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관객석의 모두가 비명을 지르는 찰나, 태오가 던진 마지막 156km의 공이 타자의 배트를 부러뜨리며 미트로 꽂힌다.

쩌어억!

단풍나무 배트가 비명을 지르며 두 동강 났다. 찢겨 나간 나뭇결이 사방으로 흩날렸다. 그 파편들 사이를 뚫고 들어간 가죽 공은 이미 송우진의 미트 정중앙을 찢어발길 듯 처박혀 있었다.

콰앙!

목동야구장의 대기를 뒤흔드는 포구음이었다.

"삼진! 삼진 아웃! 경기 종료! 청룡고등학교, 청룡기 전국고교야구대회 우승입니다!"

장내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찢어지는 확성기 소리와 함께 폭발했다. 관중석을 가득 메운 인파가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함성이 하늘을 찌르고, 덕아웃에 있던 청룡고 선수들이 야수처럼 포효하며 마운드로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강태오의 귀에는 그 어떤 소리도 닿지 않았다.

오직 고막을 때리는 거친 숨소리. 그리고 손가락 끝에 잔존한 마찰열의 뜨거운 감각뿐이었다.

태오는 마운드 위에 서서 자신의 오른손을 내려다보았다.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눈앞에 푸른빛의 반투명한 인터페이스가 명멸했다.

[ 피칭 장부 (Pitching Ledger) ] - 현재 자산 잔고: 어깨 내구도 84.2% - 투구 수: 27구 (최종 세이브) - 소모 수명 자산: 0.08% (미미함)

'완벽하다.'

태오의 입꼬리가 차갑게 올라갔다.

회귀 전, 천민국 감독의 살인적인 혹사 지시에 이끌려 사흘 연속 완투를 거듭했던 기억이 머리를 스쳤다. 그때 그의 어깨 내구도는 이미 30% 미만으로 곤두박질치고 있었다. 뼈와 인대가 갈려 나가던 그 끔찍한 통증.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철저한 계산하에 투구 수를 제한했고, 결정적인 순간에만 어깨의 수명을 담보로 한 마구를 뿌렸다. 그 결과는 온전한 육체와 전국대회 우승이라는 압도적인 전리품이었다.

"태오야!"

우진이 미트를 내팽개친 채 마운드로 돌진했다. 땀과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이었다. 녀석의 거구에 짓눌리는 순간, 묵직하고 뜨거운 체온이 태오의 온몸으로 전해졌다.

"이 미친놈아! 진짜 던졌어! 진짜로 그 공을 잡게 만들었어!"

우진이 태오의 어깨를 부서져라 껴안으며 울부짖었다. 평소답지 않게 흥분한 녀석의 목소리가 귀가 먹먹하도록 울렸다.

"무겁다. 내려놔라."

태오가 퉁명스럽게 뱉었지만, 우진은 들은 체도 하지 않고 그를 더 강하게 끌어안았다. 동료들이 그들의 위로 겹겹이 쌓여 들며 거대한 인간 탑을 쌓았다. 승리의 희열. 뜨거운 땀방울이 그라운드의 흙먼지와 섞여 흘러내렸다.

동료들의 환호성 너머로, 관중석에 앉아 있는 프로 스카우터들의 움직임이 바빠지는 것이 보였다. 그들은 연신 캠코더를 돌리고 수첩에 무언가를 갈겨쓰고 있었다. 156km의 강속구와 배트를 박살 내는 종속. 그것도 고교 최고의 타자를 상대로 단 3구 만에 뽑아낸 삼진이었다. 그들의 눈빛에는 탐욕과 경외감이 동시에 서려 있었다.

하지만 태오의 시선은 마운드 위의 축제에 머물지 않았다.

그의 눈동자는 저 멀리, 덕아웃 구석에서 어색하게 손뼉을 치고 있는 한 남자를 향해 고정되어 있었다.

청룡고 감독, 천민국.

자신의 영전을 위해 어린 선수들의 어깨를 제물로 바쳐온 포식자. 우승 트로피를 차지했으니 이제 자신의 KBO 프로 구단 감독 계약은 따놓은 당상이라 생각하는지, 그의 야비한 입술이 비열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태오가 우진의 손을 가볍게 뿌리치며 나직하게 속삭였다.

"우진아."

"어? 왜, 태오야?"

"이제 진짜 청소를 시작할 시간이다."

우진이 태오의 서늘한 눈빛을 마주하고는 침을 꿀컥 삼켰다. 태오의 시선이 닿은 끝에 누가 있는지, 우진은 이미 잘 알고 있었다.

***

시상식이 끝나고 목동야구장의 라커룸은 아수라장이었다. 우승 메달을 목에 건 선수들이 샴페인 대신 생수를 뿌려대며 고함을 질러댔다.

그 소란스러운 틈바구니 속에서, 태오는 조용히 자신의 캐비닛으로 향했다. 가방 깊숙한 곳에서 낡은 서류 봉투 하나를 꺼냈다. 봉투 안에는 묵직한 종이 뭉치가 들어 있었다.

그것은 천민국 감독이 그토록 꼭꼭 숨겨두었던 분홍색 비밀 수첩의 복사본, 그리고 그 수첩에 적힌 계좌 번호들을 추적해 확보한 차명 계좌의 불법 송금 내역 사본들이었다.

학부모들에게 대학 입시 청탁 및 출장 시간 보장을 빌미로 뜯어낸 수억 원대의 후원금 횡령 증거.

태오는 서류 봉투를 품에 안고 라커룸을 빠져나왔다. 복도를 지나 감독실 문 앞에 섰다.

노크는 하지 않았다. 문고리를 잡고 그대로 밀어붙였다.

철컥.

문이 열리자, 책상 위에 우승 트로피를 올려놓고 흐뭇하게 바라보던 천민국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의 스마트폰 화면에는 KBO 모 구단 단장과의 축하 메시지 창이 활성화되어 있었다.

"어라? 태오 아니냐? 축하한다, 인마! 오늘 네가 마지막에 던진 공은 진짜 예술이었다. 역시 내가 널 아끼고 관리해 준 보람이 있어. 안 그래?"

천민국이 호탕하게 웃으며 태오의 어깨를 다독이려 손을 뻗었다.

태오는 한 걸음 물러서며 그 손길을 가볍게 피했다. 그리고 아무런 대꾸도 없이, 들고 있던 서류 봉투를 책상 위에 툭 던졌다.

툭.

가벼운 종이 뭉치 소리가 감독실의 공기를 가라앉혔다.

"이게 뭐냐?"

천민국이 눈살을 찌푸리며 봉투를 집어 들었다. 봉투의 입구를 열고 안의 서류를 꺼내 드는 그의 손길은 가벼웠다. 그러나 첫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 그의 손가락이 굳어버렸다.

"……!"

천민국의 동공이 지진이라도 난 듯 격렬하게 흔들렸다.

서류의 첫 장에는 그가 그동안 받아 챙긴 학부모들의 이름과 정확한 액수, 그리고 대학 야구부 감독들에게 흘러 들어간 리베이트 명단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그가 라커룸 깊은 곳에 숨겨두었던, 목숨보다 소중히 여기던 그 분홍색 수첩의 내용이 그대로 인쇄되어 있었다.

"너, 너... 네놈이 이걸 어떻게...!"

천민국의 목소리가 사정없이 떨렸다. 얼굴에서 핏기가 순식간에 가셨다. 잿빛으로 변한 그의 이마에서 굵은 식은땀이 배어 나오기 시작했다.

태오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천민국의 눈을 똑바로 응시할 뿐이었다.

침묵.

사방이 고요한 감독실 안에서, 오직 천민국의 거칠고 불안한 호흡 소리만이 방 안을 채웠다. 태오는 말없이 책상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검지손가락으로 책상 유리를 일정한 간격으로 톡, 톡, 두드렸다.

톡. 톡. 톡.

그 규칙적인 소리가 마치 천민국의 목을 죄어오는 교수대의 시계추 소리처럼 울렸다.

"태, 태오야. 이건... 이건 오해다. 내가 학교 발전 기금으로 쓰려고 잠시..."

"오해?"

태오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감정이 완전히 배제된, 얼음장처럼 차가운 기계음 같았다.

"차명 계좌 세 개로 쪼개서 들어온 돈이 발전 기금입니까? 그 돈으로 강남에 아파트 잔금 치르신 것도 발전 기금이고요?"

"……!!"

천민국의 턱이 덜덜 떨렸다. 더 이상 변명조차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직감한 그의 눈에 극도의 공포가 서렸다.

그가 그토록 갈망하던 KBO 프로 감독직, 부와 명예, 야구계에서의 지위가 이 종이 쪼가리 한 장으로 허공으로 날아가게 생겼다. 아니, 야구계 퇴출은 물론이고 철창신세를 져야 할 판이었다.

태오가 천민국의 책상 위로 상체를 살짝 숙였다. 그의 서늘한 눈동자가 천민국의 흔들리는 눈동자를 옭아맸다.

"선택지를 드리죠."

"선, 선택지라니? 무슨..."

"내일 오전 9시까지. 일신상의 사유, 혹은 건강상의 이유로 자진 사임서를 학교와 협회에 제출하십시오."

"사, 사임이라니! 내가 이제 막 우승을 했는데! 내 커리어가 이제 빛을 발하려는데!"

천민국이 억울하다는 듯 절규했다. 하지만 태오의 표정에는 추호의 흔들림도 없었다.

"거부하셔도 좋습니다. 그럼 내일 오전 10시에 이 원본 서류와 녹취록이 검찰청 특수부와 언론사 사회부 데스크로 동시 발송될 테니까요."

태오가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흔들어 보였다. 화면에는 이미 발송 대기 상태인 이메일 화면이 떠 있었다.

"KBO 프로 구단들이 범죄자 출신 감독을 참 좋아하겠습니다."

"강태오...! 네놈이 감히 스승에게 이럴 수 있어? 내가 없었으면 네가 마운드에 설 수나 있었을 것 같아?!"

천민국이 이성을 잃고 소리를 지르며 태오의 멱살을 잡으려 손을 뻗었다.

탁!

태오가 천민국의 손목을 단호하게 쳐냈다. 그의 악력은 상상 이상으로 강했다. 천민국은 손목을 부여잡고 비명을 삼켰다.

"스승?"

태오의 입술이 냉소적으로 비틀렸다.

"내 어깨를 갈아 넣어서 당신의 영전을 사려고 했던 포식자가, 언제부터 스승이었습니까?"

"……."

"시간은 내일 오전 9시까지입니다. 1분이라도 늦으면, 당신의 야구 인생은 내 손으로 직접 부숴버리겠습니다."

태오는 차가운 미소를 남긴 채, 미련 없이 몸을 돌려 감독실을 나섰다.

쾅!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천민국은 힘없이 바닥으로 주저앉았다. 그의 손에 들린 서류들이 사방으로 흩날렸다. 평생을 쌓아온 모래성이, 고작 열여덟 살짜리 투수의 손짓 한 번에 무너져 내리는 순간이었다.

***

다음 날 아침.

스포츠 뉴스 페이지의 메인은 청룡고의 우승 소식이 아닌, 뜬금없는 인사 기사로 장식되었다.

[ [단독] '청룡기 우승' 청룡고 천민국 감독, 건강상 이유로 전격 사임... "야구계 잠시 떠날 것" ]

기사를 확인한 태오는 스마트폰을 가볍게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당연한 결과였다. 천민국에게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평생을 비리와 편법으로 연명해 온 자들은, 자신의 목줄이 잡히는 순간 가장 비굴하게 고개를 숙이는 법이다.

학교 야구부는 발칵 뒤집혔지만, 태오에게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이었다.

독이 든 성배와 같았던 혹사 감독을 완벽하게 치워버렸다. 이제 그의 앞길을 가로막을 장애물은 존재하지 않았다. 어깨는 온전했고, 그의 가치는 전국대회 우승과 156km의 강속구로 완전히 증명되었다.

고교 야구라는 좁은 우물은 이제 끝났다.

태오의 시선은 이미 태평양 건너, 세계 최고의 포식자들이 날뛰는 메이저리그(MLB)의 마운드를 향하고 있었다.

그날 오후, 목동야구장의 짐을 정리하고 나오는 길이었다.

해질녘의 붉은 노을이 야구장 외부 로비를 길게 비추고 있었다. 우승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로비는 한적했다. 태오가 가방을 한쪽 어깨에 걸치고 걸어가던 그때, 두 개의 그림자가 그의 앞을 가로막아 섰다.

태오가 걸음을 멈추었다.

검은색 포멀한 수트를 차려입은, 냉철한 지성이 돋보이는 눈빛의 젊은 여성. 그녀의 손에는 세련된 가죽 비즈니스 가방이 들려 있었다. 대한민국 야구계에서 가장 정밀한 분석 알고리즘을 다룬다는 데이터 전문가, 한재이였다.

그리고 그녀의 옆에는, 터질 듯한 덩치에 선글라스를 낀 의문의 외국인 남성이 버티고 서 있었다. 그의 가슴팍에 달린 배지에는 메이저리그 최고 명문 구단의 로고가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한재이가 안경테를 살짝 치켜올리며 태오를 향해 차갑고도 매혹적인 미소를 지었다.

"강태오 선수. 천민국 감독의 사임 건은 아주 흥미로운 타이밍이더군요."

태오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가늘어졌다.

한재이가 비즈니스 가방의 지퍼를 열며 한 걸음 더 다가왔다.

"한국의 낡은 야구 수렁에서 빠져나올 준비는 끝난 것 같으니, 이제 진짜 비즈니스를 시작해 볼까요?"

그녀가 꺼내 든 서류 봉투 겉면에는 붉은색 글씨로 'MLB 가치 분석 보고서'라는 타이틀이 선명하게 인쇄되어 있었다. 옆에 선 외국인 남성이 선글라스를 벗으며 태오를 뚫어질 듯 노려보았다.

새로운 전장이, 마침내 태오의 눈앞에 문을 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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