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스마트폰 액정 너머로 뿜어져 나오는 붉은 경고등이 어두운 기숙사 방을 핏빛으로 물들인다.

[주의: 거대 폭우 심화 및 강풍 동반 대형 태풍 영향권]

우림 경기장. 6년 전, 내 무릎 뼈가 가루처럼 바스러지며 비명을 질렀던 그 지옥의 진흙탕. 그 위로 쏟아질 폭우와, 나를 제물 삼아 몸값을 올리려는 최근식 감독의 음모가 겹쳐 흐른다.

"올 테면 와 봐라."

태성은 액정을 거칠게 쓸어 넘겼다.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간다. 피할 수 없는 전장이라면 정면으로 돌파해 부숴버리는 수밖에 없다. 자신의 무릎 혹사 수치를 철저히 계산하고, 최근식의 압박을 역이용해 무릎 내구도를 최대로 충전할 수 있는 기하학적 컷백의 기회를 의도적으로 설계해야 한다.

사흘 뒤, 전국대회 예선 마지막 라운드인 부경고등학교와의 일전이 펼쳐지는 청룡고 운동장. 우림 경기장으로 가기 전, 거쳐 가야 할 마지막 디딤돌이자 최근식이 파놓은 1차 함정이다.

"태성아, 오늘 전반부터 강하게 압박해라. 쉬지 말고 뛰면서 템포를 올려! 대학 스카우터들이 지켜보고 있어. 네 체력을 증명해야 할 때다."

최근식은 가증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태성의 어깨를 툭툭 쳤다. 그 속셈을 태성이 모를 리 없다. 우림 경기장에서 열릴 본선 토너먼트를 앞두고, 오늘 경기에서 태성의 힘을 완전히 빼놓아 부상을 유도하거나 제 입맛대로 통제하려는 수작.

현재 태성의 무릎 내구도는 52%.

단 1%의 낭비도 허용할 수 없는 수치다. 태성은 최근식의 손길을 차갑게 쳐내며 가볍게 목을 돌렸다.

'네 뜻대로 굴려 줄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다.'

삐이익!

주심의 휘슬 소리와 함께 부경고의 선축으로 경기가 시작된다. 청룡고의 포메이션은 4-3-3. 하지만 경기가 시작되자마자 강태성의 위치는 최전방이나 공격형 미드필더가 아니었다.

태성은 슬금슬금 뒤로 물러났다. 포백 수비 라인 바로 앞, 센터백들의 보호막 역할을 하는 홀딩 미드필더의 위치까지 내려앉는다.

"야! 강태성! 어디까지 내려가! 위로 올라가라고!"

터치라인에 바짝 붙어 선 최근식이 목에 핏대를 세우며 고함을 지른다. 태성은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그가 제자리에 멈춰 서서 가볍게 템포를 조율하자, 시야가 푸른빛으로 물들며 '패스 궤적 상태창'이 눈앞에 펼쳐진다. 모든 선수의 움직임이 기하학적인 선과 점으로 치환된다.

부경고의 미드필더진이 청룡고의 압박이 느슨한 것을 보고 기세등등하게 볼을 돌리기 시작한다.

"저 새끼 봐라? 완전히 쫄아서 뒤로 빠졌는데?"

부경고의 주장 김태호가 비열하게 웃으며 태성의 앞 공간으로 치고 들어온다. 태성은 달리지 않는다. 그저 상대의 패스 길목을 예측해 단 두 걸음만 움직였을 뿐이다.

툭.

김태호의 발끝을 떠난 볼이 자석에 이끌리듯 태성의 오른발 앞등에 정확히 얹힌다.

"뭐야?!"

김태호가 당황해 멈칫하는 찰나, 태성의 눈앞에 거대한 황금빛 기하학 선들이 사방으로 뻗어 나간다. 가장 밝게 빛나는 선의 끝에는, 하프라인 부근에서 게으르게 서성거리던 유진우가 있었다.

태성의 시야 구석에서 유진우의 상태가 점멸한다.

[A급 수용체 레이더 점멸 중…… 공간 침투 확률 89%]

녀석의 오프더볼 잠재력이 태성의 패스 궤적과 공명하고 있다. 아직은 흐릿하지만 폭발적인 잠재력의 신호가 고동친다. 태성은 공을 잡고 디딤발을 고정했다. 무릎에 가해지는 하중을 최소화하는 완벽한 킥 자세.

"유진우, 뛰어."

태성의 차가운 목소리가 그라운드를 가른다.

콰앙!

맑고 묵직한 파열음이 운동장을 강타한다. 태성의 발끝을 떠난 볼은 낮고 빠르게 휘어지며 부경고의 수비 라인을 단번에 무력화했다. 50미터를 날아간 볼이 유진우의 가슴팍에 자로 잰 듯이 안긴다.

"미친 패스다! 뛰어, 진우야!"

벤치에 있던 한정훈 코치가 주먹을 불끈 쥐며 비명을 질렀다. 유진우는 제 발끝에 떨어진 볼에 당황하면서도, 본능적으로 몸을 돌려 수비를 따돌렸다. 태성의 눈빛이 무서워 억지로 달리기 시작한 녀석의 움직임은 이미 기계적인 킬러의 그것이었다.

철썩! 유진우의 강력한 오른발 슛이 부경고의 골망을 흔든다.

[청룡고 1 : 0 부경고]

경기가 시작된 지 단 3분 만이었다. 관중석에서 짧은 탄성이 터져 나온다. 하지만 최근식은 여전히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혀를 찼다.

"운이 좋았어. 뜀박질도 안 하고 저기서 롱패스나 띡 던지는 게 무슨 미드필더야? 더 뛰어! 압박하라고!"

태성은 감독의 개소리를 한 귀로 흘렸다. 그의 목적은 오직 하나. 무릎 내구도를 보존하면서 효율적으로 승리를 낚아채는 것.

전반 20분, 부경고가 독이 바짝 오른 상태로 반격을 시도한다. 특히 태성의 '달리지 않는 플레이'를 비아냥거리던 상대 미드필더진이 집요하게 태성이 있는 3선으로 압박을 가해왔다.

"저 자식, 다리 쪽에 문제 있는 거 아냐? 압박해! 몸싸움으로 조져!"

부경고의 수비형 미드필더 황민우가 눈을 부릅뜨고 태성을 향해 돌진했다. 황민우의 스터드가 잔디를 파헤치며 태성의 오른쪽 무릎을 겨냥해 미끄러져 들어온다. 악의적인 슬라이딩 태클. 보통의 선수라면 겁을 먹고 피하거나, 무리하게 점프를 하다 착지 과정에서 부상을 입었을 터다. 태성의 시야에 붉은색 경고선과 함께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경고: 물리적 충돌 직전 궤적 진입.] [특수 효과 발동 가능: 극비의 기하학적 컷백] [성공 시 수명 충전 배율 3배 적용!]

태성의 심장이 요동친다. 과거의 트라우마가 순간적으로 뇌리를 스쳤지만, 지금의 자신에겐 상태창이 보여주는 완벽한 연산이 있었다. 두려움은 정교한 계산 아래 무릎을 꿇는다.

'온다.'

태성은 달리지 않고 제자리에 서서 볼을 발바닥으로 긁으며 기다렸다. 황민우의 스터드가 태성의 스타킹 코앞까지 다가온 0.1초의 찰나. 태성은 상체를 왼쪽으로 기울이며 오른발 끝으로 볼을 270도 역방향으로 꺾었다.

스윽.

기하학적인 곡선을 그리며 뒤로 빠지는 볼.

"어, 어?!"

황민우의 몸이 허공을 가르며 태성의 잔상 너머로 가차 없이 미끄러졌다. 충돌은 없었다. 완벽한 탈압박이자, 상대의 힘을 그대로 역이용한 극비의 컷백. 동시에 태성은 몸을 회전시키며 반대편에서 침투하던 윙백을 향해 아웃프런트로 볼을 툭 밀어줬다. 어시스트로 연결되는 완벽한 기하학 선이 그라운드를 가른다.

볼을 받은 윙백이 가볍게 크로스를 올렸고, 중앙으로 쇄도하던 유진우가 머리로 밀어 넣으며 추가 골을 터뜨렸다.

[청룡고 2 : 0 부경고]

그리고 태성의 눈앞에 화려한 시스템 이펙트가 몰아쳤다.

[어시스트 성공! (기하학적 컷백 특수 효과 적용)] [기본 충전 수치: +1%] [3배 multiplier 보너스 적용: +3%] [무릎 내구도: 52% -> 55%]

"하."

태성의 입에서 얇은 실소와 함께 깊은 숨이 흘러나왔다. 달리지 않고 제자리에 서서, 단 한 번의 컷백과 패스로 무릎 수명을 오히려 채워 넣었다. 이것이 바로 태성이 설계한 생존 공식이었다.

관중석에 앉아 있던 국내 대학 및 프로 구단 스카우터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방금 그거 봤어? 황민우가 완전히 살인 태클을 날렸는데, 그걸 제자리에서 컷백 하나로 벗겨내네?" "스프린트를 전혀 안 하는데 경기장 전체를 지배하고 있어. 볼이 굴러가는 궤적 좀 봐. 오차범위가 1센티미터도 안 돼." "무슨 컴퓨터가 패스 전송 선로 까는 것 같군. 저 나이에 저런 템포 조절이 가능하다고? 미친 재능이야."

스카우터들은 침을 삼키며 태성의 이름을 수첩 맨 위에 적어 내렸다. 화려하게 달리는 윙어보다, 오직 서 있는 것만으로 경기 전체를 누더기로 조각내는 이 미드필더의 '지배자적 풍모'에 소름이 돋은 것이다.

후반전이 시작되어서도 태성의 플레이는 한결같았다. 그는 하프라인 아래에서 단 10미터 반경을 벗어나지 않았다. 뜀박질 거리를 극도로 제한한 채, 오직 머리와 눈, 그리고 정교한 킥으로만 경기를 풀어나갔다.

부경고 미드필더들은 미칠 지경이었다.

"잡아! 저 새끼 좀 잡으라고!"

그들은 태성을 압박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해 사방으로 뛰었지만, 볼은 이미 태성의 발끝을 떠나 반대편 빈 공간으로 배달된 뒤였다. 공을 쫓아 이리저리 뛰어다니던 부경고 선수들은 후반 30분이 넘어가자 혀를 길게 내밀며 그라운드에 주저앉기 시작했다. 체력이 완전히 고갈되어 자진 기권에 가까운 대패를 자초한 꼴이었다.

"허억…… 허억…… 제발 패스 좀 그만해……."

상대 미드필더가 무릎을 잡고 헐떡이며 태성을 원망스럽게 올려다보았다. 태성은 그들을 차갑게 내려다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뛰는 건 너희가 해라. 내 무릎은 소중하니까.'

삐이익―! 삐이익―! 삐―!

경기 종료를 알리는 주심의 휘슬이 울렸다. 최종 스코어 4-0 청룡고의 압승.

[알림: 경기 종료. 승리 보상 지급.] [무릎 내구도 소모: -1% (90분 풀타임 소화)] [승리 보상 충전: +1%] [현재 무릎 내구도: 55%]

90분 풀타임을 소화하고도 내구도는 단 1%의 소모 없이, 오히려 경기 시작 전보다 3%나 상승했다. 최근식 감독의 혹사 음모를 완벽하게 무력화하고 조롱한 결과였다.

태성이 땀을 가볍게 닦아내며 벤치로 향하려 할 때였다. 최근식 감독이 입이 찢어지라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그의 뒤에는 벌써 몇몇 지역 일간지 기자들과 카메라가 대동되어 있었다. 최근식은 카메라를 의식하며 태성의 어깨를 꽉 껴안았다. 억센 손길에 태성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태성아, 수고했다! 오늘 아주 훌륭한 플레이였어! 힘 조절을 아주 영리하게 하더구나."

최근식의 목소리에는 탐욕스러운 확신이 가득 차 있었다. 그는 태성의 귓가에 대고 낮고 은밀하게 속삭였다.

"다음 우림 경기장 결승전은 네 축구 인생의 모태가 될 거다. 국내외 거물들이 다 오니까, 그때는 오늘처럼 쉬지 말고 뼈가 부서져라 뛰어라. 알겠지?"

태성을 쇼케이스의 상품으로 내던지고 제 잇속을 차리려는 악마의 미소. 그리고 태성의 눈앞에 또다시 붉은 경보가 명멸하기 시작했다.

[경고: 우림 경기장 진입 임박. 트라우마 필드 기상 악화 감지.]

지옥의 전장이 마침내 그 서막을 열고 있었다.

최근식의 억센 손아귀가 태성의 어깨뼈를 짓누른다. 카메라의 셔터 소리가 쉴 새 없이 터져 나오고, 번쩍이는 플래시 불빛이 태성의 시야를 어지럽힌다. 기자들이 마이크를 들이밀며 최근식을 향해 질문을 쏟아낸다.

"최 감독님! 오늘 강태성 선수의 플레이가 아주 이색적이었습니다! 거의 뛰지 않고 패스로만 경기를 조율했는데, 이것도 전술의 일환입니까?"

최근식이 기다렸다는 듯 가슴을 활짝 펴며 카메라를 향해 호탕하게 웃는다.

"하하! 당연합니다! 우리 청룡고의 전술은 유기적입니다. 태성이가 후방에서 힘을 아끼며 빌드업에 집중한 건, 다음 우림 경기장에서 보여줄 폭발적인 플레이를 위한 철저한 안배였습니다! 결승전에서는 차원이 다른 활동량을 보실 수 있을 겁니다!"

카메라 앞에서 제 공인 양 떠들어대는 꼴이 가관이다.

태성은 슬그머니 어깨를 비틀어 최근식의 손을 빼냈다. 최근식의 눈썹이 미세하게 꿈틀거렸으나, 언론의 눈을 의식해 억지 미소를 유지했다. 태성은 기자들의 질문에 대꾸도 하지 않은 채 락커룸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강태성! 인터뷰 중인데 어디 가!"

최근식이 낮게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등 뒤에서 들렸지만, 태성은 멈추지 않았다.

락커룸으로 들어가는 통로. 어두컴컴한 그곳에서 누군가 벽에 기대어 서 있었다. 붉은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사내. 청룡고의 주전 공격수이자 태성을 눈엣가시로 여기는 박만수였다.

박만수가 씹던 껌을 바닥에 뱉으며 태성의 앞을 가로막았다.

"야, 잔머리 잘 쓰더라? 전반 내내 걷기만 하다가 패스 몇 개 툭툭 던지고 에이스 대접 받으니까 살 맛 나냐?"

박만수의 눈에 질투와 적의가 뒤섞인 안광이 서려 있었다. 그의 시선은 태성의 오른쪽 무릎에 머물렀다. 태성은 박만수의 도발을 무시하고 지나치려 했으나, 박만수가 어깨로 태성의 진로를 들이받았다.

퍽.

둔탁한 마찰음과 함께 태성의 몸이 약간 흔들렸다. 태성의 눈빛이 순식간에 빙결된다.

"비켜라."

"싫은데? 너 다음 우림 경기장 결승전에서 뛸 수나 있겠냐? 거기 배수 개판인 거 알지? 비까지 온다는데, 너처럼 몸 사리는 새끼는 발목 돌아가기 딱 좋은 곳이야."

박만수가 태성의 귀에 대고 잔인하게 웃었다.

"내가 똑똑히 보고 있을게. 네 그 잘난 무릎이 진흙탕 속에서 어떻게 박살 나는지."

태성의 심장박동이 거칠어진다. 6년 전, 빗속의 우림 경기장에서 제 무릎 뼈가 으스러지던 그 감각이 순간적으로 척수를 타고 뇌를 때렸다. 환상통. 아직 부상이 오지 않았음에도 뇌가 기억하는 공포의 잔상이 무릎을 시리게 만들었다.

주먹을 쥔 태성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린다. 하지만 태성은 호흡을 깊게 들이마시며 떨림을 억눌렀다.

"너나 준비 잘해라. 내 패스 받아먹을 생각 말고, 수비 가담이나 똑바로 해."

태성은 차가운 한마디를 남기고 박만수를 거칠게 밀치며 락커룸으로 들어갔다. 뒤에서 박만수가 욕설을 내뱉는 소리가 들렸지만 상관없었다.

***

일주일 뒤. 마침내 결승전 당일.

하늘은 마치 구멍이 뚫린 것처럼 시커먼 먹구름으로 뒤덮여 있었다. 버스가 우림 경기장 주차장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차창을 때리는 빗줄기가 심상치 않았다.

투두두둑! 콰르릉!

천둥소리가 대지를 뒤흔든다. 버스에서 내린 청룡고 선수들은 거센 바람과 폭우에 몸을 가누지 못하고 비명을 질렀다.

"야! 비가 왜 이렇게 많이 와!" "장난 아니다! 잔디가 벌써 물에 잠겼는데?"

태성이 버스 계단을 내려와 우림 경기장의 잔디를 밟는 순간, 발목까지 진흙탕이 차올랐다. 배수가 전혀 되지 않아 그라운드는 이미 거대한 늪지대처럼 변해 있었다.

[위잉―!] [트라우마 필드 '우림 경기장' 진입 완료.] [기상 조건: 태풍급 폭우 및 강풍 (최악)] [특수 디버프 활동: '환상통' 및 '무릎 수명 감쇄율 2배' 적용!]

눈앞에 뜬 붉은색 상태창의 경고가 태성의 시야를 어둡게 가렸다. 동시에, 오른쪽 무릎에서 욱신거리는 극심한 통증이 시작되었다. 뼈가 어긋나는 듯한 환각. 태성은 이가 깨질 정도로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태성아, 괜찮냐? 얼굴이 왜 이렇게 하얘?"

옆에 서 있던 유진우가 태성의 안색을 보고 걱정스레 물었다. 태성은 대답 대신 운동장 한편을 바라보았다.

우림 경기장 본부석 관중석.

폭우 속에서도 우비를 입은 수십 명의 사내들이 수첩을 들고 앉아 있었다. 국내 대기업 구단 스카우터들은 물론이고, 저 멀리 영국 프리미어리그(EPL) 명문 구단의 엠블럼이 새겨진 우비를 입은 아시아 총괄 디렉터의 모습도 보였다.

그들의 시선이 일제히 청룡고의 10번, 강태성에게 꽂힌다.

최근식 감독이 태성의 등을 거칠게 밀치며 소리쳤다.

"뭐 해! 안 들어가고! 오늘 네 인생이 걸린 날이다! 수단방법 가리지 말고 뛰어!"

그때, 상대 팀인 강호 대진고 선수들이 그라운드로 입장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맨 앞에는 이번 대회 최고의 피지컬을 자랑하는 괴물 수비수이자, 과거 태성의 다리를 걷어찼던 장본인의 실루엣이 빗속에서 흐릿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번개가 번쩍이며 그라운드를 대낮처럼 밝힌 그 찰나.

태성의 무릎 상태창이 격렬하게 요동치며 최악의 경고음을 울리기 시작했다.

[위험! 실시간 무릎 내구도 급감 감지!] [현재 내구도: 55% -> 49% (실시간 동기화 오류 발생)] [경고: 전반전 시작과 동시에 무릎 파열 확률 50% 돌파!]

통증이 뇌를 지배한다. 한 걸음조차 떼기 힘든 지옥의 진흙탕 위에서, 주심이 호각을 입에 물었다.

태성은 과연 이 지옥에서 살아남아 EPL로 향하는 문을 열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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