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세트장 한구석에서 뿜어져 나온 시퍼런 불꽃과 함께, 귀를 찢는 폭음이 스튜디오를 뒤흔든다.

스폰서 대기업이 협찬한 신형 의료 가스 제어 장치의 고압 레귤레이터가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파편이 사방으로 비산하고, 비명 소리가 자욱한 매연 사이를 뚫고 터져 나온다. 아수라장이 된 현장 한가운데, 불과 몇 미터 거리에서 직격타를 맞은 카메라 스태프 한 명이 가슴을 움켜쥔 채 바닥으로 쓰러진다.

당신은 직관적으로 몸을 날린다. 비틀거리며 다가간 스태프의 상태는 처참하다. 우측 흉벽에 박힌 금속 파편. 호흡은 분당 35회 이상으로 가쁘고 가슴은 비대칭적으로 들썩인다. 청진기가 필요 없다. 쓰러진 그의 목에 드러난 경정맥이 터질 듯 팽창해 있고, 기관(Trachea)은 이미 좌측으로 눈에 띄게 치우쳐 있다. 심각한 기흉, 그중에서도 가장 치명적인 '긴장성 기흉(Tension Pneumothorax)'이다.

흉강 내로 유입된 공기가 빠져나가지 못해 압력이 계속 상승하고 있다. 압박받은 우측 폐가 완전히 허탈(Collapse)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대정맥을 압박하여 심장으로 돌아오는 혈류 자체를 차단하는 폐쇄성 쇼크(Obstructive Shock) 단계. 이대로 두면 3분 이내에 심정지가 온다.

"비켜! 구급차 불러! 당장!" 현장 자문을 맡은 명성대학병원 흉부외과 임 교수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소리치지만, 정작 그의 손은 덜덜 떨리고 있다. 세트장 주변은 현재 폭설과 촬영 차량 제설 작업으로 인해 사설 구급차조차 진입하는 데 최소 20분이 걸리는 고립 상태다.

"비키세요." 당신의 목소리가 얼음장처럼 차갑게 내려앉는다. 당신은 소품 카트에서 실제 의료용으로 준비되어 있던 멸균 흉강 천자 키트와 메스를 낚아챈다.

"미쳤어? 일개 대역 배우가 어디에 손을 대는 거야! 사람 죽일 일 있어?" 임 교수가 당신의 손목을 잡아채려 가로막는다. 세트장의 스태프들과 은밀히 음모를 꾸미던 제작 책임자 역시 사색이 되어 소리친다. 의료 사고로 번져 협찬 장비의 결함이 탄로 날까 두려운 것이다.

당신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임 교수를 쏘아본다. 그 기세에 압도당한 교수가 주춤하며 손을 놓는다. "우측 폐 허탈로 인한 종격동(Mediastinum) 편위. 이로 인해 상하지 대정맥이 압박받아 정맥 환류량이 급감하고 있습니다. 지금 천자를 통한 감압을 하지 않으면 120초 이내에 쇼크사합니다. 흉부외과 전문의라는 자의 눈에는 이 위급한 병태생리가 보이지 않는 겁니까?"

막힘없이 쏟아지는 초전문적인 진단과 서슬 퍼런 경고에 임 교수는 아무 대꾸도 하지 못한 채 입을 벌린다.

당신의 심박수가 요동친다. 120bpm. 하지만 시야는 극도로 차분해진다. 뇌 속의 신경원들이 살아 움직이고, 수천 번의 수술로 단련된 손끝 감각이 완전히 깨어난다. 쓰러진 스태프의 의식이 희미해지며 동공이 풀리기 시작한다. 피부는 산소 부족으로 푸르게 변해가는 청색증 상태. 더 지체할 시간은 없다.

당신은 왼손 손가락으로 그의 우측 두 번째 갈비사이공간(Intercostal space)과 쇄골 중간선이 만나는 지점을 정확히 짚어낸다. 오른손에 쥔 예리한 소독 메스 끝이 차갑게 번뜩인다.

사고 소식을 듣고 몰려든 스태프들의 웅성거림과, 미처 꺼지지 않은 채 이 상황을 실시간으로 송출하고 있는 중계 카메라의 렌즈들이 당신의 일거수일투족을 향해 쏟아진다. 이 일촉즉발의 아수라장 속에서, 환자를 살려내기 위한 공간을 확보해야 한다. 당신의 시선이 빠르게 계산기를 두드린다.

다음 화 계속 보기 →

댓글을 남기려면 로그인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