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형사소송법 제200조의3, 긴급체포의 요건을 읊어드릴까요, 임형우 재판장님?"

차가운 쇠붙이가 손목에 닿기 직전, 강태혁은 상체를 뒤로 물리며 사법경찰관의 손을 쳐냈다. 텅, 하고 공기를 가른 수갑이 허공에서 요란한 소리를 냈다. 법정 안의 모든 카메라와 시선이 태혁의 손끝으로 쏠렸다.

"피의자가 사형, 무기 또는 장기 3년 이상의 징역이나 금고에 해당하는 죄를 범하였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고, 체포영장을 받을 시간적 여유가 없을 때입니다. 게다가 지금 제시하신 영장의 발부 시각은 오늘 오전 9시 15분. 이 재판이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나를 체포하겠다고 결재를 받아둔 서류라는 뜻입니다."

태혁은 달려드는 경위의 가슴팍에 법전 서류 뭉치를 툭 던지듯 얹었다.

"이건 긴급체포가 아니라 사법부의 권한을 남용한 조직적 기획 구금입니다. 영장 실질심사 단계에서 기각되는 것은 물론이고, 영장 청구 검사와 이를 직권으로 승인한 판사 역시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의 공범으로 구속수사 대상이 됩니다. 집행을 계속하시겠습니까?"

"이, 이 자가 법정에서 무슨 망발을……!"

법상 위의 임형우 판사가 땀에 젖은 얼굴로 소리쳤다. 그의 눈동자가 사정없이 흔들렸다. 대법관 백무현의 직접적인 지시를 받고 감행한 무리수였다. 법원 한복판에서 변호사를 사기 혐의로 긴급 체포해 기선을 제압하려 했으나, 태혁은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영장의 법리적 치명상을 정확히 찔러 들어왔다.

태혁의 시야 오른쪽 구석에서 붉은빛이 번쩍였다.

[경고: 인과율 오차율 69.4% — 데이터 왜곡 노이즈 발생 중] [예측 경로: 피고 강태혁의 불법 구금 확률 88% -> 42%로 급감]

눈앞에 흐릿하게 명멸하는 리갈 레저의 텍스트들이 지지직거리며 일그러졌다. 숫자가 69.4%를 가리키는 순간, 미래 예측 장부의 글자들이 깨진 유리 파편처럼 흩어지며 가짜 정보들이 섞여 들어오기 시작했다.

'왔군.'

태혁은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미래 판결 정보가 어긋나며 발생하는 인과율의 균열. 그것은 치명적인 독이었지만, 동시에 적들의 대가리를 깨부술 가장 완벽한 덫이기도 했다. 도원회의 수뇌부들은 태혁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며 그가 움직이는 길목마다 함정을 파두었다. 그들이 준비한 징계의 결정적 증거인 '법률사무소 무간의 불법 자금 회계 장부' 역시 마찬가지였다.

"피고인 강태혁!"

상대측 대리인인 법무법인 가온의 송우석 변호사가 서류 가방을 탁 치며 일어섰다.

"궤변은 그만두십시오! 당신이 아진테크의 기술 소송을 대리하면서 배심원들을 매수하고, 법률사무소 무간의 법인 계좌를 통해 출처 불명의 자금 100억 원을 세탁한 정황이 담긴 금융감독원 공식 감사 장부가 방금 전 검찰에 접수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명백한 사기 및 변호사법 위반의 증거입니다!"

송우석이 기세등등하게 가리킨 법정 대형 스크린에 붉은색 직인이 찍힌 회계 원장 파일이 떠올랐다. 무간의 영문 실명 계좌와 한성그룹 소유의 페이퍼컴퍼니 사이에서 오고 간 100억 원의 송금 내역이 고스란히 적혀 있었다.

방청석의 기자들이 일제히 카메라 셔터를 터뜨렸다. 한성그룹의 뒤를 봐주는 도원회가 설계한 완벽한 덫이었다. 법률사무소를 탈세와 자금 세탁의 온상으로 만들어 태혁의 변호사 자격을 영구 박탈하려는 수작.

하지만 태혁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오히려 스크린에 띄워진 장부의 숫자들을 하나하나 뜯어보며 조용히 읊조렸다.

"송우석 변호사님. 그 장부, 오늘 오전 10시 3분에 금융감독원 서버에서 정식 발급된 원본이 확실합니까?"

"무슨 헛소리를! 금감원의 공식 전자 직인까지 찍힌 문서다!"

"그렇다면 참 이상하군요."

태혁이 품 안에서 USB 하나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피고인석에 앉아 있던 민혜령에게 눈짓했다. 민혜령은 차가운 눈빛으로 태혁의 신호를 받아 전자 소송 단말기에 USB를 꽂았다.

지-잉.

법정 스크린의 화면이 반으로 갈라졌다. 왼쪽에는 송우석이 제출한 금감원 감사 장부가, 오른쪽에는 태혁이 새로 업로드한 동일한 계좌의 실시간 거래 원장이 나타났다.

"스크린 오른쪽, 4번 항목의 거래 고유번호를 봐주십시오. 송 변호사님이 제출하신 장부에는 송금 대리인이 '강태혁'으로 되어 있군요. 하지만 진짜 은행 메인프레임에 기록된 전문(Telegram) 데이터의 송금인 IP 주소는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내부망, 그리고 발신인 명의는 백무현 대법관의 장남인 백승현의 개인 명의로 되어 있습니다."

"뭐, 뭐라고?!"

송우석의 얼굴에서 핏기가 순식간에 가셨다.

"어떻게…… 어떻게 그 데이터가 거기에 있는 거지?"

태혁은 비죽 웃었다.

리갈 레저의 인과율 오차가 40%를 넘어서면서 데이터 왜곡 노이즈가 발생한다는 사실을 알아챈 그 순간부터, 태혁은 도원회가 자신들의 조작 장부를 심기 위해 사용할 루트를 역추적했다. 장부 노이즈의 패턴을 분석해 도원회가 해킹 및 위조용으로 사용하던 사설 게이트웨이의 취약점을 파고들었고, 그들이 조작 장부를 서버에 업로드하는 찰나의 순간에 진짜 면책 증거와 백무현 가문의 실소유 계좌 정보를 강제로 병합시켜 버린 것이다.

"도원회가 나를 묻어버리기 위해 급조한 위조 장부의 데이터 소스가, 역으로 백무현 대법관 일가의 불법 차명 계좌의 실체와 연결되어 버렸다는 뜻입니다. 송 변호사님, 당신들이 제출한 그 '결정적 증거' 덕분에 백무현 대법관이 직접 이 100억 원의 세탁을 지시했다는 완벽한 금융 거래 정황이 성립되었습니다."

"이, 이건 음해다! 증거가 조작된 것이다!"

송우석이 비명을 지르듯 외쳤다.

"조작이라니요? 방금 전까지 금감원의 공식 직인이 찍힌 명백한 원본이라며 소리치시던 분이 누구였습니까?"

태혁의 목소리가 법정의 벽면을 때리며 매섭게 울려 퍼졌다.

"재판장님."

태혁이 법상 위에서 사색이 되어 가쁜 숨을 몰아쉬는 임형우를 올려다보았다.

"이 재판의 본질은 아진테크의 기술 도용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입니다. 그러나 피고 가온과 배후의 사법 세력은 자신들의 치부를 가리기 위해 법정을 사유화하고, 허위 위조 증거를 제출하여 원고 측 변호인을 불법 감금하려 했습니다. 이는 법정모독을 넘어 사법 정의에 대한 전면적인 테러입니다."

태혁은 배심원석을 향해 몸을 돌렸다. 배심원들의 눈빛이 흔들리고 있었다. 단순한 대기업의 기술 침탈 사건인 줄 알았던 재판이, 사법부 최고 권력층의 추악한 공작과 자금 세탁 음모로 번져나가는 과정을 생생하게 목격한 탓이었다.

"배심원 여러분. 대한민국 헌법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여러분의 눈앞에 있는 재판장은 양심이 아닌 백무현 대법관의 사적인 명령에 따라 움직이고 있습니다. 위조된 장부로 변호사에게 수갑을 채우려는 이 불법적인 청문 법정을, 우리는 거부해야 합니다. 오히려 지금 단죄받아야 할 피고인은 저기 앉아 있는 사법 카르텔의 하수인들입니다!"

"강태혁 변호사! 정숙하십시오! 퇴정 명령을……!"

임형우가 법봉을 쥐고 연신 내리쳤지만, 그의 목소리는 방청석에서 터져 나오는 거대한 야유와 웅성거림에 완전히 묻혀버렸다.

"판사님."

피고인석에 서 있던 민혜령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그녀의 눈에는 아버지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자들을 향한 지독한 증오와, 법의 한계를 넘어선 복수귀의 서늘한 살기가 서려 있었다.

"방금 전 제출된 금융 거래 원장에 따라, 본 변호인단은 백무현 대법관 및 임형우 재판장 본인을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 위반(뇌물) 및 직권남용 혐의로 즉시 기피 신청합니다. 아울러 본 재판의 배심원단 전원에게 재판부 기피 신청에 대한 양형 및 절차적 동의를 요청합니다."

법정이 발칵 뒤집혔다. 피고인을 심판해야 할 법정이, 순식간에 판사와 사법 카르텔을 기소하는 무단 청문회로 변모하는 순간이었다.

쿵! 쾅!

그때, 법정의 웅장한 후면 철문이 마치 외부의 강한 충격을 받은 듯 거칠게 흔들렸다.

경비원들이 황급히 문을 막아서려 했으나, 둔탁한 타격음과 함께 철문이 활짝 열려젖혀졌다.

"비켜, 이 개자식들아."

낮고 걸걸한 목소리가 법정의 소란을 단숨에 잠재웠다.

문가에 서 있는 사내는 최창식이었다. 그의 몰골은 처참했다. 이마에서 흘러내린 붉은 피가 뺨을 타고 내려와 턱 끝에서 뚝뚝 떨어지고 있었고, 가죽 재킷의 어깨 부위는 칼날에 찢겨 붉은 속살을 드러내고 있었다. 거친 숨을 몰아쉴 때마다 피비린내가 법정 안으로 훅 끼쳐왔다.

하지만 그의 눈빛만큼은 굶주린 늑대처럼 번뜩이고 있었다.

최창식의 오른손에는 묵직한 티타늄 합금 재질의 캐리어가 들려 있었다. 금속 표면 곳곳에 긁힌 자국과 찌그러진 흔적이 가득했다.

"창식 형님!"

민혜령이 경악하며 외치려 했으나, 태혁은 조용히 손을 들어 그녀를 제지했다.

최창식은 법정 경위들의 저지를 가볍게 밀쳐내며, 피를 흘리는 발걸음으로 당당하게 법정 중앙 통로를 걸어 들어왔다. 그가 발을 내딛을 때마다 법정 대리석 바닥에 붉은 발자국이 선명하게 찍혔다.

"태혁아."

최창식이 멈춰 섰다. 그리고 들고 있던 캐리어를 변호인석 탁자 위에 쾅 소리가 나도록 내려놓았다.

"가져왔다. 네가 말한 그 도원회 지하 비밀 금고에 있던 진짜 물건이다."

태혁의 눈이 가늘어졌다.

4화에서 부패 경찰의 습격으로부터 최창식을 구하며 확보했던 '도원회 전용 지하실 비밀 금고의 열쇠'. 그리고 8화에서 무간 빌딩을 돌진했던 트럭 습격을 뚫고, 최창식이 목숨을 걸고 지하 밀실을 파헤쳐 결국 찾아낸 도원회의 가장 깊숙한 치부.

"그 안에는 뭐가 들어 있습니까?"

태혁이 묻자, 최창식은 핏물 섞인 침을 바닥에 뱉으며 캐리어의 다이얼을 돌렸다.

달칵.

캐리어가 열리며 그 안에 담긴 두꺼운 가죽 제본의 장부들과 스위스 은행의 실물 무기명 채권, 그리고 도원회 핵심 멤버들의 친필 서명이 담긴 서약서 원본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최창식이 장부 하나를 펼쳐 임형우 판사와 송우석 변호사의 코앞에 들이밀었다.

"백무현 그 영감탱이가 지난 5년간 한성그룹 한도준한테 받아 처먹은 스위스 프랑 환치기 내역서다. 그리고 여기, 5년 전 도원회의 비리를 캐려다 자살로 위장돼 살해당한 민경식 검사의 타살 청부 계약서 원본도 같이 들어 있더군."

"……!"

민혜령의 숨이 멎었다. 그녀의 주먹이 하얗게 피가 안 통할 정도로 꽉 쥐어졌다.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자들의 이름과 한성그룹의 직인이 찍힌 서류를 마주한 순간, 그녀의 전신이 분노로 잘게 떨렸다.

"이, 이건 불법 수집 증거다! 위법수집증거배제법칙에 의해 법적 효력이 없다!"

송우석이 사색이 되어 소리쳤다.

태혁은 서늘하게 웃으며 캐리어에서 서류 한 장을 뽑아 들었다.

"송 변호사님, 형사소송법 공부 다시 하셔야겠습니다. 위법수집증거배제법칙은 수사기관의 불법 수사를 막기 위한 규정이지, 제3자인 사인이 수집한 증거에는 원칙적으로 적용되지 않습니다. 게다가 이 증거들은 도원회가 자행한 공익적 범죄, 즉 검사 살인 및 국가 전복 수준의 사법 농단을 입증하기 위한 중대한 공익적 필요성이 있으므로 법적 증거 능력이 충분히 인정됩니다."

태혁은 서류를 높이 들어 법정에 대기 중이던 언론사 카메라 향해 펼쳐 보였다.

"이것이 바로 대한민국 사법부의 정점이라 불리는 백무현 대법관과 도원회의 실체입니다. 법을 수호해야 할 자들이 법을 사유화하여 무고한 검사를 살해하고, 기업의 돈을 받아 세탁하며, 자신들의 죄를 덮기 위해 이 법정을 조작하려 했습니다!"

법정 안은 그야말로 폭탄이 터진 듯한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방청석의 시민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임형우 판사를 향해 쓰레기와 법전 서류를 던지기 시작했고, 교도관들과 경위들은 분노한 군중을 막아서느라 정신이 없었다.

임형우는 공포에 질린 채 법상을 버려두고 뒷문으로 도망치듯 빠져나갔다. 송우석은 힘없이 바닥에 주저앉아 넋을 잃은 표정으로 허공을 바라보았다.

도원회가 태혁을 파멸시키기 위해 준비했던 조작 징계 위원회와 법정은, 역으로 그들의 숨통을 완벽하게 끊어버리는 합법적인 단두대가 되어 그들 자신을 수장시켜 버렸다.

태혁은 붉게 타오르는 시야 속에서 서서히 내려앉는 리갈 레저의 오차율을 응시했다.

[인과율 오차율 69.4% -> 51.2%로 하락] [경고: 미래 판결 데이터가 실시간으로 재구성되고 있습니다.]

미래는 변했다. 이제 도원회는 더 이상 법의 뒤에 숨어 군림할 수 없다. 완전한 갑과 을의 관계가 법정 안에서 완전히 역전된 순간이었다.

태혁이 최창식의 어깨를 짚으며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최창식은 거친 숨을 내쉬면서도 잎새 담배를 물며 피식 웃어 보였다.

그때였다.

법정의 대형 스크린 옆에 설치된 방송용 모니터에서 요란한 경고음과 함께 정규 방송을 중단하는 긴급 속보 자막이 붉은 글씨로 번쩍이기 시작했다.

[속보: 국회 법사위, 대법원장 후보자 백무현 인사청문회 '특별 청문 법정' 형태로 전격 승인] [속보: 여야 합의에 따라, 법률사무소 무간 강태혁 변호사를 청문회 핵심 참고인으로 강제 소명 및 출석 요구서 발부]

화면에 비친 국회 회의장의 모습과 함께, 태혁의 휴대폰이 요란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대법원장 청문회가 단순한 정치적 요식행위를 넘어, 도원회의 모든 비리를 법적으로 심판하는 '특별 법정'의 형태로 열리게 된 것이다.

태혁은 휴대폰 화면에 떠오른 국회 법사위의 공식 호출 문자를 내려다보았다.

입가에 짙은 미소가 걸렸다.

가장 거대하고 무자비한 포식자의 심장을 직접 꿰뚫을 최후의 전쟁터가, 마침내 그의 발밑에 깔리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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