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심장이라 불리던 베르티에 궁은 이제 파산 선고를 앞둔 거대한 무덤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아수라장 속에서도 사교계의 밤은 여전히 오만하고 사치스럽게 타오르는 법이지요. 당신은 오늘 밤, 황실의 숨통을 조이는 마지막 연회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당신이 선택한 의상은 밤하늘을 그대로 오려 만든 듯한 미드나이트 블루 빛깔의 실크 벨벳 드레스였습니다. 소매와 자락마다 은사로 촘촘히 수놓아진 눈꽃 문양은 차갑게 빛났고, 그 화려함의 정점은 당신의 얇은 목덜미를 휘감은 '심연의 심장' 사파이어 목걸이였습니다. 몰락해 가는 황후의 보석함에서 경매를 통해 합법적으로 빼앗아 온 이 거대한 청색 보석은, 마치 촛불 아래서 제국의 몰락을 비웃듯 서늘한 광채를 뿜어내고 있습니다.
"이런 파티에 오다니, 여전히 배포가 크군, 레일라."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와 함께 카일 대공이 다가옵니다. 은색 자수가 정교하게 새겨진 검은 제복을 입은 그의 모습은 여전히 위압적이지만, 흔들리는 눈빛만큼은 숨기지 못합니다. 뒤늦게 제 발등을 찍었음을 깨달은 후회, 그리고 당신을 결코 놓치지 않겠다는 지독한 집착이 그의 눈동자에서 일렁입니다.
"내가 붙인 감시자들을 전부 따돌렸더군. 나마저 버리고 이 제국을 떠나기라도 하겠다는 건가?" "대공 전하께서 제게 빌려주신 기사들은 꽤 유능했답니다." 당신은 샴페인 잔을 가볍게 흔들며 미소 지었습니다. "스스로가 주인을 잃은 맹수인지도 모른 채, 저를 호위하느라 바빴던 모양이지만요."
그때, 초췌한 얼굴의 황태자 율리안이 비틀거리며 다가옵니다. 금실 단추가 몇 개 풀어진 그의 연회복은 몰락해 가는 황실의 비참한 현주소를 대변하는 듯합니다.
"레일라... 제발 내 말을 들어다오. 제국의 자금줄을 풀고 다시 내 곁으로 돌아와. 네가 원한다면 황태자비의 관을, 아니, 새로운 황후의 관을 네 머리에 얹어주마."
과거 그가 제멋대로 던진 파혼 선언을 생각하면, 그의 발악에 가까운 애원은 깊은 조소만을 자아낼 뿐입니다. 주권을 잃고 무너지는 황실의 왕관 따위가 당신에게 무슨 가치가 있을까요.
"돌아갈 곳은 무너지는 성벽 위가 아니라, 오직 최고 권력의 정점뿐이랍니다."
당신은 두 남자의 시선을 동시에 받으며 우아하게 걸음을 옮깁니다. 한 명은 당신을 도구로 부리려다 제 심장을 내어준 오만한 사냥꾼이고, 다른 한 명은 뒤늦게 가치를 깨닫고 명예마저 버린 채 매달리는 패배자입니다. 그들의 지배욕과 갈망이 뒤엉킨 이 아수라장에서, 당신은 비로소 판 자체를 엎어버릴 판결을 내릴 준비를 마칩니다.
과연 이 불타오르는 제국의 잔해 위에서, 완벽한 사냥을 끝마칠 최후의 화살은 어디로 향해야 하는 것일까요? 잔혹한 아름다움으로 빚어진 당신의 미소에 마침표를 찍을 이는 과연 누구의 파멸이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