쿵!
축축하게 젖은 등짝이 콘크리트 벽면에 사정없이 부딪혔다. 둔탁한 마찰음이 좁고 어두운 락커룸 통로를 울컥 채웠다. 전반전을 1-0으로 리드한 채 끝냈다는 안도감마저 일거에 날려버릴 만큼, 가슴팍을 짓누르는 손귀의 악력이 매서웠다.
폭우로 젖은 머리칼을 거칠게 쓸어 넘긴 박만수의 일그러진 얼굴이 코앞까지 들이닥쳤다. 그의 이빨 사이로 허연 침 가래가 부들부들 끓어 넘쳤다.
"야, 강태성."
박만수가 씹어뱉듯 으르렁거렸다. 손가락 끝으로 태성의 쇄골 뼈를 부서트릴 듯이 찔러대며, 빗물에 젖은 유니폼을 사정없이 구겨 잡았다.
"너 후반전에 몸 사려라. 최근식 감독님이 네 무릎 썩창 난 거 대진고 애들한테 다 까발려 줬으니까. 한 번만 더 내 앞에서 잘난 척 깝치다간, 진짜 평생 휠체어 타게 만들어 줄 테니까. 알아들었냐, 이 장애인 새끼야?"
카르텔의 추악한 민낯이 이토록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제 팀의 에이스를 망가뜨려서라도 대학 스카우터들의 눈에 들겠다는 그 비열한 독점욕. 제 자식 같은 선수의 치명적인 약점을 상대 팀에게 팔아넘겨 돈줄을 쥐겠다는 감독의 음모.
하지만 태성의 눈동자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고요했다. 오히려 그의 시야 너머로 푸르게 빛나는 기하학적인 수치들이 박만수의 전신을 샅샅이 해체하고 있었다.
[상대 플레이어 '박만수'의 감정 상태: 극도의 열등감 및 분노 (동기화율 92%)] [물리적 충돌 시 예상 타격 지점: 우측 대퇴부 및 무릎 내측 인대] [분석 완료: 상대의 무게중심이 비정상적으로 앞으로 쏠려 있음. 가벼운 반동만으로도 중심 붕괴 가능.]
태성의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갔다. 비웃음조차 아깝다는 듯한, 지독하게 냉소적인 미소였다.
"이거 놔라."
태성이 나직하게 읊조렸다. 목소리에 담긴 서늘한 기운에 박만수의 손끝이 움찔했다.
"너 같은 삼류 새끼들이 꼭 축구 못할 때 주먹질이나 입축구로 때우려고 하더라. 감독 똥개 노릇 하면서 남의 무릎 정보나 구걸하는 꼴이 참 눈물겹다, 만수야."
"이 미친 새끼가 진짜...!"
박만수의 눈이 뒤집혔다. 주먹이 허공을 가르며 날아오려는 찰나, 태성은 상체를 반 보 뒤로 물림과 동시에 박만수의 손목 관절을 비틀어 쳐냈다. 툭, 하는 가벼운 파찰음과 함께 박만수의 거구 중심이 진흙 묻은 바닥 위에서 허무하게 무너져 내렸다.
"억...!"
"주먹 쓸 힘 있으면 후반전에 공이나 제대로 쫓아와 봐. 헐떡거리며 자빠지는 꼴, 더는 봐주기 흉하니까."
태성은 흙 묻은 어깨를 털어내며 차갑게 돌아섰다. 어두운 통로 저편으로 걸어 나가는 그의 등 뒤로 박만수의 짐승 같은 욕설이 메아리쳤지만, 태성에게는 그저 패배자가 내지르는 마지막 비명처럼 들릴 뿐이었다.
***
후반전의 우림 경기장은 그야말로 생지옥이었다.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듯 쏟아지는 장대비는 시야를 불투명한 장막으로 가려버렸다. 배수가 전혀 되지 않는 천연 잔디 구장은 이미 발목까지 푹푹 빠지는 진흙탕으로 변해 있었다. 한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진흙이 찌걱거리며 디딤발을 사정없이 흔들어 놓았다.
"태성아! 괜찮냐?!"
가쁜 숨을 몰아쉬는 유진우의 외침도 거센 빗소리에 묻혀 희미하게 들려왔다.
태성은 천천히 오른쪽 무릎을 굽혔다 폈다.
[현재 무릎 내구도: 45.0%]
과거, 이 지옥 같은 우림 경기장에서 무릎이 가루처럼 고꾸라지던 그날의 끔찍한 환상통이 척추를 타고 뇌리를 스쳤다. 콰르릉! 뇌성벽력이 쏟아질 때마다 관중들의 비명과 뼈가 부러지는 파열음이 환청처럼 귀를 때렸다. 심장이 터질 것처럼 죄어왔다.
'진정해라.'
태성은 어금니를 사려 물었다.
'이건 과거가 아니다. 나는 이미 그 고통을 넘어설 열쇠를 쥐고 있다.'
스르륵. 태성의 안광이 푸르게 물들며 시야 가득 정교한 그리드 라인이 펼쳐졌다. 빗물 장막을 뚫고 뻗어 나가는 기하학적인 패스 궤적 상태창.
그때, 대진고의 압박이 시작되었다. 최근식 감독의 사주를 받은 비리 카르텔의 사냥개들이 공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태성을 향해 일제히 쇄도했다.
"저 새끼 오른쪽 다리만 까! 들이받아!"
대진고 코치의 악에 바친 지시가 빗속을 뚫고 꽂혔다. 대진고 수비수 세 명이 태성의 오른쪽 무릎을 겨냥하고 슬라이딩 태클을 범해왔다. 날카롭게 들이민 쇠 스터드가 진흙을 튀기며 살벌하게 다가왔다.
태성은 잔발을 밟으며 간신히 그들의 무모한 돌진을 피해 냈다. 하지만 급제동과 방향 전환을 반복할 때마다 디딤발에 얹히는 과부하가 무릎 수명을 갉아먹었다.
[위험! 무릎 내구도 실시간 감소 중: 44.2%]
이대로 혼자 필드를 지배하려다가는 후반전이 끝나기도 전에 무릎이 먼저 터져 나갈 터였다. 먹잇감을 사냥하기 위해서는 미끼를 던지고, 아군을 사육해야만 했다. 악마의 지휘자가 움직일 시간이었다.
태성의 예리한 안광이 전방의 혼란스러운 필드를 빠르게 훑었다. 폭우로 인해 시야가 엉망진창이 된 수비수들 사이에서, 오직 태성의 눈에만 선명하게 점멸하는 단 하나의 신호가 포착되었다.
[A급 수용체 레이더: 유진우] [동기화율: 89% - 폭발적인 오프더볼 공간 침투 경로 활성화]
게으르고 의지박약이던 유진우. 하지만 태성이 주입한 '떠먹여 주는 황금 패스'의 짜릿한 손맛을 맛본 유진우의 뇌는 이미 쾌감에 절어 있었다. 진우는 대진고 수비진이 태성에게 쏠린 빈틈을 본능적으로 감지하고, 빗속에서 귀신처럼 수비 뒷공간을 파고들고 있었다.
'왔구나, 사냥개 새끼.'
태성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올라갔다. 진우의 오프더볼 침투 궤적을 실시간으로 추적하는 푸른 빛의 레이더가 태성의 시야에서 찬란하게 요동쳤다.
바로 그때였다.
"강태성!!! 뒤져라!!!"
성난 멧돼지처럼 폭주한 박만수가 최후의 살인 태클을 감행하며 달려들었다. 그의 두 발은 진흙탕 위로 붕 떠 있었고, 축구화 밑바닥의 쇠 스터드가 태성의 오른쪽 무릎을 정면으로 겨냥하고 있었다. 그것은 축구가 아니었다. 상대의 선수 생명을 완전히 끊어놓겠다는 명백한 악의, 박만수가 경기 전에 늘 흘리던 고질적인 상향 스터드 반칙 버릇의 극치였다.
태성의 상태창이 붉은색 경고등을 폭발적으로 뿜어냈다.
[치명적 경고! 박만수의 '치명적 파열 궤적' 동기화율 100% 완료!] [물리적 충돌 각도: 52도. 타격 강도: 극도(Red Zone)] [피해 예상: 즉각적인 십자인대 완파 및 퇴행성 관절염 유발]
찰나의 순간, 태성의 머릿속에 무릎 내구도 장부의 절대 법칙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단순한 패스보다, 상대의 물리적 충돌 직전에 시도하는 극비의 기하학적 컷백은 수명 충전 배율을 3배로 증가시킨다.'
피할 생각은 없었다. 완벽히 이용해 주마.
타이밍은 단 0.1초. 박만수의 쇠 스터드가 태성의 오른쪽 스타킹을 찢어발기기 직전, 태성은 상체를 앞으로 기울이며 오른발로 진흙을 강하게 디뎠다. 박만수의 눈동자에 잔인한 승리의 확신이 차오르는 바로 그 찰나!
태성은 디딤발의 축을 기하학적인 각도로 비틀며 온몸의 회전력을 최소화했다.
스윽ㅡ!
태성의 오른발 끝이 공의 밑부분을 깎아내며 몸을 허공으로 가볍게 띄웠다. 빗방울이 허공에서 멈춘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정교하고 우아한 탈압박, 극비의 기하학적 컷백이었다.
[극비의 기하학적 컷백 성공!] [충격 회피율 100%. 충전 이자 배율 3배 적용 완료!]
"어...?"
공중에서 박만수의 눈동자가 경악으로 물들었다. 먹잇감이 눈앞에서 신기루처럼 사라진 것이다. 제동력을 완전히 상실한 박만수의 거구는 가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젖은 진흙 바닥 위를 미끄러져 갔다.
그리고ㅡ
빠각!!!
빗소리와 관중들의 함성을 단숨에 찢어발기는 기괴한 뼈 파열음이 그라운드에 울려 퍼졌다.
박만수가 치켜들었던 쇠 스터드가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진흙 구덩이에 박혔고, 그 무지막지한 반동을 이기지 못한 박만수의 오른쪽 무릎이 거꾸로 꺾이며 그라운드에 사정없이 처박혔다.
"아아아아아아악!!! 내 무릎!!! 내 무릎이!!!"
박만수가 진흙탕 속에서 사지를 뒤틀며 찢어지는 비명을 질렀다. 그의 얼굴은 고통과 공포로 하얗게 질려 들어갔다. 제 손으로 태성을 불구로 만들려던 더러운 반칙 버릇이, 고스란히 제 무릎을 가루로 만드는 자승자박의 덫이 된 꼴이었다.
태성이 뒤로 꺾어놓은 공은 빗물을 가르며 자로 잰 듯이 유진우의 발끝에 정확하게 감겼다.
[A급 수용체 레이더 동기화 완료! 패스 도달 성공!]
"진우야, 쑤셔 넣어."
태성의 차가운 지시가 떨어지기 무섭게, 완벽한 오픈 찬스를 잡은 유진우가 골키퍼를 가볍게 따돌리고 오른발 인사이드로 공을 밀어 넣었다.
출렁!
그물을 흔드는 세찬 소리와 함께 전광판의 숫자가 2-0으로 바뀌었다.
"골!!! 청룡고등학교 추가골입니다! 강태성의 환상적인 턴 동작에 이은 기적 같은 백힐 컷백! 그리고 유진우의 깔끔한 피니시!"
중계진의 흥분 섞인 비명이 경기장 스피커를 찢을 듯 울려 퍼졌다.
동시에 삐이익ㅡ! 주심의 휘슬 소리가 날카롭게 울렸다. 주심은 부상으로 쓰러져 비명을 지르는 박만수에게 다가가, 단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뒷주머니에서 새빨간 카드를 꺼내 들었다.
[다이렉트 레드카드! 대진고 박만수 퇴장!]
"말도 안 되는 살인 태클이었습니다! 제풀에 미끄러져 부상을 입었지만, 저건 명백한 고의성이 다분한 퇴장 감입니다!"
들것이 들어와 비명을 지르는 박만수를 실어 나가는 동안, 관중석에서는 야유 대신 뜨거운 박수갈채와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빗속에서도 관중들은 일제히 기립하여 태성의 경이로운 탈압박 능력과 패스 정밀도에 온몸으로 찬사를 보내고 있었다.
"저 빗속에서 저런 부드러운 턴과 정교한 컷백을 구사하다니요! 이건 고등학생 수준이 아닙니다! 천재입니다, 천재!"
우림 경기장을 가득 채운 함성 소리가 태성의 귓가를 때렸다. 늘 그를 괴롭히던 무릎의 환상통은, 관중들의 찬양 소리와 함께 저 멀리 씻겨 내려가고 있었다.
***
삐ㅡ 삐ㅡ 삐이익ㅡ!
"경기 종료! 청룡고등학교, 폭우 속의 대혈투 끝에 최종 승리를 거두며 전국대회 예선 우승을 차지합니다!"
종료 휘슬이 울리자마자 청룡고 선수들이 태성을 향해 일제히 달려와 그를 껴안았다. 유진우가 제일 먼저 태성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흥분해서 소리쳤다.
"태성아! 우리가 해냈어! 네 패스 진짜 미쳤다고! 나 진짜 발만 댔는데 골문으로 빨려 들어갔어!"
태성은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차가운 빗물이 얼굴을 적셨지만, 가슴속에는 알 수 없는 뜨거운 전율이 요동치고 있었다.
그 순간, 눈앞에 영롱한 골드빛 상태창이 폭발적인 이펙트와 함께 팝업되었다.
[딩동!] [대회 최종 우승 및 최다 어시스트 업적 달성!] [상대의 물리적 충돌 직전 시도한 '극비의 기하학적 컷백' 성공! 충전 이자 배율 300% 적용!] [무릎 내구도가 극적으로 대수복을 기록합니다!]
[무릎 내구도: 45.0% -> 95.0% (사상 최고 수치 경신!)] [특전: 무릎 내구도 한계치 대폭 확장 및 과거의 부상 트라우마(환상통) 영구 제어!]
오른쪽 무릎을 감싸고 있던 묵직한 이물감과 욱신거리던 통증이 눈 녹듯 사라졌다. 마치 깃털처럼 가벼워진 다리. 완벽한 피지컬을 되찾은 감각에 태성은 주먹을 꽉 쥐었다. 이제 부상의 공포 없이, 온전한 몸으로 EPL이라는 꿈의 무대를 향해 폭주할 완벽한 시동이 걸린 것이다.
"태성아, 얼른 들어가자! 감기 걸린다!"
유진우의 재촉에 태성은 미소를 지으며 락커룸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시상식의 열기가 채 식지 않은 락커룸 통로는 여전히 활기가 넘쳤다.
하지만 락커룸 입구에 다다랐을 때, 태성의 시선은 저 멀리 운동장 모퉁이에 고정되었다.
최근식 감독이 대기업 스카우터들과 은밀하게 눈빛을 교환한 뒤, 비열한 미소를 지으며 서류 가방을 챙겨 사라지는 모습이 보였다. 그의 눈빛에는 지독한 독기와 음모가 서려 있었다. 태성은 차갑게 읊조렸다. 최근식의 그 추악한 비리 장부를 세상에 까발려 매장할 날이 머지않았음을 확신하며.
그러나 그보다 먼저, 락커룸 문앞에는 이미 또 다른 더러운 덫이 벽보의 형태로 거칠게 붙어 있었다.
선수들이 웅성거리며 벽보 앞으로 몰려들었다.
"어...? 이게 뭐야? 태성이 너..."
유진우의 목소리가 사정없이 떨렸다. 태성은 군중을 헤치고 벽보 앞으로 다가갔다. 하얀 종이 위에는 붉은색 직인과 함께 날카로운 글씨가 박혀 있었다.
[공고: 청룡고등학교 축구부 강태성 징계위원회 회부의 건] - 사유: 구단 가계약 불이행, 감독 지시 불이행 및 심각한 항명죄. - 조치: 징계위 결과 발표 시까지 모든 공식 훈련 및 경기 출전 무기한 정지.
우승의 기쁨이 채 가시기도 전에, 추악한 학원 축구의 카르텔이 태성의 목덜미를 향해 최후의 칼날을 들이밀고 있었다.
태성의 눈빛이 빗속에서 다시 한번 차갑게 타오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