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공식 경기 휘슬이 울리고 상대 미드필더 전원이 기세등등하게 강태성을 둘러쌓고 압박해 드는 순간, 태성의 시야에 번쩍이는 붉은 균열의 패스 길이 활로처럼 전개된다!

빗방울이 가늘게 사선을 그리며 그라운드를 때린다. 진흙과 잔디가 뒤섞여 질척이는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상대 황룡고의 미드필더 최형우를 필두로 한 세 명의 그림자가 순식간에 태성의 시야를 가로막는다. 그들의 어깨가 사정없이 부딪쳐 오고, 축구화 밑창에 박힌 쇠 스터드가 젖은 잔디를 찢으며 위협적으로 미끄러져 들어온다. 거친 압박의 그물망이 태성의 전신을 옥죄어 오는 찰나였다.

"잡아! 저 새끼 다리 묶어버려!"

최형우의 악에 바친 고함이 빗소리를 뚫고 고막을 때린다.

보통의 고교 선수라면 이 지독한 압박에 질겁해 백패스를 선택하거나 볼을 빼앗겨 역습의 빌미를 제공했을 터였다. 하지만 태성은 미동조차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의 검은 눈동자에는 차가운 이성만이 번뜩이고 있었다.

태성의 시야 전체가 기하학적인 선들로 재편된다.

녹색 그라운드 위로 붉은색 균열이 뻗어 나간다. 상대 수비수들의 세밀한 체중 이동, 발끝의 각도, 잔디의 미끄러운 정도까지 실시간 데이터로 환산되어 머릿속으로 흘러 들어온다.

[최적의 패스 궤적 상태창 활성화]

도망칠 생각 따위는 애초에 없었다. 태성은 공을 발바닥으로 긁으며 정면으로 치고 나간다.

상대의 압박 중심부를 향해 스스로 걸어 들어가는 자살 행위와도 같은 전진. 그 무모한 돌파에 황룡고 미드필더들이 순간적으로 당황해 어깨를 들이밀며 몸싸움을 걸어온다.

퍽!

거친 충돌음과 함께 태성의 어깨에 묵직한 충격이 전해진다. 그러나 회귀와 함께 다져진 단단한 피지컬은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이를 악문 태성이 낮게 무게중심을 잡으며 수비진의 틈바구니를 찢고 들어간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더러운 새끼가, 적당히 나대야지!"

뒤에서 귀를 찢는 듯한 욕설이 터져 나온다. 황룡고 선수가 아니다. 청룡고의 에이스를 자처하며 태성을 시기하던 박만수였다.

박만수는 수비 가담을 핑계로 태성의 등 뒤에서 무서운 속도로 쇄도하고 있었다. 그의 눈빛은 질투와 악의로 완전히 뒤틀려 있었다.

상대 수비수들과 엉켜 있는 태성의 사각지대. 박만수는 볼을 가로채는 척하면서 대놓고 태성의 오른쪽 무릎을 향해 거친 슬라이딩 태클을 감행한다. 젖은 잔디 위를 미끄러지는 그의 축구화 스터드가 시퍼런 흉기처럼 태성의 다리를 정조준한다.

같은 팀 동료의 탈을 쓴 명백한 살인 태클이었다.

'이 새끼가 결국 선을 넘는군.'

태성은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한다. 과거 무릎이 박살 나던 그 잔혹한 기억의 파편이 뇌리를 스치며 순간적으로 가슴이 서늘해진다. 환상통이 무릎 주변을 감도는 느낌에 등줄기로 식은땀이 흘러내린다.

하지만 태성은 피하지 않는다. 피하는 순간, 볼의 소유권을 잃고 무릎의 내구도 역시 무의미하게 소모될 뿐이다.

그의 시야에 떠오른 푸른색 경고등과 함께, 1화에서 분석했던 무릎 내구도 장부의 극비 공식이 뇌리에 뚜렷하게 각인된다.

[특수 조건 감지: 상대의 물리적 충돌 직전 시도하는 극비의 기하학적 컷백] [충전 배율: 3.0배 적용 가능]

'단순한 패스로는 부족해. 나를 무너뜨리려는 저 악의를 역이용한다.'

태성은 날카롭게 입꼬리를 올린다.

박만수의 스터드가 태성의 오른쪽 무릎뼈를 찍어누르기 직전, 불과 수 센티미터의 거리.

태성은 디딤발의 힘을 미세하게 빼며 탄력을 죽인다. 젖은 잔디의 미끄러운 성질을 그대로 이용해 몸을 오른쪽으로 비스듬히 기울인다.

슈우욱!

박만수의 축구화가 태성의 무릎 바로 아래, 종이 한 장 차이의 허공을 긁으며 사납게 지나간다. 거친 바람이 정강이뼈를 스치고 지나가는 소름 끼치는 감각이 생생하게 전해진다.

완벽한 타이밍의 회피.

동시에 태성은 왼발 끝으로 공의 측면을 강하게 깎아 찬다. 몸의 중심이 완전히 무너진 것처럼 보이는 찰나의 순간에 터져 나온, 물리 법칙을 거스르는 기하학적 컷백 패스였다.

축구화와 공이 마찰하며 빗물을 사방으로 튕겨낸다.

툭.

낮고 빠르게 회전하며 뒤로 꺾여 나간 볼은, 박만수의 태클 궤적과 황룡고 수비진의 가랑이 사이를 절묘하게 통과한다. 그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역방향의 패스 길이었다.

"어...?"

태성의 무릎을 짓밟았다고 확신했던 박만수가 허망하게 진흙 바닥을 뒹굴며 얼빠진 소리를 낸다. 황룡고 미드필더 최형우 역시 텅 빈 허공을 쳐다보며 몸이 굳어버린다.

그들의 시선 끝에는, 태성이 설계해 둔 단 하나의 '수용체'가 서 있었다.

청룡고의 공격수 유진우였다.

유진우는 멍하니 서 있다가 제 발끝을 향해 자석처럼 굴러오는 공을 보고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태성의 지독한 조련을 받으며 머릿속에 강제로 이식된 오프더볼 본능이 그의 몸을 먼저 움직였다. 생각하기도 전에 발이 뻗어 나간다. 수비수들은 모두 태성의 돌파를 막기 위해 중앙으로 쏠려 있었고, 유진우의 앞에는 광활한 빈 공간과 골키퍼만이 덩그러니 남겨져 있었다.

"진우야! 때려!"

관중석에서 비명 같은 함성이 터져 나온다.

유진우는 침을 꿀꺽 삼키며 굴러온 공에 가볍게 오른발을 갖다 댔다. 디딤발이 미끄러질 틈도 없었다. 공은 이미 완벽한 회전과 속도로 그의 발밑에 안착해 있었기에, 그저 툭 밀어 넣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출렁!

빗물을 머금어 묵직해진 골망이 세차게 뒤흔들린다.

전광판의 숫자가 눈 깜짝할 사이에 뒤바뀐다.

[청룡고 1 : 0 황룡고]

"골!!! 골입니다! 청룡고, 경기 시작하자마자 선제골을 터뜨립니다! 황룡고의 강력한 압박을 순식간에 무력화시키는 강태성 선수의 환상적인 컷백 패스! 유진우 선수가 가볍게 마무리합니다!"

장내 해설진의 흥분 섞인 중계 멘트가 확성기를 타고 그라운드에 울려 퍼진다. 빗속에서 경기를 지켜보던 관중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환호성을 지른다.

그 혼란스러운 함성 속에서, 태성의 시야에 반가운 시스템 메시지들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리기 시작한다.

띠링!

[기하학적 컷백 어시스트 성공!] [특수 조건 달성: 상대의 물리적 충돌 직전 회피 성공 (배율 3.0배 적용)] [어시스트 보상 및 승기 획득 보너스가 지급됩니다.]

[무릎 내구도 수복 완료!] [무릎 내구도: 35.1% -> 49.5% (대폭 충전)]

"하아... 하아..."

태성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자신의 오른쪽 무릎을 내려다보았다.

조금 전까지 느껴지던 묵직한 통증과 환상통이 씻은 듯이 사라져 있었다. 무릎 내부에 따뜻한 에너지가 차오르는 감각이 선명했다. 49.5%. 절반에 가까운 수치까지 회복되자 다리에 힘이 단단히 들어갔다. 이제는 마음껏 달려도 무릎이 부서질 것 같은 공포에 떨지 않아도 된다.

"태성아! 미친, 방금 패스 뭐야? 진짜 미쳤어?!"

유진우가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고 얼굴을 붉힌 채 태성을 향해 달려왔다.

평소라면 귀찮다는 듯 어슬렁거렸을 녀석이, 지금은 마치 사냥에 성공한 들개처럼 눈을 번득이고 있었다. 태성의 패스를 받아먹는 순간의 그 짜릿한 쾌감이 유진우의 게으른 세포를 완전히 깨워버린 것이다.

"발만 대면 들어가는 패스였다. 늦었으면 대가리 깨졌어."

태성은 차갑게 쏘아붙였지만, 유진우는 그 독설마저도 좋은지 태성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포효했다.

"진짜 괴물 같은 새끼... 너랑 뛰니까 축구가 존나 쉽잖아!"

유진우의 눈빛에는 이제 태성에 대한 맹목적인 신뢰와 경외심이 깃들어 있었다. 태성의 '악마의 지휘법'이 완벽하게 먹혀 들어간 순간이었다.

반면, 진흙투성이가 된 채 잔디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박만수의 얼굴은 처참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자신이 쳐놓은 덫에 제 발이 걸려 넘어진 꼴이었다. 태성을 밟아 뭉개려던 그의 비열한 시도는, 도리어 태성의 천재성을 돋보이게 만드는 가장 완벽한 조연 역할로 전락하고 말았다.

"너... 너 방금 일부러..."

박만수가 부들부들 떨리는 손가락으로 태성을 가리키며 이를 갈았다.

태성은 그런 박만수를 내려다보며, 한 걸음 다가가 나지막이 속삭였다. 오직 박만수만이 들을 수 있는 아주 낮고 차가운 목소리였다.

"다시 한번 내 다리 노려봐."

"뭐...?"

"그때는 니 축구 인생 진짜 끝장내 줄 테니까."

태성의 눈동자 깊은 곳에 서린 살기에 박만수는 순간 숨을 들이켜며 뒤로 주춤했다. 방금 전까지 기세등등하던 적대자의 기세는 완전히 꺾여 있었다.

그 순간, 관중석의 분위기도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었다.

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스탠드 한쪽에 모여 있던 대학 스카우터들과 프로 구단 관계자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일제히 품속에서 수첩을 꺼내 무언가를 다급하게 적어 내려갔다.

"방금 그 컷백 봤어? 저 나이에 나올 수 있는 궤적이 아니야." "압박을 완전히 읽고 있었어. 박만수의 태클 타이밍까지 계산해서 꺾은 것 같은데?" "청룡고의 강태성... 수첩에 맨 위에 올려라. 저 녀석은 진짜다."

스카우터들의 펜 끝이 바쁘게 움직였다. 태성의 이름이 그들의 평가 장부 가장 높은 곳에 도배되는 순간이었다. 완벽한 격상 반격이자 사이다 같은 해소였다.

태성은 관중석의 시선들을 느끼며 가볍게 옷깃을 털었다. 아직 경기는 끝난 것이 아니었고, 그의 무릎은 더 많은 승리와 어시스트를 갈망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무대의 뒤편, 청룡고 벤치 구석에서는 전혀 다른 기류가 흐르고 있었다.

최근식 감독이 팔짱을 낀 채 벤치 그늘 깊숙한 곳에 서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팀의 선제골에 대한 기쁨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오직 빗물에 젖은 눈동자만이 탐욕스럽게 번들거리고 있었다.

최근식은 천천히 손을 뻗어 자신의 비서가 들고 있던 두꺼운 수첩을 낚아챘다. 그리고 만년필을 꺼내 거친 필체로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강태성 - 경기력 최상. 무릎 상태 이상 없음. 몸값을 최대로 부풀려 대기업 재단에 넘길 최적의 카드.] [다음 경기부터 풀타임 강제 기용 및 계약금 극대화 대상 지정.]

최근식의 입꼬리가 야만적이고 기괴하게 비틀려 올라갔다.

선수의 몸 상태나 미래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그저 더 많은 돈을 뜯어낼 사냥감을 발견한 포식자의 눈빛이었다. 태성을 철저하게 소모품으로 써서 제 배를 불리겠다는 검은 음모가 빗속에서 조용히 대가리를 쳐들고 있었다.

탁, 소리를 내며 최근식이 수첩을 덮는다.

그는 벤치 앞으로 천천히 걸어 나왔다. 사선으로 내리치는 빗줄기가 그의 비싼 가죽 구두를 적셨지만, 최근식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라운드를 향해 목청을 높였다.

"강태성! 거기서 멈추지 마! 골 하나 넣었다고 끝난 줄 알아? 더 뛰어!"

그의 찢어지는 듯한 고함이 빗소리를 뚫고 태성의 귀에 박힌다.

"전방 압박 더 타이트하게 붙어! 공격만 하지 말고 수비 라인까지 내려와서 볼 배급해! 경기 템포 더 올려서 상대를 완전히 숨도 못 쉬게 밟아버리란 말이야!"

미드필더 한 명에게 공수의 모든 부담을 짊어지우는, 그야말로 무식하고 악랄한 혹사 지시였다. 젖은 잔디 위에서 그런 식의 무리한 활동량을 가져갔다간 멀쩡한 무릎도 한 경기 만에 닳아 없어질 터였다.

옆에 서 있던 한정훈 코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최근식의 소매를 붙잡았다.

"감, 감독님! 태성이 무릎은 아직 관리해 줘야 합니다. 이 빗속에서 수비 가담까지 풀타임으로 소화하게 하면 정말로 무리가 갑니다!"

"놓지 못해? 한 코치, 지금 누구한테 훈수 두는 거야?"

최근식이 매섭게 한정훈의 손을 뿌리쳤다. 그의 눈에 서린 탐욕은 이미 이성을 마비시킨 지 오래였다.

"대학 스카우터들이 저렇게 눈을 불을 켜고 보고 있어! 태성이 저 새끼 몸값을 최고가로 띄우려면, 오늘 경기에서 압도적인 활동량과 스탯을 증명해야 해! 뼈가 부러지든 인대가 늘어나든, 뛰게 만들어!"

독기가 서린 목소리였다. 벤치 근처의 후보 선수들조차 그 서슬 퍼런 기세에 숨을 죽였다.

그라운드 중앙에 서 있던 태성의 가슴속에서 뜨거운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과거의 기억이 벼락처럼 뇌리를 스쳤다. 저 인간은 예전에도 그랬다. 승리와 돈을 위해서라면 고작 열여덟 살짜리 유망주의 다리 따위는 소모품처럼 갈아 넣던 인간. 그 악마 같은 본성이 회귀한 지금 이 순간에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반복되고 있었다.

태성의 시야에 붉은색 경고 창이 거칠게 점멸하기 시작했다.

[위기 상황 감지: 지도자의 무리한 전술적 요구 발생] [요구 사항 수행 시, 무릎 내구도 실시간 감쇄율 2배 적용 예정] [예상 내구도 소모율: 분당 -1.5%]

'미친 소리.'

태성이 송곳니가 부러질 정도로 이를 악물었다.

지시를 그대로 따랐다간 방금 어렵게 채워 넣은 49.5%의 내구도가 전반전이 끝나기도 전에 바닥을 드러낼 것이 자명했다. 그렇다고 대놓고 지시를 거부하며 태업을 했다간, 대기업 재단과 유착된 최근식의 권력에 밀려 다음 경기부터 선발 명단에서 제외될 위험이 있었다.

어느 쪽을 선택해도 파멸로 이어지는 외통수였다.

"태성아, 어떡해? 감독님 지시 안 따르면 후반전에 바로 뺄 기세인데……."

유진우가 불안한 눈빛으로 태성의 눈치를 살폈다. 방금 선제골을 합작하며 끌어올렸던 흥분이 최근식의 고함 한 번에 싸늘하게 식어 내리고 있었다.

태성은 빗물이 흘러내리는 앞머리를 쓸어 올렸다. 그의 시선이 벤치의 최근식을 지나, 저 멀리 심판의 휘슬로 향했다.

'나를 갈아 넣어서 제 배를 채우시겠다?'

태성의 입가에 차갑고 잔혹한 미소가 걸렸다.

혼자서 뛸 수 없다면,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자신이 뛸 활동량을 다른 놈들에게 강제로 분배하는 것. 패스 상태창의 힘을 극대화하여, 동료들을 자신의 수족처럼 움직이는 꼭두각시로 만드는 '악마의 지휘'를 시작할 때였다.

태성이 유진우의 빌드업 라인과 좌우 윙어들의 위치를 빠르게 스캔했다. 시야 전체에 기하학적인 선들이 더욱 촘촘하고 정교하게 얽혀 들어가며, 새로운 시스템 알림이 눈앞에 떠올랐다.

[특수 지휘 모드: '악마의 지휘자(The Devilish Conductor)' 기동 준비] [※주의: 동료들의 체력과 움직임을 극한으로 쥐어짜는 전술입니다. 실패 시 동료들의 신뢰도가 폭락하며, 성공 시 무릎 내구도 추가 보너스가 지급됩니다.]

태성이 천천히 오른손을 들어 올려 아군 수비진과 미드필더진을 향해 손가락질했다. 그의 눈빛은 이미 고교생의 그것이 아니었다. 지옥을 보고 돌아온, 잔혹한 전장의 사령관 그 자체였다.

"지금부터 내 신호 없이는 한 발짝도 움직이지 마."

태성이 낮게 읊조렸다.

"내가 찔러주는 길만 밟아. 숨이 턱 끝까지 막혀서 죽을 것 같아도, 내 발끝만 보고 뛰어라. 안 그러면 지옥을 보게 될 테니까."

그의 무서운 선언과 동시에, 주심이 다시 휘슬을 입에 물었다. 황룡고의 킥오프로 경기가 재개되려는 찰나였다.

갑자기 거센 돌풍과 함께 빗줄기가 폭우로 변해 그라운드를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시야가 흐려지고 발목이 진흙 속으로 깊숙이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태성의 귓가에, 과거 비 내리는 우림 경기장에서 무릎이 꺾이던 그날의 끔찍한 환청이 빗소리와 섞여 들려오기 시작했다.

콰드득―!

"아악! 강태성 다리 부러졌다!"

환청과 함께 태성의 가슴이 사정없이 요동쳤다. 사방이 어둠으로 물드는 듯한 극심한 트라우마의 전조 증상이었다. 최근식의 압박, 악화되는 날씨, 그리고 갑작스럽게 찾아온 과거의 망령까지.

사면초가의 위기 속에서, 태성은 검붉게 물들어가는 상태창을 응시하며 축구화 스터드로 땅을 강하게 짓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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