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구구구구궁-!*
발밑의 대지가 격렬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단순한 지진이 아니었다. 광산 지하 깊은 막장 아래쪽에서, 마치 거대한 괴물이 깨어난 듯한 불길한 진동이 고막을 찢을 듯 울려 퍼졌다.
"앗! 에일린, 조심해!"
레온이 재 빠르게 에일린의 가냘픈 팔을 잡아끌며 자신의 품 쪽으로 이끌었다.
동시에, 저 멀리 어둠이 가득했던 지하 깊은 막장의 틈새에서 시뻘겋다 못해 검붉은 빛을 띠는 고농도의 마력 가스가 대지진과 함께 공중으로 무섭게 분출되기 시작했다. 뿜어져 나오는 가스의 열기가 광산 내부를 순식간에 지옥 같은 열기로 채워갔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목구멍이 타들어 가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콜록! 이, 이게 무슨……."
에일린은 밀려드는 가스 안개를 피해 소매로 입을 틀어막았다. 눈앞이 붉은 안개로 흐려지는 와중에도, 머릿속에서 경고음이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경고: 고농도 오염 마력 가스 유출!] [현재 영지 오염도 급증 중!] [영민들의 생존율 및 호감도가 급락할 위기입니다.] [주의: 영지 재정이 악화되거나 영민의 호감도가 폭락할 경우, 시한부 페널티 '전신 마비 통증'이 즉각 발동합니다!]
눈앞에 떠오른 반투명한 베이킹 장부의 수치들이 붉은빛으로 깜빡이며 사정없이 깎여 내려가고 있었다. 가슴을 옥죄는 압박감에 에일린은 입술을 깨물었다. 조금만 지체했다가는 영지 전체가 마력에 오염되는 것은 물론, 자신의 수명조차 장담할 수 없는 최악의 상황이었다.
성채 외곽의 거친 암벽 틈새로 칼바람이 불어와 마른 잎사귀들을 쓸어내리는 쓸쓸한 소리가 광산 안까지 가냘프게 흘러들었다. 스산한 바람마저 이 불길한 가스에 휩쓸려 차갑게 얼어붙는 듯했다.
"전원, 입과 코를 막고 후퇴하라!"
리하르트가 검을 뽑아 들며 기사들에게 호령했다. 그의 묵직한 목소리가 동굴 벽을 울렸지만, 가스의 침투 속도는 기사들의 발걸음보다 훨씬 빨랐다.
광산 입구 쪽으로 후퇴하던 대열의 앞쪽에서 끔찍한 비명이 터진 것은 순식간이었다.
"크아아악!"
"허억, 머, 머리가……!"
가문의 최정예 마검사 기사들이 하나둘 바닥으로 쓰러지기 시작했다. 그들은 검을 떨어뜨린 채 머리를 감싸 쥐고 비명을 질렀다. 피부 위로 보랏빛의 기괴한 마력 혈관이 징그럽게 솟아오르고 있었다. 입가에서는 검붉은 피가 울컥 쏟아져 나왔다.
"리하르트 님…… 살려, 주십시오……. 마력이, 마력이 날뛰고 있습니다……!"
기사단장 대리인 유진이 핏발 선 눈으로 리하르트를 바라보며 바닥을 기었다. 온몸을 집어삼키는 보랏빛 폭주 증세는 그들이 제국 최강의 마검사들이라 할지라도 버텨내기 힘든 치명적인 맹독이었다.
"이봐! 정신 차려!"
레온이 굳은 얼굴로 유진의 어깨를 붙잡았지만, 유진의 눈동자는 이미 이성을 잃고 보라색으로 탁하게 물들어 가고 있었다. 기사들의 호감도와 신뢰도가 꺾이는 순간, 에일린의 시야에 떠오른 장부의 경고창이 더 크게 번뜩였다.
[호감도 급락 경고! 페널티 발동까지 남은 시간: 10분] [체온 저하 및 전신 마비 전조 증상이 시작됩니다.]
실제로 에일린의 손끝이 조금씩 뻣뻣하게 굳어 가기 시작했다. 숨을 쉴 때마다 가슴팍이 찌르는 듯 아팠다. 피할 수 없는 시한부의 굴레가 그녀의 목을 조르고 있었다.
'안 돼. 여기서 주저앉아 버림받을 수는 없어. 살아야 해. 이 사람들도 전부 살려야 해!'
에일린은 주먹을 꽉 쥐었다. 전생에 쓸모없다는 이유로 차갑게 버려졌던 기억이 머릿속을 스쳤다. 이곳은 그녀가 겨우 찾아낸 보금자리였고, 그녀를 지키겠다고 말해 준 오빠들이 있는 곳이었다. 결코 허무하게 잃을 수 없었다.
"레온! 그 펜던트, 잠깐만 나한테 줘!"
에일린이 다급하게 외쳤다.
"어? 이거?"
레온이 제 목에 걸려 있던, 금이 가고 모서리가 부서진 정화석 펜던트를 더듬거렸다. 1화에서부터 레온이 고집스럽게 차고 다녔던, 마력을 제대로 정화하지 못해 쓸모없는 쓰레기 취급을 받던 물건이었다.
"응! 빨리!"
에일린이 손을 뻗자, 레온은 군말 없이 목걸이를 풀러 그녀의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다.
부서진 정화석을 움켜쥐는 순간, 에일린은 자신의 체내에 흐르는 정화 베이킹 마력을 펜던트 속으로 강하게 밀어 넣었다. 주입된 마력이 정화석의 불완전한 균열 틈새로 스며들자, 놀라운 현상이 일어났다. 부서진 틈새 사이로 마력이 통과하며 일종의 격렬한 굴절과 공명이 발생한 것이다.
*웅웅웅웅-!*
진동판처럼 변한 정화석이 엄청난 파동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단순한 정화 마력이 아니라, 주변의 오염된 공기를 강하게 빨아들이고 중화시키는 거대한 소용돌이가 형성되었다.
[복선 감응 완료: '부서진 정화석 융합 공식' 작동!] [정화 마력의 효율이 50배로 증폭됩니다!]
"역시 내 생각이 맞았어……!"
부서진 정화석의 파동을 베이킹 마력과 융합하면 정화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공식을 정립했던 것이 마침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에일린은 이 강력한 정화 파동을 유지한 채, 미리 준비해 두었던 제빵 도구와 재료들을 바닥에 펼쳤다.
시간이 없었다. 에일린은 휴대용 오븐 마법 도구를 가동했다.
그녀가 슈바르츠발트의 정화된 밀가루를 꺼내 들자, 리하르트의 눈빛이 흔들렸다.
"에일린, 이 아수라장 속에서 빵을 굽겠다는 건가?"
"지금 기사님들의 폭주를 가라앉힐 수 있는 건 약이 아니에요. 마력을 흡수해서 맛있게 중화시킬 수 있는 제 빵뿐이에요!"
에일린의 목소리에는 평소의 소심함은 간데없고, 확고한 결의만이 가득했다.
그녀는 고농도 정화 파동을 반죽에 고스란히 밀어 넣기 시작했다. 차가운 얼음물과 차가운 버터를 슈바르츠발트의 밀가루와 섞어 빠르게 치댔다. 손끝에서 느껴지는 반죽의 감촉은 쫄깃하면서도 촉촉했다.
그녀의 손길이 닿을 때마다 반죽은 은은한 금빛 마력 입자를 머금으며 부풀어 올랐다. 버터를 겹겹이 접어 넣어 결을 만드는 손놀림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교했다. 버터의 묵직하고 고소한 향이 밀가루의 구수한 내음과 섞여들며, 광산의 쾌쾌하고 매캐한 마력 가스 냄새를 밀어내기 시작했다.
반죽을 얇게 밀어 삼각형으로 자른 뒤, 끝에서부터 도르르 말아 초승달 모양의 크루아상 형태를 잡았다. 에일린은 그것을 마법 오븐 안에 밀어 넣었다.
*화아아아-!*
오븐의 열기가 돌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향긋하고 풍성한 냄새가 광산 내부에 퍼져 나갔다.
갓 구워지는 크루아상에서는 달콤하면서도 짭조름한 버터의 풍미가 뿜어져 나왔다. 노릇노릇하게 구워지며 겉면이 바삭하게 부풀어 오르는 소리가 *바스락, 바스락* 하고 기분 좋게 울렸다. 코끝을 부드럽게 감싸 안는 따스한 버터 향과, 갓 구운 빵 특유의 구수하고 부드러운 아로마가 가득 퍼지자, 기사들의 거친 신음소리가 조금씩 잦아들었다.
"다 됐어요!"
에일린이 오븐을 열었다. 황금빛으로 빛나는, 겹겹이 살아 숨 쉬는 크루아상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겉은 유리처럼 얇고 바삭한 결이 살아 있었고, 속은 깃털처럼 가볍고 촉촉한 공기층으로 가득 차 있었다. 보기만 해도 침샘을 자극하는 비주얼이었다.
에일린은 망설이지 않고 뜨거운 크루아상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가장 심하게 발작하며 피를 토하던 기사 유진에게 다가갔다.
"유진 님, 제발 이걸 드세요!"
"크흑…… 에, 에일린 님…… 위험합……."
"말하지 말고 어서요!"
에일린은 고집스럽게 유진의 입술 사이로 크루아상을 직접 밀어 넣었다. 뜨거운 빵 조각이 그의 입안으로 들어가자, 유진은 본능적으로 그것을 씹기 시작했다.
*바삭-*
가장 먼저 고막을 때린 것은 얇은 페이스트리 껍질이 경쾌하게 부서지는 소리였다. 입안 가득 고소하고 달콤한 버터의 풍미가 홍수처럼 밀려들었다. 뒤이어 씹히는 빵결은 구름처럼 폭신하고 부드러워, 지친 혀를 따스하게 감싸 안았다.
그 순간, 유진의 몸을 잠식하고 있던 시커먼 폭주 마력이 빵에 담긴 초고농도 정화 마력과 부딪쳤다. 정화석의 파동을 품은 크루아상은 유진의 몸속에 엉켜 있던 마력의 매듭을 부드러우면서도 강력하게 풀어헤치기 시작했다. 날카로운 칼날 같던 마력이 따뜻한 우유처럼 순해지며 온몸의 혈관을 타고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어……?"
유진의 눈이 크게 떠졌다. 눈을 가리고 있던 흐릿한 보랏빛 광증의 안개가 순식간에 걷히고, 맑은 안광이 돌아왔다. 입가에 묻은 피를 닦아낸 그가 믿을 수 없다는 듯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마력이…… 마력이 완벽하게 통제되고 있어……! 통증이,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정말요? 다행이다……."
에일린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멈추지 않고 다른 기사들에게도 달려가 갓 구운 크루아상을 하나씩 입에 물려주었다.
"자, 기사님도 드세요! 천천히 씹어 삼키세요!"
"이, 이 맛은……!"
"몸이…… 몸이 따뜻해진다. 마치 봄날의 햇살 아래 누워 있는 것 같아……."
피를 토하며 쓰러져 가던 기사들이 크루아상을 씹을 때마다 기적처럼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삭한 껍질과 촉촉한 속살, 그리고 입안을 가득 채우는 풍부하고 부드러운 버터의 단맛이 그들의 지친 영혼과 폭주하는 마력을 완벽하게 치유하고 있었다.
광산 내부를 가득 채우고 있던 시뻘건 마력 가스마저, 기사들이 크루아상을 먹으며 뿜어내는 정화의 기운에 밀려 눈에 띄게 옅어지기 시작했다.
동시에 에일린의 눈앞에 시스템 메시지가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크루아상(정화석 파동 융합)’ 섭취 완료!] [기사단의 폭주 상태 수치가 급감합니다.] [폭주 수치: 98% -> 45% -> 12% -> -15% (안전 영역 진입 완료)] [미션 성공! 영민 및 기사들의 호감도가 폭발적으로 상승합니다!] [영지 재정 적자 위험도 감소!] [시스템 보상: 마력 흡수 해독 최우수 등급 달성!] [수명 연장 보상: +30일] [특수 보상: '대지 정화력 영구 상승(소)' 및 '고대 정화식 레시피'가 해금되었습니다!]
손끝의 마비 증상이 스르륵 풀리며 따뜻한 온기가 되돌아왔다. 가슴을 짓누르던 통증도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에일린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살아남은 것이다.
그때, 정신을 차린 기사들이 일제히 에일린을 향해 무릎을 꿇었다. 제국의 그 어떤 강자 앞에서도 고개를 숙이지 않던 베르하르트의 오만한 마검사들이었다. 그들의 눈빛에는 깊은 경외심과 감사, 그리고 뜨거운 충성심이 일렁이고 있었다.
"에일린 님…… 저희의 목숨을 구해주셨습니다."
유진이 검을 땅에 꽂고 한쪽 무릎을 꿇으며 엄숙하게 말했다.
"피와 죽음만이 가득한 이 북부에서, 이토록 따뜻한 구원을 받아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에일린 님은 단순한 공작가의 영애가 아니라, 저희 기사단 전체의 구세주이십니다."
"에일린 님을 위해 이 목숨을 바치겠습니다!"
기사들이 일제히 외쳤다. 그들의 우렁찬 목소리가 광산 안을 가득 메웠다.
전생의 차가운 방치 속에서 늘 타인의 눈치를 보며 쓸모를 증명하려 애썼던 에일린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녀를 바라보는 기사들의 눈빛은 조건 없는 진심 어린 경외와 감동으로 가득 차 있었다.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울컥 치밀어 올랐다.
레온이 그런 기사들을 보며 콧방귀를 뀌었지만, 그의 귀끝은 붉게 물들어 있었다.
"흥, 이제야 에일린의 대단함을 아는군. 내가 말했잖아, 에일린의 빵은 특별하다고."
그가 에일린의 곁으로 슥 다가와 어깨를 툭 쳤다.
"잘했어, 에일린. 진짜 대단했어."
"응, 고마워 레온. 네 펜던트 덕분이야."
에일린이 환하게 웃어 보이자, 레온은 쑥스러운 듯 시선을 피하며 머리를 긁적였다.
리하르트 역시 천천히 다가왔다. 그의 차가운 눈동자에는 전례 없는 깊은 감탄과 이채가 서려 있었다. 수치와 합리성만을 따지던 냉혈한조차, 눈앞에서 벌어진 이 기적적인 정화와 기사들의 충성 맹세를 부정할 수는 없었다.
"에일린."
리하르트가 깊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너는 오늘 가문의 가장 소중한 자산인 기사단을 구했다. 그리고 이 광산의 위기를 스스로의 힘으로 극복해 냈지. 이 공로는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
그가 에일린의 머리칼을 조심스러운 손길로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그의 손길은 더 이상 차갑지 않았다.
"더는 네 쓸모를 증명하기 위해 무리하지 않아도 된다. 너는 이미 이 베르하르트 가문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니까."
오빠들의 따뜻한 말과 기사들의 환호 속에서 에일린은 진정한 보금자리를 찾았음을 실감했다. 가슴을 채우는 안도감과 온기가 가을 밤바람의 한기를 완전히 녹여버리는 듯했다.
하지만 평화로운 온기도 잠시였다.
가스가 걷히며 광산 구석구석이 맑게 드러나자, 에일린의 날카로운 눈에 이질적인 움직임이 포착되었다.
저 멀리, 무너진 바위 더미 사이로 짙은 보라색 망토를 두른 실루엣이 허둥지둥 도망치듯 움직이고 있었다. 그 실루엣의 품에는 무언가 중요한 서류 뭉치가 꼭 쥐여 있었다.
에일린은 품속에 소중히 보관해 두었던, 지난번 서재에서 발견한 비비안의 불법 곡물 계약 초안 쪽지를 떠올렸다. 남부의 다투아 상단이 베르하르트 공작가를 무너뜨리기 위해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
그리고 지금 도망치려는 저 인물의 정체는 너무나도 분명했다.
"비비안 다투아……!"
에일린의 입술에서 차가운 이름이 흘러나왔다.
비비안은 마력 폭주의 혼란을 틈타 공작가의 비공식 광산 권리 탈취 문서를 훔쳐 달아나려 하고 있었다. 어둠 속으로 빠르게 사라지는 그녀의 비열한 그림자를 보며, 에일린의 눈빛이 싸늘하게 가라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