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쿠구구구구궁-!

지하 2층의 방벽 전체가 찢어지는 듯한 비명을 지르며 요동치기 시작했다.

단순한 지동이 아니었다.

지그시 밟고 선 석판 너머로, 눅눅한 철 가루와 함께 고대 마력의 역겨운 비린내가 사방으로 진동했다.

"에단, 물러서! 이건 평범한 고철덩어리가 아니야!"

미카엘라가 허리춤에서 거대한 대검을 뽑아 들며 소리쳤다.

그녀의 단단한 구둣발이 바닥을 굳게 디뎠지만, 대검 끝은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사방의 어둠 속에서 번뜩이는 안광이 무려 50쌍에 달했기 때문이다.

"지, 진짜로 기동하는 건가? 이 고대 괴물들이 전부 다?"

펠릭스가 가죽 주머니를 품에 꼭 안은 채 이빨을 딱딱 마주쳤다.

그의 이마에서 흘러내린 식은땀이 촉마석의 푸른 빛을 받아 기괴하게 반짝였다.

철컥, 철컥, 스우우우웅-!

붉은 낙인이 피를 흘리듯 타오르며 '낙제 처분 군 격리 파수기'들이 일제히 고개를 쳐들었다.

3미터가 넘는 거구의 강철 인형들이 뿜어내는 마력의 압박감은 공간 전체를 짓누르기에 충분했다.

[경고!] [아카데미 지도교수단의 강제 기동 명령이 감찰대 네트워크를 통해 수신되었습니다!] [식별 코드 분석: 타깃 '에단 리드' 및 지하 낙제생 전원. 즉시 말살 모드 가동!]

어둠 속을 가득 채운 붉은 안광이 일제히 내 몸에 고정되었다.

심장이 쿵쾅거리는 소리가 귓가를 때렸지만, 내 입꼬리는 오히려 비틀려 올라갔다.

"말살 모드라고? 베르네 교수, 여전히 머리 굴리는 수준이 1차원적이군."

실패에 대한 결벽증적인 강박이 내 뇌리를 스쳤다.

이 상황에서 내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의 수는 단 하나뿐이었다.

정면 돌파.

그것도 저들이 자랑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를 통째로 빼앗아서 돌려주는 것.

나는 천천히 걸음을 옮겨 가장 거대한 중앙 파수기의 제어반 앞으로 다가갔다.

"에단! 미쳤어? 거긴 자폭 마법진이 흐르는 핵심 구역이야!"

미카엘라가 비명을 지르듯 외치며 내 옷자락을 붙잡으려 했다.

"가만히 있어, 미카엘라. 판돈을 키울 시간이니까."

나는 그녀의 손을 부드럽게 떼어내고, 거친 철제 제어반 위에 내 손바닥을 얹었다.

그와 동시에 내 시야에 화려한 홀로그램 텍스트들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다.

스르륵-!

['정밀 공략 위키 상태창'이 활성화됩니다.] [대상: 고대 체펠린식 자율형 격리 파수기 (중앙 제어형)] [구조 분석: 아카데미 교수단이 심어둔 백도어 코드 '처분 낙인'이 마력 흐름을 강제 왜곡 중.]

"역시나."

내 예상이 정확히 들어맞았다.

베르네 교수는 이 고대 병기들을 순수한 마력으로 다루는 게 아니었다.

낙제생들의 숨통을 끊기 위해, 그들의 마력 파장을 역추적하는 비열한 추적용 낙인을 억지로 덧씌워둔 상태였다.

"그렇다면 해킹의 난이도는 급격히 내려가지."

나는 마음속으로 상태창의 인과율 조정 퀘스트를 호출했다.

[인과율 개변 퀘스트 생성!] [목표: 파수기 무리의 피아식별 주파수를 역추적하여, 아카데미 감찰대를 적으로 인식하도록 정밀 위도 개량.] [경고: 고대 마도 병기의 코어를 강제로 해킹하는 행위는 인과율의 극심한 반발을 불러옵니다!] [개변 대가: 제국 금화 80골드 소모. 또는 '마력 오염 변이치' 90% 폭증!]

"80골드라니, 날강도 같은 시스템 놈들."

내 지갑 사정을 뻔히 알면서 저딴 허무맹랑한 액수를 부르다니.

아무리 펠릭스가 돈을 잘 벌어온다 한들, 한 번에 80골드는 평민 백여 가구의 일 년 생활비에 달하는 거금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이 살인적인 인과율 비용을 후려칠 '할인 쿠폰'이 있었다.

내 머릿속에서 오래전 기록해 두었던 기억의 단편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체펠린 지하 유적탑 1층, 그 흐트러진 돌무더기 속에 버려진 채 방치되어 있던 붕괴된 제단.

거기에 새겨진 고대 문자의 기하학적 오류를 나는 이미 위키를 통해 정밀 스캔해 두었었다.

"오블리비언 블록(Oblivion Block) 기동."

내가 나지막이 읊조리자, 내 마력 회로의 일부가 기괴하게 뒤틀리기 시작했다.

[특수 복선 키워드 감지: '오블리비언 블록'의 고대 문자 리셋 오류를 호출합니다!] [인과율 연산 장치에 정합성 오류가 발생합니다!] [시스템이 일시적인 논리적 모순 상태에 빠져듭니다!] [경이적인 꼼수! 개변 비용이 즉시 50% 할인됩니다!]

"그렇지. 이래야 고인물 공략이지."

[최종 요구치 조정: '마력 오염 변이치' 45% 폭증!]

비용이 절반으로 깎였다.

하지만 여전히 내 영혼을 통째로 오염시킬 수 있는 치명적인 수치였다.

"에단! 얼굴이...!"

미카엘라가 검을 든 채 경악어린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내 목덜미와 뺨을 타고 검붉은 핏줄이 기괴하게 솟구치고 있었다.

마치 살아있는 벌레들이 피부 밑을 기어 다니는 듯한 끔찍한 감각이 내 온몸을 지배했다.

[마력 오염 변이치: 45% 폭증!] [현재 마력 오염 변이치: 48%] [경고! 세계의 억지력 '플레로마'가 당신의 존재를 주시하기 시작합니다!] [환청과 환각이 시작됩니다. 이성을 유지하십시오!]

귓가에서 수천 명의 망자가 울부짖는 듯한 이명이 고막을 찢을 듯 울려 퍼졌다.

눈앞이 피비린내 나는 붉은색으로 물들고, 숨을 쉴 때마다 가슴이 타들어 가는 통증이 밀려왔다.

하지만 나는 멈추지 않았다.

제어반을 움켜쥔 손가락 끝에 마력을 더 강하게 밀어 넣었다.

"펠릭스... 당장...!"

목구멍을 타고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이미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쇠를 긁는 듯한 기괴한 소리에 펠릭스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뒤로 자빠질 뻔했다.

"도, 돈! 여기 있네! 자네가 말한 대로 광산에서 나온 첫 수익금을 전부 주화로 바꿨어!"

펠릭스가 품에서 터질 듯 빵빵한 가죽 자루를 내던지듯 나에게 바쳤다.

짤랑-!

묵직한 금속성의 소리가 지하의 소음을 뚫고 청아하게 울렸다.

그 안에는 우리 상단이 지하 광산에서 독점 채굴한 고순도 마석을 팔아 치워 만든 제국 주화가 가득했다.

정확히 40골드.

평민 수십 가구가 평생을 만져보지도 못할 거대한 자본의 덩어리였다.

나는 주저 없이 그 가죽 자루를 낚아채 제어반의 마력 흡수구에 처박았다.

"시스템, 전부 처먹어라."

스우우우웅-!

주머니가 제어반에 닿는 순간, 황금빛 마력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치며 금화들을 통째로 분해하기 시작했다.

물질이 순수한 인과의 에너지로 치환되는 경이로운 광경이었다.

[등가교환 법칙 가동!] [제국 금화 40골드가 완벽히 소모되었습니다.] [마력 오염 변이치 정화 프로세스를 개시합니다.] [치이이이익-!]

내 몸을 잠식하던 검붉은 핏줄들이 눈에 띄게 옅어지며 피부 밑으로 가라앉았다.

머리를 쪼갤 것 같던 환청이 조용히 가라앉고, 타들어 가던 허파가 다시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셨다.

[마력 오염 변이치 45% 감소!] [현재 마력 오염 변이치: 3%. 안전 수준으로 복구되었습니다.]

"하아... 죽는 줄 알았네."

나는 땀에 젖은 머리칼을 쓸어 올리며 차갑게 웃었다.

자본이 곧 힘이다.

이 냉혹한 금융적 등가교환이야말로 내가 이 세계를 지배할 완벽한 치트키였다.

그리고 그 순간, 내 손끝에서 시작된 푸른 광채가 50여 기의 파수기 전체로 번져나갔다.

위이이이잉-!

파수기들의 가슴팍에 새겨져 있던 붉은 '처분'의 낙인들이 순식간에 푸른색으로 변색되었다.

동시에 그들의 안광 역시 붉은색에서 차가운 사파이어 빛으로 일제히 전환되었다.

[해킹 완료!] [피아식별 주파수 재설정: '아드리안 베르네'의 각인을 지닌 모든 대상을 적으로 간주합니다.] [제어권이 '에단 리드'에게 완전히 귀속되었습니다.]

쿵-! 쿵-! 쿵-!

50여 기의 고대 파수기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으며 바닥을 울렸다.

그 거대한 철제 무릎이 꺾이는 소리는 마치 거인들이 신에게 경배를 올리는 듯한 장엄함을 연출했다.

"이, 이게 무슨..."

미카엘라가 대검을 쥔 채 턱을 쩍 벌렸다.

그녀의 눈동자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경악이 가득 차 있었다.

평생을 기사도와 마법의 정석만을 배워온 그녀에게, 돈과 꼼수로 고대 병기를 길들여 버리는 내 방식은 그야말로 상식의 파괴였으리라.

"내 말이 맞지? 펠릭스."

나는 펠릭스를 향해 가볍게 윙크를 던졌다.

"자, 자네는 진짜... 인간의 탈을 쓴 악마가 분명하네."

펠릭스가 가슴을 쓸어내리며 헛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그의 눈빛에는 두려움과 함께, 거대한 자본의 힘을 목격한 상인 특유의 광적인 흥분이 도사리고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콰아아앙-!

지하 2층의 봉인된 주 출입구가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산산조각이 나며 날아갔다.

자욱한 먼지 구덩이 속에서, 화려한 은색 갑옷을 입은 무리가 들이닥쳤다.

아카데미 지도교수단의 문양이 선명하게 새겨진 깃발을 든 감찰대 선발대였다.

"낙제생 쓰레기들아! 법안에 따라 너희의 숨통을..."

선발대의 대장이 거만하게 소리치며 검을 치켜들었다.

하지만 그의 외침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먼지가 걷히며 드러난 지하 2층의 내부 풍경을 본 그의 얼굴이 순식간에 흙빛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어, 어라...?"

그들의 눈앞에 있는 것은 공포에 질려 울부짖는 낙제생들이 아니었다.

푸른 안광을 번뜩이며, 거대한 철제 병기를 거느린 채 자신들을 내려다보고 있는 한 남자의 실루엣이었다.

"돌격하느라 고생이 많았다, 교수단의 개들아."

내가 손가락을 가볍게 튕겼다.

"포격해."

쿠구구구구궁-!

50여 기의 파수기들이 일제히 상체를 회전시키며, 양팔의 거대한 포신을 감찰대를 향해 조준했다.

푸른 마력의 폭풍이 포구 끝에서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말, 말도 안 돼! 왜 파수기들이 저 낙제생 놈의 명령을...!"

감찰대 대장의 비명이 터져 나오기도 전에, 지옥의 포화가 대지를 갈랐다.

콰콰콰콰콰쾅-!

눈이 멀 것 같은 푸른 섬광이 지하 전체를 집어삼켰다.

감찰대 기사들이 자랑하던 은색 방패와 마법 장벽들이 종잇장처럼 찢겨 나가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단 한 번의 일제 포격으로, 오만하게 걸어 들어왔던 선발대는 처참하게 궤멸당했다.

"우, 와아아아아!"

"에단 리드가 해냈다!"

"지하의 지배자다!"

뒤편에서 숨죽여 지켜보고 있던 슬럼가의 낙제생들이 광적인 함성을 지르며 환호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눈빛에는 평생을 억압받아 온 자들의 처절한 희망이 깃들어 있었다.

이것이 바로 힘의 격상이다.

아카데미의 기득권들이 우리를 벌레처럼 밟으려 할 때, 우리는 그들의 가장 날카로운 이빨을 뽑아 목을 겨누었다.

"아직 끝난 게 아니야."

나는 연기가 피어오르는 파수기들 사이를 지나, 방금 격파당한 중앙 제어형 파수기의 잔해 앞으로 다가갔다.

고대 병기의 해킹은 완벽했지만, 내 결벽증적인 강박은 여전히 무언가 찝찝한 구석을 찾아내고 있었다.

베르네 교수가 이 거대한 병기들을 굳이 이곳에 배치해 둔 진짜 이유.

단순한 낙제생 소탕용이라고 하기에는, 마력의 흐름이 지나치게 기형적이었다.

나는 파수기의 가슴팍에 새겨진 푸른 낙인 문양의 틈새를 대검 끝으로 비틀어 열었다.

스르릉-!

강철 장갑이 벌어지며, 그 안에서 끈적한 검은 액체와 함께 정교한 기계 장치가 드러났다.

그리고 그 중심부, 붉게 타오르는 마력 코어 바로 옆에 낯선 마법 양식이 새겨진 양피지 한 장이 단단히 고정되어 있었다.

"이건..."

나는 양피지를 조심스럽게 꺼내 들어 빛에 비추어 보았다.

위키 상태창이 즉시 그 텍스트를 판독해 내 시야에 띄웠다.

[일급 기밀 문서 판독 완료.] [명칭: '낙제생 생명 흡수 제물 배전 구조'] [작성자: 아드리안 베르네] [내용: 체펠린 지하 유적의 고대 마력로를 가동하기 위해, 하위 90% 낙제생들의 생명력을 강제로 추출하여 지상으로 송전하는 마법 배선 설계도.]

내 눈동자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단순한 처벌이 아니었다.

이곳은 아카데미가 낙제생들을 인간 배터리로 쓰기 위해 만들어둔 거대한 도살장이었던 것이다.

"베르네 교수... 당신이 숨겨둔 가장 추악한 밑바닥을 드디어 잡았군."

내 가늘어진 눈매 사이로 잔혹한 미소가 흘러넘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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