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에일린은 사정없이 떨리는 손가락으로, 화덕에서 막 꺼내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첫 정화 식빵의 부드러운 속살을 뜯어내었다. 손끝이 델 듯이 뜨거웠지만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그녀는 이성을 잃고 날뛰는 레온의 턱귀를 악착같이 붙잡은 채, 벌어진 입술 사이로 뜨거운 식빵 조각을 힘껏 밀어 넣었다.

구수한 효모의 향과 함께 갓 구운 빵의 온기가 레온의 입안으로 밀려 들어갔다.

“우읍……! 콜록, 컥!”

레온이 짐승 같은 신음을 흘리며 빵을 뱉어내려 발버둥 쳤다. 그러나 에일린은 제 손목을 움켜쥔 소년의 손아귀 통증을 악물고 견디며, 그의 입을 단단히 틀어막았다.

창밖에는 북부의 매서운 칼바람이 성벽을 사정없이 두드리며 울부짖고 있었지만, 지하실의 화덕 주변만큼은 빵이 익어가는 뜨거운 열기와 숨 막히는 긴장감으로 터질 듯 팽팽했다.

“삼켜야 해요. 제발, 오라버니……!”

애원하는 에일린의 목소리에 레온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붉은 마력의 폭풍 속에서 소년의 목구멍이 크게 일렁였다. 꿀꺽, 하는 소리와 함께 탄화된 독성 밀가루의 매캐함을 완벽히 지워낸 부드러운 식빵 조각이 그의 식도를 타고 내려갔다.

그 순간, 레온의 목에 걸려 있던 정화석 펜던트가 기괴한 소리를 내며 진동했다.

파지직!

금이 간 정화석 표면에서 뿜어져 나오던 검붉은 마력 기류가 빵에서 흘러나온 은은한 금빛 마력과 충돌했다. 펜던트는 에일린이 주입한 정화 마력의 독특한 파동에 감응하여 폭주를 멈추기는커녕, 오히려 사방으로 마력을 흩뿌리며 비명을 질러댔다.

에일린의 눈앞에 푸른색 가상 장부가 어지럽게 명멸했다.

[경고: 대상의 정화석 펜던트가 파손 상태입니다!] [파손된 마법 도구가 정화 빵의 마력 방출 속도를 비정상적으로 가속하여, 체내 마력 순환계를 역류시키고 있습니다. 이대로 두면 심장 마비가 발생합니다.]

‘마력을 흡수하는 속도가 너무 빨라 부하가 걸린 거야!’

에일린은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1화에서 레온이 목에 걸고 있던 부서진 정화석의 미세한 균열을 보았던 기억이 뇌리를 스쳤다. 그 균열 틈새로 마력이 불규칙하게 소용돌이치며 들어가는 바람에, 정화의 흐름이 한쪽으로 쏠려 폭주를 유발한 것이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하나뿐이었다.

에일린은 도마 위에 남은 식빵의 단면을 노려보았다. 결대로 찢어지는 식빵의 섬유질 방향과 공기 구멍의 밀도. 제빵 각도와 결의 방향을 미세하게 수정하여 마력이 방출되는 기류를 조절해야 했다.

그녀는 나이프를 쥐고 비스듬히 식빵을 잘라내었다. 정확히 45도 각도로 어긋나게 썰어낸 빵의 단면은 마력의 흐름을 나선형으로 분산시키는 구조를 형성했다.

“리하르트 오라버니! 당장 이 조각을 레온의 정화석 바로 밑에 대어 주세요! 마력이 흘러 나가는 길목을 막아야 해요!”

리하르트는 차가운 눈으로 에일린의 기괴한 행동을 주시하고 있었다. 평소라면 단칼에 베어버렸을 황당한 요구였으나, 동생의 얼굴에 돋아난 검은 핏줄이 조금씩 옅어지는 기적적인 광경을 목격한 직후였다.

그는 침묵 속에서 에일린이 건넨 비스듬한 식빵 조각을 낚아챘다. 그리고 레온의 가슴팍, 부서진 펜던트가 맞닿은 피부 위에 거칠게 내리눌렀다.

쉬이이익!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45도 각도로 잘린 식빵의 절단면이 펜던트에서 역류하던 검붉은 마력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거칠게 요동치던 정화석의 파동이 빵의 나선형 결을 따라 부드럽게 회전하더니, 이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어……?”

레온이 멍하니 숨을 내쉬었다. 목덜미를 조여오던 타는 듯한 통증이 거짓말처럼 사라져 있었다.

리하르트의 눈동자가 격렬하게 흔들렸다. 손끝을 통해 전해지는 마력의 안정감은 그가 평생 겪어본 적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매일 밤 자신을 괴롭히던, 뇌를 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마력 중독의 두통이 이 지독하게 고소한 향기를 맡는 것만으로도 아주 미세하게 가라앉는 기분이 들었다.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제국의 그 어떤 고위 신관도, 수천 골드를 호가하는 최고급 정화 포션도 베르하르트 가문의 고질적인 마력 중독을 이토록 신속하고 완벽하게 진정시키지는 못했다.

리하르트는 의심과 경악이 뒤섞인 얼굴로, 레온의 가슴에서 떼어낸 식빵 조각을 내려다보았다.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겉면은 바삭한 누룽지처럼 고소한 향을 풍겼고, 찢어진 속살은 우유처럼 하얗고 깃털처럼 부드러워 보였다.

그는 홀린 듯 빵의 귀퉁이를 뜯어 제 입에 넣었다.

바삭하는 소리와 함께 혀끝에 닿은 빵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쫄깃하고 촉촉했다. 씹을 때마다 뿜어져 나오는 은은하고 구수한 이스트의 풍미와, 그 뒤를 잇는 달콤하면서도 신선한 버터의 향이 입안 가득 번졌다.

그리고 다음 순간.

쿵!

리하르트의 머릿속을 지배하던 무겁고 탁한 안개가 순식간에 걷혔다. 뇌수를 불태울 것 같았던 마력 폭주의 잔열이, 차가운 빙하수를 들이켠 것처럼 시원하게 내려앉았다.

비현실적인 구원이 전신을 관통했다.

“이, 이건……”

리하르트의 검을 쥐는 강인한 손이 가볍게 떨렸다. 그는 자존심도 잊은 채 빵을 씹어 삼켰다. 북부의 가혹한 생존 법칙 속에서 오직 수치와 실리만을 믿어왔던 무인이었다. 눈앞의 어린 양녀가 구운 빵 한 조각이 가진 효능을, 그의 몸이 먼저 정직하게 인정하고 있었다.

그는 무릎을 꿇었다. 쓰러진 레온의 상태를 살피기 위함이었으나, 그의 시선은 에일린의 작은 손에 닿아 있는 식빵에 고정되어 있었다. 패배감과 경외감이 뒤섞인 복잡한 감정이 그의 가파른 숨소리에 묻어났다.

[알림: 주요 인물 ‘리하르트’의 의구심이 놀라움으로 전환되었습니다!] [알림: 영민(가족)의 신뢰도가 급상승합니다!] - 신뢰 점수: +150 - 현재 영지 재정 상태: 적자 유지 (경영 개선 필요)

[수명 연장 조건 충족!] [시한부 페널티가 일시 유예됩니다. 잔여 수명이 이틀(48시간)에서 보름(15일)으로 연장됩니다!]

에일린의 시야를 가리던 핏빛 경고창이 눈부신 푸른빛으로 변하며 연달아 알람을 울려댔다. 가슴을 짓누르던 극심한 통증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며, 그녀는 바닥에 주저앉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살았다. 겨우 보름이라는 시간을 벌어낸 것이다.

“오라버니…… 괜찮으세요?”

에일린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레온을 바라보며 물었다. 레온은 붉어진 얼굴로 고개를 돌리며 웅얼거렸다.

“가, 갑자기 소리를 지르고 그래? 바보같이……”

말은 까칠하게 뱉었지만, 레온은 제 목덜미에 닿았던 에일린의 손끝 온기를 잊지 못하는 듯 정화석을 만지작거렸다. 늘 자신을 독살하려 한다며 으르렁대던 소년의 귀끝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그때였다.

지하실을 가득 채우고 있던 고소한 빵 냄새 사이로, 심연처럼 무겁고 차가운 마력이 스며들었다.

철컥, 철컥.

무거운 철갑 구두가 돌바닥을 딛는 소리가 어두운 복도 저편에서 울려 퍼졌다. 지하실 입구의 부서진 철문 틈새로, 거대한 대검을 바닥에 쓸며 걸어오는 거구의 그림자가 보였다.

베르하르트 공작, 디트리히였다.

그의 등 뒤로 살기등등한 기사들이 횃불을 들고 늘어섰다. 디트리히의 싸늘한 안광이 화덕 앞의 세 아이를 차례로 훑었다. 바닥에 떨어진 식빵 조각들과, 아직도 빵 봉지를 꼭 쥐고 있는 에일린의 가냘픈 손가락을 본 그의 미간이 좁아졌다.

“이 쓰레기 같은 냄새는 뭐지?”

디트리히의 목소리는 낮고 위압적이었다. 영지의 썩어가는 흙바닥처럼 음울한 기운이 그가 내딛는 발걸음마다 서려 있었다.

에일린은 본능적으로 몸을 움츠렸다. 하지만 이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그녀는 침을 삼키며, 아직 따뜻한 온기가 남아 있는 식빵을 품에 꼭 안은 채 디트리히를 똑바로 올려다보았다.

“이건…… 영지를 살릴 빵이에요, 아버님.”

그녀의 목소리는 떨렸지만, 그 안에 담긴 단단한 결의는 꺾이지 않았다. 디트리히의 서늘한 시선이 에일린의 얼굴에 머물렀다. 대검을 쥔 그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디트리히의 거대한 그림자가 에일린의 머리 위로 짙게 드리워졌다. 그의 눈빛은 얼어붙은 호수처럼 차갑고 깊어, 그 안에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전혀 읽을 수 없었다. 주변을 수호하는 기사들이 쥔 횃불의 불꽃마저 그의 서슬 퍼런 마력에 눌려 숨을 죽인 듯 미세하게 흔들렸다.

“아버님, 이건 독약이 아닙니다.”

리하르트가 무거운 침묵을 깨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목소리에는 평소의 냉소 대신, 기묘한 긴장감과 확신이 서려 있었다.

“레온의 폭주가 멈췄습니다. 이 아이가 구운…… 이 정체불명의 밀가루 덩어리를 먹고 나서 말입니다.”

“리하르트. 네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고는 있나?”

디트리히의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지하실 벽을 타고 묵직하게 울렸다.

“슈바르츠발트의 독성 밀가루는 그 자체로 마력을 오염시키는 맹독이다. 그것으로 만든 빵이 마력을 정화했다는 농담을 나보고 믿으라는 건가?”

“사실입니다.”

리하르트는 제 가슴에 손을 얹었다. 손바닥 너머로 느껴지는 마력의 흐름은 그 어느 때보다 차분했다.

“제 두통 역시 가라앉았습니다. 수치로 증명할 수 있습니다. 마력 측정석을 가져오십시오.”

북부의 가혹한 ‘증명 법칙’ 앞에서는 공작이라 할지라도 객관적인 실적을 무시할 수 없었다. 디트리히는 턱짓으로 곁에 서 있던 부관에게 명령했다. 부관이 다급히 품에서 고대의 마력 측정석을 꺼내 들었다.

황색의 투명한 수정이 레온과 리하르트의 몸에 차례로 대어졌다.

빛이 번쩍이며 수정 표면에 숫자가 떠올랐다.

[측정 대상 1 (레온): 마력 오염도 78% -> 32%로 급감. 안정 상태.] [측정 대상 2 (리하르트): 마력 오염도 85% -> 55%로 감소. 뇌부 마력 흐름 원활.]

부관의 손이 눈에 띄게 떨렸다. 기계적인 수치로 나타난 결과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이, 이것은…… 신전의 성수(聖水) 치료보다 세 배나 빠른 속도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단 말입니까!”

지하실에 모인 기사들 사이에서 나직한 웅성거림이 터져 나왔다. 그들의 시선이 일제히 에일린이 안고 있는 식빵으로 향했다.

에일린은 숨을 죽였다. 그녀의 작고 가냘픈 손가락은 이미 뜨거운 화덕의 열기와 식빵을 찢는 과정에서 붉게 부풀어 오르고 진물이 흐르고 있었다. 하지만 상처의 고통보다 타인에게 버림받을지 모른다는 전생의 트라우마가 그녀의 가슴을 더 아프게 찔렀다. 사랑받기 위해서라면, 이 영지에서 쓸모 있는 존재로 인정받기 위해서라면 이 정도 아픔쯤은 얼마든지 견딜 수 있었다.

에일린은 아픈 손을 애써 등 뒤로 감추며, 남은 식빵의 가장 부드러운 속살을 정성스럽게 뜯어내었다.

“아버님도…… 드셔보세요.”

그녀의 목소리가 모기 소리처럼 가늘게 떨렸다.

“매일 밤 마력 폭주의 통증으로 잠 못 드시는 걸 알고 있어요. 이 빵은 아버님의 아픔도 줄여줄 수 있어요.”

디트리히는 에일린의 엉망이 된 하얀 손을 가만히 응시했다. 그리고 그녀가 내민,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는 하얀 빵 조각을 내려다보았다.

향긋하고 고소한 버터의 향기가 지하실의 매캐한 먼지 냄새를 포근하게 덮었다. 겉은 바삭한 황금빛이고 속은 눈꽃처럼 보드라운 식빵의 단면에서 느껴지는 온기는, 이 차디찬 북부의 성채에서는 결코 느껴본 적 없는 종류의 따스함이었다.

디트리히는 천천히 가죽 장갑을 벗었다. 굳은살이 박인 커다란 손가락이 가냘픈 식빵 조각을 집어 올렸다.

그는 망설임 없이 빵을 입에 넣었다.

바스락.

가장 먼저 귀를 자극하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혀끝에 닿은 빵이 눈 녹듯 부드럽게 감돌았다. 씹을수록 밀가루 본연의 구수함과 효모의 은은한 단맛이 잎새에 맺힌 이슬처럼 맑게 퍼져나갔다. 탄화된 독성의 텁텁함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목을 타고 넘어가는 순간, 가슴속 깊은 곳에 뭉쳐 있던 차가운 얼음덩어리가 따스한 봄볕을 맞은 것처럼 스르르 녹아내렸다.

“심장의 마력 핵이…… 진정되는군.”

디트리히의 눈동자가 깊게 가라앉았다. 수십 년간 그를 괴롭히던 지독한 화독(火毒)이, 단 한 조각의 빵으로 인해 기적처럼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었다.

그는 비로소 에일린의 가치를 객관적으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아이는 단순한 정략적 소모품이 아니었다. 가문의 고질적인 파멸을 막아줄 유일한 ‘열쇠’였다.

하지만 철혈의 공작은 감정에 휘둘리지 않았다. 그는 차가운 이성으로 다음 단계를 계산했다.

“놀랍군. 하지만 이것이 단 한 번의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디트리히가 거대한 대검을 바닥에 꽂으며 차갑게 선언했다.

“슈바르츠발트의 가장 깊은 오염지대, 제1광산의 식량 공급망이 마력 오염으로 완전히 마비되었다. 그곳의 영민들은 지금도 굶주림과 마력 폭주로 죽어가고 있지.”

그의 무자비한 안광이 에일린의 심장을 꿰뚫을 듯이 똑바로 내려다보았다.

“일주일의 시간을 주마. 그곳의 영민들을 이 빵으로 정화하고, 광산의 식량난을 해결해라. 만약 실패한다면……”

디트리히의 입꼬리가 싸늘하게 올라갔다.

“너를 가문의 재정을 낭비하고 기만한 간첩으로 간주하여, 이 지하실보다 더 깊은 감옥에 처넣을 것이다.”

[퀘스트 발생: ‘슈바르츠발트 제1광산의 구호 식량 공급망 구축’!] [경고: 일주일 이내에 영민들의 신뢰도를 얻고 적자를 해결하지 못할 경우, 시한부 페널티가 즉각 재발동하여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에일린의 눈앞에 다시 한번 붉은 경고등이 격렬하게 깜빡이기 시작했다. 겨우 늘려놓은 수명의 모래시계가 다시금 가파르게 흘러내려 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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