 본능적으로 직감한 모양이었다.
"미카엘라, 정면 승부는 사양이야. 저 년은 지금 버그 판 캐릭터 유저라고."
나는 미카엘라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속삭였다.
"내가 신호를 주면, 세레나의 왼쪽 45도 방향으로 검풍을 날려. 아주 약하게, 툭 치듯이."
"어……? 그게 무슨 소리야?"
"고인물의 꿀팁이니까 그냥 믿어."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세레나의 목덜미를 응시했다.
붉게 타오르는 '치천사의 눈물'.
광폭화 마력이 억지로 주입되자, 아티팩트 내부의 미세한 각도 균열이 붉은 광선처럼 도드라져 보였다.
[위키 정보 분석 업데이트] [아티팩트 '치천사의 눈물' 공명 주파수 오차 범위 축소!] [현재 주파수: 443Hz (일치율 92%)] [임시 공명 저격 성공률: 78%]
'지금이다.'
"지금이야, 미카엘라! 왼쪽 45도 방향, 가볍게 날려!"
내 외침과 동시에 미카엘라의 대검이 호를 그렸다.
파앗-!
푸른 검기가 허공을 가르며 세레나의 왼쪽 어깨 부근을 스쳐 지나갔다.
아무런 타격도 주지 못할 것 같던 그 미약한 검기가, 내가 미리 던져둔 싸구려 마력 촉매석과 부딪쳐 기묘한 굴절을 일으켰다.
삐이이이이이이이익-!
지하 광장 전체를 찢어발기는 듯한 초고주파의 파열음이 발생했다.
"아, 아아아악?!"
세레나가 갑자기 귀를 틀어쥐며 비명을 질렀다.
그녀의 목에 걸린 '치천사의 눈물'이 미친 듯이 진동하며 그녀의 폭주하는 마력을 역방향으로 꼬아버린 것이다.
[크리티컬 카운터 발생!] [아티팩트 내부 균열과 저격 주파수가 공명합니다!] [폭주 마력이 역류하여 대상의 마나 회로를 강타합니다!]
콰과과광-!
세레나의 등 뒤에서 돋아나던 칠흑의 마력 날개가 그대로 폭발했다.
그녀 자신의 힘에 휩쓸려, 세레나는 그대로 뒤로 날아가 벽면에 처박혔다.
"컥, 끄흑……!"
입가로 검은 피를 흘리며, 세레나는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단 한 번의 가벼운 검기 유도로 자신의 폭주를 자멸로 이끌어내다니.
그녀의 천재적인 두뇌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의 기술이었다.
"넌…… 대체 뭐 하는 괴물이냐…… 에단 리드……!"
"그냥 평범한 낙제생인데? 공부보다는 게임 공략을 좀 더 잘할 뿐이지."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녀의 목에 걸린 '치천사의 눈물'은 표면에 미세한 실금이 간 채 불길하게 깜빡이고 있었다.
'완전히 깨뜨리진 못했지만, 저 정도 균열이면 다음 대결에선 손가락 튕기기만 해도 박살 나겠군.'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때, 감찰장관 헨리크가 정신을 차리고 소리쳤다.
"저, 저 반역자를 구속하라! 금기 비약을 복용하고 감찰단에 무력 저항을 시도했다!"
"넷!"
호위 기사들이 우르르 달려들어 세레나의 팔다리에 마력 억제 수갑을 채웠다.
마력이 차단되자 세레나는 더 이상 저항하지 못하고 바닥에 쓰러졌다.
그녀의 눈빛은 완전히 초점을 잃은 채, 오직 나만을 사납게 저주하고 있었다.
"끌고 가라!"
감찰단의 지휘 아래, 베르네 교수의 친위대와 수석 세레나가 차례로 압송되기 시작했다.
지하 슬럼가의 낙제생들이 그 광경을 보며 멍하니 입을 벌렸다.
언제나 자신들을 벌레처럼 짓밟고 가치 없는 소모품으로 부리던 아카데미의 절대 권력자들.
그들이 단 한 명의 낙제생, 에단 리드의 손끝에서 놀아나며 처참하게 몰락한 것이다.
"와아아아아아아!"
"에단! 에단! 에단!"
누군가의 선창을 시작으로, 슬럼가 전체가 떠나갈 듯한 환호성으로 가득 찼다.
[퀘스트 완료: '제국 연합 감찰단 소환 및 소탕령 법적 분쇄'] [보상 획득: 지하 유적 1, 2층의 공식 상업 독점권 및 슬럼가 영유권 획득!] [슬럼가 주민들의 신뢰도가 '숭배' 단계로 격상됩니다!] [아카데미 내부 기여도가 폭발적으로 상승합니다!]
"후우, 드디어 영지 하나 꽁짜로 챙겼네."
나는 밀려드는 시스템 메시지를 보며 만족스럽게 입꼬리를 올렸다.
이제 이 지하 슬럼가와 유적 상층부는 완벽한 내 사유지나 다름없었다.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안락한 안전지대(세이프 하우스)의 첫 단추를 꿴 셈이다.
펠릭스가 다가와 내 어깨를 툭 쳤다.
"대단하군, 에단. 이 정도로 완벽하게 판을 뒤집을 줄은 몰랐어. 이제 이 유적에서 나올 고순도 광물들은 전부 우리 상단이 독점하게 되겠군."
"당연하지. 약속대로 지분은 철저하게 나누자고, 파트너."
나는 펠릭스와 가볍게 악수를 나누며 미소 지었다.
겉으로는 사교적인 동업자의 미소를 띠고 있었지만, 머릿속은 이미 다음 단계의 변수 통제를 위해 굴러가고 있었다.
'아드리안 베르네가 순순히 잡혀갔다고 해서 끝난 게 아니야.'
그 질서 결벽증 노인네는 지하 3층의 '진짜 핵심'을 쥐고 있다.
지하 3층의 전력 핵.
그리고 그곳에 장치된 인과 자폭 장치.
그것을 완전히 무력화하고 유적의 통제권을 찬탈하기 전까지는 마음을 놓을 수 없다.
"미카엘라, 장비 챙겨."
내가 나직하게 말하자, 대검을 거두던 미카엘라가 고개를 갸웃했다.
"응? 이제 상황이 정리된 거 아니야?"
"정리는 무슨. 이제 겨우 튜토리얼 끝났어."
나는 지하 3층으로 이어지는 어두운 통로를 응시했다.
"진짜 레이드는 지금부터다."
그때였다.
멀어져 가던 감찰단의 압송 행렬 쪽에서, 기괴한 마력의 파동이 다시 한번 대지를 흔들었다.
쿠구구구구궁-!
이번에는 세레나의 마력이 아니었다.
지하 3층, 더 깊은 심연의 바닥에서부터 뿜어져 나오는 극도의 이질적인 마력.
그것은 세계의 억지력, '플레로마'가 작동하는 소리였다.
[!!초비상 주시 경고!!] [세계의 억지력이 감지되었습니다!] [체포된 아드리안 베르네의 생체 신호 급변!] [베르네 교수가 감수 중인 마력 밀도를 강제로 폭주시켜 '인과 자폭 장치'의 카운트다운을 가동했습니다!] [남은 시간: 180초!]
"……하, 이 영감탱이가 진짜 곱게 안 가네."
내 이마에 굵은 힘줄이 돋아났다.
장관에게 붙잡혀 가던 베르네가, 자신의 파멸을 직감하고 유적 전체를 날려버릴 자폭 스위치를 눌러버린 것이다.
[경고: 인과 자폭 작동 시, 아카데미 상층부를 포함한 반경 10km 일대가 소멸합니다.] [인과율 개변에 필요한 최소 비용: 제국 금화 500골드]
"500골드라고? 지금 나한테 남은 건 112골드뿐인데?!"
내 눈앞의 상태창이 붉은빛으로 미친 듯이 점멸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순간, 내 불신증을 자극하는 차가운 시스템의 알림이 귓가를 때렸다.
[히든 퀘스트 발생: '절대자의 영지 찬탈'] [제한 시간 내에 베르네를 저지하고 자폭 장치를 골드로 완전히 지워버리지 못할 경우, 당신은 '세계의 파멸을 부른 보스 몬스터'로 판정되어 즉시 처단 대상이 됩니다.]
180초.
그 짧은 시간 안에 나는 388골드를 추가로 확보하고 지하 3층의 전력 핵까지 도달해야만 했다.
나는 고개를 돌려 펠릭스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펠릭스. 너 지금 당장 융통할 수 있는 현금이 얼마나 되지?"
내 눈빛에 담긴 극도의 강박과 살기에, 철저한 실리주의자인 펠릭스조차 침을 꼴깍 삼키며 한 걸음 물러섰다.
"어, 어……? 갑자기 그건 왜……?"
"대답해. 아카데미가 날아가느냐, 네가 대륙 최고의 부자가 되느냐가 지금 네 대답에 달렸으니까."
시간은 멈추지 않고 흘러가고 있었다.
175초, 174초, 173초…….
내 인생 가장 완벽한 천재의 해피엔딩이, 이 미친 노인네의 자폭 기믹 하나에 통째로 날아갈 위기에 처해 있었다.
나는 이빨을 드드득 갈며 지하 3층의 어둠 속으로 몸을 날렸다.
"베르네, 이 틀딱 영감탱이…… 잡히면 가죽을 벗겨주마."
그때, 내 눈앞의 상태창에 전혀 예상치 못한 제3의 경고음이 울려 퍼졌다.
[!!돌발 변수 감지!!] [아드리안 베르네의 영혼이 '심연의 마도 병기'와 완전히 동기화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인과 개변에 필요한 금화 수수료가 매초 10골드씩 상승합니다!]
"……뭐라고?!"
지옥 같은 할증 시스템이 가동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