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심장부, 화려한 유리 돔 아래 펼쳐진 황실 사교 기금 연회장은 이미 보이지 않는 균열로 가득 차 있습니다. 당신이 은밀히 살포한 언론 선전책들이 제국 전역을 강타한 탓에, 황실의 고결한 가면은 가릴 수 없이 미끄러져 내렸습니다. 귀족들의 은밀한 속삭임 속에서 황실의 권위는 길가에 굴러다니는 돌멩이처럼 전락했고, 사교계의 진정한 지배자로 군림하는 것은 이제 황태자가 아닌 바로 당신, 레일라입니다.
당신은 오늘 밤, 눈이 시리도록 고혹적인 다크 크림슨 실크 드레스를 선택해 이 연회장을 완벽히 장악하고 있습니다. 가슴팍에 고정된 피죤 블러드 루비 브로치는 마치 사형 선고를 기다리는 황실의 마지막 핏방울처럼 붉은 광채를 내뿜고, 목덜미를 삼중으로 단단히 감싼 다이아몬드 초커는 은하수를 박아 넣은 듯 만지는 손길마저 얼려버릴 오만한 기품을 자랑합니다. 그 숨 막히는 열기에 타오른 듯, 저 멀리서 다가오는 옛 약혼자 황태자 율리안의 안색은 창백하게 내려앉아 있습니다.
"레일라..." 율리안이 떨리는 목소리로 당신의 이름을 부릅니다. 불과 얼마 전 고압적인 태도로 파혼을 통보하던 오만함은 흔적조차 없습니다. 급격히 추락한 황실의 위신과 가혹한 여론의 포화 속에서 고립되어 가던 그의 눈동자에는 지독한 후회와 위기감이 일렁입니다. "오해였다, 레일라. 네 가문의 거대한 힘을 시기하는 자들의 모략에 잠시 눈이 멀었던 거야. 제발 내 손을 다시 잡아다오. 네가 원한다면 당장 황태자비의 면류관을 너에게 바치마." "전하, 발등에 불이 떨어지니 눈앞의 진흙탕도 황금길로 보이시는 모양이군요." 당신의 입술 끝이 냉소적인 호선을 그립니다. 정치가 제거된 사교계의 애걸이란 얼마나 가벼운지, 신뢰 없는 후회가 얼마나 우스꽝스러운지 당신은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율리안이 구걸하는 것은 애정이 아니라, 몰락해 가는 자신의 왕좌를 지탱해 줄 거대한 힘의 부활일 뿐입니다.
그때, 당신의 등 뒤에서 느껴지는 묵직하고 서늘한 기척이 율리안의 숨통을 삼킬 듯 죄어옵니다. 이웃 나라의 냉혹한 지배자이자, 이 위험한 연극의 가장 든든한 파트너인 카일 대공입니다. 그는 제국의 가벼운 훈장 대신 오닉스 단추가 어둠처럼 촘촘히 박힌 흑청색 제복을 입고, 차디찬 조소를 머금은 채 당신들을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동정 따위는 알지 못하는 흑수정 같은 안광이 율리안의 자존심을 난도질합니다.
두 사내의 시선이 허공에서 얼어붙는 가운데, 팽팽한 정치적 역학 관계가 당신의 목덜미를 온통 날카롭게 자극합니다. 과연 이 눈부신 파멸의 왈츠 속에서, 당신은 비참하게 무릎 꿇는 전 약혼자의 손을 조롱하며 새로운 파트너의 품으로 뛰어들 것입니까, 아니면 그의 비참한 미련을 가차 없이 도려내어 황실이 숨겨둔 가장 은밀한 심장부를 손에 쥘 것입니까? 바람에 흔들리는 촛불처럼 위태로운 제국의 운명은, 과연 누구의 매혹적인 손짓 아래에서 가장 먼저 부서져 내릴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