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삐이이이이익-! 삐이이이이익-!

구관 리셉션 데스크의 광역 재난 구급 수용 모니터링 경보음이 고막을 찢을 듯 울려 퍼졌다. 벽면에 고정된 빨간색 경고등이 사정없이 회전하며 복도 전체를 붉은 핏빛으로 물들였다. 이사회 최종 철거 찬반 투표까지 남은 시간은 단 1시간. 그 찰나의 경계선 위로 도심 요각 고속도로 출구 고가 대교 완파라는 전대미문의 재난이 가온대병원 레드존의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수술 준비하십시오.”

강혁이 메스를 쥐듯 오른손을 굳게 움켜쥐며 선언했다.

“한 명도 죽게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소란스러운 경보음 속에서도 이상할 정도로 차갑고 명징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윤설아는 창백해진 얼굴로도 빠르게 몸을 움직였다. 그녀는 즉시 멸균 장갑을 낚아채며 소독기로 향했다. 하지만 송민우는 전화를 붙들고 연신 욕설을 내뱉고 있었다.

“원무과 이 개자식들이 진짜……! 여보세요? 어이, 원무과장! 지금 고가 대교에서 환자들이 밀려온다는데 구관 입구를 통제하겠다는 게 제정신이야?”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는 완강했다. 기획조정실장 한태오의 직속 라인인 원무과 직원이었다.

- 송 선생, 우리도 어쩔 수 없습니다. 기조실장님 직접 지시예요. 구관 외상구역은 오늘부로 공식 폐쇄 절차에 들어갔습니다. 소방청에 이미 가온대병원은 중증 외상 환자 수용 불가라고 통보했습니다. 환자들을 이쪽으로 들여보내면 무단 침입으로 간주하고 보안요원들 투입할 겁니다.

“뭐라고? 야!”

송민우가 고함을 치기도 전에 전화가 뚝 끊겼다.

쾅!

동시에 구관 유리문 너머로 검은 정장을 입은 본원 보안요원 대여섯 명이 들이닥쳤다. 그들의 맨 앞에는 기조실의 지시를 받은 행정팀장이 서 있었다.

“송민우 선생, 그리고 백강혁 인턴. 당장 수술실 비우고 나오십시오. 이 구역은 30분 뒤 전력과 산소 공급이 전면 차단됩니다. 환자를 받았다가 사고라도 나면 책임질 겁니까?”

행정팀장의 냉소적인 목소리가 붉은 경고등 불빛 아래로 흩어졌다.

강혁은 그들을 흘겨보지도 않았다. 그의 시선은 오직 구관 입구로 가파르게 밀려드는 구급차의 헤드라이트 불빛에 고정되어 있었다.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구관 마당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피투성이가 된 환자들을 실은 소방서 구급차들이 본관 응급실에서 거부당하고 이곳 레드존으로 집결하고 있었다.

“수용 차단이라니…….”

윤설아가 이가 갈리는 소리를 냈다.

강혁은 천천히 걸어가 행정팀장의 앞을 막아섰다. 그의 품속에는 며칠 전 폐기물 수거함과 회귀 전 기억을 뒤져 확보해 둔 종이 조각이 들어 있었다. 차민혁 외과 과장과 한태오 기조실장의 이름이 선명히 적힌 가온 메디컬 뷰티 리조트 이면 계약서의 찢어진 조각.

강혁이 품 안에서 그 종이 조각을 슬쩍 꺼내 행정팀장의 눈앞에 들이밀었다.

“이게 뭔지 한 실장님께 여쭤보는 게 빠를 겁니다. 가온의료재단 배임 및 불법 투자 유착 혐의. 이사회 시작 전에 검찰과 언론사에 이 서류 통째로 넘어가길 바라지 않는다면, 당장 비키는 게 좋을 텐데요.”

행정팀장의 눈동자가 사정없이 흔들렸다. 종이에 적힌 차민혁과 한태오의 친필 서명을 확인한 그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너, 너 이거 어디서…….”

“비키라고 했습니다. 우리 환자들 들어옵니다.”

강혁의 서늘한 경고에 행정팀장이 주춤하며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본원의 전력 차단 협박과 소방청에 내려진 수용 불가 통보는 여전히 유효했다. 구급차들이 마당에 멈춰 섰지만, 구급대원들은 본원의 거부 명령 때문에 환자들을 내리지 못하고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그때, 송민우가 헛웃음을 터뜨리며 주머니로 손을 뻗었다.

그의 손에 쥐어진 것은 손때가 까맣게 탄, 모서리가 벌어진 낡은 가죽 수첩이었다. 평소에는 그저 동기들의 연락처나 적어둔 잡동사니 수첩처럼 보였던 물건. 하지만 송민우가 수첩의 낡은 가죽 페이지를 넘기는 손길은 지극히 진중했다.

“한태오가 아주 선을 넘는구만. 의사 면허 걸고 정치질을 하려면 제대로 해야지, 사람 목숨을 담보로 삼아?”

송민우가 수첩에 적힌 특정 번호를 손가락으로 짚더니 개인 휴대전화로 다이얼을 눌렀다. 신호음이 가기도 전에 그의 목소리에서 평소의 능글맞은 장난기가 완전히 거세되었다.

“어, 형님. 나 민우야. 응. 지금 가온대병원 구관 앞인데, 고가 대교 무너진 환자들 본원에서 수용 거부하고 입구 막아서고 있거든? 어, 한태오 작품이지. 이거 재난대비 지정병원 의무 위반에, 응급의료법 제60조 위반으로 즉각 업무정지 때릴 수 있는 사안 맞지? 행안부랑 보건복지부 재난의료과장한테 지금 바로 찔러줘. 언론사 사회부 라인도 바로 풀고. 가온대병원이 환자 버리고 리조트 지으려고 외상구역 전력 끊는다고 대문짝만하게 내보내자고.”

송민우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이름들과 법조항은 거침이 없었다. 전화를 마친 송민우가 행정팀장을 향해 수첩을 흔들며 비스듬히 웃었다.

“야, 가서 느그 실장님한테 전해라. 지금 5분 안에 보건복지부에서 가온대병원 실사단 출발할 거고, 소방청 헬기 유도등 안 켜면 소방방재청장이 직접 병원장 대가리 깨러 올 거라고. 그리고 이 수첩에 있는 양반들이 한태오 그 양반 사생활부터 뒷구멍으로 받아먹은 돈까지 싹 다 털 준비 끝냈다고 전해.”

행정팀장은 차마 대답도 하지 못한 채 뒤돌아 다급히 전화를 걸며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귀를 찢는 듯한 프로펠러 소리가 구관 하늘을 뒤덮었다.

두두두두두두!

소방청 소속의 대형 구급 헬기가 강한 하강기류를 일으키며 가온대병원 본관 앞마당 헬리포트가 아닌, 구관 앞 잔디밭으로 강제 착륙을 시도하고 있었다. 송민우의 핫라인이 소방청과 복지부를 동시에 움직인 결과였다.

“와, 진짜 내려앉네.”

송민우가 가죽 수첩을 주머니에 쑤셔 넣으며 땀을 훔쳤다.

“강혁아, 길은 열었다. 이제 진짜 지옥 시작이다.”

“고맙습니다, 선배.”

강혁이 짧게 답하며 수술 준비실로 향했다.

수술실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던 윤설아가 강혁을 불러 세웠다. 그녀의 손에는 붉은 벨벳 천으로 감싸인 작은 상자가 들려 있었다. 윤설아가 상자를 열자, 은빛으로 매끄럽게 빛나는 마이크로 메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지난 수술 도중 팁이 손상되어 윤설아가 절망했던, 그녀가 가장 아끼는 특수 제작 메스였다.

강혁은 장부의 개조 성능을 가동해 미리 수리해 둔 메스를 그녀에게 건넸다.

“설아 누나. 이거, 제가 손봐 뒀습니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완벽하게 복원되었을 겁니다.”

윤설아가 메스를 조심스럽게 받아 쥐었다. 손끝에 닿는 완벽한 균형감과 날카로움에 그녀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이전보다 훨씬 더 정교하고 날카로운 피팅감이었다.

“백강혁…… 너 진짜 대체 정체가 뭐야?”

“의사입니다. 환자 살리는 의사.”

강혁은 덤덤하게 답하며 수술실 문을 밀고 들어갔다. 윤설아는 마이크로 메스를 굳게 쥐며 그의 뒤를 따랐다. 그녀의 눈빛에는 이제 그 어떤 의구심도 남아 있지 않았다. 오직 무결점의 신뢰와 생사고락을 함께하겠다는 투지만이 가득했다.

구관 리셉션의 자동문이 열리며 피투성이 환자들이 물밀듯 밀려 들어왔다.

“첫 번째 환자, 30대 남성! 고가 대교 붕괴 당시 차량 추락으로 인한 흉부 관통상 및 내부 출혈! 바이탈 흔들립니다! BP 70에 40!”

“두 번째 환자, 40대 여성! 골반강 내 대량 출혈 의심! 활동성 출혈 심각합니다!”

“세 번째 환자, 10대 소아! 기흉 및 비장 파열 의심!”

들것이 들어설 때마다 좁은 레드존 복도가 비명과 붉은 피로 가득 찼다.

그 순간, 강혁의 시야가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우웅-!

머릿속에서 이명이 울리며 그의 눈앞에 거대한 가상 인터페이스가 스케치되듯 펼쳐졌다. '생명 구원 장부(Life Ledger)'가 스스로 깨어나며 환자들의 신체 위로 계량화된 수치들을 뿜어냈다.

[환자 1: 이민준 (34) - 생존율 18%] [치명적 병변: 우측 폐동맥 파열 및 혈흉. 내부 출혈량 1,500cc 돌파.]

[환자 2: 김정아 (42) - 생존율 12%] [치명적 병변: 골반골 분쇄 골절로 인한 내장골동맥 파열. 후복막강 대량 출혈.]

[환자 3: 최민우 (15) - 생존율 22%] [치명적 병변: 비장 완파 및 횡격막 파열.]

세 명의 환자 머리맡에 붉은색 수치의 해부도가 공중에 입체적으로 스케치되었다. 뼈의 미세한 균열부터 뿜어져 나오는 혈액의 흐름까지 실시간으로 투과되어 보였다.

강혁은 심호흡을 했다. 자신이 평생 축적해 온 구원 장부의 포인트를 확인했다.

[보유 포인트: 45,000 SP]

‘전부 쓴다.’

강혁은 망설임 없이 포인트 전량 지출을 선택했다.

[포인트 45,000 SP 전량 소모.] [초정밀 가상 시뮬레이터 멀티 영사 구도 완성.] [신체 기능 일시 안정화 버프가 세 명의 환자에게 동시 적용됩니다.]

수술실 공중에 세 개의 가상 수술대 스크린이 동시에 떠올랐다. 초정밀 가상 시뮬레이션이 강혁의 뇌 신경과 다이렉트로 연결되며 집도 경로를 실시간으로 연산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장부의 가혹한 패널티가 강혁의 육체를 덮쳤다.

쿵! 쿵! 쿵!

심장이 갈비뼈를 뚫고 나올 것처럼 폭등하기 시작했다. 심박수 160 돌파. 뇌척수액이 끓어오르는 듯한 극심한 뇌압이 전해졌고, 뒤이어 왼손 끝에서부터 얼음물을 끼얹은 듯한 차가운 감각이 타고 올라왔다.

“윽…….”

강혁의 왼손 손가락이 미세하게 비틀리며 경련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1화에서 시작되어 6화 수술 도중 가동 마비를 일으켰던 그 지독한 신경 과부하의 부작용이었다. 손가락 마디마디가 뻣뻣하게 굳어가며 감각이 마비되어 갔다.

“백강혁! 손이 왜 그래?”

어시스트를 준비하던 윤설아가 깜짝 놀라 강혁의 왼손을 붙잡았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강혁은 이를 악물고 왼손을 털어냈다. 식은땀이 비 오듯 흘러내려 시야를 가렸으나, 그의 눈빛은 오히려 더 날카롭게 번뜩였다. 장부의 동조 통증으로 인해 심장이 멎을 것 같은 고통이 흉부를 압박했지만, 그는 멈출 생각이 없었다.

이 환자들을 살려내야만 한태오와 차민혁을 병원에서 영구적으로 퇴출하고, 외풍에 흔들리지 않는 독자적인 중증외상센터를 세울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눈앞에서 꺼져가는 이 목숨들을 그냥 둘 수 없었다.

강혁은 왼손의 마비를 억누르기 위해 오른손으로 메스를 쥐고, 왼손 손가락을 강제로 펴서 고정했다.

“설아 누나, 형.”

강혁이 고개를 들어 윤설아와 송민우를 바라보았다. 그의 이마에 맺힌 땀방울이 수술실 바닥으로 뚝 떨어졌다.

“오늘 진짜 사선을 넘어봅시다.”

수술실 천장의 무영등이 백색의 강렬한 빛을 뿜어내며 세 개의 수술대를 일제히 비추었다. 가온대병원 역사상 전무후무한, 세 명의 중증 외상 환자를 동시에 집도하는 광기 어린 사투의 막이 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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