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대리님, 솔직히 말해봐요. 본부장님이랑 뭐 있죠?"

모니터 뒤로 슬금슬금 바퀴를 굴려 다가온 김 대리가 미어캣처럼 고개를 빼고 속삭입니다. 당신은 마시던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뿜을 뻔하며 급하게 목을 가다듬습니다.

"네? 무슨 본부장님이요? 아, 한준우 본부장님? 우리가 뭐가 있어요, 월급 노예와 자본가 관계지."

"에이, 시치미 떼지 마시구. 아까 복도에서 두 분 스쳐 지나갈 때 흐르던 그 묘한 기류, 내가 똑똑히 봤거든요? 심지어 손끝 스치는 것도 같았는데?"

"김 대리, 요즘 야근 많이 해서 헛것 보나 봐. 안 되겠다, 오늘 무조건 칼퇴해."

당신의 능청스러운 방어에도 김 대리의 예리한 레이더망은 꺼질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등 뒤로 식은땀이 한 줄기 흘러내립니다.

"에이, 저번에 탕비실에서도 두 분만 있을 때 공기가 완전 멜로영화던데요? 본부장님이 대리님 쳐다보는 눈빛이 어우, 아주 꿀이 뚝뚝 떨어지던데. 진짜 아무 사이도 아니라고요? 비밀 사내 연애 맞죠?"

"야, 김 대리! 너 블라인드 앱에 이상한 소설 쓰면 나 진짜 고소한다? 한 본부장님 성격 알잖아. 피드백 엄청 칼 같은 거. 나 그냥 오늘도 털리기 직전이라 얼굴 하얗게 질려 있던 거야."

"흠, 그런 것치고는 본부장님이 이 대리님 기획안만 유독 밤새서 꼼꼼히 봐주시는 것 같던데? 원래 그분 칼퇴의 아이콘이시잖아요."

바로 그때, 저 멀리서 또각거리는 구두 굽 소리가 들려옵니다. 당신의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습니다. 소리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그 '한준우 본부장'입니다. 그는 결재판을 든 채 무표정한 얼굴로 당신의 파티션 앞을 지나쳐 갑니다.

"이 대리님, 아까 요청한 매출 분석표 수정본은 어떻게 됐습니까?"

낮고 차분한 목소리. 하지만 당신을 바라보는 그의 눈동자 속에는 세상 아무도 모르는, 오직 당신만을 향한 따뜻한 온기가 찰나의 순간 스쳐 지나갑니다. 당신은 애써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며 목소리를 가다듬습니다.

"아, 네! 본부장님. 지금 수치 재검증 중이라 10분 내로 공유해 드리겠습니다!"

"네, 흐트러짐 없이 확실하게 처리해 주세요."

그가 멀어지기 무섭게 김 대리가 다시 의자를 바짝 붙이며 눈을 빛냅니다.

"거봐! 방금 말끝 부드러워진 거 나만 느꼈어? 대리님, 솔직히 말해요. 진짜 비밀 연애 맞죠? 내가 진짜 입 무거운 거 알잖아!"

김 대리의 집요한 추궁에 주변 다른 팀원들의 귀도 쫑긋 서는 게 느껴집니다. 여기서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 내일 아침 회사 메신저가 폭발하는 건 시간문제입니다. 긴장감으로 침이 바짝 마르는 순간, 당신의 눈동자가 흔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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