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지하 수술실의 공기는 습하고 비릿하다. 정화 필터가 수명을 다한 야매 환기구에선 연신 쇠 긁는 소음이 흘러나오고, 수술대 뒤편에 선 사내들의 살기등등한 시선이 당신의 등에 꽂힌다. 당신의 거친 호흡이 멸균 마스크를 축축하게 적신다. 목덜미로 식은땀이 흘러내리지만, 눈동자만큼은 사납게 빛난다. 수술대 위, 얼굴빛이 잿빛으로 변한 환자는 이사장의 최측근 브로커 배태식이다.

"손 떨지 마라. 이 사람 테이블 위에서 죽는 순간, 네년도 여기서 살아서 못 나가니까."

등 뒤에서 들려오는 거친 협박을 사뿐히 무시하며, 당신은 환자의 바이탈 모니터를 쏘아본다. 수축기 혈압 65mmHg, 분당 맥박수 135회. 급격한 저혈량성 쇼크다. 낡은 이동식 초음파 화면에 잡힌 상복부 후복막강에는 이미 거대한 혈종이 고여 있다. 흉복부 대동맥류 파열(Ruptured Thoracoabdominal Aortic Aneurysm, TAAA). 당장 하행 대동맥을 조여 출혈을 막지 않으면 5분 내로 심정지가 올 절대적 초응급 상태다.

문제는 이 조잡한 지하 수술실에 인공심폐기(CPB)는커녕 제대로 된 혈관 겸자(Clamp)조차 몇 개 없다는 사실이다. 인공심폐기 없이 대동맥을 차단하면 하반신으로 가는 혈류가 완전히 차단된다. 척수 허혈과 신장 괴사 없이 수술을 끝내려면 대동맥 차단 시간(Cross-clamp time)을 무조건 20분 이내로 단축해야 한다. 통상적인 대학병원 선진 장비 하에서도 성공률이 20%를 밑도는 신의 영역이다. 오직 집도의의 극단적인 봉합 속도와 기계보다 정확한 손끝 감각에 모든 것이 걸렸다.

"메스, 그리고 롱 아탈라(Atraumatic vascular clamp) 가져와."

당신이 차갑게 명령하자, 겁에 질린 야매 간호사가 허둥지둥 도구를 건낸다. 당신은 환자의 좌측 흉부를 따라 제5늑간을 절개한다. 늑간근을 가르고 흉막을 열자, 시커멓게 고여 있던 혈액이 분수처럼 뿜어져 나와 당신의 수술 가운을 적신다. 시야가 즉각 차단된다. 석션기가 피를 빨아들이는 소리가 요란하지만 역부족이다.

손가락 끝의 촉각에만 의존해 박동하는 대동맥을 찾아 들어가야 한다. 1초가 흐를 때마다 배태식의 생명력이 타들어 가고, 수술실을 감싼 비리 조직원들의 손이 품 안의 흉기로 향한다. 극도의 긴장감이 수술실을 지배하는 찰나, 당신의 수술복 깊은 주머니 속에서 아주 미세한 진동이 울린다. 주연 배우가 건네준 장부와 함께 챙겨둔, 외부 경찰 수사팀과의 암호화 통신 단말기다.

지금 이 순간, 당신의 앞에는 두 갈래의 외줄 타기가 기다리고 있다. 인체 해부학의 한계를 시험하는 20분의 기적적인 단독 집도에 모든 신경을 집중할 것인가, 아니면 수술의 간극을 타서 은밀하게 외부 통신망을 복구해 상황을 반전시킬 것인가.

당신의 손끝이 밭은 호흡 속에서 무겁게 가라앉는다. 메스를 쥔 검지에 힘이 들어간다.

다음 화 계속 보기 →

댓글을 남기려면 로그인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