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무너져 내린 제국의 잔해 위에 세워진 임시 살롱. 당신은 방 한가운데 놓인 금도금된 벨벳 의자에 오만하게 걸터앉아 있습니다. 오늘 당신이 걸친 심해색 실크 드레스는 몰락한 황실의 별자리를 모티프로 금실 자수가 정교하게 놓여 있으며, 목덜미를 감싼 것은 한때 황후의 소유였던 피처럼 붉은 루비 목걸이입니다. 하얀 레이스 장갑 위로 빛나는 다이아몬드 반지들은 촛불 아래에서 얼음 파편처럼 차갑게 반짝이며 당신의 손짓 하나하나에 지독한 사치스러움을 더합니다. 그 화려함은 당신의 발밑에 엎드린 사내들의 초라함을 더욱 극명하게 대비시킬 뿐입니다.

"레일라... 제발, 나를 봐다오. 내가 어리석었다. 황제라는 자리는 결국 네가 없으면 아무런 의미도 없는 껍데기일 뿐이었어."

폐위된 황태자 줄리안이 눈물로 얼룩진 얼굴로 당신의 구두 끝자락을 붙잡으려 손을 뻗습니다. 그의 흐트러진 금발과 때 묻은 제복은 과거의 오만했던 권력을 조롱하는 듯합니다. 당신은 그의 손길이 닿기 직전, 에메랄드가 박힌 새틴 구두 굽을 가볍게 뒤로 물리며 냉소적인 미소를 지어 보입니다.

"줄리안, 당신은 여전히 전황을 읽지 못하는군요. 세 대에 걸쳐 당신 가문이 쌓아 올린 빚과, 현재 제 손끝에서 통제되는 국고를 두고 대체 무엇으로 왕관을 되찾겠다는 건가요? 이름뿐인 황태자라는 직함은 이제 시장바닥의 싸구려 호밀빵 한 조각보다 가치 없답니다."

당신의 냉혹한 평가에 줄리안이 숨을 들이키는 순간, 그 옆에서 무릎을 꿇고 있던 카일 대공이 억눌린 신음을 흘리며 품에서 은빛 인장과 영지 권리서를 꺼내 들어 올립니다. 북부의 냉혈한이라 불리며 당신을 그저 편리한 사교계의 도구로만 여겼던 사내가, 이제는 스스로 자신의 목줄을 바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의 검은 가죽 장갑을 낀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그대의 것이다, 레일라. 내 영지와 기사단, 그리고 내 전 재산과 심장까지 전부. 내가 그대를 이용하려 했다는 오만을 용서해 다오. 나는 그저 내 손으로 직접 나를 가둘 새장을 짓고 있었던 어리석은 광대에 불과했으니."

"어머, 대공 전하치고는 꽤 값비싼 참회록이네요."

당신은 카일이 내민 권리서를 짚고 있는 그의 손가락을 구두 굽으로 지긋이 내리누릅니다. 통증이 일 텐데도 그는 신음조차 흘리지 않은 채, 오직 집착과 열망으로 가득 찬 붉은 눈동자로 당신을 올려다볼 뿐입니다.

"하지만 착각하지 마세요. 당신의 얼어붙은 영토와 몇 안 되는 철광석 따위가 내 자유의 몸값이라 생각하셨나요? 계약은 끝났고, 전 이제 이 무대에서 내려갈 준비를 마쳤답니다."

두 남자의 숨소리가 거칠어집니다. 한때 세상을 지배하던 이들이 이제는 당신의 처분만을 기다리며, 그 어떤 굴욕도 감내하겠다는 듯 잔뜩 엎드려 있습니다. 이들의 구걸은 무척이나 감미롭지만, 동시에 지독하게 얄팍한 법입니다.

과연 저 어리석은 별들이 진흙 구덩이에서 구르는 모습을 보며 올림포스의 신들은 눈물을 흘릴 것인가, 아니면 이 비극의 끝에서 오직 당신의 가늘고 우아한 웃음소리만이 영원한 찬가로 울려 퍼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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