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어 올린 셔터 틈새로 눅눅한 밤공기가 스며들었다. 도화동 골목길 구석, 가로등 불빛조차 닿지 않는 음지에 처박힌 CU 도화점은 꼭 거대한 아가리를 벌린 짐승처럼 서 있었다.
강민우는 가죽 장갑을 낀 손으로 매장 유리문을 밀었다. 낡은 경첩이 비명을 지르며 열렸다. 칠이 벗겨진 포스기 앞에는 주간 매니저 박태식이 서 있었다. 그는 민우를 보자마자 이빨을 훤히 드러내며 웃었다. 지나치게 싹싹하고 과장된 몸짓이었다.
"어이구, 강민우 씨 맞죠? 진짜 제시간에 딱 맞춰 오셨네. 이 야밤에 도화동까지 오느라 고생 많았어요."
박태식의 목소리는 끈적끈적했다. 민우는 대답 대신 무표정한 얼굴로 어깨에 멘 가방을 고쳐 멨다. 그의 시선은 박태식의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기묘한 기름기, 그리고 그가 무의식적으로 호주머니 속에서 만지작거리는 검은 마개 모양의 열쇠에 머물렀다. 주머니 천을 뚫고 나올 것처럼 모가 난 열쇠의 윤곽이 민우의 망막에 박혔다.
"인수인계는 간단합니다. 자정부터 아침 여덟 시까지. 매장 안에서 대기하기만 하면 돼요. 손님이 오면 포스기 찍어주고, 물건 빌 때마다 채워 넣고. 참 쉽죠? 시급 10만 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라니까요."
박태식이 어깨를 으쓱이며 씩 웃었다. 민우는 그 미소 이면에 감춰진 악취를 맡았다. 사채업자들에게 배신당해 길바닥으로 나앉았던 3년 전, 자신을 구렁텅이로 밀어 넣던 채권자들도 딱 저런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인간이란 종족은 언제나 탐욕스러운 목적을 숨길 때 가장 친절한 가면을 쓴다. 민우의 마음속에 내재된 중증의 인간혐오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타인의 감정 따위는 아무래도 좋았다. 민우가 이곳에 제 발로 걸어 들어온 이유는 단 하나뿐이었다.
'3억 원.'
동생 민지의 망가진 신장을 갈아끼우기 위한 수술비. 하루가 다르게 괴사해 가는 동생의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서는 일주일 동안 이 기괴한 편의점에서 버텨내야만 했다. 계약서에 적힌 조건은 명확했다. 일주일을 무사히 근무하면 3억 원이 정상 지급된다는 것. 민우에게는 그 돈만이 유일한 닻이었고, 다른 모든 인간은 그저 배경의 소음일 뿐이었다.
"근데 말이죠, 민우 씨."
박태식이 편의점 문을 나서기 전, 민우의 어깨를 툭툭 치며 속삭였다. 그의 숨결에서 비린내가 풍겼다.
"혹시라도 밤중에 이상한 소리가 들리거나, 문이 안 열린다고 해도 너무 놀라지 마요. 원래 오래된 건물이라 결로 현상도 심하고, 문도 가끔 뻑뻑하니까. 그냥 주는 대로 일하고, 주는 대로 받으면 되는 겁니다. 알겠죠?"
"네."
민우의 대답은 건조했다. 박태식은 만족스러운 듯 큭큭거리며 매장 밖으로 걸어 나갔다. 딸랑, 종소리가 적막한 공기를 갈랐다.
유리문 너머로 박태식의 실루엣이 어둠 속으로 완전히 녹아내리는 순간, 벽면에 걸린 디지털시계의 숫자가 변했다.
[11:59]
매장 안은 숨 막힐 정도로 고요했다. 형광등이 미세하게 지지직거리는 소리만이 고막을 긁었다. 민우는 카운터 안쪽으로 들어가 포스기 화면을 응시했다. 화면에 표시된 대기 상태의 파란 불빛이 그의 창백한 얼굴을 비추었다.
스슥.
갑자기 귀를 찌르는 마찰음이 발밑에서 들려왔다. 민우는 고개를 숙였다. 편의점 바닥 타일 틈새에서 정체불명의 검은 진액이 스며 나오고 있었다. 진액은 마치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꿈틀거리며 타일의 기하학적 선을 따라 퍼져나갔다. 동시에 코를 찌르는 습한 곰팡이 냄새와 비릿한 피비린내가 사방으로 진동했다.
[12:00]
자정이 되었다.
쾅!
지진이라도 일어난 듯 매장 전체가 크게 요동쳤다. 민우는 포스기 테이블을 붙잡으며 중심을 잡았다. 매장 유리문 바깥의 풍경이 순식간에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도화동의 어두운 골목길, 전신주, 길 건너편의 빌라 건물이 거대한 소용돌이에 휘말리듯 흐려지더니 이내 칠흑 같은 어둠 속으로 가라앉았다.
민우는 반사적으로 출입문으로 걸어가 손잡이를 잡았다.
쩍, 하는 불쾌한 점착음이 손바닥을 타고 올라왔다.
유리문은 더 이상 유리가 아니었다. 불투명하고 단단한, 마치 거대한 각질이나 뼈로 이루어진 장벽처럼 변해 있었다. 손잡이를 아무리 밀고 당겨도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투명했던 유리창은 이제 안과 밖을 완벽하게 차단하는 두꺼운 내벽으로 응축되어 있었다. 물리적인 퇴로는 완전히 소멸했다. 편의점 자체가 거대한 밀실이자, 이계의 공간으로 전락한 것이다.
"하."
민우의 입에서 짧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두려움은 없었다. 오히려 비정상적일 정도로 머리가 차갑게 식어 내렸다. 편의점이라는 공간이 인간을 살려두기 위한 안전지대가 아니라, 영혼을 수확하기 위해 정교하게 설계된 '자동 도살 기계'라는 사실을 직감적으로 이해했기 때문이다.
그는 다시 카운터로 향했다. 이 황당한 초자연적 현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정보가 필요했다.
포스기 테이블 아래쪽을 살피던 민우의 눈에 기묘한 얼룩이 포착되었다. 테이블 가장자리, 영수증 출력구 바로 밑에 고착된 검붉은 흔적이었다. 얼핏 보면 녹슨 철 가루 같았지만, 그것은 명백히 사람의 피가 말라붙은 자국이었다. 누군가 필사적으로 이곳을 붙잡고 버틴 듯한 다섯 손가락의 궤적이 선명했다.
민우는 천천히 가죽 장갑을 벗었다. 그의 맨손 끝이 거친 핏자국 위로 내려앉았다.
'잔존 사유 동기화(Residual Memory).'
그것은 민우가 지닌 유일한 기괴함이자 치명적인 저주였다. 사물에 남겨진 전임자의 임종 직전 1분간의 오감을 뇌에 직접 다운로드하는 능력.
손가락 끝이 핏자국에 닿는 순간, 민우의 동공이 급격히 축소되었다.
"아악...!"
뇌를 송곳으로 후벼 파는 듯한 극심한 고압의 전류가 척수를 타고 뇌하수체로 직행했다. 대뇌 피질의 일부가 시커멓게 타들어 가며 괴사하는 감각. 머릿속이 끓는 기름을 부은 것처럼 뜨거워졌고, 이염 통증에 안면 근육이 비틀렸다. 동시에 그의 수명 시계에서 정확히 1시간이 깎여 나갔다.
그리고 괴담의 존재들에게 그의 존재적 윤곽이 한 층 더 뚜렷하게 각인되는 기괴한 진동이 영혼을 뒤흔들었다.
하지만 민우는 비명을 지르는 대신 이빨을 악물었다. 통증 속에서 밀려오는 타인의 기억과 감각을 강제로 자신의 뇌세포에 동기화하기 시작했다.
시야가 피색으로 물들며 공간이 왜곡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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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임 근무자의 잔존 기억 - 1분 전]
"제발, 제발 살려주세요...!"
한 남자가 포스기 바닥에 엎드린 채 울부짖고 있었다. 그의 온몸은 땀과 피로 범벅이 되어 있었고, 편의점의 공기는 지금보다 훨씬 더 무겁고 축축했다.
스슥, 스스슥.
카운터 너머에서 정체불명의 거대한 그림자가 다가오고 있었다. 그것은 사람의 형태를 하고 있었으나, 목 윗부분이 거대한 쇠톱 날로 이루어진 괴물이었다. 괴물이 움직일 때마다 날카로운 톱날이 서로 맞물리며 쇠 긁는 소리를 냈다.
"매뉴얼... 매뉴얼에 분명히 적혀 있었는데... 왜..."
남자는 품에 안고 있던 종이를 짓씹으며 울부짖었다. 매뉴얼의 지시대로 행동했음에도 불구하고 괴물은 그를 구석으로 몰아넣었다. 매뉴얼 자체가 함정이었던 것이다.
괴물이 남자의 머리채를 잡아 올렸다. 남자의 목덜미에 차가운 쇠톱 날이 닿았다.
스스슥! 슥!
"끄아아아악! 끄윽, 윽...!"
쇠톱이 남자의 목뼈를 사정없이 갈아내기 시작했다. 살점이 사방으로 튀고, 붉은 피가 포스기 테이블로 분수처럼 뿜어졌다. 남자는 고통에 허우적거리며 테이블 가장자리를 손톱이 뒤집어지도록 움켜쥐었다.
목뼈가 으스러지는 진동, 기도가 끊기며 뿜어져 나오는 피의 뜨거운 촉각, 그리고 뇌가 산소 결핍으로 죽어가는 마지막 10초의 극심한 공포가 민우의 대뇌로 고스란히 전송되었다.
남자의 시야가 완전히 암전되기 직전, 그의 뇌리에 스친 마지막 생각은 억울함과 절망이었다.
'그 규칙은... 가짜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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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하아..."
민우가 혈흔에서 손을 떼며 뒤로 비틀거렸다. 식은땀이 턱 끝을 타고 바닥으로 뚝뚝 떨어졌다. 뇌세포가 괴사한 여파로 한쪽 귀에서 이명이 삐 소리를 내며 울렸다. 눈앞이 잠시 흐려졌지만, 그는 강박적으로 눈을 깜빡이며 초점을 맞췄다.
방금 겪은 전임자의 죽음은 끔찍함 그 자체였다. 목이 산 채로 갈려 나가는 고통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민우의 얼굴에는 공포의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그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뒤틀렸다.
"가짜 규칙..."
그는 바닥의 핏자국을 내려다보며 차갑게 중얼거렸다.
보통의 인간이라면 그 생생한 고통의 동기화 속에서 이성을 잃고 비명을 지르거나 주저앉았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혐오와 해리 장애를 겪는 민우에게 전임자의 끔찍한 죽음은 동정해야 할 비극이 아니었다. 그것은 이 도살 기계 같은 편의점에서 살아남기 위해 획득해야 할 가장 가치 있는 '데이터 조각'에 불과했다.
"매뉴얼의 규칙 중 일부는 근무자를 죽이기 위해 위조된 함정이다. 그리고 전임자는 그 거짓 규칙을 멍청하게 고수하다가 목이 잘렸다."
민우는 전임자의 기억 속에서 괴물이 움직이던 궤적, 쇠톱 소리의 주파수, 그리고 남자가 위반했던 규칙의 모순점을 머릿속으로 빠르게 연산했다. 전임자가 죽기 직전 품고 있던 '가짜 규칙'에 대한 단서가 민우의 뇌리에 선명하게 각인되었다.
위기는 곧 기회였다. 게임의 룰이 자신을 죽이기 위해 설계되었다면, 그 룰의 모순을 파헤쳐 역으로 이용하면 그만이다.
민우는 가죽 장갑을 다시 꼈다. 그의 눈빛은 이전보다 훨씬 더 깊고 냉혹해져 있었다. 타인의 죽음을 디딤돌 삼아 생존을 도모하는 비정한 영민함이 그의 전신을 지배했다. 동생 민지의 수술비를 벌기 위해서라면, 이계의 법칙이든 점장의 기만이든 전부 분석해서 부숴버릴 준비가 되어 있었다.
바스락.
그때, 정막을 깨고 포스기 우측에 달린 영수증 인출기에서 시끄러운 모터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위이이이잉-!
기계음은 기괴할 정도로 날카로웠고, 매장 바닥의 진액들이 그 소리에 반응하듯 출렁였다. 민우의 시선이 천천히 포스기 화면 아래로 향했다.
인출기 틈새로 길쭉한 종이 한 장이 밀려 나오기 시작했다.
단순한 영수증이 아니었다. 종이의 여백에는 마치 방금 흘린 것처럼 축축하고 붉은 피가 가득 묻어 있었다. 피가 뚝뚝 떨어지는 종이 위로, 검은색 고딕체의 글씨들이 빠르게 인쇄되며 모습을 드러냈다.
[야간 근무자 행동 수칙 (00:00 ~ 08:00)]
첫 번째 규칙이 민우의 눈앞에 인쇄되는 순간, 편의점 내부의 불빛이 일제히 꺼지며 암흑이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