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기 우측에 매달린 영수증 인출기가 비명을 지르듯 기괴한 기계음을 뱉어냈다. 동시에 편의점 내부의 파르스름한 형광등이 일제히 꺼지며, 축축하고 무거운 암흑이 사방을 짓눌렀다. 손끝에 닿는 어둠은 마치 점성 있는 액체처럼 끈적거렸고, 코끝을 찌르는 썩은 비린내가 가쁜 숨결을 따라 허파 깊숙이 들이쳤다. 민우는 떨리는 손으로 인출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종이를 움켜쥐었다. 종이 표면은 아직 마르지 않은 붉은 피로 질척였고, 손가락을 타고 흐르는 액체의 미끈거리는 감촉이 소름 끼치도록 차가웠다.
[야간 근무자 행동 수칙 (00:00 ~ 08:00)]
어둠 속에서도 기묘하게 안광을 발하는 검은 글씨들이 민우의 망막을 긁어내렸다.
- 1. 매장 내에서 쇠사슬을 끄는 듯한 마찰음이 들릴 경우, 즉시 즉석식품 매대에 있는 빈 알루미늄 캔을 음료 냉장고 방향으로 강하게 던지십시오.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시선이 쏠려야 당신이 안전합니다.
민우는 피가 뚝뚝 떨어지는 종이를 쥔 채, 어둠 속에서 낮게 실소했다. 대뇌 피질을 바늘로 찌르는 듯한 이염 통증이 잔존 사유 동기화의 여파로 가시지 않은 상태였다. 방금 전 뇌 속으로 흘러들어왔던 전임 근무자의 마지막 1분이 머릿속에서 축축한 뱀처럼 뺘아리를 틀었다. 전임자는 매뉴얼대로 빈 캔을 던졌고, 그 캔이 바닥에 부딪히며 자아낸 쨍그랑하는 금속음과 함께 목뼈가 으스러져 죽었다.
"던지라고?"
민우는 끈적이는 장갑을 낀 손으로 매대 위의 알루미늄 캔을 가볍게 쓰다듬었다. 차갑고 미끈거리는 금속의 감촉이 손끝을 타고 올라왔다. 매뉴얼은 완벽한 함정이었다. 캔이 바닥을 구르는 찰나의 마찰음은 괴물의 시선을 끄는 것이 아니라, 던진 인간의 정확한 좌표를 고주파 탐지기처럼 역추적하게 만드는 표식에 불과했다. 이 기괴한 공간은 근무자가 규칙을 맹신하고 공포에 질려 어설픈 행동을 취하도록 유도하고 있었다. 닭장 속의 닭무리가 모이통으로 달려갈 때 가장 먼저 목이 비틀어지듯 말이다.
민우의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갔다.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는 그의 해리된 감각은, 전임자의 끔찍한 죽음을 슬퍼하는 대신 철저한 데이터 조각으로 분해하여 재조립하고 있었다.
"소음이 문제라면, 아예 소리를 지워버리면 그만이다."
그는 소리 없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질척이는 바닥의 가래 같은 점액질을 피해, 창고 구석에 쌓여 있던 두꺼운 상자 박스들을 조용히 찢어 발겼다. 눅눅하게 젖은 골판지 조각들을 바닥에 촘촘히 깔아뭉개자, 발을 디딜 때마다 나던 찌걱거리는 기분 나쁜 소음이 완벽하게 차단되었다. 민우는 주방 세제 코너로 다가가 무색무취의 대용량 액체 세제를 집어 들었다. 마개를 열자 미끈거리는 점착성 유체들이 소리 없이 바닥에 흘러내려 거대한 유막을 형성했다.
스스스슥. 스슥.
어둠의 가장자리, 삼각김밥이 진열된 신선 코너 뒤편에서 불길한 마찰음이 시작되었다. 쇠사슬을 진흙 바닥에 끌고 가는 듯한 질척하고 무거운 진동이 편의점 바닥 뼈대를 따라 민우의 발바닥으로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공기 중의 수분이 급격히 얼어붙으며 살죽을 파고드는 축축한 한기를 뿜어냈다.
민우는 숨소리조차 죽인 채 계산대 아래로 몸을 숨겼다. 그의 눈동자는 어둠 속에서 기괴하게 번들거리는 형체를 똑바로 응시했다.
진열대 사이로 기어 나온 그것은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었으나, 관절의 마디마디가 역방향으로 꺾여 있었다. 뼈와 가죽이 쓸릴 때마다 스스스슥 하는 젖은 소리가 고막을 끈적하게 파고들었다. 괴물은 길게 늘어뜨린 머리칼을 바닥에 질질 끌며, 무언가를 찾는 듯 코를 킁킁거렸다. 괴물의 비정상적으로 비대해진 귀가 미세한 공기의 파동을 감지하려는 듯 펄럭였다. 사소한 숨소리 하나도 저 괴물의 청각을 자극해 목숨을 앗아갈 미끼가 될 터였다.
하지만 민우는 동요하지 않았다. 그는 미리 준비해 둔 긴 플라스틱 대걸레 자루 끝에 무거운 주방 세제 용기를 실로 묶어 두었다.
스슥, 슥.
괴물이 민우가 숨어 있는 계산대 부근으로 고개를 돌렸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괴물의 비정상적으로 찢어진 안구가 번들거렸다.
민우는 대걸레 자루를 아주 천천히, 공기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을 정도의 속도로 밀어냈다. 세제 용기가 바닥에 깔아둔 눅눅한 박스 위를 미끄러지며 소리 없이 전진했다. 소음은 전혀 발생하지 않았다. 오직 극도로 미세한 슬라이딩 소리만이 괴물의 예민한 고막을 아주 가늘게 자극했을 뿐이다.
괴물의 고개가 번쩍 들렸다. 놈은 날카로운 고주파 소음에는 폭발적인 공격성을 보이지만, 이처럼 지속적이고 둔탁한 저주파의 흐름에는 사냥감이 기어가는 소리로 착각하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전임자의 기억 속에서 추출해 낸 괴물의 행동 메커니즘이 정확히 들어맞는 순간이었다.
괴물이 길고 뒤틀린 다리를 뻗어 세제 용기가 밀려간 방향으로 느리게 발을 내딛기 시작했다.
철벅.
놈의 기괴한 발가락이 민우가 미리 넓게 도포해 둔 대용량 무소음 세제 유막 위를 밟았다. 미끈거리는 마찰 저항 제로의 영역. 중심을 잃은 괴물의 거대한 몸뚱이가 소리 없이 뒤흔들렸다. 놈은 균형을 잡기 위해 허공을 허우적거렸지만, 바닥은 이미 기름보다 더 끈적이고 미끄러운 액체로 뒤덮여 있었다.
스스슥, 쿵!
괴물은 미끄러지듯 진열장 사이의 좁고 깊은 틈새 안으로 처박혔다. 그곳은 민우가 미리 양옆의 철제 랙을 단단한 쇠사슬과 자물쇠로 고정해 둔, 폭이 30센티미터도 되지 않는 비좁은 철제 감옥이었다. 놈의 기괴한 상체가 억지로 끼어들어가며 콰직 하는 뼈 으스러지는 소리가 났지만, 무소음 세제 덕분에 비명조차 미끄러지듯 목구멍 속으로 기어들어 갔다.
민우는 틈새를 향해 다가가 철제 진열장 옆에 비치된 대형 고정 레버를 힘껏 당겼다.
끼이이익!
육중한 철제 매대가 바퀴를 굴리며 놈의 몸뚱이를 완전히 가두어 버렸다. 괴물은 진열장 사이에 끼인 채, 끈적이는 타액을 흘리며 기괴하게 몸을 비틀었으나 물리적 법칙을 거스를 수는 없었다. 억지로 벌려진 틈새 사이로 놈의 축축한 살점이 허옇게 터져 나왔지만, 두꺼운 소음 방지용 완충재를 덧댄 진열판 덕분에 매장 안은 기묘할 정도로 정적을 유지했다.
가장 안전해 보였던 매뉴얼의 조항을 완벽하게 역이용해, 이 지옥 같은 편의점의 포식자 중 하나를 고장 난 폐기물처럼 벽 사이에 박제해 버린 것이다.
"첫 번째 변수 통제 완료."
민우는 차갑게 읊조리며 이마에 맺힌 끈적한 식은땀을 닦아냈다. 그의 심장은 평온하게 뛰고 있었다. 타인의 죽음을 방관하고 오직 생존을 위한 논리 회로만을 가동한 결과였다.
그는 괴물이 갇힌 진열장 하단, 즉 폐기 식품 보관함 부근으로 시선을 돌렸다. 괴물이 갇히기 직전까지 집요하게 발톱으로 긁어대던 모퉁이였다. 무언가 촉이 온 민우는 질척이는 바닥에 무릎을 굽히고 앉았다. 보관함 하단의 검은색 플라스틱 판이 미세하게 들떠 있는 것이 보였다.
손가락 끝을 틈새에 밀어 넣자, 끈적이고 축축한 먼지가 손톱 사이에 끼어들었다.
우두둑.
힘을 주어 당기자 이중으로 덧대어져 있던 판이 뜯겨 나가며 어두운 구멍이 드러났다. 그 안에는 검게 그을린 타르 냄새와 함께, 절반쯤 파손된 구형 카세트테이프 녹음기가 처박혀 있었다. 외부 케이스는 무언가에 눌린 듯 찌그러져 있었고, 플라스틱 틈새로 정체불명의 마른 혈흔이 미끈거리며 묻어났다.
민우는 주저 없이 녹음기를 꺼내 주머니 깊숙이 찔러 넣었다. 이것이 이 기만적인 도살 기계의 진실을 밝혀줄 단서가 되리라.
그 순간, 머릿속이 쪼개질 듯한 격통이 다시 한번 덮쳐왔다.
"아아윽...!"
민우는 신음을 삼키며 바닥을 짚었다. 손가락 끝이 닿는 타일 바닥이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의 가죽처럼 꿈틀거리며 축축하게 젖어 드는 환각이 보였다. 골든핑거의 대가였다. 전임자의 기억을 강제로 대뇌에 동기화한 대가로, 그의 뇌세포 일부가 회생 불가능하게 괴사하고 있었다. 잔여 수명이 또다시 1시간 단축되었다는 서늘한 감각이 척수를 타고 내려왔다.
이제 자신에게 남은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리고 이 이계의 존재들은 갈수록 그의 물리적인 존재감을 더 선명하게 인지하기 시작할 것이다.
하지만 민우는 바지 주머니 속에 든 낡은 지갑을 만지작거렸다. 지갑 안에는 매일 신장 기능이 사멸해 가며 중환자실에서 호흡기에 연명하고 있는 동생 민지의 사진이 들어 있었다. 하루하루 썩어가는 동생의 몸뚱이를 살려낼 유일한 구명줄인 3억 원. 이 편의점의 주인이자 영혼을 수확하는 점장 '공허'가 제시한 그 돈을 가로채기 위해서라면, 제 수명이 깎여 나가든 다른 알바생들이 고깃덩이가 되든 상관없었다.
"버텨낸다. 일주일만."
민우는 스스로에게 각인을 새기듯 중얼거렸다. 그의 눈빛은 어둠 속에서도 한 치의 온기 없이 차갑게 식어 있었다. 편의점이라는 공간이 영혼을 마비시켜 도살하기 위해 정교하게 설계된 덫이라면, 자신은 그 이빨 사이를 걸어 나가 덫을 부수는 쥐가 될 것이다.
스스스... 슥...
벽 사이에 갇힌 괴물이 내는 기괴한 마찰음이 자장가처럼 매장에 울려 퍼졌다. 민우는 다시 계산대 뒤로 돌아가 포스기 화면을 매만졌다. 깜빡이는 파란 불빛만이 그의 무표정한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오전 2시 10분.
적막이 지배하던 매장 입구 쪽에서, 갑자기 찢어지는 듯한 고주파의 경보음이 길게 울려 퍼졌다.
띠이이이이이익-!
단순한 손님 방문 센서의 소리가 아니었다. 쇠붙이를 유리에 대고 긁는 듯한 날카로운 소음과 함께 편의점의 유리문이 요란하게 흔들렸다.
스르륵, 탁.
문이 열리며 밖에서부터 축축하고 검은 빗줄기가 매장 안으로 들이쳤다. 그리고 그 빗속을 뚫고, 노란색 비닐 우비를 머리끝까지 졸라맨 한 인물이 비틀거리며 매장 안으로 기어 들어왔다. 우비 자락에서는 정체불명의 검은 물방울들이 뚝뚝 떨어지며 바닥을 더럽혔다.
"살려... 살려주세요... 누가 좀..."
여자의 뚝뚝 끊기는 목소리는 극도의 공포로 인해 완전히 갈라져 있었다. 그녀는 뒤를 돌아보며 문을 잠그려 안간힘을 썼지만, 떨리는 손가락은 미끄러질 뿐이었다. 노란 우비 모자 틈새로 드러난 여자의 눈동자는 초점을 잃은 채 사방을 두리번거렸고, 그녀가 디딘 발자국마다 검고 질척이는 진흙 같은 액체가 고이기 시작했다.
민우는 계산대 뒤에서 팔짱을 낀 채, 새로 들어온 사냥감이자 위반 테스트용 장기말이 될 신입 알바생을 차가운 시선으로 내려다보았다.
여자의 노란 우비 자락에서 바닥으로 떨어진 검은 물방울들이 **찌적거리는** 소리를 내며 사방으로 기어갔다. 매장 안을 채운 **습하고 끈적이는** 공기가 그녀의 거친 숨소리와 뒤섞여 고막을 기분 나쁘게 긁어내렸다. 민우는 계산대 모서리의 **차가운** 유리를 꼭 쥔 채, 핏기가 가신 얼굴로 들어온 한소희를 가만히 응시했다.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우비 밑단이 쓸리며 **스슥, 스스스** 하는 젖은 마찰음이 어둠 속으로 스며들었다.
"저... 저기요... 뒤... 뒤에... 문이... 안... 안 열려... 요..."
소희는 **축축하게** 젖은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며 뚝뚝 끊어지는 비명을 뱉었다. 그녀의 손톱 밑에는 거무죽죽한 진흙이 끼어 있었고, 그 끝에서 **미끈거리는** 점액질이 뚝뚝 떨어져 바닥의 유막과 섞였다. 민우는 그녀에게 한 걸음도 다가가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소희의 어깨 너머, 그녀가 닫으려 애쓰던 자동문 유리에 맺힌 **지저분하고 비린** 핏방울들로 향했다.
민우는 품속에서 방금 인쇄된 **피 묻은** 매뉴얼을 다시 꺼내 들었다. 축축한 종이를 만지는 손끝에 **질척한** 점성이 느껴질 때마다 뇌세포가 타들어 가는 듯한 이염 통증이 척수를 자극했다. 종이의 두 번째 줄에는 방금 전까지 없었던 붉은 글씨가 괴이하게 번져 가고 있었다.
[2. 노란색 의복을 입은 자가 매장에 들어와 도움을 청할 경우, 절대로 그 어떤 대답도 해선 안 됩니다. 그들은 당신의 목소리를 빼앗아 껍데기를 채우려는 사냥꾼들입니다.]
"도... 도와... 주세요... 제발... 밖... 밖에... 그것이..."
소희가 울부짖으며 계산대로 한 걸음 더 다가왔을 때, 그녀의 가슴팍에서 **털컥** 하는 불길한 뼈 소리가 났다. 민우의 예리한 눈이 그녀의 왼쪽 눈가를 포착했다. 그곳에는 칼로 찢긴 듯한 **울퉁불퉁하고 끈적한** 수술 흉터가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본능적인 혐오감이 뇌리를 스쳤지만, 민우의 해리된 이성은 차갑게 연산 속도를 높였다. 진짜 한소희인가, 아니면 껍데기를 뒤집어쓴 괴물인가.
그는 대답 대신 바닥에 뒹굴고 있던 탄산음료 캔 하나를 집어 들었다. 차갑고 **서늘한** 금속 표면에 묻은 괴물의 타액이 손바닥을 **진득하게** 적셨다. 민우는 아무런 말도 섞지 않은 채, 소희의 발밑을 향해 캔을 툭 던졌다. 캔이 바닥을 구르며 **쨍그랑** 하는 소리가 날카롭게 사방을 때렸다.
"앗...!"
소희가 깜짝 놀라며 뒤로 물러서는 순간, 그녀가 입고 있던 노란 우비의 그림자가 살아 움직이듯 **꿈틀**거렸다. 그림자 속에서 뻗어 나온 수십 개의 **질척하고 검은** 촉수들이 그녀의 발목을 사정없이 휘감았다. 소희의 입에서 **꺼윽, 꺽** 하는 기괴한 숨소리가 터져 나왔고, 그녀의 몸이 허공으로 사정없이 들어 올려졌다.
그녀는 허공에서 바둥거리며 민우를 향해 손을 뻗었지만, 민우는 그저 팔짱을 낀 채 그 광경을 무표정하게 관찰할 뿐이었다. 쇠사슬이 감기는 듯한 **스스스슥** 하는 마찰음이 천장에서 들려왔다. 소희의 몸뚱이가 천장의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가기 직전, 그녀의 찢어진 우비 안쪽에서 인간의 것이 아닌 **축축하고 거대한** 눈동자 한 쌍이 민우를 똑바로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그 눈동자는, 조금 전 민우가 벽 사이에 가두었던 괴물의 것과 정확히 일치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